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기간 1년 9개월(636일), 여행지 52개국 252개 도시(아시아 9개국 46개 도시, 아프리카 12개국 68개 도시, 유럽 13개국 42개 도시, 중동/북아프리카 5개국 35개 도시, 라틴아메리카 10개국 52개 도시, 북아메리카 3개국 9개 도시), 여행 경비 9200만원.
“우리가 하고 싶은 거잖아.” 이 한마디에 시작했던 세계여행이었다. 결혼 9개월의 맞벌이 신혼부부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삶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여행을 참 좋아하는 두 사람,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기록주의자 오빛나와 흥정주의자 배용연 두 사람의 삶과 가치관 등은 여행을 통해 바뀌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경험하는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책도 펴냈다. 『잠시 멈춤, 세계여행』. 지난 8월 28일, 오빛나는 서울 논현동에서 그들의 여행을 독자들과 함께 나눴다.
“때로는 우리가 하고 싶고,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 수치화된 그 무엇보다 중요할 때가 있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세계여행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이익과 손해를 나눠보고 있었다. 나의 오랜 꿈마저도 끝내야 하는 업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서글펐다. 그래, 가자. 남편, 우리 세계여행 가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진짜’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21쪽)
그렇게 떠났던 세계여행.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여행 경비가 있다. 오빛나는 어느 대륙, 어느 지역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의 여행 경험에 의하면, 1일 생활비(2인 기준)를 보면 아시아 국가는 대체로 물가가 저렴했다. 부탄과 몰디브가 다소 높긴 하지만 아시아를 여행할 때는 이른바 ‘질러도’ 좋다는 것. 반면 아프리카는 의외였다. 많은 이들이 여행 경비가 비싸지 않은 나라라고 여기나 여행자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 우선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여행자용 버스나 렌트카,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비쌌다. 국립공원 투어비도 마찬가지였다. 물가는 저렴했지만 다른 것들이 여행자에겐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반대라면 유럽이었다. 여행 경비가 비싼 대륙이라고 대부분 생각하나 모든 유럽이 그렇진 않다는 것. 동유럽은 특히 물가가 쌌다. 어떤 방식으로 여행하는가에 따라 예산이 달라지는 것이 유럽 여행의 특징이다. 중남미는 중미와 남미가 달랐는데 대체로 중미가 남미보다 저렴했다.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이동거리가 길어서 싸지 않았다. 무섭게 빠져나가는 교통비는 조심, 아울러 지갑을 공격하는 여행지가 있었다. 좋으면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오빛나의 조언. 남미에서는 페루, 볼리비아가 저렴했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
그들은 52개국 252개 도시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묻는다. 각각의 장단이 있는데, 오빛나는 특이한 나라 중심으로 좋았던 곳을 꼽았다. 우선 아시아에서는 부탄. 인도, 중국, 티벳, 네팔 사이에 있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부탄이 그들에겐 인상 깊었다. 부탄은 국가 차원에서 자유여행이 금지된 곳이었다. 부탄 정부가 인정한 현지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만 가능하기에 비쌌다. 호텔, 전용가이드, 전용드라이버, 식사 등이 포함된 패키지 비용이 하루 200~250달러였는데, 만족도는 높았다. 평화롭고 친절하며, 손꼽히도록 아름다운 하늘을 가진 나라이자, 부모를 모시고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부탄은 세계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였다. 그는 마지막이었다면 가지 않았을 거라며 돈 아껴서 다른 곳에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몰디브는 충동적으로 갔다. 1박에 60달러짜리 호텔에 숙박했는데 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선 비쌌지만 리조트임을 감안하면 비싸지 않다는 것. 몰디브에 가기 전, 럭셔리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가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를 돌아보고 아프리카를 갔다. 준비도 여행도 힘들었다. 정보가 너무 없어서 초반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대중교통이 있어도 이용이 쉽지 않았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는 캠핑카 여행을 했다. 캠핑카라고 대단한 건 아니고 봉고차를 개조한 정도로 잠 잘 수 있는 캠핑카다. 차를 빌렸더니 자유로워졌다. 아프리카의 도로 사정도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대신 도로에 차가 없다. 그래서 졸린다(웃음). 아프리카만 여행하는 트레킹 투어가 있는데, 그걸 하려고 했는데 나이 제한이 있었다. 27살까지. 그래서 껴주지 않더라. 아프리카 여행은 국립공원을 가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동하는 것부터 밥 먹는 것, 장소도 우리가 모두 결정하면서 여행을 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조건이 있다. 솅겐협정. 유럽 국가들 간 국경 이동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협정으로 2015년 현재 유럽 26개국에서 적용되고 있다. 협정에 소속된 국가에 입국한 날부터 180일 안에 최장 90일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하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3개월을 살았다. 여행한지 1년쯤 되는 시기, 감흥이 줄고 힘이 들어서 스페인에서 집을 얻고 문화도 익히고자 그렇게 지냈다.
“여행을 오래하면 심신이 지치고 목적의식이 사라지는데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스페인이 그랬고, 좋았다. 중남미도 낯선 지역이라고 여기나 무척 좋다. 아즈텍, 마야 유적지 등이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 모여 있는데 이런 곳만 묶어도 3개월을 돌아다닐 수 있다. 요즘 중남미를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은데 인상적인 곳이 무척 많다.”
오빛나는 브라질 북부를 추천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이다.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등 브라질 남부와 달리 여행자가 많지 않고 무척 예뻐서 좋다는 것. 하얀 모래사막에 빗물이 모여서 만들어진 호수가 있고 호수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도 꺼냈다. 우기가 끝나면 물이 마르는데, 물고기는 알을 모래에 낳고, 부화할 즈음에는 비가 와서 물고기가 된다는 것.
“우리는 여행을 깨알 같이 메모했다. 일기를 썼는데, 매일 쓴 것은 아니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버스, 기차 안 등에서 썼다. 남편은 중간에 일기를 포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손때 묻은 일기장이 총 12권이었다. 사진은 총 175,789장(하루 평균 276장)을 찍었다. 우리가 가장 열심히 기록한 것은 가계부였다. 매일매일 기록했다.”
세계여행이 매순간 낭만적이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비용과 시간의 한계 등으로 힘들었다. 짐을 짊어지고 매일 걸어 다녔고 잘 수 있는 곳에선 머리를 대고 잤다.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행이 깊어질수록 개인의 한계가 드러나는 한편 지저분한 곳에도 누웠고, 씻지 않고도 견디는 등 한계도 커졌다. 부부끼리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 다니는 건 어떨까.
“부부가 여행한다고 하면 대부분 로맨틱하겠다, 좋겠다, 멋지다, 말하는데 매일 붙어 있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싸우진 않았다. 여행하면서 금슬이 좋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동네에서 기댈 곳은 서로밖에 없으니까(웃음). 삐친 적은 있지만 서로에게 솔직한 시간이었다. 기본적으로 대화가 많아지니까 상대에 대한 예측도 가능해지더라. 힘들고 서운한 순간도 있었지만 서로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니까 뒤로 갈수록 여행이 쉬웠다.”
세계여행이 바꾼 것들
세계여행의 마지막은 브라질로 계획하고 있었다. 브라질월드컵을 보고 귀국하고자 했으나 돈이 모자라서 돌아왔다. 1년 9개월. 외적으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둘 모두 피부가 까매졌다. 남편은 15kg이 빠졌고, 아내는 기미와 주근깨의 압박이 커졌다. 이렇게 바뀐 외양보다 더 크고 많이 바뀐 것은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필요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아웅다웅하지 말고 가볍게 살자는 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생각보다 변한 것도 없더라. 우리가 생각하기엔 긴 시간이었는데 갔다 오니 찰나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귀국하니 천국에 온 것 같을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한국 여행을 다녔는데 역시 좋았다. 외국에서 여행하다 만난 친구가 한국에 와서 함께 여행했다.”
한국에 돌아와 꿈같은 두 달을 보냈다. 돈이 떨어져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이 기간에 새로운 생각과 고민을 했다. 구직활동을 하는 와중에 몇몇 제안들이 있었다.
“제안 중에는 절로 ‘오~’하는 소리가 나오는 회사도 있었다. 돈을 많이 주고 복지도 좋은 회사도 있었지만, 이전과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일이 정말 재미있을까를 고민했다. 건방지게 이런 오퍼를 거절할 수가 있느냐는 말도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 이직을 할 때와는 다른 기준이 생겼다. 돈 많이 벌고 화려한 명함을 갖는 것보다 우리가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지인을 통해 남편에게 네덜란드에 위치한 회사로 들어오라는 제안이 왔다. 외국을 여행하는 것이 아닌 산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두렵기도 했지만 2주 정도 고민 끝에 일단 3개월만 해보자며 짐을 쌌다. 다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3개월은 넘겨 1년을 바라보고 있다. 새로운 집이 생겼고, 자전거도 4대나 생겼다. 무엇보다 이 기간, 책이 나왔다. 1년 9개월의 세계여행,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변화가 일어났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는 이쯤이면 됐지, 라고 만족하고 있다. 세계여행을 처음 떠나면서는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이 컸지만 결국 여기로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에 있던 나는 여행을 하고 나서 달라져서 그 자리에 다시 갈 수 없다(웃음). 지금 생활에 굉장히 만족한다.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 많은 돈과 시간을 써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이제는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치관, 꿈이 더 확실해졌다.”
Q&A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저자가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에 듣고 싶고, 여건이 안 돼서 여행을 못가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게 여행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어느 회사원, 어느 학교의 학생 등 우리는 일상에선 색칠을 하고 있는데, 여행을 하면 그런 색칠한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예쁜 옷도 필요 없다. 그렇게 껍질을 벗다보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었지, 하면서. 여행하면서 이런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나와 만났다.
우리의 여행 경비는 전세금 1억5천만원이었다. 둘이 함께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이었다. 그 돈을 결혼할 때 집에다 몰빵했다(웃음). 예단도 하지 않았다. 대출도 없었다. 그 전세금을 빼서 여행을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하면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도 사고 명품 가방을 메면서 여행까지 하려면, 우리 형편에서는 힘들다. 다른 걸 포기해서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어떨까,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다. 여행가기 위해 직장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두 달을 여행 간다면 어디가 좋을까.
직장을 그만둬야할지 물어보는 사람도 많더라. 나중에 직장 그만둔 것을 후회할 것 같으면 그만두지 마라. 이 직장이 인생 최고의 직장이라 생각한다면 계속 다녀야지(웃음). 그건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정말 뭐가 더 중요하고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두 달을 여행 간다면 인도를 추천하고 싶다. 인도를 ‘인크레더블 인도’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정확한 것 같다. 인도는 참 매력적인 나라다. 동네마다 색깔이 무척 달라서 갈 때마다 새롭다. 우리는 내년에 또 인도에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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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멈춤, 세계여행오빛나 저/배용연 사진 | 중앙m&b
멀쩡한 대기업에 다니던 5, 7년 차 직장인 두 남녀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한 지 9개월이 되던 어느 날 밤, 그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계획했다.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이 아니면 못갈 것 같아서!” 『잠시멈춤, 세계여행』은 아시아에서 남미까지 636일 간 52개국을 여행한 한 신혼부부의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여행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돌아온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발적 백수 부부에서 야무진 여행자 부부로 진화한 용감한 그들의 스펙터클한 세계여행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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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