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교수가 말하는 ‘모라토리엄’
사회적인 쓸모를 떠난 시간, 순수하게 자신의 즐거움이나 호기심을 위한 몰입의 시간을 보낸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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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등을 통해 삶을 탐구했던 강상중 교수가 이번에 집중한 것은 '마음'이었다. 많은 것이 어려운 시대, 바로 지금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마음인가? 알려져 있듯, 그는 아들을 잃는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강상중 교수를 마음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바라본 것이다. 그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시대에 집중했다. 마음을 통해 시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은 시대 안에서 시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왜곡된 시대에 사는 개인은 마음의 왜곡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게 강상중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모라토리엄'이라는 개념으로 마음의 강인함, 마음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사회적인 쓸모를 떠난 시간, 순수하게 자신의 즐거움이나 호기심을 위한 몰입의 시간을 보낸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대입만을 위해 초등학교(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각종 사교육에 시달리고, 단 한 가지 목표가 삶의 전부라고 여기며 달려온 사람들은 마음의 힘이 강하려야 강할 수가 없다. 강상중 교수는 도쿄대 교수 재직시절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많이 보아왔다. 일본 제일의 대학교에 입학한 수재들의 내면은 더할 수 없이 약해서 쉽게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어디 그들뿐인가. 청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기록적인 나라에 사는 우리는 절망과 체념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살고 있는지.

 

(전략) 요컨대 사람은 개인으로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시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대에 모순이 있으면 개인의 정신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꿈도 희망도 없고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데 개인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78쪽)

 

지난 5월 12일 신작 『마음의 힘』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강상중 교수와 독자들이 만났다.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한 강상중 교수 강연회는 "마음은 시대와 함께 있다"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강연은 정호석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는데, 정중하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한국어로 인사한 강상중 교수는 가장 먼저 몇 번이나 한국어를 공부해보려고 독학을 했는데,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해 좌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얻은 것과 잃은 것 


"현재 한.일 관계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 강상중 교수는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온 듯했다. 어렸을 때는 후에 이렇게 책을 써서 한국에 번역이 되고 한국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한국에 대한 추억을 먼저 꺼냈다.

 

"1971년 처음 한국을 찾았습니다. 유신체제를 바로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가 노동 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을 했던 뜨거운 시기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4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대립되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유사하게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시절 동안 많은 것을 얻음과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는 실감입니다."

 

올해는 광복 70년 되는 해다. 일본의 시각에서는 전후 70년. 이 시점에서 한.일 사회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그 세월동안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강상중 교수가 책에도 썼듯, 이 시대의 한계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일본을 들여다보자. 일본 사회에는 최근 10여 년 동안 인간의 '뇌'와 관련한 유행현상이 있었다. '뇌과학' 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잠을 자면서도 영어 단어를 암기할 수 있다거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뇌를 파고들어 인간을 이해하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만연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고 이후 그간 유행했던 뇌과학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위 '스피리츄얼(spiritual, 기수련)'이라고 하는 것이 채웠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취재차 인근 지역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재민으로부터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인간의 마음,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매우 비과학적이다. 과학이 상당히 무력해지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어떻게든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커다란 재난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것에 기대려 하는 열망을 가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강상중 교수는 마음의 문제를 100년 전으로 돌아가 고찰한다. 20세기 초의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와 많이 닮아있다고 그는 말한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사회 풍경과 지금,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한국에서 정작 마음이 풍요롭다는 실감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의 삶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 가족관계의 갖가지 문제, 사회모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예전에 비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전례 없는 불안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고,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감이 무척 크다고 강상중 교수는 진단했다.

 

"최근 한 일본 젊은이가 쓴 논문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해봐야 결국 홈리스, 유일한 희망은 전쟁>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100년 전 사회도 지금과 무척 닮아있었습니다. 한국은 식민지 치하였고, 유럽을 포함한 세계 역시 빈부격차가 상당한,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들이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젊은이들이 겪는 현실이 100년 전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에서 『마음의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아동 빈곤율은 16%에 달한다. 5명 중 1명이 연소득 2만 엔(약 2천만 원) 이하인 생활을 한다. 한국 역시 노령인구의 고독과 빈곤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풍요로운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던 중산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강상중 교수는 이러한 상황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의 1차 세계대전 사회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살아내려고 했는가를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나쓰메 소세키의『마음』 에서 찾았다. 지금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것에 가치를 두는 일이고, 그것이 문학,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략) 세상은 마치 1930년대 초입에 들어선 것처럼 화약 냄새가 나고, 무거운 공기에 싸여가고 있다. 토마스 만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외견상으로는 매우 활기를 띠고 있어도 실질적으로 내면적으로는 희망도 전망도 전혀 없는’시대가 찾아오려 하는 것이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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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엄


강상중 교수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때를 이야기했다. 사회란 미약한 개인을 보호해야 하는 것인데 도리어 개인에게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실감했을 것이라고 말한 강상중 교수는 일본 역시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서도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나오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1979년 영국에 있을 때, 마거릿 대처의 취임 연설을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개인일 뿐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사회라는 것이 개인들의 안전망이 되어준다는 감각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 설정, 이 둘의 관계를 다시금 재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방법으로 '모라토리엄'을 말한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생산성, 합리성과 관계없는 세계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강상중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탈락의 공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에게도 '모라토리엄'의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모라토리엄'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란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보통 사람들이 '모라토리엄'을 선택한다는 것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모라토리엄'이라는 말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 입장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쓸모없는 것을 충분히 할 만큼 해봤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이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내 안에서 찾는 이미지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무척 낮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크게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늦은 시각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한국의 학원가 풍경이라고 말한 강상중 교수는 강연을 듣는 독자들에게 그들도 일종의 '모라토리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설명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다보스에 있는 요양원에서 주인공 한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역시 한 젊은이가 선생을 만나서 감흥을 얻고 여러 편력을 거치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시련을 넘어서서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강상중 교수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삶에서 '모라토리엄'의 시간, 다른 이들과 만나고 만남을 통해 살아갈 동기를 발견하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면 삶의 어느 순간에 정신적 파탄에 빠지거나 커다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강상중 교수는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했다. 인생살이에서 다양한 편력을 거치면서도 타인을 믿을 수 있다는 체험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에게 물었다. 일본의 동일본대지진,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 이후, 미래, 희망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에 마주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그는 낮은 상태의 희망을 담담하게 말했다. '생존'의 문제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식어버립니다. 하지만 '악(惡)'에 대해 이야기하면 눈이 빛납니다. 중학생정도만 돼도 지금 세상이 사랑이나 희망,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상상 이상으로 이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듣고,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믿지 않는 희망에 대해 말한들 학생들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압니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잃은 장소입니다. 그 장소에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져있습니다. 거기 쓰여 있는 말은 단 한 마디, '도망가라'입니다. '도망가라'는 말은 절대 희망이 아닙니다. 단지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으로 적어놓은 말입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동기부여 해야 합니다. 생존방법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무엇이 희망인가에 대해서는 결국 본인이 발견해야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 토마스 만의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삶의 동기부여는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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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강상중 저/노수경 역 | 사계절
‘고민 끝에 얻은 힘이 강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일본의 백만 독자, 한국의 수많은 청춘들에게 큰 울림을 안긴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이 신작 『마음의 힘』을 펴냈다. 방황하던 재일 한국인 청년이 일본 사회의 유력 지식인으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상처를 극복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온 당사자로서 이제 넓은 마음의 바다로 나아가 인생론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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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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