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복,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깊이 침투해서는 안 된다
하상복은 근대를 바라보기 위한 두 축으로 푸코와 하버마스를 제시한다. 그는 푸코와 하버마스를 어떻게 배치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근대성을 가운데 두고 두 학자를 배치하여 차이를 드러냈다. 요약하면 푸코는 근대성을 부정적으로 하버마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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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다수가 현대라고 답할 것이다. 현대는 현대 이전의 사회와 얼마나 구분될 수 있을까? 현대 바로 이전 시기를 흔히 근대라고 부른다. 현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많은 부분에서 근대의 연장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현대를 알기 위해서는 근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지식인 마을 완간 기념 강연 다섯 번째 시간의 주인공은 하상복 목포대학교 교수였다. 강연의 주된 화제는 근대와 이성이었다. 우리는 근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근대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푸코와 하버마스의 시선으로 근대를 살펴보았다.
근대의 명과 암
하상복은 근대를 바라보기 위한 두 축으로 푸코와 하버마스를 제시한다. 그는 푸코와 하버마스를 어떻게 배치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근대성을 가운데 두고 두 학자를 배치하여 차이를 드러냈다. 요약하면 푸코는 근대성을 부정적으로 하버마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편이상으로 시대를 고대, 중세, 근세 그리고 현대로 나눈다면, 근대는 근세와 현대 사이에 존재하는 시기다. 서양에서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를 근대라고 여긴다. 하상복의 견해에 따르면 근대를 단순히 시기적으로만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근대에는 그 이전 시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존재하기에 근대 자체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상복은 근대에는 크게 4가지가 변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정치적 변화다. 근대에 와서 비로소 피치자가 권력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그 이전 시대에는 피치자에게는 의무만이 있을 뿐 권리가 없었다. 두 번째, 경제적 변화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막대한 생산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장소적 변화다. 그 이전 시대에는 농촌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죽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근대에는 도로와 철도의 발전으로 이동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네 번째, 정체성의 변화다. 집단 속의 누군가가 아니라 개개인으로써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해방이다. 근대는 근대 이전시기에 억압받았던 여러 요소들이 행방되는 시기였다.
인간은 인간을 억압하던 여러 구속에서 해방되었다. 해방으로만 끝났다면 근대는 좋은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문제는 서구 근대 정신이 서구 내에게 끝나지 않고 서구 밖으로 나가면서 발생했다. 더 많은 부를 위한 경제적인 팽창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구 사회는 근대를 통해서 해방을 맛보며 구속보다 해방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무지몽매한 다른 사회를 계몽시켜야 한다는 당위성도 내세웠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쁜 세상이 분명히 구분되었기에 해방된 서구 사회가 억압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끄는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제국주의적 팽창은 거듭되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끝이 났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으로 근대성의 추악함을 목격한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푸코, 근대는 또 다른 억압
근대가 해방의 시기였다면 해방의 동력은 이성이었다. 근대인들은 이성의 힘으로 만들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성 아래서 철저하게 계산한다면 국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근대는 모든 이에게 이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이성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이성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는 이성을 깨우기 위해서 교육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의 시작이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다.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많은 이가 근대에 만들어진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 추론된 지식이기 때문에 보편 타당하다고 여겼다. 이런 통념에 푸코는 반박한다. 푸코가 든 예는 광기였다. 근대에 광기는 실성이다. 실성은 이성을 결여한다는 의미다. 푸코는 만약에 근대에 만들어진 지식이 보편 타당하다면 광기가 실성이란 인식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공통되게 인식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광기의 개념은 조금씩 변했다. 중세 시대의 광기는 일종의 신성으로 여겨졌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인을 일반인과 분리하긴 했지만 도덕적 통제 대상은 아니었다. 근대에 이르러 광인은 비로소 비이성적인 존재로 규정되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광인을 비이성적인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을 구속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이 동원되었다. 광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어떤 사람이 이성적 인간이고 어떤 사람이 비이성적인 인간인지 구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더 나아가 비이성적인 타자를 구속하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근대가 만들어낸 지식이 타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타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지식은 적극적으로 유통되었다. 동성애에 관련한 지식이 대표적이다. 근대 이전에는 기묘한 성적 취향이 독특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체계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근대에는 이분법적으로 올바른 성과 올바르지 않은 성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동성애는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연구되었고 비이성적인 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낙인이 찍혀버린 동성애 지식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면서 동성애자 스스로가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게끔 만들었다.
하버마스, 근대는 미완의 프로젝트
근대를 억압으로 바라보았던 푸코와 달리 하버마스는 근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버마스가 근대가 초래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전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대전과 나치문제에 대해서는 하버마스 또한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이성의 가능성을 믿는다. 인권, 자유, 평등, 존엄 등 근대에서부터 시작된 긍정적인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근대가 가지고 있었던 해방의 능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근대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근대에 존재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근대인은 살롱이나 카페에 모여 앉아 자신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취향을 논하고 정치적인 의사도 표출했다. 부르주아 공론장의 참여자들은 국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토론을 통해서 하나로 모인 의견이 여론이다. 토론을 해서 어떤 의견이 결정되면 집단 내부에서는 규범적 정당성이 생기며 대외적으로는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부르주아 공론장의 성격이 변화했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국가 공권력과는 분리된 곳이었다. 당시에는 경제 분야는 공적 분야가 아니라 사적 분야로 국가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담당하는 영역이었다.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국가 권력이 사적 영역인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역할과 사적 영역이 묘하게 섞이면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경제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잃어버린 채 비판 정신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세계다. 체계는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행정과 경제를 담당하고 있고, 생활세계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화와 문화 전승 등을 담당하고 있다. 두 세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한다. 문제는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침투했을 때이다. 체계에서 통용되는 권력과 화폐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깊이 침투했을 때, 하버마스는 대중의 정치의식이 파편화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된다고 지적한다. 하상복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개념을 설명하며 현재의 대학에는 체계의 논리가 너무 깊이 침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저는 대학은 생활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애들과 함께 돈을 버는 관계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학에는 체계의 논리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있던 삼성의 대학 총장 할당 추천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취직 안 되는 학과, 연구비를 못 얻는 학과, 기업형 인재를 못 만드는 학과는 이제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대학의 목적은 인격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너무 과도하게 들어와서 생활세계가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정신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 내부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합의가 이뤄진다면 체계의 위협에서 생활세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버마스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조건으로 4가지를 제시한다. 이해 가능성, 진리성, 적합성, 진실성. 이 4가지를 타당성 요구라고 말한다.
이해가능성은 하버마스가 제시한 타당성 요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하상복은 이 이해가능성을 실현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강의를 할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학생에게 그 때 그 때 질문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질문을 하는 학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학생에게는 교수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능성도 도달하기 어렵다면 다른 세 가지는 어떨까? 어쩌면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상적인 의사소통은 현실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적이 의사소통에 다다르기 위한 노력 속에서 체계의 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생활세계의 힘이 비로소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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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마을 완간 기념 강연 다섯 번째 시간의 주인공은 하상복 목포대학교 교수였다. 강연의 주된 화제는 근대와 이성이었다. 우리는 근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근대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푸코와 하버마스의 시선으로 근대를 살펴보았다.
근대의 명과 암
편이상으로 시대를 고대, 중세, 근세 그리고 현대로 나눈다면, 근대는 근세와 현대 사이에 존재하는 시기다. 서양에서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를 근대라고 여긴다. 하상복의 견해에 따르면 근대를 단순히 시기적으로만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근대에는 그 이전 시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존재하기에 근대 자체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상복은 근대에는 크게 4가지가 변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정치적 변화다. 근대에 와서 비로소 피치자가 권력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그 이전 시대에는 피치자에게는 의무만이 있을 뿐 권리가 없었다. 두 번째, 경제적 변화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막대한 생산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장소적 변화다. 그 이전 시대에는 농촌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죽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근대에는 도로와 철도의 발전으로 이동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네 번째, 정체성의 변화다. 집단 속의 누군가가 아니라 개개인으로써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해방이다. 근대는 근대 이전시기에 억압받았던 여러 요소들이 행방되는 시기였다.
인간은 인간을 억압하던 여러 구속에서 해방되었다. 해방으로만 끝났다면 근대는 좋은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문제는 서구 근대 정신이 서구 내에게 끝나지 않고 서구 밖으로 나가면서 발생했다. 더 많은 부를 위한 경제적인 팽창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구 사회는 근대를 통해서 해방을 맛보며 구속보다 해방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무지몽매한 다른 사회를 계몽시켜야 한다는 당위성도 내세웠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쁜 세상이 분명히 구분되었기에 해방된 서구 사회가 억압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끄는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제국주의적 팽창은 거듭되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끝이 났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으로 근대성의 추악함을 목격한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의 근대와 그것의 보편적 적용에 대해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상가들이 유럽의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쟁과 식민주의를 통해 가시화된, 유럽의 근대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과 일방주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근대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탐색하고자 했다. 『푸코 & 하버마스』 (pp. 87~88) | ||
푸코, 근대는 또 다른 억압
근대가 해방의 시기였다면 해방의 동력은 이성이었다. 근대인들은 이성의 힘으로 만들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성 아래서 철저하게 계산한다면 국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근대는 모든 이에게 이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이성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이성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성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잠재되어 있는 이성을 깨우기 위해서 교육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의 시작이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다.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많은 이가 근대에 만들어진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 추론된 지식이기 때문에 보편 타당하다고 여겼다. 이런 통념에 푸코는 반박한다. 푸코가 든 예는 광기였다. 근대에 광기는 실성이다. 실성은 이성을 결여한다는 의미다. 푸코는 만약에 근대에 만들어진 지식이 보편 타당하다면 광기가 실성이란 인식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공통되게 인식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광기의 개념은 조금씩 변했다. 중세 시대의 광기는 일종의 신성으로 여겨졌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인을 일반인과 분리하긴 했지만 도덕적 통제 대상은 아니었다. 근대에 이르러 광인은 비로소 비이성적인 존재로 규정되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광인을 비이성적인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을 구속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이 동원되었다. 광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어떤 사람이 이성적 인간이고 어떤 사람이 비이성적인 인간인지 구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더 나아가 비이성적인 타자를 구속하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근대가 만들어낸 지식이 타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타자를 억압하기 위해서 지식은 적극적으로 유통되었다. 동성애에 관련한 지식이 대표적이다. 근대 이전에는 기묘한 성적 취향이 독특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체계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근대에는 이분법적으로 올바른 성과 올바르지 않은 성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동성애는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연구되었고 비이성적인 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낙인이 찍혀버린 동성애 지식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면서 동성애자 스스로가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게끔 만들었다.
근대 사회에서 범죄자와 일탈적 성행위자들은 국가 권력의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구축된 지식-담론에 의해 관리되었다. 이는 물리적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국가의 능동적인 개입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통제 대상들이 내면의 윤리의식에 의해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관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 & 하버마스』 (p. 149) | ||
하버마스, 근대는 미완의 프로젝트
근대를 억압으로 바라보았던 푸코와 달리 하버마스는 근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버마스가 근대가 초래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전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대전과 나치문제에 대해서는 하버마스 또한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이성의 가능성을 믿는다. 인권, 자유, 평등, 존엄 등 근대에서부터 시작된 긍정적인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근대가 가지고 있었던 해방의 능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근대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아직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근대에 존재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근대인은 살롱이나 카페에 모여 앉아 자신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취향을 논하고 정치적인 의사도 표출했다. 부르주아 공론장의 참여자들은 국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토론을 통해서 하나로 모인 의견이 여론이다. 토론을 해서 어떤 의견이 결정되면 집단 내부에서는 규범적 정당성이 생기며 대외적으로는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부르주아 공론장의 성격이 변화했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국가 공권력과는 분리된 곳이었다. 당시에는 경제 분야는 공적 분야가 아니라 사적 분야로 국가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담당하는 영역이었다.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국가 권력이 사적 영역인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역할과 사적 영역이 묘하게 섞이면서 부르주아 공론장은 경제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잃어버린 채 비판 정신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세계다. 체계는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행정과 경제를 담당하고 있고, 생활세계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화와 문화 전승 등을 담당하고 있다. 두 세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한다. 문제는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침투했을 때이다. 체계에서 통용되는 권력과 화폐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깊이 침투했을 때, 하버마스는 대중의 정치의식이 파편화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된다고 지적한다. 하상복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개념을 설명하며 현재의 대학에는 체계의 논리가 너무 깊이 침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저는 대학은 생활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애들과 함께 돈을 버는 관계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학에는 체계의 논리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있던 삼성의 대학 총장 할당 추천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취직 안 되는 학과, 연구비를 못 얻는 학과, 기업형 인재를 못 만드는 학과는 이제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대학의 목적은 인격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너무 과도하게 들어와서 생활세계가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정신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 내부에서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합의가 이뤄진다면 체계의 위협에서 생활세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버마스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조건으로 4가지를 제시한다. 이해 가능성, 진리성, 적합성, 진실성. 이 4가지를 타당성 요구라고 말한다.
첫째, 화자의 말이 청자에게 이해 가능해야 한다(이해가능성). 이는 사실상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째, 화자의 말아 명제적 차원에서 거짓이 아니어야 한다(진리성), 거짓된 명제를 알려주었다면 설령 화자가 원하는 결과가 우연적으로 산출되었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참된 의사소통일 수 없다. 셋째, 아무리 화자가 참된 명제를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효과가 있으려면 화자와 청자 사이에 형성된 관계에 부합해야 한다(적합성). 넷째, 화자는 진실된 자세로 말을 해야 한다(진실성). 그렇지 않으면 청자는 그의 말을 거부할 것이고 이는 곧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을 초래할 것이다. 『푸코 & 하버마스』 (pp. 232~233) | ||
- 푸코 & 하버마스 하상복 저 | 김영사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학적 실증, 사회과학적 비판을 통해 이성을 근간으로 한 근대사회의 모순과 폭력성을 고발한 푸코. 이에 맞서 근대의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역설하며 그 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 하버마스. 이 책은 합리성만을 강요하며 광기로 치닫고 있는 정부와 소통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서로 대립, 반목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1960년대 근대성에 대한 대논쟁의 중심에 섰던 두 철학자, 푸코와 하버마스의 사상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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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준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는
정원선
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