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안과나 안약을 선전하는 광고에 많이 나오는 문구인데 알고 보면 기가 막히게 정확한 말이다. Window의 어원을 찾아보면 뜻밖에도 wind eye라고 되어 있다. 13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 말은 채광을 위해서 만든 지붕에 난 구멍을 가리켰는데, 유리로 막아놓지 않았으니 바람이 그냥 술술 들어왔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유리가 반입되면서 window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창문으로 통용되었다.
이처럼 window라는 말의 기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영어의 사고방식은 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영어만 이런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눈은 대단히 중요한 감각기관으로 여겨졌다. Theater라는 말에서 ‘theo-’는 ‘to see’라는 뜻이었다. Image나 idea 같은 말도 눈으로 본다는 의미였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내 햇빛을 가로막지 마시오”라고 했다. 플루타르크 전기를 보면 “Stand a little out of my light”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고려해보면, sun은 light이고 light는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춰서 드러나게 한다는 알레테이아를 의미한다. 알레테이아를 쉽게 옮기면 앎이라고 할 수 있다. 앎이란 것은 진리의 드러남이다.
따라서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내뱉었다는 “내 빛을 가로막지 마시오”라는 말을 의역하면 “내 앎을 가로막지 마시오”가 된다.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권력자에게 철학자가 앎을 추구하는 것을 건드리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를 한 셈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자리를 뜨면서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처럼 살 것이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왕이 지상의 주관자라면, 앎을 추구하는 철학자는 천상의 진리를 좇는 존재이지 않은가. 여하튼 이런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은 시각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동양에도 “백문이 불여일견” 같은 말이 있긴 하지만, 서양은 시각을 아예 진리의 기준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시각의 문제를 훨씬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Window가 ‘바람이 드나드는 눈’이라는 뜻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눈은 영어에서 엉뚱하게 쓰이는데 눈 자체와 관련된 표현들도 재미있다. 눈의 홍채라고 하는 부분을 영어로는 apple이라고 한다. 그래서 apple of your eye는 ‘너의 눈동자’라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눈에 무슨 사과가 들어있다는 걸까. 해부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의사들은 눈에 있는 홍채가 단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긴 모양을 보고 apple이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이 표현은 해부학적인 의미보다 시적인 의미에 가깝다. 크리스 드 브러라는 가수가 부른
눈동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pupil을 쓴다. 그런데 pupil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눈동자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학생이라는 뜻도 있다. 대학생은 아니고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을 pupil이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신기하다. Pupil이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어린 남자아이는 pupus, 어린 여자아이는 pupa였다. 이 단어들이 pupil로 바뀐 것이다. 이런 어원과 눈동자를 pupil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앞에 있는 애인이나 친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옆에 아무도 없으면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눈을 자세히 살펴보시라. 까만 눈동자에 비친 작은 아이가 보일 것이다.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작지 않은가. 마치 pupil처럼 작은 아이가 밖을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자기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보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영어단어도 내력을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진 않다. 문제는 상상력일 텐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연이 있는 단어들도 있어서 무조건 상상력에 의존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Shell이라는 석유회사의 로고가 왜 조개껍데기인지는 설명을 들어야 알지 상상만으로는 도통 알 수 없다. 눈동자가 pupil인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Shell은 집안을 장식하기 위한 이국적인 조개껍데기를 수입해서 팔던 회사였다.
19세기 영국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른바 ‘대영제국’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Shell은 사업을 확장하던 중에 석유를 팔기 시작했고 조개껍데기 수입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 접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그 회사의 내력을 모르면 왜 조개껍데기를 로고로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것이 Bluetooth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에도 Bluetooth 기능이 있다. 이동기기에 없으면 불편한 Bluetooth는 이 프로그램의 개발자가 우연히 바이킹 소설을 읽다가 푸른 이빨을 가진 헤럴드왕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임시로 붙인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정식 명칭이 되었다.
이름은 사물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Shell이나 Bluetooth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은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야만 그 이름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시각중심주의에 내재된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겉모양만 보고 또는 드러나는 명사형의 이름만 보고 대상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게 할 위험이 있다. 백인 우월주의도 알고보면 금발숭배사상에서 나왔다. 과거에 금발은 신의 상징이었다. 비너스와 아폴로의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이는 풍습이 고대 그리스에 있었다. Blonde는 yellow라는 뜻이었지만 이런 풍습이 로마에 전승되어서 금발을 의미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게르만족의 금발을 흉내 내려고 가발을 쓰거나 금가루를 머리카락에 뿌리기도 했다. 오늘날 유행하는 패션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시각중심주의는 근대 계몽주의에서 앎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교양의 이름으로 성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백과사전 간행은 곧 앎을 분류하는 방법의 출현이었다. 유리로 된 전시대를 만들어서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시각에 맞춰 지식과 정보를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왕들의 보물창고는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나 <알라딘> 같은 애니메이션을 봐도 보물창고는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지 않다. 흥미롭게도 판타지 영화 <미이라>에는 고대의 미이라들이 부활해 질서정연한 박물관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더 극적이다. 낮에는 조용한 박물관이지만 밤이 되면 유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며 대혼란이 연출된다. 이 영화들이 우연히 이런 장면들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고 명칭을 붙이는 근대의 분류체계에 대한 거리두기가 대중문화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보통 미학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60년대 이후 서양의 철학은 근대성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수행했다. 데리다 같은 철학자도 있지만, 서양의 시각중심주의를 계보학적으로 분석해서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미셀 푸코다.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모든 것을 ‘보기’의 문제로 환원하는 근대의 특성을 파고들어 ‘임상의학’이라는 근대적인 의료체계가 신체에 대한 관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긴 하지만, 시각만을 지식 생산의 근거로 삼는 편향적인 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불편한 것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근대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런 근대 문명의 한계를 되짚어보는 것이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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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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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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