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가족의 평화가 세계평화의 지름길
대학생이 되면서 시작하는 독립생활에서 설거지의 올바른 정리습관은 반드시 몸에 읽혀야 할 신사도이다. 또한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쉬운 공동체 생활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예방주사이기도 하다.
글ㆍ사진 여기태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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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던 중에 한국 오토 캠핑장 정도 되는 시설에 묵었을 때 일이다. 아침 일찍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거리를 들고 공동 취사장에 갔는데, 삼사십 명 정도의 대학생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줄지어 서 있었다. 뭐 하는지를 살피던 중 그들의 목적이 설거지임을 알았고, 이내 그들이 하는 설거지 광경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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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이러했다. 모든 학생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취사장에 들어오면서 식판에 남은 음식물을 잔반통에 버리고, 커다란 물통에 한번 푹 담가서 휘휘 젓은 후에 건졌다. 그리고 물기를 털은 후에 타고 온 버스의 그릇보관함에 넣는 것이 전부였다. 어째 저 그릇으로 또 음식을 담아 먹는 건지, 도대체 몇 끼 채 저런 건지, 여행을 앞으로 얼마나 더 다닐 건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외국 유학 시절, 기숙사 사감을 하던 한국인 대학생과 대화를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설거지 일화를 들었다. 기숙사에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함께 생활하는데 특히 부엌 하나를 6∼10명 정도가 같이 쓰는 형태에서는 식사 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에 아연실색할 정도라고 한다.


특히 저녁 식사 후부터 다음 날 아침, 심지어는 다음날 낮까지 방치된 주방의 모습은 아비규환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식기류가 총출동한 후에야 비로소 정리되기 시작한단다. 때로는 그 많은 설거지 더미를 헤치며 그때그때 식사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식사장비를 적당히 헹구어 사용하기도 한단다. 더불어 가끔은 더러운 식기류가 방치되면서 같은 공간에 생활하는 동료 간에 끊이지 않는 시비가 오간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무질서에서 자유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상상하며 즐거운 미소가 번지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는 기회도 되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시작하는 독립생활에서 설거지의 올바른 정리습관은 반드시 몸에 읽혀야 할 신사도이다. 또한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쉬운 공동체 생활에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좋은 예방주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으로 보편적인 우리 가정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식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설거지에 관련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엄마는 식사준비가 끝나면서 아이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큰 아이를 부르고, 이어 작은 아이를 부르고……. 간간이 아빠에게도 와달라면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무 기척이 없고 다시 같은 순서대로 다소 높아진 톤으로 식사대열에 합류할 것을 요청한다. 미적거리며 자신이 하던 일에 미련을 못 버리는 가족을 향해 엄마는 절규에 가까운 일격을 가한다.

 

“식사 안 할 거야!“


이쯤 돼야 가족들이 바쁘게 식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이후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몸만 쏙 빠져나간 식탁은 마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어지럽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식사준비 시간 이상 소비하면서 처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습이 어디 한두 집 이야기랴! 이런 습관을 지니고 대학생활과 독립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설거지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아래는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의 해결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먼저, 식사준비가 거의 끝나고 엄마의 첫 호출이 있으면 가족들은 즉시 식사의식에 동참하도록 한다. 우선 손을 씻고, 막바지 음식준비에 바쁜 엄마를 도와 아이들은 식탁을 닦고, 더불어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해주면서 엄마의 수고에 민첩하고 빠른 반응을 보이는 게 식탁의 평화를 위하여 심히 중요하다.


이때 아빠는 식사시간에 들으면 좋은 간단한 음악을 틀면 금상첨화이다. 음악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 계절을 느끼기에 좋은 음악, 가끔 아이들에게 꼭 설명해 주고 싶은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되도록 노력한다.


음식을 조리기구에서 식탁으로 가져오는 것을 돕고, 식사시간에는 가급적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 간 공감대를 넓힌다. 식사시간 이후 본격적인 설거지가 시작되는데 먼저 각자 사용한 식기류는 각자 개수대로 가져가서 남은 음식은 잔반통에 버리고 간단히 헹구어서 넣어둔다. 이러한 사소한 도움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엄마의 수고를 줄일 수 있다.

 

 가족 모두 사용한 식기가 개수대에 도착하면 다음과 같이 순서를 정해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래는 아이들에게 일러둔 설거지 방법이다. 먼저 설거지를 해야 할 접시, 그릇, 숟가락, 젓가락 등의 식기류를 쳐다본다. 어느 것을 가장 먼저 씻을까? 아이들을 쳐다보며 물, 컵, 사과나 배를 담았던 깨끗한 접시, 기름기가 묻지 않은 접시나 그릇, 그리고 제일 나중에는 기름기가 묻은 접시나, 생선을 담았던 그릇 순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면 전에 기름기가 묻은 그릇에 깨끗한 그릇을 같이 포개서 두었던 일은 어떻지를 물어본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일이 더 많아질 것임을 알아챈다.


그러면 대략 위의 순서대로 식기류를 분류하고, 고무장갑을 착용한 후에 뜨거운 물을 틀고 간단한 초벌설거지를 하도록 한다. 이때는 그릇에 묻은 음식물들을 다소 뜨거운 물로 헹구는 과정을 하며, 물컵이나 과일을 담았던 그릇은 이 과정에서 물기가 빠질 수 있는 그릇 개수대로 이동시켜도 좋다. 초벌 설거지 때 사용되는 뜨거운 물은 될 수 있는 대로 기름기가 묻어있는 그릇을 거쳐서 가도록 하면 좀 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모든 그릇에 초벌설거지가 끝나면 세제를 묻혀서 기름기가 있는 그리고 생선을 담았던 그릇들을 집중적으로 닦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손으로 잡는 부분보다는 음식을 집거나 사용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닦아낸다. 모든 그릇을 받침대로 이동한 후에는 행주를 잘 빨아서 세제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개수대 주변을 닦고 정리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설거지 후에 마른 수건을 이용하여 그릇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상과 같은 설거지 과정에 아이들이 참관하게 한 후에 천천히 그리고 친절히 설명하면서 실시한다. 중간중간 느낌을 물어보고 과거에 했던 행동들과 비교 설명하면서 개선점을 찾도록 한다.

 

아이들은 참 빨리 익숙해지고 배우는 것 같다. 이후에 설거지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어른처럼 처리해 내곤 한다. 이렇게 교육된 아이들은 국제화 시대에 다른 나라 젊은이들과 같이 섞여 지내도 전혀 문제없이 잘 적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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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여기태 저 | 카시오페아
이 책은 지난 10년간 저자가 경험한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졸업까지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인생 멘토링이 풍부한 사례와 더불어 실려있다. 여교수는 아이가 힘든 순간에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그것이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조언한다. 또한 아이가 인생을 살면서 넘을 굽이길을 현명하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몸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표현할 방법도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아빠들과, 아빠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엄마들에게 적절한 길을 제시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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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대 반 우려 반”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vs 엄마는 날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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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필요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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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태 #교육 #설거지 #eBook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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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2014.08.11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딱 떠오르네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그 사랑을 타인에게 돌려주듯이. 고된 일을 마치고 온 후에 집에서 느끼는 행복함. 이런것들이 없다면 세상살맛 안나겠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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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4.08.10

가족의 평화가 세계 평화의 지름길 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설거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줄은 생각을 못했네요. 밖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설거지는 기본교육이 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사실 가정에서 설거지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지요. 참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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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4.08.05

어릴때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해보는 것이 살면서 중요한 경험이 되겠네요. 위의 설거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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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태

현 인천대학교 교수. 대부분의 한국 아빠들처럼 육아는 뒷전으로 앞만 보고 살았다. 해외체류 기간을 거치면서 자녀들의 생각, 자녀교육, 자녀독립에 대한 무지함과 절실함을 느끼고, 특히 아빠 역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살면서 아이가 힘든 순간에 아빠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 아빠의 가르침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