90년대 등장한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10여년 후 내로라하는 거대 오프라인 서점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보더스는 파산했고 미국 최대 서점 체인인 반즈앤노블의 존재감도 크게 약해졌다. 지금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미국 서점계 최강은 인터넷에서 출발한 아마존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사려면 아마존을 찾는다.
2000년대 등장한 애플 디지털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는 음반 산업의 역학 관계를 뿌리채 뒤흔들었다. 아이튠스가 뜨면서 거대 음반사들에게 음악 유통 시장을 들었다놨다 했던 시절은 아득한 추억으로 다가올 뿐이다. 사람들과 음악을 이어주는 접점은 음반 회사가 아니라 아이튠스로 대표되는 디지털 서비스들이다.
디지털 기반 서비스가 기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거물급 호텔들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성장 속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택시 업계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거침없는 질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디지털발 산업 구조조정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디지털발 산업 구조조정에서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이 있으니 바로 은행이다. 앞으로도 그럴까? 아마존이나 아이튠스가 서점과 음악 시장 지도를 180도 바꿔놓은 것처럼, 은행업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디지털 아이콘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Fin-tech: 금융과 IT의 합성어)를 둘러싼 최대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현재로선 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은행은 신뢰로 먹고 사는 사업이다. 아이튠스나 아마존은 소비자가 속는 셈 치고 그냥 써볼 수도 있겠지만 은행은 다르다. 불안 불안한 은행에 통장을 만들려는 배짱 두둑한 이들은 많지 않다. 은행이 아닌 곳에서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가 쉽게 자리를 잡기 힘들거라 보는 주장들의 핵심 근거도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기존 은행들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신호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를 슬로건으로 내건 스타트업들의 출사표도 쏟아진다.
미국 핀테크 업체 심플(Simple)도 그중 하나다. 심플은 은행 면허를 받지 않고 기존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독자 개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기존 은행 네트워크에 결합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부상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국내서도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늘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핀테크 스타트업 때문에 거대 은행이 틀어쥔 금융 헤게모니가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튠스나 아마존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음악 유통 시장과 서점 생태계가 지금처럼 바뀔거라 예상하는 이들이 드물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회의론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만큼 지금 은행의 입지가 건재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다. 은행들을 위협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변수들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들어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인터넷전문은행이다. 한국에도 내년에는 특정 금융 서비스를 넘어 은행업무 전체를 커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카카오 컨소시엄, 인터파크 컨소시엄, KT 컨소시엄이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올해 안에 이들 컨소시엄에 대한 인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자본력과 규모 면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과는 급이 다르다.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을 보면 이동통신 회사, 거대 인터넷 회사들이 주주로 대거 포진해 있다. 거대한 고객 기반을 고려하면 은행들도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회사들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자리를 잡을 경우 은행권도 디지털발 산업 구조조정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변화의 폭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어느 정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지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금융 서비스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고객 경험 중심의 개인화 마케팅 서비스, 고객 행동 기반 고객 평점 관리, 위치기반 마케팅 서비스,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환경 등을 갖춰야 기존 은행과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페이스북이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처럼 사용자들을 사로잡는 서비스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에 대해 기존 은행들이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 주요 은행들도 디지털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핀테크 스타업들과의 제휴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디지털 뱅크는 기존 은행들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의 혁신성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다. 어설픈 혁신은 기존 은행들의 인터넷뱅킹과 별 차이가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인터넷전문은행을 소비자가 밀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핀테크 확산 속에 앞으로 기존 은행과 신생 금융 기업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자들의 1차 금융 거래 장소가 되기 위해 접전을 치를 것이다. 지금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점을 방문하거나 거래 은행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카카오톡을 가장 먼저 열 수도 있다.
1~2년 후 한국 디지털 금융 시장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기존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주로 쓰고 있을까 아니면 뉴페이스 금융 서비스에 열광하고 있을까? 주사위는 이제 던져졌다.
* 관련 도서
핀테크
강창호,이정훈 공저 | 한빛미디어
‘핀테크’란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지급 결제 서비스뿐만 아니라 예금과 대출 및 자산 관리 등의 각종 금융 서비스를 IT 기술을 통해 처리하는 금융과 IT가 융합된 산업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핀테크로 시작된 디지털 금융의 혁신을 위해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다양한 해외 선도 기업의 사례를 알아보고, 기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모바일 결제 UX 디자인
스킵 알럼스 저/전현정 역 | 비제이퍼블릭(BJ퍼블릭)
휴대전화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이라면 사용하기 쉬우면서도 안전하고 강력한 모바일 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인터랙션 디자이너이자 제품 디자이너인 스킵 알럼스는 이 책을 통해 친숙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경험을 창조할 수 있도록 UX 모범 사례와 권장 사항들을 소개한다.
소비자들은 현금이나 은행 카드처럼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빠른 모바일 거래를 원한다. 이 책은 스타트업에서부터 금융기관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디자이너, 개발자, 제품 담당 책임자들이 개인 정보와 재무 데이터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또한 기대 이상의 부가가치 기능을 제공하는 모바일 결제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디지털뱅크, 은행의 종말을 고하다
크리스 스키너 저/안재균 역 | 미래의창 | 원서 : Digital Bank
영국의 금융시장 분석가인 저자 크리스 스키너는 이러한 은행의 보수주의에 대해 경고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은행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은행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은행이 아니며, 앞으로는 은행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혹은 애플이나 삼성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IT 기술 및 데이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은행은 어떤 미래상을 그려야 하는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핀테크 전쟁
브렛 킹 저/이미숙 역 | 예문 | 원서 : Breaking Banks
세계 최대 금융 관련 팟캐스트인 [Breaking Banks]의 방송 내용을 도서화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핀테크 산업을 주도하는 CEO와 전문가 29인 및 금융 평론가 브렛 킹의 대담 내용을 담았다. P2P대출과 커뮤니티뱅킹, 지불결제, 지점이 사라진 인터넷 전문 은행, 비트코인, 디지털 혹은 암호화 화폐, 재무 복지와 저축을 돕는 신개념 도구 등 핀테크의 전 분야에 관한 설명 및 궁금증과 현황, 전망을 담았다. 핀테크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CEO들의 스타트업 스토리와 전문가들의 전망, 사업모델과 전략, 성공요인에 관한 솔직하고도 명쾌한 대화가 이어지므로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핀테크의 미래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한편, 앞으로 20~30년 동안 금융계의 흐름을 좌우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는 책이다.
왜 지금 핀테크인가
현경민,박종일,김성진,길진세,박장배 공저 | 미래의창
IT 기술 발전으로 촉발된 핀테크 혁명이 우리의 금융 생활을 뿌리부터 바꾸고 있다. 핀테크는 우리의 일상과 떨어진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송금과 결제부터 보험과 자산관리까지 우리의 금융 패러다임 전반을 바꾸는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이 책은 금융과 ICT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들이 생생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핀테크(FinTech)가 금융산업 전반을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막연한 해외 사례의 나열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실로 다가온 국내 핀테크 산업의 현황을 소개하고, 그것이 우리의 금융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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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규(지디넷코리아 기자)
지디넷코리아 정보화부 기자. 아이뉴스24, 블로터 등에서 10여년간 IT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현재 지디넷코리아에서 최신 IT트렌드, 글로벌 이슈를 주로 다루고 있다. 예스24를 통해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IT소식들의 이면에 담긴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쉽게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