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지난 7월 30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막을 열었다. 1965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는 작품. 기자도 가장 여러 번 봤던 공연 중의 하나로, 그리고 언제든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꼽는 뮤지컬이다. 국내에서는 2005년 뮤지컬 <돈키호테>로 첫 선을 보였고, 2007년 다시 <맨 오브 라만차>로 이름을 바꿔 무대가 이어질 때마다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돈키호테 역에 올해는 돈키호테 단골 배우인 류정한, 조승우 씨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뮤지컬 섭외 0순위 배우들이지만, ‘류동키’와 ‘조동키’는 전혀 다른 매력의 소유자(관객들이 주로 표현하는 방식대로 ‘동키’로 표기한다). 이번 기사는 두 배우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며 객석에서 나눴을 법한 얘기들로 각색해 봤다.
C구역 12열 5번 : 이 뮤지컬 내가 알고 있는 그 돈키호테 얘기지?
C구역 12열 4번 : 응,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다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원작이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1965년 뉴욕에서 초연됐는데, 그전에 코네티컷 주에 있는 굿스피드 오페라하우스에서 4주간 진행된 트라이아웃 공연 때 이미 흥행을 예견했다더군.
C구역 12열 5번 : 400년도 더 된 얘기가 아직도 먹히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일찍 예매했는데도 C구역이라고.
C구역 12열 4번 : 꿈에 대한 이야기잖아. 꿈과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화두라고. 그 환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공연예술이고.
C구역 12열 5번 : 하긴, ‘로미오와 줄리엣’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고 있지. 그런데 이 공연은 극중극 형식이라 처음에는 좀 복잡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어.
C구역 12열 4번 : 무대 배경은 스페인의 한 지하 감옥이야. 2층 객석과 비슷한 높이의 무대위쪽에서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인상적이지. 이 감옥에서 신성 모독죄로 끌려온 극작가 겸 배우, 시인, 동시에 세무직원인 세르반테스는 죄수들에게 또 다른 재판을 받게 되는데, 무죄를 인정받기 위해 죄수들과 함께 자신의 글로 즉흥극을 벌여. 난 자꾸 봐서 그런가? 러닝 타임이 3시간인 공연 중에 <맨 오브 라만차> 만큼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작품도 없어.
C구역 12열 5번 : 그 글이 소설 ‘돈키호테’군.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라는 노인이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어서 스스로를 돈키호테라는 기사로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떠나는 얘기잖아. 풍차를 거인이라며 달려들고,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가서는 창녀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레이디 둘시네아라며 무릎을 꿇지.
C구역 12열 4번 : 맞아.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작가 세르반테스와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인 돈키호테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세르반테스는 젊은 지성인이고, 돈키호테는 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무릎에서 힘 빠진 노인이거든. 목소리에서 말투, 몸짓까지 전혀 다른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만큼 배우에게는 큰 도전이지. 하지만 이걸 제대로만 해내면 관객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고.
C구역 12열 5번 : 그래서 ‘조승우, 조승우’ 하는군.
C구역 12열 4번 : 그렇지, 배우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나도 처음 ‘조동키’를 봤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2007년, 뮤지컬 <돈키호테>에서 <맨 오브 라만차>로 이름을 바꿔 무대에 올랐을 때인데, 세르반테스가 죄수들에게 즉흥극을 제안하며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하면서 극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잖아. 그러면서 어느 순간 돈키호테로 목소리며 몸짓이 바뀌는데, 연기라기보다는 신기에 가까웠어. 출연하는 뮤지컬마다 매진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C구역 12열 5번 :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연기에 익숙한 배우라서 디테일이 강한 것 같아. 아무래도 무대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보다는 상징적이잖아. 그러니까 <맨 오브 라만차>나 <지킬 앤 하이드>처럼 1인 2역을 해야 하는 섬세한 무대에서 더 돋보이는 거지. 그런데 오늘은 왜 류정한 씨 공연이야?
C구역 12열 4번 : 개인적으로 올해는 류정한 씨 공연으로 골라보고 있어.
C구역 12열 5번 : 예전에도 그렇게 좋아했나?
C구역 12열 4번 : 시원한 가창력이 그리울 때면 찾아보곤 했지.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연기에도 정점을 찍은 것 같아. 류 배우 공연은 데뷔작부터 봤으니 나름 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이제는 연기 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고 할까? <맨 오브 라만차>만 봐도 ‘조동키’가 세련되고 쫄깃쫄깃하다면 ‘류동키’는 친근하고 귀엽잖아. 귀공자, 차도남 류정한이 무대 위에서 이렇게 편안해지다니 놀라워.
C구역 12열 5번 : 사실 류정한 씨 최근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무대에 서고 있잖아, 그것도 대극장 공연만. 뮤지컬계의 신동엽 같아(웃음). 특히 해마다 같은 인물로 무대에 서는 작품도 많고. 그래서 이제 그 인물이 돼버린 게 아닐까? 돈키호테만 해도 초연 때부터 참여했으니까.
C구역 12열 4번 : 그렇지. 연기도 연기지만,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음색과 가창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아. 몇 년 전에 류정한 씨가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는데, 그때 애국가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었는지 몰라.
C구역 12열 5번 : 하긴 이 작품에도 정말 좋은 넘버들이 많은데, 류 배우가 노래는 단연 잘 부르지. ‘이룰 수 없는 꿈’은 미국에서는 초연 후 플라시도 도밍고, 엘비스 프레슬리, 앤디 윌리엄즈, 페리 코모 등이 다시 부르기도 했잖아. 류정한 버전도 정말 멋져.
C구역 12열 4번 : 응, 음역대를 좀 높이면 류정한의 가창력이 더 돋보일 것 같은데 말이야. 그나저나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고. 그리고 도입부의 ‘맨 오브 라만차’라는 노래도 정말 흥겹지 않아? 나도 모르게 플라멩코를 추는 사람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게 된다니까.
C구역 12열 5번 : 맞아, 넘버들이 모두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맨 오브 라만차>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지. 산초의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야. 코믹함 가득한 정상훈 산초에 길들여졌는데, 김호영 산초도 귀엽더라. 알돈자에 여관 주인도 빼놓을 수 없지. 캐릭터들이 모두 통통 살아 있어. 어쨌든 난 한 배우의 공연만 봐야 한다면 ‘조동키’를 보겠어. 섬뜩할 정도의 연기력이라고.
C구역 12열 4번 : 말리지 않아. 조승우 씨는 대극장인데도 관객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묘한 재주가 있어. 그런데 내가 올해 유독 류정한 씨의 공연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그가 외모와 달리 벌써 40대 중반이라고. 이미 같은 배역을 열 살 이상 차이나는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 지 오래됐지. 이렇게 몇 년간 쉼 없이 달리는 이유가 스스로 어느 지점을 정해두지 않았을까 싶어. 물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예전에 인터뷰할 때 얼핏 이런 얘기를 꺼낸 적이 있어서 왠지 그의 대표작을 모조리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
C구역 12열 5번 : 하긴 30대 초반에 첫 류동키가 됐고, 20대 후반에 첫 조동키가 됐으니, 다른 20~30대 배우들에게도 그 기회가 돌아가야겠지? 그런데 그런 나위 따위 무시하면 안 되나? 그게 이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잖아. 우리야 매일 거울의 기사에게 무릎을 꿇고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지만, 배우들은 돈키호테처럼 환상을 살아줘야지.
C구역 12열 4번 : 이 작품이 모든 이상주의자들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지. 영원히 꿈꾸고 싶은,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말이야. 하지만 배우도 무대 밖에서는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그 현실이 있기 때문에 무대가 더 간절할 수도 있고 말이야.
C구역 12열 5번 : 그래도 난 꿈꿔보겠어. 10년 뒤에도 류동키를 볼지, 조동키를 볼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말이야. 그 정도는 버텨줘야 진정한 돈키호테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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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