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생존의 이야기 <노예 12년>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은 어느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 에드윈 엡스를 만나게 되는데…
글ㆍ사진 최재훈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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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해답을 원하는 관객에겐 답답해서 미적지근하고, 질문의 무게를 견디길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자유를 찾기 위한 12년이라니,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의 짜릿한 탈주나 인권을 위해 고귀하게 투쟁하는 영웅담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노예 12년>은 살짝 배반의 느낌을 준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노예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인간의 잔혹함 앞에 관객 모두는 분노하게 되지만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줄 영웅이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부분에서 한번쯤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우고, 부당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길 바래보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오직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생존 앞에서 한 없이 이기적이고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앞에 주인공 솔로몬 노섭도 예외는 아니다. 비참한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도 세상의 부정함에 맞서 목숨을 거는 용기를 낼 수 없는 이유는, 그들 삶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가치보다는 작은 선의


노예로 팔려가는 배 안에서 주인공 솔로몬은 말한다. ‘나는 생존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노예 12년>이 보여줄 두 시간이 솔로몬의 이 바람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 영화는 살 수 있는 날을 위해 12년을 생존하며 버텨온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남아 있던 남부와 흑인이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북부로 미국이 나눠져 있던 1841년,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비교적 유복하게 생활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느 날 인신매매범인 백인들에게 속아, 눈을 뜬 아침 그는 족쇄에 채워진 채 노예로 팔려간다. 하루아침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잃고 플랫이라는 노예의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매일 수확량을 점검하고 기준에 못 미치는 노예들은 채찍질에 시달린다. 야윈 몸과 비명, 탄식이 이어지지만 카메라는 그들의 삶과 감정 속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삶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삶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허락된 것이 무엇인지, 그런 삶을 버티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솔로몬 노섭의 정의로운 의지가 아니라 언젠가 맞이하게 될 자유의 날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생존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선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주인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자신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선의를 베풀고, 악랄해 보이는 주인 에드윈(마이클 파스빈더)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악의로 노예를 대한다. 이러한 인간들의 특징과 관계는 인간은 그토록 잔인하고 이기적인 종족이라 노예제도도 만들고 노예를 부리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생존 앞에서 역시 인간은 이기적이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례로 유일하게 우정을 나눴던 팻시를 감히 구해낼 생각도 없이 홀로 탈출하는 솔로몬 노섭의 행동은 관점에 따라 너무 무심해 보여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생존의 12년 세월을 공감한 관객이라면 누구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예 12년>에 등장하는 인물들 누구도 자신의 삶의 가치보다 큰 선의의 크기를 가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인 솔로몬이 아닌, 노예 플랫은 주인의 강요에 동료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자유의지 없이 폭력과 노동에 시달리는 그들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상실했다. 플랫 역시 농장 관리인에 의해 나무에 목 매달린 체벌을 당했을 때, 방치된다. 동료 노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거나 심지어 멀리서 뛰어 놀기도 한다. 이들에게 동료의 죽음은 더 이상 불합리한 상황이 아니라 그저 보고 견뎌야 하는 일상인 것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이런 사건들을 감정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다. 플랫의 주인이었던 포드와 에드윈은 각각 선인이었는지 악인이었는지에 대한 판단도 이들의 악행 혹은 선행에 대한 보상 혹은 보복도 없이 폭력의 역사만이 오롯이 화면에 담긴다.


<헝거>


<쉐임>

스티브 맥퀸 감독은 앞선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섣부른 도덕적 판단을 유보해 왔다. 2008년 장편 데뷔작 <헝거>에서도 정치범의 권리회복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주도했던 보비 샌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로 중첩되는 사건을 무덤덤하게 보여주면서, 정치적 사건에 필요한 것은 선동이 아니라 성찰이라는 사실을 제시했다. 2011년 정신의 공허함이 훼손시키는 육체를 훑으면서 특유의 허무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쉐임>에서도 섹스 중독자인 브랜든 설리반을 비난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의 삶 자체를 묵묵히 지켜보았었다. 세 번째 작품 <노예 12년>을 통해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무게를 정치적인 시각이 아니라, 역사의 소동에 휩싸인 개인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정치적 견해나 선동 대신 노예 제도가 존재했던 19세기 미국의 풍경을 묘사함에 있어서 <노예 12년>은 상당히 충실해 보인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연출작 세편 모두에 출연해 영화를 더욱 빛내준 마이클 파스빈더와 <셜록> 시리즈로 친숙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의 깜짝 출연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억울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그저 묵도할 수밖에 없었던 노예 플랫이자, 자유인 솔로몬의 삶을 살아낸 주인공 치웨텔 에지오포의 연기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2014년 흑인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카데미는 작품상으로 <노예 12년>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 흑인 감독이 연출한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외에 솔로몬과 우정을 나누는 노예 팻시로 노예 여성의 처절한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루피타 니옹은 영화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노예 12년>의 프로듀서이면서 대본을 쓴 존 리들리는 각색상을 수상하여, 201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관련 기사]

-살아간다는 것 <노예 12년>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노예 12년> 원작소설, OST 연이어 발매
-가족제도에 대한 의문 - <셰임(Shame)>
-왜 지금 셜록 홈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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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스티브 맥퀸 #치웨텔 에지오포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패스벤더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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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fati2

2014.03.31

힘없이 쓰러지던 팻시의 마지막 모습에서 솔로몬 노섭이 할 수 있는게 달리 없어 보였기에 쉽게 실망할수도 비난할수도 없더군요. 솔로몬 노섭이 납치된 후에 만난 노예 가운데 운좋게 풀려난 사람을 보면서 솔로몬 노섭 또한 팻시처럼 풀려난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이름을 간절하게 불렀던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고요. 한때 노예 감독관이었으나 술에 빠져 결국 농장의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던 백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위기에 빠지지만 임기응변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난 솔로몬 노섭의 모습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다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가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보통 절망스런 고통과 고난을 겪는 주인공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받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노예제도를 다룬 작품 하면 떠오르는 그런 작품들과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게다가 여러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얼굴로만 그려진 게 아니어서 그 인물의 다른 모습과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고요. 감정을 쥐어짜내듯 강요하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솔로몬 노섭의 고통의 시간을 담아낸 감독의 시선도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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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h0918

2014.03.10

흑인, 검둥이, 노예라고 인정하는 말을 내뱉어버리면서도, 자유를 찾고자 도움을 요청하는 노력을 보인 솔로몬 노섭이 다른 노예들과 다른 점이죠..
주어진 상황에 자포자기해 버리면 그게 바로 환경의 노예가 되버리는 일일거에요..
지나가다 한 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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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아래서

2014.03.06

꼭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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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