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 이영광 시인과 함께 시 읽는 밤
시 읽는 밤이다. 창비와 예스24가 진행하는 2015 시 읽기 프로젝트 '詩詩한 시인들의 詩詩한 이야기'의 첫 번째 자리가 열렸다. 최근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출간한 최정례 시인과, 『나무는 간다』의 이영광 시인이 자리 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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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와 예스24가 매달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하는 '詩詩한 시인들의 詩詩한 이야기' 행사의 첫 번째 순서로 최정례 시인과 이영광 시인을 만났다. 3월 5일 인문카페 창비에서 진행된 '詩詩한' 밤에는 최정례, 이영광 시인과 더불어 사회를 맡은 송종원 평론가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가장 먼저 송종원 평론가의 낭독으로 문을 열었다.

 

낭독시는 최정례 시인의 <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 낭독을 마친 송종원 평론가는  "이 시는 특이하게 읽는 사람의 입을 잘 움직이게 하는 소리들로 조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시를 소개했다. 이어 최정례 시인의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참 이상한 시집"이라고 말하며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계속 읽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 "한 '이상함'을 쓰는 시인"으로 이영광 시인을 소개한 송종원 평론가는 이영광 시인의 시를 읽으면 "사는 게 왜 이렇게 괴롭지, 하는 느낌이 드는데 또 이상하게 읽으면 '좋다, 또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상한, 詩詩한 두 시인, 최정례 시인과 이영광 시인을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시인이 된 이유


송종원 평론가는 가장 먼저 두 시인에게 '시인이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최정례(이하 '최'): 어쩌다 시인이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네가 국문과를 가지 않으면 누가 가느냐고 해서 갔어요. 고등학교 때 문학 반장 이런 것도 했고요. 대학에서 '문학회'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얻게 된 결론은 절대 문학을 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문학하는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게 저의 목표였어요. 어느 날 보니까 결혼을 하고 있더라고요. 당시 저는 교사였어요. 결혼하고 1년은 괜찮았어요.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 정도로 말이에요. 그러다가 1년쯤 됐을 때 남편이 아팠어요. 병명도 몰랐고, 사람들이 다들 죽는다고 했어요. 갑자기 굉장히 이상해졌잖아요. 이렇게 안 살려고 문학 같은 걸 절대 안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하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살아도 행복이 아니고, 저렇게 살아도 행복이 아니야, 그러면 쓰면서 살면 어떨까 했던 게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이영광(이하 '이'): 시인이 된 것은 제도를 통과했기 때문이고,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것은 나름대로 준비해서 썼기 때문이고, 왜 썼냐 하면 아마도 좋아서였는데, 왜 좋았냐 하면 그저 그냥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듯이 좋아한 건 아니고 좋아하게 된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면 좀 착잡하고 복잡해요. 저는 어려서 늘 뭔가 나한테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을 했어요. 일찍 집을 떠나서 자취생활을 했고, 그러다보니까 없는 게 많아서 아마도 그 없는 것이 보상되었으면 하는 차원에서 글쓰기를 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1979년이었는데 그때 연말 10대 뉴스를 찾아보면 돼지 파동이라는 게 있어요. 저희 집이 농사만 지어서는 못 사니까 돼지를 200마리쯤 기르고 있었는데 돼지 파동이 나서 집안이 망했어요. 정신이 박힌 중학생이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지, 이런 생각을 함직도 했는데 그러질 않고 노트를 한 권 구해서 시 비슷한 것을 쓰기 시작했어요. 3년이 지나서 1982년에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 연말 10대 뉴스를 찾아보면 소 파동이 일어난 게 있어요. 돼지 키우다 망한 집이 다시 재기를 하려고 소를 잔뜩 기르고 있었는데 소 파동이 나서 또 집이 망했어요. 그런 게 다 저한테는 어떤 모자람이고 가난이란 것이 결핍이었는데, 그런 걸 채우려는 의식적 작용이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 저는 왜 제가 시를 시작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그때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신흠이라는 시조를 배우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에요.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 닐러 다 못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 진실로 플릴거시면 나도 불러 보리라" 시를 지으면 시름을 풀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제 인생이 시름겨웠는데 "야, 이건 내 얘기가 아닌가. 그럼 한 번 해볼 만하다." 그 석 줄이 화살처럼 가슴에 날아와서 꽂혔어요. 아마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밀한 이야기였다. 두 시인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성실하게 질문에 답하며 자신들의 시 세계를 말했다.


시집을 읽을 때면 자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시인에게 일상은 모두 시가 되는가? 찰나를 짚어내고 짧은 순간에 담긴 의미를 캐는 시인들이 궁금한 이유다. 시인에게 시적인 순간이 언제 오는가? 송종원 평론가가 두 시인에게 물었다. 먼저 최정례 시인이 답했다.

 

최: 시적인 순간이 잘 안 와요. 절대로 안 와요. 하여튼 쓰기는 써야 하잖아요. 원고 청탁 마감 날 써놨던 것들을 막 뒤져요. 시인도 똑같아요.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해서 시를 잘 쓰면 경험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제일 잘 써야 하잖아요. 그게 아니고요. 스케치 해놓은 것이라든가 지난번에 썼다가 실패한 것 다시 고치기, 붙이기 해서 만들어내지, 어느 순간에 시적 순간이 오거나 그렇지 않아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런 순간은 있어요. 저는 아침에 정신이 나는 사람이라 눈 떴을 때 바로 안 일어나고 뭉개요. 그때 좋은 생각들이 잘 나는 것 같아요. 이상한 꿈을 꿨다면 적어놓고요. 그런데 아침에는 밥을 해야 하잖아요. 밥을 하면서 여기저기 어지럽히면서 여기 놨다, 저기 놨다, 라디오까지 틀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해요. 아무 데나 적어 놓으면서요. 요새는 잘 잊어버리니까 적어 놓는 게 좋죠. 아무 데나 적어두었다가 빨리 써라, 원고 청탁이 오면 그때 이것저것 뒤져서 붙여 놔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 최정례 시인에 대해 송종원 평론가는 그러나 "교통사고가 나도 시를 쓸 수 있고, 자신의 실수를 가지고도 시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든 적도 있다"고 되물었다.

 

최: 실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싸움했기 때문이에요. 싸움하면 지잖아요. 지면 억울해요. 그러면 적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억울함을 보충할 데가 없어요.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라 억울함 때문이에요. 적으면 억울함이 풀려요. 또 적을 때는 내 편이잖아요.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적음이죠.

 

그렇다면 이영광 시인은 어떨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시인의 경우, 시 쓰는 일이 시인에게 무척 잔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저는 아침에 밥은 안 해도 되니까 일어나서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가 세게 얘기하셨는데 그런 느낌을 스스로 가질 때가 있어요. 일종의 자기 심문의 느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야비한 놈이어서 거짓말도 잘하고, 위험한 것 불편한 것 무서운 것 싫어하기 때문에 그냥은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다뤄서는 내가 내 진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떤 때는 아주 사납게 다뤄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자기를 심문한다고나 할까? 시 쓰기에서는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생각이 우물처럼 고여서 넘쳐나는 그런 상태를 기다려서 쓰라고 하는데, 제 경험에서 그건 새빨간 거짓말 같아요. 그런 일은 거의 있지 않아요. 반대로 우물의 물이 줄고, 줄고, 줄어서 완전히 말라 물을 얻으려면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땅을 파헤쳐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자기를 좀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자백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시를 쓰려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졸업을 했다고 생각해요. 술 마셔서 정신이 좀 흐트러진다고 시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술을 마시는 건 정신이 들기 위해서, 의식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럴 때가 있어요. 보들레르가 '취하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깨어나란 소리겠죠. 역으로 이렇게 똑똑한 머리를 잠재우지 않으면 안 돼요. 똑똑한 머리가 어느 정도 잠든 상태가 사실은 시에 필요한 깨어남의 상태인 거죠. 그래서 그렇게 좀 의지할 때도 있습니다. 화가 난 상태를 말씀 하셨는데, 화가 나죠. 화가 안 날 수가 있습니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요. 화날 때가 많습니다. 화를 그냥 내면 안 되니까 마음을 더 죽여서, 눌러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화를 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깊은 곳에서 크게 지르는 것, 이런 것은 그냥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요. 그런 상태를 마음에 조성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할 때가 있고요. 역시 우는 심정이라는 게, 제 체질이 그런 것 같습니다. 쓰다가 보면 울고 있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마음속으로 더 내려간다는 기분이 들 때는 그렇게 격정적이 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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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시인 "억울함 때문"


시를 낭독하는 시인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담담한 소리 안에 시가 들었고, 시인이 들려주는 시는 시 읽기와는 다른 깊이가 있었다. 먼저 최정례 시인이 시집의 표제시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낭독했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과연 그럴까?"고 고치고 싶었다는 시인은 낭독 역시 고치고 싶던 내용으로 읽어 새롭게 시를 전달했다. 시인은 이어 시의 3연의 내용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는 문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최: 김승희 선생님 남편께서 돌아가셨어요. 거기를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안 왔어요. 그런데 그날 굉장히 저한테 나쁜 일이 일어났어요. 너무 억울하고 당한 것 같은 마음과, 제가 참 좋아하는 분 김승희 선생님의 슬픔과, 왜 이렇게 햇빛은 쨍쨍한지, 버스는 안 오는데, 하는 복잡한 마음이 함께 일었어요. 그래서 그때 친구에게 문자를 했는데 집에 가서 내용을 보니까 좋더라고요.

 

이영광 시인이 읽는 최정례 시인의 시도 궁금했다. 동료 시인의 눈에 비친 시인의 모습을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중에 <병정>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견고한 시입니다. 굉장히 빼어난 서정시인데, 기존에 우리한테 익숙한 서정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여 있었던 것 같아요. 친절하지는 않은 시였어요.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더 좋았어요. 그렇게 규격적이거나 전격적이지 않은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 이후의 시의 변모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늘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 거기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천착, 그 체험을 이렇게 시로 변형해내는 어떤 노력 같은 게 늘 관심이 갑니다.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감각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실은 거꾸로 가장 무감각한 그런 곳이고 그냥 흘러가는, 시간 속의 어떤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잖아요? 그런 흘러가는 일상의 어떤 작은 것들을 잡아채고 거기에 생겨나는 균열을 붙드는 이런 식의 노력이 일관되게 진행됐던 것 같고요. 일상의 낯선 경험 속에서 생겨나는 혼란, 그걸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어떤 착란적인 상태와 관계되는 이런 저런 말들이 최정례 시인의 시에 힘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악착스럽다, 또는 억척스럽다고 하는 면모가 있습니다. 시 속의 화자가 그럴 때가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별로 일상에 관심이 없는데, 이 작품들을 보면 진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목소리다워요.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말의 분량이 증가됐지 않습니까? 그래서 재미있어요. 아이러니도 있고, 위트도 있고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 처연하고 쓸쓸할 때도 있어요. 또 다른 모습을 시인이 가고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읽었습니다. 

 

송종원 평론가도 이어 최정례 시인의 시에 대해 말했다. 최정례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하소연이라는 것이었다. 분하고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 호소하고 있는 목소리가 종종 들어있는 것 같은데, 최정례 시인이 대하는 삶이라는 게 시인에게 수많은 봉변과 돌연한 모욕감 같은 것들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이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 실린 <가방은 없었다>라든지 <검은 문구멍> 같은 시를 들어, 시인이 겪은 돌연한 사건들, 그 안에 어떤 하소연이 잘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최정례 시인의 시를 두고 세대적인 감수성도 같이 논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느끼는 분함이나 답답함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시인에게 물었다. 시인은 본인의 시가 세대를 대변한다고 느낀 적이 있을까?

 

최: 제가 누구를 대변한다고 생각은 안 하고 썼어요. 그냥 내 얘기를 쓴 건데, 대변한다고 하면 고맙죠. 남의 얘기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영광 시인이 하는 것처럼 쓸 수 없기 때문에 내 방법으로 쓰는 거예요. 이영광 시인은 굉장히 자신을 고생시켜요. 육체도 고생시키고, 마음도 고생시켜요. 고생을 많이 시키고 그 고생한 힘으로 앞으로 가거든요. 저는 그러기 싫어요. 한 번 태어났는데 왜 고생을 해, 고생하지 말아야지(웃음). 고생 안 하고 잘 살고 싶거든요. 내 생명 굉장히 귀중해요. 내 생명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욕심이죠. 내 생명이 이 세계로부터 대접받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그러겠죠. 대접받고 싶고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세계가 나에게 대접을 안 해줘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해요. 그런데 이영광 시인은 자기 탓이 아닌 걸 자기를 고생을 시켜요. 난 너무 그게 안타까워요. 자기를 위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나는 상처만 조금 나도 칭칭 감고 있어요. 안 아프려 굉장히 애써요. 내가 안 아프려면 저 세계를 원망해야 된다고요. 네가 잘못해서 내가 이렇게 아프게 사는 거잖아요. 그 원망과 호소가 이영광 시인과는 반대로 저쪽에 대고 하는 거예요.

 

이영광 시인 "아픔 속에서 행복해지는 어떤 때가 있죠"


이른바 자해 공갈단으로 설명된 이영광 시인의 답변이 이어졌다.

 

이: 아프고 싶지 않다, 세상에 대접받고 싶다, 이런 얘기는 우리 모두가 가진 생각이죠.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고, 괴롭고 싶은 사람은 없죠. 자기를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럴 때가 있다는 거죠.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 바보 같은 우편배달부 녀석이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한 눈에 반해요. 네루다를 찾아가서 막 하소연을 하죠. '선생님 어떡하면 좋죠? 저는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그러니까 네루다가 '그건 걱정 하지 마, 거기엔 치료약이 있어.' 라고 했는데, 이 시골뜨기가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아니에요. 약은 필요 없어요. 저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이렇게 말해요. 아픔을 싫어하는 인간이 아픔을 수용하고, 아픔 속에서 행복해지는 어떤 때가 있다는 거죠. 그걸 향유 이런 말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순간이 저한테는 시와 만나는 데예요. 때문에 그 괴로움은 제가 무슨 자학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실은 제가 제일 행복한 때를 찾아가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어 이영광 시인의 <높새바람같이는> 시 낭독이 계속됐다. 특별히 이 시는 이영광 시인의 암송으로 진행됐다. "연애가 안 돼서 이제 막 찌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는 이영광 시인의 설명에 이어 최정례 시인이 시에 나오는 '당신'에 대해 한 마디 했다.

 

최: 이영광의 연시에 나오는 그 '당신', 너무 나쁜 여자거든요. 그런데 다 보듬는 거예요. 그 연인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지 몰라요.


이: 괴롭죠. 연애가 안 되면 사람이 살고 싶지가 않죠. 어디에도 갈 데가 없고, 어디에도 숨을 데가 없고, 앉지도 서지도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 넝마를 두르고 앉아서 생각하는 거죠, 이 시의 화자가. 이 시를 쓰면서 괜찮았던 건 그래도 생각, 감정들을 제 시어로 어떤 리듬 속에 넣을 수 있었어요. 리듬이라는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생각을 보존할 수 있어서 쓰고는 그렇게 싫지 않았어요. 상당히 쓸쓸한 시인데도 보듬은 느낌도 들고 했는데 최정례 시인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최정례 시 <있음과 있었음의 사이에서>

 

최정례 시인의 이번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3부가 단 한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있음과 있었음의 사이에서>가 그것이다. 시인의 시에는 항상 이야기성이 있어 읽기 수월한 면이 있는데 이 시만큼은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시의 3부만 낭독했다. "'나'라는 존재가 떠나가면서 패악을 떠는 어투로 썼습니다."라고 설명하며 낭독을 시작했다.

 

"엄마, 여보세요, 소나무, 밤나무, 백양나무. 아저씨, 난 사실 그렇게 용기 있는 자가 아니에요. 난 있는 힘을 다 발휘해 당신을 부르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는데 닿지가 않아요. 당신은 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개천은 용의 홈타운』, 90쪽~91쪽, <있음과 있었음의 사이에서> 일부)

 

시는 무려 시집의 20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뜻 모를 화자와 화자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난다. 시인에게 이렇게 긴 시를 쓰게 된 이유와 시의 내용에 대해 묻자, 시인이 답했다.

 

최: 다른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데, 다른 생명을 썩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반성, 회한 같은 게 어느 순간 있었어요. 항상 나를 위해서만 살았지 내가 다른 누구를 위해서 산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후회 같은 것도 있었고요. 또 이 사회가 너무 경쟁이 심한 사회다 보니까 항상 남을 밀쳐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내가 그 중에 하나고요. 그것에 대한 회한 같은 것도 있었고요.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아이를 낳을 수 없잖아요. 아이를 낳으면 키울 수가 없으니까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버리고, 죽이고, 너무나 생명값을 무가치하게 내버리고 있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동시에, 항상 저는 내 뜻이 저 사람에게, 나를 버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한 계기들, 조건들, 시스템에 대해 내 뜻이 가닿지 못한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게 내 시의 주제인 것 같아요. 그게 억울함이라고 말할 수 있고요. 그걸 거꾸로 이쪽에서 말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쓰다보니까 굉장히 길어지더라고요. 어디까지 길어지나 써보자고 했죠. 이 시를 쓸 때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쏟았어요. 늘 분함이 있지만 그런 게 솟구쳐 올랐을 때여서 얼마나 길게 쓰나 한 번 써보자 하고 쓴 거여서 오래 전에 썼는데 발표할 데가 없었어요. 이번 시집을 산문시로 묶으니까 이걸 한 번 넣어볼까 해서 넣게 됐어요.

 

이영광 시에 담긴 죄의식이란


이영광 시인의 <저녁은 모든 희망을>이 시인의 목소리로 낭독된 후 이영광 시인의 시에 담긴 일종의 죄의식에 대해 송종원 평론가가 질문했다.

 

이: 자꾸 죄, 고통, 이런 쪽으로 제가 몰려다니는 느낌인데(웃음). 알고 보면 저는 제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먼지,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 집어넣은 먼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그런 태도로 시를 썼는지 모르겠어요. 요새 '갑질'이런 말이 유행인데요. 세상에, 땅콩 봉지를 뜯어서 주지 않는다고 그 난리를 치다니. '굴욕'이라고 하는 것을 '을'의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잖아요. 사무장이 굴욕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굴욕이라는 것을 놓고 생각해보면, 저는 조 모라는 사람을 보고 굴욕이 느껴져요. 사무장한테서는 어떤 굴욕도 느껴지지 않아요. 조 모라는 사람과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 근본적인 굴욕감이 느껴져요. 이런 게 저한테는 굴욕이고 어떤 죄의식과도 관계가 있어요.

 

스님들이나 목사님들이나 일종의 대신이잖아요. 신을 대신하기도 하고 신도들을 대신하기도 하고요. 대신 앓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게 칭병을 하면서 설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시인들도 사제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진짜로 아프고 그런 건 아니지만 대신을 수행하는 어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 속에 가면을 쓰고 나오는 사람들 아닙니까? 제 사생활과 제 시가 일치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그와 같은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저는 고통의 현장, 괴로움의 현장에 일부러 나를 좀 집어넣으려고, 이입하려고 애를 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 속에 뭔가 평소와는 다른 말이 나오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겠죠. 평소에 내가 가닿지 못하는 보다 조금 더 깊은 곳, 조금 더 먼 곳,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새로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을 때가 있다는 거죠. 그 목소리가 매력적이고 조금 더 세게 보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가는 것 같아요. 제 체질이 그렇게 변해버리는 것 같고 왠지 그쪽이 끌려서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죄의식하고 관계가 될지 모르겠네요. 

 

2015 시 읽기 프로젝트 '詩詩한 시인들의 詩詩한 이야기'는 다음 달 9일 윤동주 읽기로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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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간다 이영광 저 | 창비
한국 시단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킨『아픈 천국』이후 3년만에 나온 네번째 시집이다. 2011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은 이영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절정에 오른 시적 감각으로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한다. 또한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매섭게 질타하며 시대의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결연한 시 정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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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용의 홈타운 최정례 저 | 창비
전작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에서 놀라운 시적 변화를 보여준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산문에서 시적 기미를 성취해내는' 심도 있는 통찰력으로 '산문의 시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산문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획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시적 의식을 확장하고 넓혀내고자 한 사투의 결과'이다.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조 속에서 밀도 높은 감성의 언어와 서늘한 직관으로 '무사태평처럼 보이는 일상의 안달복달이 반복된다 날아'가는 삶의 실감을 포착해내는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은근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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