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백지수표를 내놓는다면 한 번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 난 과거를 돌아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다."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2014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갤러거 형제에게 통용되지 않는 것인가. 끝날 줄 모르는 형과의 싸움 이후,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지며 비디 아이(Beady Eye)를 결성했던 리암 갤러거는 < BE >(2013)라는 자충수로 자멸했다. 모태인 오아시스(Oasis)를 '잘' 재현해냈지만, 특출한 창작자는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앤디 벨(Andy Bell)은 친정인 라이드(Ride)로 복귀했고,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형인 노엘 갤러거는 보란 듯이 자기 음악에 매진 중이다.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의 두 번째 정규작인 < Chasing Yesterday >는 오아시스의 베일을 완전히 벗어나려는 모습이다. 생애 첫 셀프 프로듀싱의 이번 앨범은 전작의 아쉬움을 상쇄할 정도로 훌륭하다. 2009년에 오아시스 해체 후, 2011년 발표한 그의 첫 솔로 당시 당사자인 노엘의 생각은 차치하더라도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성공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다질 전망이다. '브릿팝의 왕자'는 여전히 노엘 갤러거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노력은 첫 앨범에서부터 있었지만, “어제는 안녕!”이라 외치는 듯 방점을 찍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악기의 종류가 많아짐과 동시에 모든 파트의 연주가 섬세해졌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사운드 메이킹도 유심히 들어보면 큰 변화가 감지된다. 기타를 전면에 배치하지 않으며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또한, 단순한 코드 위주의 진행과 더불어 질러대고 후려쳤던 연주와는 달리 악곡의 구조가 다소 복잡하고 세심해졌다. 악기 간 볼륨 밸런스도 다층적 구성을 통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감상이다.
앨범에서 본인의 베스트라 밝힌 오프닝 「Riverman」에서부터 변곡점을 감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일단 백 코러스가 그가 흔히 하던 방식이 아니다. 오아시스 시절에는 노엘이 주 멜로디 라인을 키만 바꿔 따라 부르는 식의 백킹 보컬이었지만, 가성을 실은 목소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브라스와 건반 세션, 어쿠스틱 기타의 오묘한 조화가 듣는 재미를 더한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소리의 층을 쌓아 몸집을 키웠다.
첫 싱글로 공개했던 「In the heat of the moment」는 의외의 트랙이다. 그의 인터뷰를 지켜봐 왔던 팬이라면 노엘 갤러거의 기본 성향, 동료 음악가들을 바라보는 태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나나나”라는 코러스 인트로가 이내 마음에 걸린다. 이는 그가 대 놓고 욕을 퍼부었던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나 에드 시런(Ed Sheeran)류의 '그것'이 아니었던가. 다양한 악기 섹션이 빽빽하게 층을 이루고 있고, 기타를 전면에 배치하지 않고 베이스 라인에 힘을 실은 것도 예상외의 재미다.
「Lock all the doors」는 노엘의 전매특허라고 볼 수 있는 로큰롤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나 「Supersonic」, 「Rock 'N' roll star」와 같이 내달리는 후련한 곡이다. 「You know we can't go back」도 마찬가지다. 공연장에서 뛰어놀고 따라 부르기 좋은 반가운 곡으로 오아시스 팬들의 몰표를 받을 수 있는 장쾌한 기조가 반갑다.
매드 체스터(Madchester) 영광의 선봉장이었던 스미스(The Smiths)의 기타리스트 조니 마(Johnny Marr)의 참여로 무게감을 실은 「Ballad Of The Mighty I」 역시 솔로 커리어에 대한 확실한 방점을 찍는다. 그간 라이브러리와의 차이점의 중심은 피아노다. 주력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소에 배치시켜 곡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In the heat of the moment」와 마찬가지로 베이스 라인이 곡 전체를 주된 골격을 만들고 있다. 확실한 변화다.
오아시스의 팬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모든 곡이 다 그만그만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곡조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노엘 갤러거를 우리 시대의 '멜로디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어제를 쫓아서'라는 타이틀이 애석하기만 하다. 팬들의 변함없는 바람이 있다면, 동생과 하루빨리 조우해 오아시스 새 앨범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것일 테다. 이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 Chasing Yesterday >를 통해서 확실히 다시 한 번 굳게 선을 그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그림자는 이제 다시는 그에게서 필요 없어 보인다.
2015/03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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