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자람 밴드 < 크레이지 배가본드 >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첫 싱글앨범 < 슬픈 노래 >이후로 꾸준하게 성장했다. 평범한 어쿠스틱 노선에서 포크의 색채를 가미하고 퍼커션의 참여로 리듬 섹션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 데뷰 > 앨범이 나왔다. 전형적인 길을 따르다가 중간을 비틀어버리는 구성 덕에 대부분의 곡들이 명확한 멜로디를 가지면서도 듣는 이의 호오를 갈랐다. 긴 여행의 작은 준비와 같은 EP < 크레이지 배가본드 >는 과거의 행적을 구체적인 형태로 적용한 내일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전작은 밴드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이를 광범위하게 펼쳐내는 모습을 보였다. 「우아하게」처럼 귀엽게 악담을 퍼붓는 대담함이나 「벙어리 여가수」같이 음 사이의 여백에서 독특한 감흥을 이끄는 장면은 서사와 음악의 팽창을 암시했다. 한껏 부풀린 몸집을 신보에서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더 늘리지 않고 적당히 조율하여 한 지점에 집중포화를 날린다. 「크레이지 배가본드」나 「피리」에서는 카주처럼 독특한 악기를 차용하고 캐치한 후렴구를 심어두면서 작품의 지향점을 분명히 명시한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명명된 곡의 색채는 「나의 가난은」 혹은 「은하수로 간 사나이」와 같이 인상적인 서사를 통해 재구성된다. 다만 다양한 시도를 버리고 하나의 노선을 택했기 때문에 < 데뷰 >에서 보여준 가진 발칙함의 농도는 옅어졌다.
가사도 천상병 시인의 작품에서 일체 따옴으로써 화자의 감정이나 의도가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큰 갈래 속에 동기화된다. 그럼에도 실제 노래에서는 천상병 시인이 아니라 보컬 이자람의 향기가 난다. 「나의 가난은」이나 「노래」의 서사는 푸근하고 현실적이며 목소리 역시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이질감이 없는 것이다. 다양한 화자를 연기해야 하는 판소리처럼 그는 자신의 음성에 원하는 감정을 치밀하게 대입할 줄 안다.
이제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음악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판소리가 아닌 포크싱어 이자람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신보는 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초점을 모았다. 어느 정도 독자적인 노선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들의 다음은 또 다른 외연의 확장일까 아니면 더 깊어진 선택과 집중일까. 사실 질문에 대한 답보다 중요한 것은 밴드가 위와 같은 질문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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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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