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이야기
마차의 사려 깊은 전통 의식
글ㆍ사진 시리얼 편집부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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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등고선을 따라 물결처럼 일렁이는 차나무에서 첫 순이 올라오는 4월 초, 마차의 마법이 시작된다. 차는 일본 전역에서 재배되지만, 3대 생산 지역으로 꼽히는 규슈의 최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와 혼슈 중부의 미에 그리고 후지산과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 시즈오카가 수확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찻잎을 따기 3주차에서 8주차 전, 차나무들 위로 커다란 차광막을 씌우면 찻잎은 그 안에서 마차가 되는 인내의 시간을 보낸다. 차광막은 골풀로 기운 망과 볏짚을 함께 쌓아 올려 햇빛을 차단한다. 그렇게 광합성을 둔화시킴으로써 찻잎은 밝은 연녹색을 띠고 테아닌과 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아져서 깨끗하고 그윽한 풍미가 한층 높아진다.


차광막을 친 뒤 88일이 지나 입춘이 되면 농부들은 가지 맨 위의 잎들을 손으로 뜯어 곧바로 증기로 쪄낸다. 이 찌는 과정이 일본산 녹차가 중국이나 한국의 녹차와는 다른 맛을 내는 비결이다. 찐잎들을 홍건기로 건조하고 나면 교쿠로와 마차로 나누어진다. 옥로차라고 불리는 교쿠로는 건조하면 잎이 바싹 비틀어지는데, 마차는 평평하게 펴져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건조된 찻잎에서 잎맥과 줄기를 제거하면 연차가 되는데, 이를 맷돌로 갈면 옥수수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연녹색 가루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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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쓰는 가장 낮은 등급인 마차, 우리가 보편적으로 마시는 ‘묽은 차’인 우스차薄茶, 특별한 때만 마시는 ‘진한 차’인 고이차濃い茶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뉜다. 질이 좋은 차는 가격도 높아 고이차를 온라인에서 간단하게 검색해봐도 최상품은 40g에 99.95달러에 이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마차를 만드는 방법을 벗어나면 우렸을 때 쓴맛이 나고 심하면 삼킬 수조차 없다. 마차는 단연코 진지한 대상이다. 집에 마차를 우려내는 도구를 완벽히 갖추고 있다면 남들에게 으스댈만하다. 마차를 마시기 위해 다도에 맞게 갖춰야 할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차작茶杓’, ‘차선茶搜’, ‘체篩’, ‘차건茶巾’ 그리고 당연히 ‘차완茶碗’까지. 차의 전문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순서대로 작은 대나무 숟가락, 대나무 거품기(우스차는 50~120개, 고이차는 32~48개의 갈래가 난 것), 차 전용 체, 삼베 행주, 찻종이다. 온도계는 선택 사항이지만 맛을 위해 찻물의 온도를 최적의 상태인 70~80℃로 유지해야 한다. 우스차는 차선을 바닥에 대고 저었을 때 작은 방울들이 모여 넓게 거품이 나면 잘 우려진 것이다. 그에 반해 고이차는 거품을 내지 않는다. 우스차를 만들 때는 치아 사이에 덩어리가 끼지 않도록 거품을 아주 곱게 내야 한다.


마차와 칭기즈칸은 서로 공통점이 있다. 정말이다. 모두가 추앙하는 몽골의 장군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낱’ 인간이고 마차도 평범한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ia sinensis(차의 학명)의 ‘단지’ 마실 수 있는 잎이지만, 문화를 만든 위대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 마차의 경작과 맛을 논하는 것은 칭기즈칸의 키나 그의 군화에 대한 유별난 사랑 이야기 따위를 늘어놓는 것과 같다. 마차의 신화는 9세기 초 한 승려가 일본에 차를 가져오면서 시작됐고 영국에는 17세기에 들어왔다.


영국은 중국에서 수입한 찻잎을 대표적인 문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소박한 영국식 차 한 잔과 대조적으로 일본의 마차는 차 의식의 중심에서 고급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일본 대부분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차 마시는 방식 또는 철학을 뜻하는 다도 역시 1336년~1573년 사이의 무로마치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다도 전문가 아사이 히로키淺井裕樹는 차 의식이 그 시대의 예절과 관습을 보존하는 ‘타임캡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찻물을 저어 거품을 내려면 꽤 손놀림이 빨라야 하지만 그것을 끝내고 차 맛을 오래 온전히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한 노력들은 실로 대단하다. 서예, 그림, 건축, 도자기, 가구, 심지어 원예가 오로지 다도만을 위해 한자리에 모아진다. 다실과 그곳을 에워싼 정원에는 다도의 심미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고의 노력이 들어간다. 계절 별미와 특별한 식사가 대접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서예와 아름답게 꽂힌 꽃들이 다실 한쪽에 정갈하게 놓인다. 완벽한 분위기를 위해 특별한 숯을 써서 향을 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전해져 내려오는 손잡이 없는 찻종을 ‘깊은 산길’이라는 뜻의 ‘미야마지深山路’와 ‘겨울나무’라는 뜻의 ‘후유키冬木’라고 부르며 각별히 소중하게 다룬다. 찻종 앞에 난 흠이나 상처 자국을 부끄러워하진 않지만 손님에게 차를 낼 때는 깨끗한 면을 고르기 위해 조심스레 찻종을 두 바퀴 돌려서 본다. 일본에서 기모노와 헬로키티 아이폰이 어떠한 충돌도 없이 공존하고 있듯, 마차도 모던문화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는 전통 다실뿐 아니라 스타벅스에서도 마차를 찾을 수 있고 고급 요리와 하겐다즈에서도 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머핀과 바디스크럽에도 마차가 가미되어있고 장사꾼들은 노화와 충치에서부터 신장결석, 심혈관질환에 이르기까지 만병 통치약인 양 마차를 광고한다. 암과 에이즈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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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의 또 다른 중심지인 중국과 한국은 이미 녹차를 즐겨온 지 오래다. 또 모스크바의 대형 쇼핑몰이 가득 늘어선 맥퀸에서부터 금빛 미녀들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에 이르기까지 마차는 어디서나 등장하며 빠르게 일상의 요소가 되고 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마차가 동양의 신비함을 불어넣음으로써 원기를 북돋아준다고 믿으며, 비즈니스맨들은 마차가 카페인을 해독해준다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하라주쿠의 소녀들은 아이돌 생각에 빠진 채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마차를 홀짝이거나 들이킨다.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요코하마의 ‘슈할리Shuhally’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티 하우스가 등장하면서 다도도 진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얻는 도예가 김류 또는 스스로를 ‘해골 아티스트’라고 하는 마루오카 카즈미치丸岡和吾와 같은 예술가들에게는 순수미술을 창작할 수 있는 장비가 되기도 한다.


마차는 커피의 접근성과 셰익스피어의 명성, 사프란의 신비로움, 컨스터블의 시골길을 거니는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 사회의 위아래, 좌우를 두루 아우른다. 즉 마차의 문화적 평등함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모든 기본을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몰라도 된다. 그것은 칭기즈칸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다가 어느새 우리 문 앞에 서있을 테니까.


* 이 글은 『시리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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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1 시리얼 편집부 저/김미란 역 | 시공사
영국의 격조 높은 감성을 선사하는《시리얼》의 창간호가 한국어판으로 정식 출간됐다. 이번 vol.1에서는 독특한 유럽의 정서를 자랑하는 세 곳으로 유랑을 떠난다. 《시리얼》에는 여행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하나의 대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포커싱한 사진과 함께, 견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끔은 엉뚱하게 또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글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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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이야기 #시리얼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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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09

묽은 차’인 우스차薄茶, 특별한 때만 마시는 ‘진한 차’인 고이차濃い茶 이렇게 세 등급이였군요. 마지막 글귀가 인상 깊네요.
'마차는 커피의 접근성과 셰익스피어의 명성, 사프란의 신비로움, 컨스터블의 시골길을 거니는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 사회의 위아래, 좌우를 두루 아우른다. 즉 마차의 문화적 평등함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모든 기본을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몰라도 된다. 그것은 칭기즈칸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다가 어느새 우리 문 앞에 서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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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5.02.09

마차와 다도, 뗄수없는 관계네요. 마차는 마셔보지 못했는데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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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Y

2015.02.06

책 보면서도 흥미로웠던 기사에요 :)
라떼처럼 거품이 올라온 마차의 맛이 어떨지 궁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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