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7] 올 여름에 꼭 다시 들어봐야 할 클래식 - 비발디 <사계>
<사계>의 음반은 수두룩하지만, 연주자마다 그 계절감을 빠르기나 강약으로 다르게 표현한다. 그래서 듣다 보면, 좀 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사계>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사계>도 있다”고 했던 선배의 말처럼 ‘이런 <사계>’ 이 곡이 새롭게 들릴 만큼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사계>를 찾으려면? 일단 좋아하는 계절 곡을 위주로 위에서 소개한 장영주, 이 무치치, 까르미뇰라까지 고루 들어보자.
201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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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계>, 들어봤어?
음악이 각인시키는 힘은 꽤 크다. OST를 들을 때면, 그 음악을 들으며 봤던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어떤 음악을 들을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장면은 음악 한 곡으로 남는다. 그런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반을 선물하는 데에는, 그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얘기다.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너무 강렬한 이미지, 혹은 인상 때문에 그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내겐 비발디의 <사계>가 그런 음악이었다.
80년대, 내가 어렸을 때 집에 전자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매 정시가 되면, 사계의 ‘봄’이 전자음으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첫 소절만 울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껐다. 게다가 지하철에서 방송이 나올 때 BGM으로 쓰이는 곡도 <사계> 아닌가. 휴대폰 벨소리로 <사계> 전자음을 설정해 다니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토록 가까이 있는 음악이라, 친숙함을 넘어서 진부할 지경이었달까. 나에게 <사계>는, 정시에 울리는, 공공적인 음악. 딱 거기까지였다.
90년대 실시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누르고 비발디의 <사계>가 1위를 차지한 건, 당시 <사계>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의 전주라거나 Sweet box의 등에 삽입되어(물론 그 전주가 <사계>였다는 건 나중에나 알게 됐지만) <사계> 역시 ‘제대로 들어본 적 없지만, 누구나 아는 노래’ 반열에 올랐다.
“<사계>는 여전히 잘 나가는 음악이지만, 예전만 못하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하고는 달라. 한풀 꺾인 아이돌 스타 같은 느낌이랄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그때도 내가 클래식 초심자에게 음반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선배가 내게 비발디의 <사계>를 권해줬다. “(작은 소리로) 비발디 <사계>는 이미 많이 들어봤는데.” “<사계>는 비발디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현, 콘티누오를 위한 12협주곡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 가운데 1, 2, 3, 4번곡이야. 단독작품이 아니야. 이건 줄리아노 까르미뇰라가 연주한 <사계>인데 귀를 기울여서 잘 들어봐. 이런 <사계>도 있구나, 싶을 거다.”
줄리아노 까르미뇰라가 연주하는 <사계> 중 여름
‘이런 <사계>도 있다.’는 것, 초심자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전자음악 <사계>로 닳도록 들은 그 음악이 날생선처럼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특히 까르미뇰라의 연주는, 위의 영상에서도 눈치 챌 수 있듯이 정말 빠르다. 귀에 배겨 있는 전자음악 따위 단숨에 씻어 내린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발디가 그려내려고 했던 사계절의 풍경을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음악을 새롭게 듣기 위해서는 이런 계기가 필요하다. 이 클래식 가이드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은 친숙하고, 익숙한 곡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전에 갖고 있던 특정한 인상 너머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카르미뇰라의 <사계>’처럼. 참고로 미리 말해두자면, 예스24 독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사계 음반은 장영주가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사계 앨범이다.
소비자인 귀족을 위해, 듣기 좋게 만든 바로크 음악
레전드로 꼽히는 ‘이 무치지’(I musici)의 <사계>연주.
61년 째 활동하는 ‘이 무치지’는 이탈리아의 실내합주단이다.
“비발디는 바로크 음악가야. 왜 음악을 시기별로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등으로 분류하기도 하잖아. 이런 분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찾는데 이정표 역할을 하긴 하지만, 꼭 알아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들어봐. 간단하게 설명해볼게.
바로크 이전까지는 문화나 사상이 하나님 중심이었잖아. 그다음에 사람 중심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가 막을 내리고, 전환기를 맞이하던 17세기 유럽을 바로크 시대라고 말해. 이 당시 문화를 소비하던 큰손은 대부분 왕족과 귀족들이었으니, 예술가들은 밥벌이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어.“
요점만 말하자면, 이 당시 음악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도구였다기보다,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한마디로, 듣기 좋게 (곡을) 썼다.” 이러한 주류에 벗어난 음악을 만든 음악가가 우리가 이미 몇 주에 걸쳐 격찬에 극찬을 늘어놓은 베토벤(느님)이었다고. 베토벤 찬양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여기서는 패스.
“바로크 음악가로는 비발디를 비롯한 헨델, 바흐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음악은 멜로디가 아름답고 흥겨워. 화려하고 장식이 넘치는 곡이 대부분이지. 음악에 나풀나풀 레이스가 달린 느낌이랄까? 비발디의 협주곡들이 특히 그래.”
비발디의 <사계> 외에는 그의 다른 음악은 전혀 접해본 적 없는 나는, 비발디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은 곡을 썼다”는 선배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오페라도 38개도 썼고, 종교음악, 미사 음악도 많이 썼어. 하지만 사람들이 찾는 건 <사계>지. 다른 곡들도 나쁘지 않긴 한데, 듣다 보면 곡들이 비슷비슷하게 들리기도 해. 러시아 작곡가 중에 스트라빈스키가 비발디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지. ‘똑같은 곡을 백번이나 쓴 그 사람?’”
다음 음악이 묘사하고 있는 풍경은 무엇일까요?
장영주가 연주하는 <사계> 중 봄 1악장
“가끔 음악을 들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들이 있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그렇고, 시벨리우스의 <페르귄트 조곡>이 그렇고. 프로코피에프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피터와 늑대>가 그런데.(나중에 들어봐야지^^) 그중 <사계>가 압도적이지. 곡 하나하나가 그 계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거든. <사계>의 인기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거지.”
이탈리아도 사계가 뚜렷한 나라였다는데, 비발디는 사계절의 어떤 풍경을 음악으로 담으려고 했을까? “자, 다음 음악이 묘사하고 있는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하는 퀴즈를 푸는 것처럼 <사계>에 귀를 들어봤다.
생명이 움트는 봄, 풀잎이 반짝 머금고 있는 물방울. 활기찬 새 소리. ‘무럭무럭’이라는 부사와 연관된 것들이 <사계>의 ‘봄’을 들으면 떠오른다. 덩달아, 나라면, 봄의 느낌을 어떻게 소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사계> 중 나는 여름이 가장 좋다. 비발디에게 여름은,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계절이다. 비발디는 여름을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뙤약볕 내리쬐는 날씨에 지친 것처럼 느릿느릿 시작된다. 뭔가 땀에 흠뻑 젖어, 입맛도 의욕도 잃은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윽고 빠르게 전진하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장마가 시작된다. 구름을 몰고 오듯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를 몰고 와 함께 연주할 때는, 쏴,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를 볼 때처럼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반면 ‘겨울’은 너무 부드럽게 표현된 것 같지 않아? (‘겨울’이 바로 이현우의 발라드곡 <헤어진 다음 날>의 전주에 쓰인 곡이다.) 춥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처럼 춥지 않은 곳인가? 생각하게 하는 겨울이지.”
악상이 떠오르면 미사 중에도 뛰쳐나간 빨간 머리 신부님
비발디는 빨간 머리 신부였다. 그의 빨간 머리도, 바이올린 실력이 탁월했던 것도 집안 내력이었단다. “그의 아버지도 명 바이올리니스트였거든!” 어린 시절에 출가해 신부까지 됐지만, 종교보다는 음악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신부님이었다.
“미사를 보다가도 악상이 떠오르면 몰래 뛰어가 악상을 적었고, 미사를 빼먹는 일도 종종 있었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내려가는 사제를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이 작곡가가 비슷한 곡을 작곡했는지는 다 들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음악을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건 알겠다.
“역시나 사제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음악학교에서 수십 년 교사로 일했어. 이 음악학교는 당시 베네치아에서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위한 음악원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일마저도 놓고 베네치아를 떠나게 되지. 그게 제자였던 알토 가수와 염문설 때문이었다고 해. 그의 성격이나 삶을 봤을 때, 사제는 역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던 거지.
고향에서 도망치듯 떠난 비발디는 떠돌다가 빈에서 생을 마감해. 돈이 없어서 죽을 때 빈민묘지에 묻혔어. 유명한 음악가 중에 말년이 가난했던 사람이 많잖아. 그렇게 귀족을 위해 열심히 곡을 썼는데도, 음악가들은 돈을 벌 수 없었던 건지, 경제관념이 부족했던 건지? 가난하고 절박해야만 후대에 남는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바이올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 <사계>
“비발디는 빼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사계에서 바이올린은 그 활약이 대단하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 피아노의 매력을 알 수 있는데,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바이올린의 매력에 감탄하게 돼. 바이올린 소리가 이런 것까지 표현할 수 있구나! 놀라고, 바이올린이 피아노와 함께 기악의 대표주자로 꼽을만하구나 싶지.
이렇게 바이올린으로 빼어난 기교와 표현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곡을 마다할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을까? 정식으로 앨범을 낸 바이올리니스트치고 <사계>를 거치지 않은 연주자가 없다고 할 정도야.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계> 앨범이 있는데, YES24 고객들이 선택한 음반은 장영주의 <사계>야. 보통 사계의 기준으로 치는 ‘이 무치치’ 음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였어.
물론 2위로 선택된 ‘이 무치지’보다 간발의 차로 앞선 결과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달까? 장영주에 대한 애정과 인기를 엿볼 수 있는 결과였어. 장영주는 강약의 표현이 확실하고, 그녀의 뒤를 받쳐주는 오르페우스 쳄버 오케스트라 역시 탁월한 연주를 선보여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음반이야. (현악 곡에 강한 오르페우스 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 중에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도 매우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니까, 기억해둬)“
<사계>의 음반은 수두룩하지만, 연주자마다 그 계절감을 빠르기나 강약으로 다르게 표현한다. 그래서 듣다 보면, 좀 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사계>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사계>도 있다”고 했던 선배의 말처럼 ‘이런 <사계>’ 이 곡이 새롭게 들릴 만큼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사계>를 찾으려면? 일단 좋아하는 계절 곡을 위주로 위에서 소개한 장영주, 이 무치치, 까르미뇰라까지 고루 들어보자. 오늘 같이 흐린 날씨라면 사계 <여름>이 딱이다.
음악이 각인시키는 힘은 꽤 크다. OST를 들을 때면, 그 음악을 들으며 봤던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어떤 음악을 들을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장면은 음악 한 곡으로 남는다. 그런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반을 선물하는 데에는, 그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얘기다.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너무 강렬한 이미지, 혹은 인상 때문에 그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내겐 비발디의 <사계>가 그런 음악이었다.
80년대, 내가 어렸을 때 집에 전자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매 정시가 되면, 사계의 ‘봄’이 전자음으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첫 소절만 울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껐다. 게다가 지하철에서 방송이 나올 때 BGM으로 쓰이는 곡도 <사계> 아닌가. 휴대폰 벨소리로 <사계> 전자음을 설정해 다니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토록 가까이 있는 음악이라, 친숙함을 넘어서 진부할 지경이었달까. 나에게 <사계>는, 정시에 울리는, 공공적인 음악. 딱 거기까지였다.
90년대 실시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에서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누르고 비발디의 <사계>가 1위를 차지한 건, 당시 <사계>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의 전주라거나 Sweet box의
“<사계>는 여전히 잘 나가는 음악이지만, 예전만 못하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하고는 달라. 한풀 꺾인 아이돌 스타 같은 느낌이랄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그때도 내가 클래식 초심자에게 음반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선배가 내게 비발디의 <사계>를 권해줬다. “(작은 소리로) 비발디 <사계>는 이미 많이 들어봤는데.” “<사계>는 비발디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현, 콘티누오를 위한 12협주곡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 가운데 1, 2, 3, 4번곡이야. 단독작품이 아니야. 이건 줄리아노 까르미뇰라가 연주한 <사계>인데 귀를 기울여서 잘 들어봐. 이런 <사계>도 있구나, 싶을 거다.”
줄리아노 까르미뇰라가 연주하는 <사계> 중 여름
‘이런 <사계>도 있다.’는 것, 초심자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전자음악 <사계>로 닳도록 들은 그 음악이 날생선처럼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특히 까르미뇰라의 연주는, 위의 영상에서도 눈치 챌 수 있듯이 정말 빠르다. 귀에 배겨 있는 전자음악 따위 단숨에 씻어 내린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발디가 그려내려고 했던 사계절의 풍경을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음악을 새롭게 듣기 위해서는 이런 계기가 필요하다. 이 클래식 가이드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은 친숙하고, 익숙한 곡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전에 갖고 있던 특정한 인상 너머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카르미뇰라의 <사계>’처럼. 참고로 미리 말해두자면, 예스24 독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사계 음반은 장영주가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사계 앨범이다.
소비자인 귀족을 위해, 듣기 좋게 만든 바로크 음악
레전드로 꼽히는 ‘이 무치지’(I musici)의 <사계>연주.
61년 째 활동하는 ‘이 무치지’는 이탈리아의 실내합주단이다.
“비발디는 바로크 음악가야. 왜 음악을 시기별로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등으로 분류하기도 하잖아. 이런 분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찾는데 이정표 역할을 하긴 하지만, 꼭 알아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들어봐. 간단하게 설명해볼게.
바로크 이전까지는 문화나 사상이 하나님 중심이었잖아. 그다음에 사람 중심인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가 막을 내리고, 전환기를 맞이하던 17세기 유럽을 바로크 시대라고 말해. 이 당시 문화를 소비하던 큰손은 대부분 왕족과 귀족들이었으니, 예술가들은 밥벌이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어.“
요점만 말하자면, 이 당시 음악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도구였다기보다,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거다. “한마디로, 듣기 좋게 (곡을) 썼다.” 이러한 주류에 벗어난 음악을 만든 음악가가 우리가 이미 몇 주에 걸쳐 격찬에 극찬을 늘어놓은 베토벤(느님)이었다고. 베토벤 찬양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여기서는 패스.
“바로크 음악가로는 비발디를 비롯한 헨델, 바흐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음악은 멜로디가 아름답고 흥겨워. 화려하고 장식이 넘치는 곡이 대부분이지. 음악에 나풀나풀 레이스가 달린 느낌이랄까? 비발디의 협주곡들이 특히 그래.”
비발디의 <사계> 외에는 그의 다른 음악은 전혀 접해본 적 없는 나는, 비발디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많은 곡을 썼다”는 선배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오페라도 38개도 썼고, 종교음악, 미사 음악도 많이 썼어. 하지만 사람들이 찾는 건 <사계>지. 다른 곡들도 나쁘지 않긴 한데, 듣다 보면 곡들이 비슷비슷하게 들리기도 해. 러시아 작곡가 중에 스트라빈스키가 비발디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지. ‘똑같은 곡을 백번이나 쓴 그 사람?’”
다음 음악이 묘사하고 있는 풍경은 무엇일까요?
장영주가 연주하는 <사계> 중 봄 1악장
“가끔 음악을 들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들이 있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그렇고, 시벨리우스의 <페르귄트 조곡>이 그렇고. 프로코피에프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피터와 늑대>가 그런데.(나중에 들어봐야지^^) 그중 <사계>가 압도적이지. 곡 하나하나가 그 계절의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거든. <사계>의 인기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거지.”
이탈리아도 사계가 뚜렷한 나라였다는데, 비발디는 사계절의 어떤 풍경을 음악으로 담으려고 했을까? “자, 다음 음악이 묘사하고 있는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하는 퀴즈를 푸는 것처럼 <사계>에 귀를 들어봤다.
생명이 움트는 봄, 풀잎이 반짝 머금고 있는 물방울. 활기찬 새 소리. ‘무럭무럭’이라는 부사와 연관된 것들이 <사계>의 ‘봄’을 들으면 떠오른다. 덩달아, 나라면, 봄의 느낌을 어떻게 소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사계> 중 나는 여름이 가장 좋다. 비발디에게 여름은,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계절이다. 비발디는 여름을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뙤약볕 내리쬐는 날씨에 지친 것처럼 느릿느릿 시작된다. 뭔가 땀에 흠뻑 젖어, 입맛도 의욕도 잃은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윽고 빠르게 전진하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장마가 시작된다. 구름을 몰고 오듯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를 몰고 와 함께 연주할 때는, 쏴,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를 볼 때처럼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반면 ‘겨울’은 너무 부드럽게 표현된 것 같지 않아? (‘겨울’이 바로 이현우의 발라드곡 <헤어진 다음 날>의 전주에 쓰인 곡이다.) 춥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처럼 춥지 않은 곳인가? 생각하게 하는 겨울이지.”
악상이 떠오르면 미사 중에도 뛰쳐나간 빨간 머리 신부님
비발디는 빨간 머리 신부였다. 그의 빨간 머리도, 바이올린 실력이 탁월했던 것도 집안 내력이었단다. “그의 아버지도 명 바이올리니스트였거든!” 어린 시절에 출가해 신부까지 됐지만, 종교보다는 음악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신부님이었다.
“미사를 보다가도 악상이 떠오르면 몰래 뛰어가 악상을 적었고, 미사를 빼먹는 일도 종종 있었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내려가는 사제를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이 작곡가가 비슷한 곡을 작곡했는지는 다 들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음악을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건 알겠다.
“역시나 사제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음악학교에서 수십 년 교사로 일했어. 이 음악학교는 당시 베네치아에서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위한 음악원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일마저도 놓고 베네치아를 떠나게 되지. 그게 제자였던 알토 가수와 염문설 때문이었다고 해. 그의 성격이나 삶을 봤을 때, 사제는 역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던 거지.
고향에서 도망치듯 떠난 비발디는 떠돌다가 빈에서 생을 마감해. 돈이 없어서 죽을 때 빈민묘지에 묻혔어. 유명한 음악가 중에 말년이 가난했던 사람이 많잖아. 그렇게 귀족을 위해 열심히 곡을 썼는데도, 음악가들은 돈을 벌 수 없었던 건지, 경제관념이 부족했던 건지? 가난하고 절박해야만 후대에 남는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바이올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 <사계>
“비발디는 빼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사계에서 바이올린은 그 활약이 대단하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 피아노의 매력을 알 수 있는데,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바이올린의 매력에 감탄하게 돼. 바이올린 소리가 이런 것까지 표현할 수 있구나! 놀라고, 바이올린이 피아노와 함께 기악의 대표주자로 꼽을만하구나 싶지.
이렇게 바이올린으로 빼어난 기교와 표현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곡을 마다할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을까? 정식으로 앨범을 낸 바이올리니스트치고 <사계>를 거치지 않은 연주자가 없다고 할 정도야.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계> 앨범이 있는데, YES24 고객들이 선택한 음반은 장영주의 <사계>야. 보통 사계의 기준으로 치는 ‘이 무치치’ 음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였어.
물론 2위로 선택된 ‘이 무치지’보다 간발의 차로 앞선 결과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달까? 장영주에 대한 애정과 인기를 엿볼 수 있는 결과였어. 장영주는 강약의 표현이 확실하고, 그녀의 뒤를 받쳐주는 오르페우스 쳄버 오케스트라 역시 탁월한 연주를 선보여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음반이야. (현악 곡에 강한 오르페우스 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 중에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도 매우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니까, 기억해둬)“
<사계>의 음반은 수두룩하지만, 연주자마다 그 계절감을 빠르기나 강약으로 다르게 표현한다. 그래서 듣다 보면, 좀 더 귀를 솔깃하게 하는 <사계>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사계>도 있다”고 했던 선배의 말처럼 ‘이런 <사계>’ 이 곡이 새롭게 들릴 만큼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사계>를 찾으려면? 일단 좋아하는 계절 곡을 위주로 위에서 소개한 장영주, 이 무치치, 까르미뇰라까지 고루 들어보자. 오늘 같이 흐린 날씨라면 사계 <여름>이 딱이다.
두 번째로 선택된 음반 펠릭스 아요 & 이 무지치 : 비발디 사계 장영주의 사계와 아슬아슬한 차이로 안타깝게 2위를 했지만 집계전에는 당연히 1위일 줄 알았던 음반으로, “비발디 사계”에 입문하려면 반드시 추천되는 교과서적인 음반이다. 이 음반은 오디오의 스테레오가 출시되면서 녹음된 사계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사계를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 무지치 (I Musici)”는 이탈리아 국적의 12명으로 구성된 실내악단으로 국내에도 가끔 공연을 한다. 비발디 사계의 연관검색어처럼 되어버린 그들이 온다면 한번 관람해보도록 하자, 그전에 이 음반을 꼭 들어보자. 펠릭스 아요와 이 무지치의 비발디 사계가 교과서적 연주지만 너무 교과서적이라 심심하다면 이 음반을 들어보자. 말그대로 제대로 폭풍이 몰아치는 “화끈한” 사계를 들을수 있다. 한국인 취향에는 이 음반이 나을수도 있겠다. 음질면에서도 빼어나서 오디오매니아들에게 사랑받았던 음반으로, 풍성하고 생생한 음질이 화려한 바이올린의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있다. 원전악기(바로크 바이올린)는 현대악기보다 힘도 없고 소리가 약간 찌꺽대는거같다라는 필자의 선입견을 부숴준 음반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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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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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sweetspring6
2013.05.15
보여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뽀로리
2013.05.13
예전에는 몰랐던 사계의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destinydesigner
201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