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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 - <보이첵>

“이 작품을 놓치는 것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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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첵>은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미완성 희곡이다. 스물세 살에 요절했고, 미완성으로 남았던 이 작품은 그가 죽은 뒤 40년 후에 유작으로 사후 간행되었다.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이 들 만하다. <보이첵>이 대체 뭐길래?

스물 셋에 요절한 뷔히너의 미완성 유작 <보이첵>


고전은 불멸의 명사로 남는다. 좋은 작품은 절대 대체되지 않는 명사로 남는다. 한 단어만으로도 어떤 세계와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갈매기’나 ‘세 자매’는 부산 앞바다나 세 여자를 그저 떠올리게 할 뿐이지만, 만약 당신이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체홉이 떠오를 거다. 더불어 <세 자매>에서 올가의 감동적인 마지막 대사, “아, 동생들아!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도록 하자!”까지 읊어댈지도 모른다.

뮤지컬에서 가장 유명한 짐승은 ‘캣츠’일 것이다. ‘팬텀’이나 ‘지킬’ 같은 이름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 명사로 남았다. 이 고유 명사로 남은 고전들은 매해 극장이나 페스티벌에서 다시 공연되고, 새롭게 공연되면서 또 다른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보이첵‘ 역시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고유명사다.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학로를 지나가다 보면, 길가에 붙어있는 포스터에서 ‘보이첵’ 혹은 '보이체크‘라는 공연 이름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남자 보이첵>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 <세컨드 네이처의 보이체크> <개 장수 보이체크> 등 보이첵은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로 무대에 호출되고 있다.

이번 명동예술극장에 오른 <보이첵>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대표 레퍼토리로 2001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달 8월 16일부터는 대학로 우석레퍼토리극장에서 다른 배우와 연출가의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

<보이첵>은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미완성 희곡이다. 스물세 살에 요절했고, 미완성으로 남았던 이 작품은 그가 죽은 뒤 40년 후에 유작으로 사후 간행되었다.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이 들 만하다. <보이첵>이 대체 뭐길래?


끊임없이 다시 이야기되는 <보이첵>의 매력


젊은 작가의 완성도 되지 않은 유작이 이토록 많은 연극인과 관객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가장 독창적인 해석으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보이첵> 대표 극단이라고 할 만큼 사랑받고 있는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이번 공연을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여러 번 떠올렸다.

어떤 공연이든 그저 기분 전환용,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겨도 좋고, 일상의 새로운 자극처럼 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배우나 연출가는 공연을 통해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만든 것이겠지만, 관객이 그걸 꼭 고스란히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사전정보 없이 무대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자기만의 또 다른 이야기를 얻어 갈 수도 있는 거다. 모두가 다른 상황, 다른 처지에 있다가 한순간 극장에 모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막이 내리면, 다들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진다. 함께 본 이야기는 맥락과 의미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이 칼럼의 부제를 ‘막이 내려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적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보고 나면 더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보이첵>이 그랬다. 게오르크 뷔히너라는 작가나 <보이첵>이라는 작품은 알면 알수록 흥미가 생긴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했으며, 정치활동에 참여하다가 비합법적인 팸플릿을 만들어 당국에 쫓기게 된다. 그때 망명 비용을 장만하기 위해 <당통의 죽음>을 집필했다. 뷔히너의 아버지는 의사로 유복한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보이첵>에서 무대공연사상 처음으로 가난한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썼다.

당시에 공연했어도 정치적으로 협소하게 해석되었겠지만, 인간 소외나 부조리 문제를 담고 있는 그의 연극은 2세기 들어 재조명을 받는다. 현대 연극의 선구자로 재평가받았다.(이 모든 게 23년의 삶 속에서 말이다.)


보이첵은 왜 아내를 죽였나


의자로 보이첵을 가두기도 하고, 돈벌레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보이첵>은 1800년대 초반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가난한 병사가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공개 처형당한 사건이다. 작가는 이 실제 사건을 극 속에 등장시켜, 이 하층민들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결코 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고발한다.

극 속에서 보이첵은 부인 마리와 아이를 가진 가난한 병사인데,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체실험까지 마다치 않고 제 몸을 군대에 내준다. 하지만 정작 부인 마리는 남성미 넘치는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가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알게 된 보이첵은 괴로워하다가 칼로 마리를 찔러 죽인다.

장면 순서도 뒤죽박죽인 데다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여러 창작자의 영감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권력, 위계질서, 유혹, 갈등 등이 암시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관객으로서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는 빈 무대 위에 11개의 의자를 놓고, 11명의 배우가 신체 언어를 통해 갈등과 분위기를 표현한다. 때론 동작으로, 때론 그저 비어있거나 쌓여있는 의자만으로, 긴장감을 유발하고, 억압을 표현해낸다. 의자는 쉼터고, 감옥 창살이고, 보이첵의 흔들리는 내면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상사의 자리다. 그저 조명과 배우의 움직임만으로, 의자는 다양한 도구로 변한다.


“이 작품을 놓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배우 고창석이 중대장으로 2회 출현한다

치정이 결부된 살인사건이라는 소재, 막강한 권력,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군대라는 공간, 상사의 명령에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까지 확인 받던 소심한 보이첵이 급기야 칼을 사고, 아내에게 달려들기까지 달라지는 과정, 한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요소요소들이 여전히 많은 배우를, 관객을 끌어들인다.

잘 살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도 때때로 삶은 더욱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일이 비단 옛날에 있었던 일만은 아닐 테니. 더불어 군대 밖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권력은 사람들의 은밀한 볼일까지 통제하려 드니까 말이다.

여기에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 밀바의 목소리가 더해져 극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내뿜는다. 빛과 움직임, 의자만으로 유혹을, 긴장감을, 끝없는 외로움을 전달받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열네 개의 장면, 70분짜리 길지 않은 연극으로 펼쳐낸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보이첵>은 “최고의 신체극”이라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200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헤럴드 엔젤 어워드, 토탈 씨어터 최고 신체연극상 등을 수상했고, 폴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일본, 호주 등 23개국에서 공연되었다.

2007년, 이 작품을 세계에 알린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보이첵>은 한 성당에서 이른 아침 시간을 배정받았다. 당시 The Herlad에는 이런 리뷰가 실렸다. “오전 차 마시는 시간도 되기 전에 외국어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놓치는 것이 더 미친 짓이다.”

<보이첵>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사다리연구소의 또 다른 작품 <휴먼 코메디>와 7월 28일까지 번갈아 공연된다. 7월 13일, 15일에는 원년 멤버인 고창석이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당신도 잊지 못할 고유명사를 갖고 싶다면, 올여름, 그를 만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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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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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보이첵]
    • 부제: 명동예술극장 여름레퍼토리
    • 장르: 연극
    • 장소: 명동예술극장
    • 등급: 만 13세이상(중학생 이상)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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