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 한국 알앤비 힙합의 미래
익숙한 그 음성이 앨범을 냈습니다. 시대별 흑인 음악의 정수를 뽑아낸 < Crush On You >. 어린 나이에 비해 음악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어렵지 않아요. 가볍게 즐겨보세요.
글ㆍ사진 이즘
20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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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Crush) < Crush On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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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 로꼬의 「감아」, 그리고 자이언 티의 「뻔한 멜로디」 모두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었다. 세 제목 뒤엔 (Feat. Crush)가 붙는다. 그레이가 비트를 만들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VV:D(비비드) 크루 소속, 두 뮤지션은 교류가 잦았다. 매번 저런 식이었지만 크러쉬도 편곡이 가능하다.

 

슈프림 팀의 컴백 싱글 「그대로 있어도 돼」가 대표적인 증거다. 그레이도 크러쉬를 자주 보는 이유가 “워낙 잘해서 소스 좀 뺏어 먹으려고요.” 라며 장난처럼 말한 적이 있다. 소문은 자자했으나 결과물은 듣기 어려웠다. 개코는 “크러쉬가 음악 생활 하면서 좋은 곡들은 다 자기 앨범에 쟁여놨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정말 그랬다. '설마'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여러 사람을 잡는다.

 

 

 

보컬과 훅 메이킹은 이미 검증되었기에 프로듀싱이 관건이었다. 걸출하다. 스물 셋이라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곡 구성이 자연스럽다. 동시에 단단하다. 편곡은 본인을 중심으로 두되, 다채로운 프로듀서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색깔을 채웠다. 채우다 못해 넘친다. 매력이. 전체적으로는 울긋불긋한 그림, 크러쉬의 내공이 응집된 첫 정규작이다.

 

그의 내공만 응집된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펑키한 디스코부터 요즘의 피비알앤비까지, 흔히 흑인 음악이라 불리는 장르들을 망라했다. 그 중, 자이언 티와 함께한 2014년판 뉴 잭 스윙, 「Hey baby」가 막강하다. 마이클 잭슨의 오마주이지만 편곡 외적인 부분에선 따라하지 않는다. 프리스타일 랩같이 정돈되지 않은 멋의 1, 2절, 귀에 박히는 후렴과 찢어지는 창법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비트박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곡은 진품명품이다. (「Hey baby」는 비트박스가 '진품명품'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에게 '진품명품 송'이라고 불렸다.)

 

슬로우 잼 넘버, 「Give it to me」도 만만치 않다. 그레이의 비트에 크러쉬의 멜로디, 사이먼디의 가사 그리고 박재범의 놀라운 성장까지. 어우러진다. 콜라보레이션 했던 아티스트들의 개성도 진하지만 크러쉬는 기대지 않는다. 쿠마파크와 함께했던 「밥맛이야」에서 레이지쿠마(Lazykuma/한승민)의 보코더와 크러쉬의 스캣이 펼치는 주거니 받거니가 증명이라도 하듯 들려준다. 그 부분 아니어도 노래 자체가 조화롭고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앨범 내에서 신선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원해」에서는 중간에 랩을 한다. 모든 노래에 흥미로운 요소를 두어 개씩 배치해 놨다. 라이브 무대에선 춤도 춘다.

 

모든 노래의 주제가 의미 없이 유사하다는 점 외에는 나무랄 것이 없다. 그마저도 큰 누가 되지 않는다. 뒤처지는 한국 알앤비 선배 몇몇을 따돌린다. 앞서 응집체라 말했듯이 모든 내공을 쏟아낸 만큼 강력하지만, 이후의 앨범에서 크러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상반기에는 자이언 티, 올해 상반기에는 그레이부터 로꼬, 크러쉬까지 차례대로 터졌다.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성공적이었다. 남은 비비드 멤버 엘로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글/ 전민석(lego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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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