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적응하지 말고, 삶의 속도에 저항해 보세요
“당신의 삶의 속도는 몇 km입니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러 ‘문향재’ 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비록 빠른 속도의 삶을 지향하는 도시의 한 가운데 위치했으나, 여유로이 우리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글ㆍ사진 윤나리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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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나는 느린 여행

이번 여행은 김남희 작가가 자신의 멘토인 쓰지 신이치와 함께 일본과 한국을 여행하면서 성장과 속도가 중요한 사회에서 그러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여행지 중에서 김남희는 ‘부탄’과 ‘홋카이도’의 ‘베델의 집’이 그녀의 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독자와 공유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나,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측정하는 나라, 부탄

“부탄은 전세계가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던 1972년에 19세의 왕이 즉위하면서 계량화하기 어려운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측정하겠다고 통치 발표를 하면서 GNH(Happiness)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부탄은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깨끗한 물과 공기, 경제적 성장과 영적인 성장의 공존,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정체성의 인지’ 등의 몇 가지를 헌법으로 지정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이들은 깨끗한 물과 공기가 어떻게 행복의 조건일 수 있냐고 의문을 가지지만 일본은 원전 사건 이후 이것의 필수성을 몸소 느끼고 있다. 부탄은 그런 사건을 겪지 않고도 이미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부탄에서 쓰지 신이치의 친구이자 가이드의 고향인 치몽 마을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그 마을에 최초로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지방에서 귀한 음식인 방창(막걸리)와 아라, 오렌지, 달걀 등을 접대하는 의식을 수십 차례나 반복했다. 거기서 김남희는 부탄 사람들의 여유와 정에서 부드럽고 당당함을 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굳이 ‘당신 행복해요?’라고 묻지 않아도 부탄 사람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과 만난 뒤, 물질적인 부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행복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대인은 놀이와 일이 분리되는 삶을 산다. 그래서 놀이가 돈을 주고 사야하는 소비의 형태로 전락했다. 부탄은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하는 일과 놀이가 하나인 곳이었다.

둘, 약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홋카이도 베델의 집

이어서 김남희 작가는 홋카이도에서 겪은 일을 회상했다.

홋카이도에 베델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 정신적 질병을 가진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다. 사회에서 격리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사회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그들이 처음 한 것은 자른 다시마를 비닐봉지에 넣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베델의 집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도우며 일하기 시작했다.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 지금은 자신들의 영역을 점차 확대해서 책, 음반 등을 만들기도 하고 강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베델의 집이 내세우는 모토 덕분이다. 이 공동체를 만든 무카야치 사회복지사와 도립 정신병원 원장은 ‘가족은 규칙이 없다.’, ‘병은 이세상의 삶의 증거이므로 끌어 안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약한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이외에도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 ‘안심하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 ‘오늘도 내일도 순조롭게 문제투성이’, ‘편견, 차별 대환영’ 이라는 모토가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 사회는 약자를 소외시키지만, 여기서는 누구든 약자니깐 약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 중의 다수는 사회에서 너무 ‘감바떼 쿠다사이(힘내세요)’하다가 스트레스로 정신적 질병을 얻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베델의 집에서 만났던 싱어송라이터 시모노군이 불러준 노래는 마치 나에게 약해도 괜찮다,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정말 감동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시모노군과 사랑에 빠질 뻔 했다. 베델의 집에서는 손님이 그곳에서 머물면 손님에게 아침마다 ‘OO씨, 당신에게 정신병이 있어도 괜찮아요. 신이 주신 선물이니까’라는 노래를 불러준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왜 사회가 수많은 세상의 약자를 격리하고 사회적으로 차별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모든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데 말이다. 베델의 집은 나에게 힘내지 않다고 괜찮다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각자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

김남희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고, 행사에 참석한 독자와 행복과 여행에 관해 그녀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등의 책을 썼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이라는 책은 이전의 책과는 다른 느낌이다. 갑자기 그렇게 여행의 의미가 확장된 이유가 있나.

멘토와도 같은 쓰지 신이치 선생님을 스승으로 만나서다. 선생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여행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된 것 같다. 이전의 책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여행 이야기라면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쓰기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항상 행복하게 사는 방향을 고민한다. 책을 읽고 혼자 여행도 시작했지만 일탈의 행복은 잠시일 뿐 일상으로 돌아오면 공허하고 허무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상을 떠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일상을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감수성을 길러 보자. 여행하지 않을 때는 집 근처 산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4월에서 5월 사이에는 자연이 매일 매일 달라서 감동을 받곤 한다. 즉, 그러한 감수성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여러분이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감수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독자와의 시간마저 끝나자, 그녀는 정혜윤의 『사생활의 천재들』 서문의 ‘고독한 두 사람이 만나 저항을 이야기하자.’라는 글귀를 인용하며 이날 행사를 끝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앞으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고독한 대도시에서, 고독에 적응하지 말고 그런 삶을 지향하는 방향에 저항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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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쓰지 신이치 공저/전새롬 역 | 문학동네
동아시아의 평화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한일 공동 NGO 교류 행사 ‘피스 앤드 그린 보트(Peace&Green Boat)’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금세 좋은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 이후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행복지수는 여느 나라보다 높은 부탄을 함께 여행하며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품게 된다. 이에 두 사람은 홋카이도, 안동, 오사카와 나라, 지리산을 거쳐 강원도와 제주도까지 여행하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남희 #쓰지 신이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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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령써니

2013.06.04

미투데이에서 몇번 댓글로 접했는데 이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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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0852

2013.06.03

정리해주니 그날의 여운이 다시 한번 느껴지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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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nzoa

2013.06.03

제 질문에 너무 정성스레 답변해주셔서 더더욱 팬이 되었죠^^ 행복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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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리

스스로를, 물음표와 느낌표의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추었다 자칭하는 일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와 함께 생활한 탓에 책, 음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얇고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항상 다양한 매체를 향해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을 열어두어 아날로그의 감성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채사모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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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1971년생 여성 여행가. 스스로 ‘까탈이’라 일컫는 저자는 강원도 삼척에서 나고 자라 아홉 살에 서울로 입성했다. 여덟 살 때, 포항에서 대구까지 혼자 기차를 타고 갔던 첫 여행의 황홀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다를 바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 펼쳐진 인생이 막막해 유럽으로 두 달간 여행을 떠났다. 그 길로 여행 중독자의 대열에 합류, 영국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터키대사관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한 달씩 주어지는 여름휴가를 이용해 한 나라씩 돌기도 했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영국 버밍험대학 관광정책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오마이뉴스에 2000년 ‘몽골 여행’ 연재를 시작으로 국토종단 도보여행기, 중국, 미얀마, 라오스, 티베트, 네팔 여행기 등을 연재했으며 현재 ‘까탈이의 세계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월간중앙에 2003년 1월부터 12월까지 ‘동남아 여행기’를 연재했으며, 네팔에 체류하는 동안은 KBS ‘도전지구탐험대’의 현지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 더 많이 감사하고, 좀 더 겸손하고, 더 자주 웃는 자신을 보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멀리 갈 수 없을 때도 책을 읽고, 멀리 떠나가서도 책을 읽는 그녀는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너무도 매혹적이라 책을 읽다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 책, 삶을 바꾸는 한 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 오롯이 책을 위해 떠나는 여행…. 저서 『여행할 땐, 책』은 그렇게 여행지와 그녀를 연결해준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떠나고 싶고, 읽다 보면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돌아보면 그녀의 삶은 여행과 책이 관통하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부적처럼 품고 산다.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와 청소년을 위한 ‘여행 학교’는 그렇게 품고 있는 여전한 소망이다. 지은 책으로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일본의 걷고 싶은 길』,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라틴 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이 별의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길 위에서 읽는 시』 등이 있다. [한겨레21]에 「길 위에서 주은 한마디」를 연재했다. 지금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비롯해 중국,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네팔 등 30여 개국을 여행한 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앞으로 4-5년간 인도, 파키스탄, 이란,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면서 ‘7년간의 세계일주’ 목표를 완성할 계획이다.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외국인을 위한 문화 체험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우리 땅 우리 흙을 무대로 하는 ‘청소년 여행학교’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