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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점진적 변화 - <우리 선희>

3기로 구분되는 홍상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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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자극은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방에 가서 한다”는 이 대전제가 깨어졌다. 나는 영혼의 깊은 혼란을 겪었다. 마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공기가 산소가 아니라, 알고 보니 질소였다는 식의 대혼란이었다

예전에도 에세이에 쓴 적이 있지만, 홍상수의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지방에 가서 한다.”
 

그의 초기작 이후 15년간의 작품에 걸쳐 이 문장은 유효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내가 “것 봐. 이번에도 지방에 가서 하잖아”라고 입을 열면, 친구는 “그렇군. 안 하는 영화가 없잖아”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소개한 문장을 좀 더 구체화하자면 “지방에 가서 먹고 한다”(였)다. 요컨대, 여기 전형적인 장면 하나. 
 

남자 주인공은 숙취로 고생하고 있다(대개 그렇다). 그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반팔 셔츠를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막 잠에서 깨어난다. 햇살은 집 구석구석까지 살균이 될 정도로 골고루 뿌려지고 있고, 주인공은 선배 혹은 (어떤) 여성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 매우 맛있게 먹는다. 어느 정도냐면, 화면 속 주인공에게 “거. 좀 같이 먹읍시다!”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맛있게 먹는다. 당연히,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주인공이 먹었던 음식을 먹는다. 복국을 먹거나, 해물전에 동동주를 마시거나, 애꿎은 식당 아주머니께 웃돈을 주며 “제발 계란 프라이 하나만 부쳐 달라고” 사정을 한다.  
 

물론, 이 모든 자극은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방에 가서 한다”는 이 대전제가 깨어졌다. 나는 영혼의 깊은 혼란을 겪었다. 마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공기가 산소가 아니라, 알고 보니 질소였다는 식의 대혼란이었다(물론, 질소로 가능할 리 없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주인공들은 ‘서울에 와서도 하기 시작했고(북촌방향)’, 다시 지방에 가서 하면 이번에는 ‘외국 여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다른 나라에서)’.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파이는 3.141592라 믿었던 그 믿음이 깨어지고, 1 더하기 2가 1이거나, 4일 수도 있다는 식의 어법에 당황하고야만 것이다. 물론, 다른 감독의 영화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초기작들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어쩌다’ 보게 된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는 사이 ‘음. 이 감독은 절대 방식을 바꾸지 않는군. 하나의 공식이야. 불변의 전제조건이군’하고 인정하게 됐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그 공식을 확인하는 뒤틀린 재미로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런데 그 공식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영혼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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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15번째 장편 <우리 선희>는 나의 뇌를 또 한 번 어지럽게 만들었다. “지방에 가서 한다”의 ‘지방’이라는 전제조건이 무너졌을 때 느낀 당혹감을 보기 좋게 비웃기라도 하듯, 핵심이었던 전제 ‘한다’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나, 인물의 과거 속에 ‘한다’가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 보이는 화면 속에 ‘한다’는 명백히 사라져 있었다. 마치 어제까지 부엌에 있던 냉장고가 눈을 뜨니 사라진 것처럼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작가니깐 적당한 비유를 찾자면, 원고를 쓰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오니 노트북이 사라진 것이다. 어리둥절해 책상 밑까지 삭삭 뒤져도 어댑터만 남은 체 노트북은 증발해버렸다. 마우스와 마우스패드까지 그대로 있지만, 노트북이 있던 자리만 덩그러니 비워진 것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혼자만의 기준이지만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3기로 구분한다. “지방에 가서 한다”가 테제가 되어 불변의 진리로 지배했던 1기, 그리고 과거의 테제에 대항하듯 “지방에 안 갈 수도 있고, 외국에서 올 수도 있다”가 안티테제처럼 난립했던 2기, 급기야 무엇보다 핵심이었던 “한다”는 마지막 유산과 작별하고서 “뭐, 안 할 수도 있지”라고 선언한 3기. 
 

이제 그의 영화는 3기로 접어들었다. 과거에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혹은 조금씩 변주하는 그의 스타일에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나로서도, 그간 십여 년에 걸친 ‘무변화의 고집’ 속에 일종의 장인적 태도를 엿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급기야 사소한 변화에도 당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래서 무엇을 하든, 이십년 정도는 끊임없이 같은 걸 해야 한다. 그래야 변할 줄 모르는 이야기까지 고집으로 비춰지는 단계를 넘어, 장인정신으로까지 승화되는 것이다. 결론은, 나도 헛소리를 계속 해야겠다. 

 

*
그래도 먹는 것과 도시의 좋은 공간은 꾸준히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감독님이 여행 가이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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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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