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다시 묻는다 “거기 너는 누구인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 대사는 바로 <햄릿>이 내뱉는 대사다. 이 대사만으로 <햄릿>을 다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그럼에도 <햄릿>은 꼭 한번 제대로 무대 위에서 만나봐야 할 공연이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많은 매력을 함축해 담고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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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이 <햄릿>이라는 텍스트는 새로운 연출가, 새로운 배우를 만나면서 색을 달리한다. 비단 이 작품의 명성이 저 명대사 한 마디에 기댄 것이 아니기에 <햄릿>은 또 다른 인상, 또 다른 해석으로 매년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햄릿이라는, 생각만은 열혈 청년을 비롯해 극 중 인물들이 품고 있는 인간의 양면적인 속성, 아버지의 죽음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와 복수극이라는 플롯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엄청난 흥미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허나 수많은 관객 앞에 섰던 작품인 만큼 그만큼 새로운 <햄릿>을 선보이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올겨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2월 초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는 연극 <햄릿>은 <14인의 체홉>(2013), <벚꽃동산>(2012)을 연출했던 오경택 연출가가 맡았다. 이제껏 ‘햄릿‘이라는 텍스트가 여러 번 반복되어 무대에 오르는 동안, 햄릿은 연출가에 따라 다양한 부제를 갖곤 했다. 올겨울 이 무대는 심플하게, <햄릿>이다.

햄릿 역의 정보석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포스터 역시, 이 공연의 포부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타 다른 해석을 뒤로하고, <햄릿>이라는 텍스트에 직구를 던져보겠다, <햄릿>이 붙들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 보이겠다는 포부 말이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오경택 연출가의 <햄릿>은 무대에 여러 개의 거울을 설치하고, 극 중 인물들이 여러 번 거울로 자신의 더러워진, 혹은 두려움에 빠진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재차 질문한다. 지금 거기 너는 누구냐고. 오경택 연출가가 <햄릿>에서 건져낸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 가지 질문에 걸맞게 무대와 연출에 힘을 준만큼, 어떤 장면은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선보이기도 한다. 오프닝씬이라고 칠 수 있는 첫 장면에서, 귀신같은 사람들 틈 속에서 햄릿이 떨어져나와 울부짖는 장면이라든지, 스스로 바보인척 하며 위악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햄릿이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오필리어와 대치하는 장면을 춤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절박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이 절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햄릿>이 질문한다. “너는 누구인가?”


정보석의 유약한 얼굴과 강인한 눈빛, TV 브라운관으로 보기에는 약간 과장스럽게 느껴지는 연기는 <햄릿>의 무대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정보석은 무대 위에서 햄릿의 슬픔과 분노를 몸짓과 목소리로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악독한 숙부 역의 남명렬 역시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뻔뻔할 만큼의 사악함, 그 안에 점점 짙어져 가는 죄책감, 양면의 얼굴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남명렬 덕분에, ‘숙부 나름의 사정’이 궁금해지긴 하지만, 그에게 마련된 무대나 대사는 그 이상의 깊이를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남편이 죽자 바로 숙부와 결혼한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 역시 마찬가지다. 거추장스러운 빨간색 가발에 도발적이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통해 거투르드의 탐욕과 욕망을 전시하지만, 그 인물 역시 표면적으로 보이는 데에 그쳤다.

초반의 들끓는 햄릿의 고뇌는 화려한 무대 장치와 더불어 객석의 긴장감과 흥분을 한껏 불어넣어 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상으로는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갈수록, 캐릭터들은 힘이 빠진다. 각각의 캐릭터가 초반에 지니고 있었던 파격, 그 역동성이 극이 흐르면서 다른 매력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평면적인 그대로 흐려지기만 한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우들의 힘만큼은 압도적이었다. 캐릭터보다 배우들이 그 존재감을 발한 다는 것은 아쉬움일 수 있지만, 이렇게 최고 배우들의 극적인 연기를 한 무대에서 볼 기회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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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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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