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하면 믿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언제나 성인군자로 살기 위해 매일 아침 깊은 명상에 잠겨 내면의 평화를 추구해오고 있다. 여기에 이웃의 안녕은 물론, 나아가 망원동 주민의 행복, 더 나아가 세계 평화까지 성실히 기원해왔다. 그렇기에 노상방뇨는커녕, 무단횡단도 하지 않는 모범시민인 필자는 영화 <갬빗>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미술품 도둑이라니.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어디 현실 속에 저런 일이 흔히 일어나겠는가, 생각하고 집에 도착했다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세상에! 문 앞에 있어야 할 반찬 택배가 사라진 것이다. 무슨 반찬 택배가지고 또 이번 칼럼을 우려먹을 작정이냐고 타박한다면, 이게 보통 반찬이 아니라는 것을 부연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도덕수준만 높은 것이 아니라, 절대미각을 소유한 자로서 한 입만 먹어보면 이 사람이 몇 년간 칼질을 해왔는지, 양념은 어떤 걸 쓰는지, 소금은 얼마큼 쳤는지, 간장은 어느 간장을 쓰는지 단번에 알아낸다. 자연히 필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은 일이며, 그렇기에 작년 봄 강남 모처의 세꼬시 횟집에서 회를 입에 넣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귀인은 귀인을 알아보는 법’. 젓가락에 회를 한 점씩 집어 눈을 감고 음미하는 내 모습에 식당 사장은 멀리서 귀인이 오셨다며, 음식과 생을 주제로 본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던 중, 결국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알아채셨다. 사랑이 넘치는 그는 비천한 내 소설까지 찾아 읽으셨으니, 이번엔 식당 사장님이 책장에 손을 올린 채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다. 역시 귀인은 귀인을 알아보는 법. 그리하여, 식당 사장님은 한평생 손맛으로 일궈온 반찬을 때때로 보내주시니, 나는 그 반찬을 받을 때마다 역시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갬빗>을 보고 온 어제, 미술품 도둑에 버금가는 반찬 도둑이 나의 집 301호 앞에 있던 귀중품을 도난 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사는 빌라는 현관에 보안장치가 되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설마 아침마다 행복을 빌어주는 내 이웃들이 그럴 리가 없어!’라며 울부짖으며 한탄했다. 허나 현실은 현실인 법. 결국은 냉정한 탐정 콜롬보의 심정이 되어 본 사건의 수사를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가장 의심되는 인물은 바로 302호 신혼부부. 이들은 몇 달 전 나와 주차문제로 인해 심도 깊은 토론을 펼친 바 있다. 원고마감에 지친 나를 재울 생각도 않고, 심야 12시에 “자기 차는 외제차기 때문에 비 맞지 않는 자리에 주차해야 한다”며 박박 우기는 데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이 빌라로 이사 온 연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저번 집에서 워낙 주차 스트레스가 심해 나는 처음부터 집주인에게 주차 공간을 확정 받고 이사를 온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아 그럼 외제차가 비 맞아야 한단 말입니까!”라고 생떼를 쓰는데 맘 같아선, 차 환풍기에 까나리액젖을 통째로 쏟아 붓고 싶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내가 소설가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행여나 근거 없는 악플을 달까 싶어, 나는 정말이지 매일아침 수련한 명상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고 할 정도의 인자한 미소로 으르고 달래고 책 선물까지 하며 이 부부와 주차공간을 해결 봤으나, 아무래도 이 부부는 아직도 내게 깊은 불만을 품고 있을 것으로 사려 된다. 따라서 우리 집 앞에 정기적으로 반찬이 배달돼오는 것을 꾸준히 관찰한 신혼부부가 일종의 보복성 계획범죄로 내가 반찬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201호의 가수 지망생이다. 201호 청년은 창을 열어놓고 샤워를 하는데, 그때마다 불러대는 이승철 노래가 사람의 뇌를 터져버리게 한다. 내 소설이 엉망인 건 모두 이 청년 탓이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눈치까지 지지리 없어서 새벽 한 시면 갑자기 무슨 영감을 받았는지 전자기타를 쳐대는 것이다. 특히나 여름밤이면 창을 열어놓고 자작곡을 부르며 연주하는데 듣다보면 당장 내려가서 코드진행이 엉망이라고 뺨을 후려치고 싶을 정도다. 여기서 내가 미안한 게 하나 있는데, 몇 번이나 ‘조용히 하자’고 한 요청이 통하지 않자, 나는 어느 날 조용히 홈쇼핑에 광고 중인 전동드릴을 주문했다. 그 뒤로 아랫집 청년이 연주를 할 때마다, 전동 드릴로 벽을 뚫었으니 그제야 201호와 301호 양자 간의 평화협정 시기가 도래했다. 이에 자신의 뜨거운 창작의욕을 광포한 드릴음으로 맞대응한 내게 악의를 품고 본 사건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은, 다름 아닌 401호, 즉 집주인이다. 바로 내 윗집에 살기 때문에 볼 때마다, “하하. 우리 손녀가 방방 뛰어서 많이 시끄럽죠?”라고 인사말을 건네는데, 이게 다 사람 위하는 척 하는 주인 특유의 고도의 전략이다. 얼마 전 보일러가 고장 나서, 내가 출장기사를 불렀는데 수리를 마치니, 주인이 돈을 내지 않으려고 뜬금없이 “아, 카드는 안 되나?”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당황한 보일러 기사는 “현금 없습니까, 사장님?”이라고 물었는데, 주인은 생짜를 부리듯 “아, 요즘 카드 안 되는 데가 어딨어?”라고 우기더니, 결국은 “아, 이것밖에 없어”하며 수리비를 3만원이나 깎아버리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얼굴이 다 화끈거려 쥐구멍으로라도 숨고 싶었는데, 그 후부터 자존심이 상했는지 주인은 이래저래 내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에어컨 호스 구멍을 너무 크게 뚫었다는 둥, 집에 책이 너무 많아 무너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둥, 그야말로 생짜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최근의 동향을 고려해 볼 때, 반찬 택배가 올 때마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나를 좌절에 빠뜨리기 위한 주인의 소행 역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필자가 누구인가.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살면서 나 같은 성인군자는 만나본적이 없다. 비록 뵙진 못했으나 나 정도의 성인군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 정도라 하겠는데, 이게 웬일인가. 반찬 분실로 실의에 빠져 한 글자도 쓰지 못한지 이틀째인 오늘아침, 나의 동지께서 고인이 되셨다는 비보를 접했으니, 필자는 깊은 고독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추모의 의미에서 생전 고인께서 남기셨던 명언을 실천하기로 했다. “용서하되 잊지는 않겠다(Forgive without forgetting).” 그렇다. 반찬도둑. 잊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용서하겠다. 어디서 드시건 맛있게 드시길.
단 반찬이 소화되듯, 나에 대한 악감정도 언젠가는 소화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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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tolovemyself
2014.03.04
글이 착착 감깁니다!!
bitsoli
2013.12.15
김민희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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