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헤이니(Emile Haynie) < We Fall >
활동 영역을 확장시켰다. 오비 트라이스와 래퀀, 고스트페이스 킬라와 같은 힙합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카니예 웨스트, 에미넴, 라나 델 레이, 브루노 마스 등 여려 팝 스타들과의 작업을 통해 괜찮은 재능을 알려온 이 프로듀서는 첫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진정한 독자의 영역을 확보해냈다. < We Fall >은 프로듀싱과 공동 작곡, 연주에 크레디트를 한정시켜왔던 에밀 헤이니의 데뷔작이다.
음반에는 즐길 거리, 들을 거리가 가득하다. 프로듀서로서의 역량과 욕심을 내보이기라도 하듯이 내세운 피쳐링 라인업이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과 랜디 뉴먼, 콜린 블런스턴에서 출발해 루퍼스 웨인라이트와 샬롯 갱스부르를 거쳐 라나 델 레이, 파더 존 미스티, 펀의 네이트 루스, 더 엑스엑스의 로미 매들리 크로프트까지 초대해 짜낸 출연진은 에밀 헤이니의 작품에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게 하는 추진력을 제공한다. 많은 구성원들만큼이나 내용물들도 자연스레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다. 트랙이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앨범은 각양의 스타일들이 차린 여러 옷들로 갈아입는다.
이 지점에서 에밀 헤이니의 수준 높은 감각이 드러난다. 이미 많은 경험을 축적해놓은 이 프로듀서는 피쳐링 아티스트들 개개인에게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주조해 음반 전반에 큰 상승효과를 불어넣는다. 브라이언 윌슨, 앤드루 와이엇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사이키델릭 팝 「Falling apart」를, 라나 델 레이와의 교류가 다시 이뤄지는 지점에서는 무거운 공기의 「Wait for life」를, 리키 리와 로미 매들리 크로프트가 목소리를 섞은 곳에서는 일렉트로니카의 성격을 조심스레 드러내는 「Come find me」를 꺼내든다. 네이트 루스가 가세한 「Fool me too」에서 펀의 흥겨운 팝 록 사운드가 잡히는 것도, 랜디 뉴먼이 참여한 「Who to blame」에서 노장 싱어송라이터의 작법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를 공유한다.
시야를 더욱 확대시켜보자. 뛰어난 음악가들과 함께한 좋은 곡들이 제각각의 색을 발산하나 음반 고유의 흐름은 결코 분산되지 않는다. 잘 들리는 멜로디에 오케스트라 편곡을 더해 만든 사이키델릭 팝, 바로크 팝 사운드가 주된 성분으로서 작품의 맥락을 훌륭히 잡아 이끌어간다. 곡마다의 방법론에 따라 모양은 변한다 해도 풍성하게 울리는 스트링과 부피감 있는 퍼커션이 선율과 함께 트랙을 이끄는 구조는 작품 전체에 유효하다. 1960년대의 사이키델리아에 근간을 두는 「Falling apart」가 앨범의 컬러를 잘 대변하며 파더 존 미스티와 줄리아 홀터가 함께한 「Ballerina's reprise」, 피쳐링이 없는 「Drity world」 또한 내부의 경향에 충실하다. 이러한 연출은 「Wait for life」와 「Fool me too」와 같은 다소 이질성이 담긴 곡들도 큰 그림에 잘 녹아들게끔 한다.
실력 좋은 아티스트, 프로듀서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드러낸다. 듣기 좋은 멜로디와 사운드, 적확하게 배치된 피쳐링이 이뤄내는 조화로부터 음반의 매력이 표출된다. 매 트랙이라는 세밀한 단위에서부터 음반 전체라는 큼지막한 단위에까지 멋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크기가 큰 사운드이나 결코 부담감이 없으며, 옛 감각에 방식의 기초를 두었음에도 결코 고루하지 않다. 매끈한 터치가 교차하는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 결과물이 실로 우수하다. 온갖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발광체를 맵시 있게 다듬은 이 작품에는 높은 점수의 평가가 응당 따를만하다.
2015/03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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