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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예병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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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4번째 시리즈의 주제는 의학이다. 예병일 연세대 의학교육학 교수가 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는 의학과 인문학 간 융합을 목표로 한 책이다.

그 어떤 학문이든 완벽한 가르침은 없다. 근대의 분과 학문 체계가 드러낸 한계가 두드러질수록 다양한 학문 간 융합이 절실해지고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만 발전하면 인류는 질병에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예상도 있었지만 에볼라 바이러스 등 인류를 위협하는 병은 건재하다. 간간이 발생하는 의료사고 역시 의학이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의학에도 주변 학문과의 통섭과 융합이 필요하다.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의 저자 예병일 교수는 그러한 작업을 계속 진행해 온 학자다. 그는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저자의 관심사에서 드러나듯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는 의학을 역사, 예술, 문화와 사회, 윤리와 법, 첨단과학 등과 관련지어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의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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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인문학을 접목해야겠다고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학창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취미 삼아 역사책과 의학역사책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17년 전에 교수가 된 후 철학에 관심이 많은 선배 교수님으로부터 “역사나 철학이나 같은 인문학에 속하고, 사람과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나 모든 걸 종합하는 역사는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역사라는 작은 분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학은 흔히 과학이라 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고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크게 발전한 학문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는 인문학과 사람이 속한 사회학이 함께 어우러진 학문”입니다. 의학과 인문학을 접목한다기보다, 의학과 인문학 모두 공통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관심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학문입니다.

 

의학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인간생활과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인문학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학문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을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미 오랫동안 “의학은 과학”이라는 말이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하시는 학자들과 많은 토론을 해왔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얻은 바 있으므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근대에 ‘과학(science)’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은 독립된 학문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학문을 하는 새로운 태도에 의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걸음마 단계에 있던 학문이 크게 발전한 시대상황을 보여줍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교육하는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을 과학이 아닌 학문과 구별되는 다른 학문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과학이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학은 어느 학문 분야에서나 필요로 하는 학문적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아야 합니다. 근대 이후 그 이전과 다르게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학문 태도가 나타났고, 이것이 학문 발전에 큰 기여한 분야에 대해 ‘과학’이라고 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독립된 학문처럼 잘못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과학 속에도 인문학적 태도가 들어 있고, 인문학이나 사회학속에도 과학적 태도가 들어 있다고 해야 옳은 표현입니다.

 

책에서 프랑스의 의학은 ‘생각하는 의학’이고 영국의 의학은 ‘경제적인 의학’이라고, 여러 나라 의학의 특징을 설명하셨는데요, 한국 의학의 특징과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세기 후반 약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후진국에서 거의 선진국에 들어갈 만큼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아주 역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료환경도 많이 바뀌어왔고, 지금도 바뀌어가는 중입니다. 장점이라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아주 좋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의사를 한 번 만났을 때 환자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도래할, 정보기술(IT)을 도입한 의학에 관해서도 많이 얘기하셨습니다. 정보기술을 갖춘 미래의 의학을 앞두고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정보기술 전문가가 아니지만 떨어져서 보기에 정보기술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학 지식과 기술, 의료 행태에 도움을 받는 건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정보 유출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처럼 잘못 사용되면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의학 분야에 도입할 경우 신중하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격진료의 경우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대처법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 시작하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의료기술과 이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에도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또 이와 관련해서 환자 또는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세상이 발전하면 더 복잡해지므로 사고는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의료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 섬세한 기술이 더 많이 요구되므로 인체에 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인권의식이 증가하면서 ‘사고’에 해당하는 일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중과 신뢰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는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런 모습을 통해 환자는 의사를 믿고 따르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학에서 인간 중심의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결핵과 에이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설명하신 부분이 명쾌했습니다. 이외에도 에이즈처럼 오해를 받거나, 아니면 오늘날 의학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또 다른 병이 있을까요?

 

혈우병은 성염색체 열성유전을 하므로 여성에게는 발생하지 않고 남성에게만 발생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에 상영된 영화 <통증>에서 여자주인공이 혈우병 환자로 나오자 인터넷상에서 “어떻게 여성 혈우병 환자가 있을 수 있느냐?”며 감독과 작가의 무지를 탓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 걸 봤는데, 혈우병은 여성에게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혈우병 중 가장 많은 원인인 8번 혈액응고인자 결핍증이 발견되었을 때는 여성 혈우병 환자가 없었지만 혈우병은 8번 이외에 9번과 11번 혈액응고인자 결핍 시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8, 9번과 다르게 11번은 성염색체가 아닌 보통염색체에 유전자가 들어 있으므로 여성도 혈우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여 질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알려지더라도 일반인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해 오해하는 수가 있는데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감기처럼 적은 비용이 드는 질병에 대해서는 보장이 잘 되어 있지만 희귀난치병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질병에는 보장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결국은 비용 문제입니다. 보험료를 많이 받고 보장을 많이 해주는 게 합당하겠지만, 그러면 보험료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장을 받기를 원하겠지만 보험을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보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료와 의료보장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희귀난치병에 대한 보험료 지급을 늘리고, 많은 이들에게 발생하지만 비싸지 않은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보험료 지급을 줄이는 게 지금보다 더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에게 보장되는 걸 줄이고 소수에게 보장을 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정치적 고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하시다가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는데, 그렇게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0년 전만 해도 의과대학 내에 의학교육학이라는 부서를 별도로 운영한 학교는 국내에 거의 없었습니다. 의료환경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학교육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과학 중심의 의학교육에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강의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도입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수생활 초창기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뜻이 같은 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할 기회를 가졌는데 이것이 의학교육과정의 변화가 생기면서 새로운 과목을 맡게 됐고 급기야 전공을 바꾸어 의학교육 전반과 인문학 교육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 담긴 여러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갖고 계신 지식과 관심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갖고 몰두하시는 일 또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의학을 공부하면서 취미 삼아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퍼지나가는 바람에 깊이 있는 공부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관심 분야에 경계가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니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분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면서 ‘융합’ 또는 ‘통섭’이 공부하는 기쁨을 많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과거에 공부를 하다 어려워서 포기한 양자역학과 정보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다시 공부하게 되었는데 전보다는 이해가 쉬워져서 또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의학도들을 길러내고 계시는데, 미래 의사를 꿈꾸는 의학도들과 의학 전공을 준비하는 중고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흔히 의사라면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즈음 매스컴에서 의사면허를 가진 의학전문 기자를 흔히 볼 수 있듯이 의사는 환자 한 명을 돌보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의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은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의사를 꿈꾸는 것도 좋지만, 의학을 공부한 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를 더 다양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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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예병일 저 | 한국문학사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의학도들을 길러내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의학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면서, 의학이란 학문을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네 번째 책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는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의학을 소개함으로써 실험실 속에 갇혀 있는 의학이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 삶에 밀착된 의학이란 학문을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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