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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욕망의 전차? 인생은 죽음으로 향하는 급행열차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다들 왜 그러고 산대?” 우리 삶을 ‘구경’하게 만드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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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손꼽는 고전 텍스트에, 명연기로 한차례 인정받은 최고의 배우들이 만났다. 당신이 테네시 윌리엄스라든지 고전극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대사들과 최고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2시간 동안 관객을 충분히 압도한다.

삶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구역을 지난 다음 천국이라는 곳에서 내리랬어요."

출퇴근 시간, 내가 올라탄 지하철이 어두운 터널 속을 달릴 때, 나는 창가에 코를 박고 그 어둠과 번쩍이는 빛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리고 열차가 시간처럼 빨리 달린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시간이란 급행열차에 올라타 정거장도 없이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리고 각기 다른 종점에 하차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구는 수많은 열차와 선로로 뒤엉킨 플랫폼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인생이란 열차에 올라타고, 죽음이란 종착역에 내렸다. 화제의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서도, 열차는 인생과 시간을 비유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설국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열차의 심장인 엔진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가 올라탄 삶이라는 열차를 달리게 하는 엔진은 과연 무엇일까? 욕망이 아닐까. <설국열차> 속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엔진 칸까지 가게 하는 힘 역시 그것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삶의 속성을 함축한 매력적인 제목이다. 삶이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이제까지 지어진 많은 연극 제목들을 나열해보면, 최상위 폴더에 속할 법한 제목이다. 1947년 이 작품을 발표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뉴욕 극비평가협회 상과 퓰리처상을 받았다. 당시 공연에 말론 브랜도, 비비안 리가 참여했고, 이후 1951년 엘리아 카잔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해 4개 부분의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흥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이지만, 지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작년 가을, 대학로에서 화제가 되었던 연희단거리패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그 주역인 김소희-이승헌이 다시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손꼽는 고전 텍스트에, 명연기로 한차례 인정받은 최고의 배우들이 만났다. 당신이 테네시 윌리엄스라든지 고전극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대사들과 최고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2시간 동안 관객을 충분히 압도한다.


한없이 예민한 여자와 짐승같은 남자와의 부딪침


블랑쉬 드보아는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뉴올리언즈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동생 스텔라의 집에 도착한다. 실제로 뉴올리언즈의 항구 도시에는 ‘욕망의 거리’라는 전차 역이 있었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공기의 미묘한 흐름까지 포착해 낼 것만 같은 예민하고 여린 숙녀 블랑쉬가 조심스럽게 동생네 집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있는 동생의 남편 스탠리는 시종일관 블랑쉬의 심기를 건드린다.

가난한 도시노동자로 거칠고 야성미 넘치는 스탠리 역시 하얀 드레스와 가짜 보석을 덮고, 온갖 가식으로 치장한 블랑쉬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블랑쉬의 예민함과, 스탠리의 야만스럽고 무식함은 내내 무대 위에서 부딪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블랑쉬 드보아. 하얀 숲. 봄날의 과수원이라는 의미죠.” 그의 산틋한 이름, 우아한 자태와는 어울리지 않게 블랑쉬의 과거는 어둡고 캄캄했다. 블랑쉬의 어린 남편 앨런은 동성애자인데다가, 그것이 발각되자 총을 물고 자살을 했다. 블랑쉬는 지주의 딸이었으나 재산마저 모두 탕진해버리고, 싸구려 호텔에서 ‘낯선 이들의 친밀감’에 기대 살아왔다.

사실, 무대 위에 처음 등장한 블랑쉬 드보아는 낯설기 짝이 없다. 그녀는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조금의 흠결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뜨거운 물로 목욕해댄다.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는 밝은 빛을 극도로 싫어해, 늦은 오후나 어둠 속에서만 사람들과 대화한다.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환상을 깨뜨리려 하면 돌변해 저항하거나, 몸이 아프다며 쓰러지기 일쑤다.

그녀는 지금 여기 자신의 모습을 결코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기괴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녀의 애처로운 태도를 보면, 꿈과 현실의 세계가 견딜 수 없이 멀어져 있는 삶 속에서 블랑쉬가 버티는 안간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녀는 헐거운 거짓말로 지어진 자신의 세계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 불안을 극대 시키고, 급기야 블랑쉬의 세계를 산산조각내는 사람이 스탠리다. 블랑쉬에 표현에 따르자면, “인간이기 이전에 짐승”에다 “유인원스럽기까지”하다. 우락부락 건장한 체격에 행동거지는 상스럽고,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다. 맘에 안 드는 건 다 때려 부수고, 임신한 아내에게 손찌검도 일삼는다. 그래서 아내가 달아나면, 엄마 잃은 고릴라처럼 울부짖으며 아내를 찾아 그녀를 침대로 모시고 들어간다.

이 남자에게는 오직 식욕과 성욕뿐이다. 스탠리는 자신을 두고 짐승 같다고 비난하는 블랑쉬를 곱게 쫓아내려고 했지만, 블랑쉬가 뜻대로 행동하지 않자, 급기야 블랑쉬를, 그녀의 영혼을, 그녀의 세계를 처참하게 박살 내버린다.


“왜들 저러고 산대”


이런 스탠리가, 친구 부부가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고 혀를 쯧쯧 차는 장면이 있다. “왜들 저러고 산대.” 이 자조적인 대사는 제삼자인 관객- 남의 일을 관람하는 자-의 대사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내뱉을 법한 일이다.

블랑쉬는 왜 저렇게 현실적이지 못할까? 스탠리는 왜 저렇게 폭력적일까? 왜들 저렇게 피곤하게 사는가 싶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1947년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상상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떤 사람들의 모습, 우리 삶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무섭게 깨닫게 된다.

실제로 이 인물들은 다사다난했던 테네시 윌리암스의 가정에서 비롯되었다. 쾌락주의자와 청교도주의자였던 그의 부모님의 모습이 인물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분노(폭력)와 사랑을 구분해내지 못하는 스탠리,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결하지만, 내면에는 문란한 성적 충동을 안고 있는 블랑쉬. 이 위태로운 성격의 인물들이 생동감을 갖고, 나름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로 다가오는 건 순전히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력 덕분이다.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음습한 뉴올리언스에 내렸던 블랑쉬는, 정신병원 의사의 손을 잡고 이곳을 떠난다. 모든 것이 파괴된 채로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블랑쉬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 그녀가 환상 속에 머무는 것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해로운 일이었나? 덥고, 피곤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온갖 것에 촉수를 새우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녀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불쾌한 일이었을까?

현실이 어두우면, 순순히 그걸 받아들이고 고개 숙이고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반복되는 폭력이 겹치고, 여기 밖의 삶을 꿈꾸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어쩌겠어, 그래도 살아가야지.”하는 세계에서 블랑쉬는 추방된다. 지나친 감성, 지나친 환상은, 쾌락과 노동이 집약된 현대 사회에 발 디딜 틈이 없다.


한번쯤 삶의 구경꾼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8월, 여전히 무덥고 지치는 여름날. 사람들이 굳이 극장까지 와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겠어? 싶었는데, 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다. 줄거리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 더운 날 왜 굳이 후미지고 습한 뉴올리언즈 빈민가까지 가야 하느냐? 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한 번쯤 우리 삶의 구경꾼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고.

우리를 빼닮은 모습들을 보고 “왜들 그렇게 살까” 쯧쯧쯧 혀를 한번 차고 나면,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겠어, 그래도 살아가야지.” 하는 말에 “왜 그래야 하는데?”라든지 “이건 아니지”라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든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상반된 욕망을 끌어안고 달리는 전차니까. 욕망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한없이 멀어져도,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니까. 우리 역시 ‘낯선 이들의 친밀감’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우리 삶에 연극이, 예술이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이상은 너무 높고, 현실은 너무 낮으니까. 현실에서 조금 고개 들고 바라보게 만든 무대라는 건, 그래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연희단거리패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9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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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엄스> 저/<김소임> 역7,650원(10% + 5%)

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유리 동물원』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 테네시 윌리엄스는 발표하는 희곡 대부분이 연극 공연은 물론, 영화화될 정도로 1950년대, 1960년대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실감나게 그리며 현대 멜로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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