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싱숭생숭하거나 소설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 노트를 펴놓고 써야 할 글이나 쓰고 싶은 글의 리스트를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가끔은 의욕도 생기고 운이 좋을 때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내내 들리지 않는 심장 소리를 의식하며 지냈다. 그날 이후로 좀더 엄마가 된 기분이었지만 마음이 딴 데를 헤매는 것처럼 읽거나 쓰는 일 모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옆 사람도 책임감 같은 게 생기는지 표정이 전에 없이 근엄했다. 그는 내 걱정을 많이 했다. 많이 써야 할 시기인데 괜찮겠냐고, 둘 다 잘할 수 있겠냐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 진짜지? 몇 번이나 물었다. 혼자 몸 간수하면서 소설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사람이 대답은 잘하네. 그는 영 미덥지 않다는 투였다. 많이 도와주겠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징징거릴 거잖아. 옆 사람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다.
일하러 카페에 나와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책과 노트 대신 다이어리를 펼쳤다. 늦가을이면 아기가 생긴다. 올해 쓸 글이,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다 쓸 수 있을까. 두서없는 낙서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기가 생기는데 집이 너무 좁지 않은가. 집을 넓히든지 책과 짐을 줄이든지 결단을 내려야겠다. 이 동네에서 계속 살면서 학교에 보내야 하나. 아기를 키우면서 소설을 잘 쓰는 동료들은 누가 있나. 커피는 언제까지 마셔도 괜찮은 걸까. 사람들에게는 언제쯤 알리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기다릴까. 걱정과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나씩 써내려가다 보니 마음이 묵직해지고 근심거리는 늘어났지만 뭔가를 기록하는 동안, 가장 익숙한 일로 불안함을 달래는 동안 나는 차분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 속에서 엄마가 되어갈 거라는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다이어리를 접은 뒤 엄마에게 전화해서 임신 소식을 알렸다. 아직 동생들이 결혼하지 않아 엄마에게는 첫 손자가 되는 셈이었다. 우리에 대해 얼마쯤 포기했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는 얼떨떨해하며 좋아했다. 막냇동생은 얼마 전에 내가 임신한 꿈을 꾸었는데 난 그냥 꿈이네 했지, 하며 신기해했다.
다른 동생들과는 웃다가 울먹거리다가 곧 만나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가장 많이 한 말은 진짜? 였다. 진짜냐고 물을 때마다 진짜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힘주어 말할 때마다 진짜 둘이 되고, 진짜 엄마가 되는 세계에 들어섰구나, 싶었다. 이상하게 뭉클하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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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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