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는 베이징의 젊은 연인들이 도연정 공원을 찾는 이유
베이징에서 눈 뜨는 첫 아침, 일정표에 따르면 오늘의 일정은 만리장성, 이화원, 원명원 방문입니다. 그러나 답사팀은 이미 어제 버스 안에서 일정표를 과감히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흔한 베이징 패키지 여행으로 가 볼 수 있는 곳 말고, 이번 역사기행이란 주제에 어울리는 곳 위주로만 가기로 말이죠.
20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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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의 요람 베이징 대학 홍루
베이징에서 눈 뜨는 첫 아침, 일정표에 따르면 오늘의 일정은 만리장성, 이화원, 원명원 방문입니다. 그러나 답사팀은 이미 어제 버스 안에서 일정표를 과감히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흔한 베이징 패키지 여행으로 가 볼 수 있는 곳 말고, 이번 역사기행이란 주제에 어울리는 곳 위주로만 가기로 말이죠.
구 베이징대학 본관, 일명 홍루.
이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구 베이징 대학이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라 일명 홍루라고 불립니다. 참, 청나라 때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홍루는 중국에서 전혀 이상한 의미가 아닙니다. 1898년에 개교한 베이징 대학은 100년도 넘게 중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재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이곳 본관인 홍루는 1919년 5.4운동의 발생지이자 중국 신문화운동의 중심지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최초 유포지중의 하나로 현재는 5.4운동 기념관입니다. 이런 설명을 버스 안에서 김명호 교수님께 듣자마자 저는 마구 흥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래된 건물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왜 이리 좋은지요.
베이징 대학을 둘러싼 5.4운동 기념 돌담.
루쉰과 그의 작품 <광인일기>, <공을기>가 보인다.
답사팀은 일단 베이징 대학을 둘러싼 5.4운동 기념 돌담을 둘러 봅니다. 천두슈, 후스, 마오쩌둥 등 쟁쟁한 인물들의 얼굴과 집필 서적을 표현한 조각 조각들을 봅니다. 그리고 홍루 안으로 들어가 베이징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흉상과 집무실, 루쉰(魯迅)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강의실을 둘러 봅니다.
루쉰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교실 (김선생님 사진)
루쉰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강의실에 온 저는 루쉰의 애제자인양 폼잡고 앉아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촌스럽게 여기지 않고 중국어를 전공한 주연씨가 동조해줍니다. 우리는 강의실 뒤의 의자에 앉아 루쉰의 제자였다가 동반자가 된 쉬광핑(許廣平)처럼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칠판을 바라 봅니다. 이순간, 주연씨와 저는 중국근현대 걸출한 문인들의 문기를 다 흡수해 버린 듯 합니다! 하하.
5.4운동 기념관에서 김명호 교수님의 설명하시는 말씀을 듣는 답사팀.
5.4 운동 기념관에서도 김명호 교수님의 말씀을 놓칠세라, 우리는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착한 학생이 되어 다닙니다. 다들 중국 관련 전공자이시거나 필자시거나 아니면 대단한 독서가들이신지라 이분들의 대화만 듣고 다녀도 얼마나 재미나던지요.
혁명의 성지이자 사랑의 성지, 도연정공원
다음 행선지는 도연정공원(陶然亭公園)입니다. 이곳은 중국의 역대 전통 정자들을 모아 재현해 낸 현대식 공원이지만, 중심이 되는 정자는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건립된 도연정입니다. 도연정 근처에는 원나라 때 건설된 유서깊은 사찰인 자비암도 있습니다.
중국 역대 유명 정자들을 모아 재현한 도연정 공원 풍경
하지만 현대 중국인들에게 이런 공원으로서의 가치, 고건축물로서의 가치보다 도연정공원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더 큽니다. 이곳 외진 곳에 위치한 자비암에서 근대의 수많은 애국자와 혁명가들이 모여 비밀리에 혁명활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5.4운동 당시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이 이곳에 모여 3년간 숨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오, 모택동, 주은래 등이 단체 기념 사진을 찍은 커다란 괴목도 있네요? 그런데 김명호 교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역사적 현장에서 꼭 재현 사진을 찍으시는 이 분들! 아아, 정말 마음에 듭니다. 세상에 저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곳 도연정 공원은 혁명의 성지이자 사랑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중국 혁명 당시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순한 사랑을 나누다가 3년 간격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나란히 묻힌 고군우(高君宇)와 석평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김명호 교수님께 두 혁명가의 짧고 굵은 삶에 대해, 기념관에 전시된 석평매의 불꽃같은 연애편지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입을 딱 벌리고 감탄합니다. 어떻게 이런 명문장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혼란스런 시기에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다 던지는 사랑이 가능할까요? 저는 더 자세한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김명호 교수님께 『중국인 이야기』 2편에 꼭 이들 혁명가 연인의 이야기를 써 주십사하고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어 현재에도 사랑을 시작하는 베이징의 젊은 연인들은 이곳 도연정 공원을 찾아 고군우와 석평매의 무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곤 한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한식 비슷한 명절인 중국의 청명절에는 지금도 그들의 석상 앞에 꽃이 수북히 쌓인다고 합니다. 아, 영원한 사랑만 보장된다면야 서울에서 베이징 정도 쯤이야 남자 뒷덜미 잡아끌고 못 오겠습니까? 저는 잊을까봐 다이어리에 내년 청명절을 미리 표시해두기로 합니다.
도연정 공원 내 위치한 석평매, 고군우 기념 석상
북학파들이 걷던 바로 그곳, 류리창거리
다음 행선지는 그 유명한 류리창(琉璃廠)거리입니다. 역사책에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쟁쟁한 북학파 지식인들이 사신단으로 와서 책을 구하기 위해 꼭 들렸던 바로 그 유리창! 여러 연행록(북경 기행문 장르)에 꼭 등장하는 한중 지식인 교류의 공간인 바로 그 유리창! 유리창!
류리창이란 이름은 원, 명시기를 거쳐 이 지역에서 건축용 유리기와를 만들어 공급해주던 데에서 유래했는데 이때 유리란 지금의 창문 유리… 가 아니라 칠보 유리를 말합니다. 이후 시기 퇴직 관리들이 자신들 소유요의 고서화, 문방구등을 가지고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도서, 서화, 문방구 시장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게다가 건륭제 시기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에 영향을 받아 전국각지의 고서적, 서화, 탁본들이 모이고, 더불어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 근대 문물들도 이 곳에 모이게 됩니다. 그래서 영, 정조 시기 우리나라 학자들이 유리창에서 서책뿐만 아니라 자명종이나 안경 등까지 구경하고 구입하게 되는 거지요.
대로변의 류리창 거리 풍경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또 제가 혼자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저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벌써 흥분해버립니다. 류리창! 류리창! 참으로 흥분해 침 튀기기 딱 좋은 발음입니다. 그러나,,, 실제 제가 걸은 2012년의 류리창 거리는 그냥 인사동 같은 화랑, 기념품점 거리였습니다. 쉬베이홍(徐悲鴻)의 말그림 모작과 짝퉁 문혁시기 포스터에 마오쩌뚱 뱃지가 널린 거리,,, 재건축으로 급조된 청나라 거리에서 저는 북학파 선비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도 학문의 열정으로 달뜬 체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진지앙(晉江)회관을 알려 주시는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교수님
아쉬운 마음에 저는 알아서 구경하라시며 일행을 해산시키시는 김명호 교수님 말씀을 거역하고 스토커처럼 교수님 뒤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럼 그렇지! 류리창 대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향하시던 교수님은 이내 1930년대 저명 작가였던 린하이린(林海音)이 베이징에서 머물렀던 곳인 진지앙(晉江)회관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 중국의 회관이란 이런 거였군요! 저는 루쉰이 베이징에 와서 사오싱(紹興) 회관에 머룰렀다는 것을 책에서 읽고 도대체 회관이 뭔지 궁금했더랬죠.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라는데… 그렇다면 일본 에도시절 한테이(藩邸)와 비슷한 개념인데… 햐, 왜 저는 회관이라니 대규모 고깃집인 성산회관만 떠오르는 걸까요?
하지만 이번 베이징 답사 덕분에 진실로 백문이 불여일견! 저는 류리창 상가보다 이 진지앙 회관이 더 흥미롭습니다. 저런 다세대 주택같은 좁은 사합원에서 중국 근대문학을 이끌어간 수많은 문인들이 얼어서 곱은 손을 차 한잔으로 녹이며 밤새 명문장을 쏟아 내었겠죠. 제 상상력은 백 년을 거슬러 달려갑니다.
류리창 뒷골목 허름한 가판대의 수놓은 비단신
곧이어 루쉰 등이 편찬한 문예간행물을 끼워 신문화운동을 퍼트린 것으로 유명한 신문인 경보(京報)가 발행되었던 경보관도 가 봅니다. 모두 류리창 뒷골목에 있습니다. 이렇게 교수님만 잘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아니 중국근현대의 현장이 나오는군요. 뿐만 아닙니다. 좁은 골목길에 테이블을 놓고 태연히 마작하는 노인들이며 가판대에 놓인 오래된 비단신이며… 심지어 그 악명 높은 칸막이 없는 중국 공공 화장실까지 구경하고나니 이제야 베이징의 거리를 제대로 걸은 느낌이 드는군요. 하하, 오늘도 역시 보람찬 하루.
저녁을 먹은 베이징 가정식 식당 ‘열선’에서. (경엽씨 사진)
저녁은 김명호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는 베이징 가정요리 식당인 ‘열선’에서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중국 요리에 대해 “모든 중국 요리의 맛은 다 한 가지 맛이다, 바로 기름맛!” 이란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광객 상대 식당의 음식맛만 보고 그나라 요리의 맛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이 식당의 요리들을 먹어보고 저는 알게 됩니다. 일행들에게 맛난 음식을 많이 맛보이고 싶어 하시는 정많은 교수님은 계속 유창한 중국어로 끝없이 요리를 주문하시고, 우리는 테이블이 비좁게 밀려드는 요리 접시들을 이중으로 겹쳐 놓고 부지런히 먹습니다. 이렇게 베이징의 둘째날 일정이 끝납니다. 베이징의 밤이 아쉬운 몇몇분은 호텔옆 꼬치집에서 옌징 맥주잔을 들고 뭉치셨다나 뭐라나.
베이징에서 눈 뜨는 첫 아침, 일정표에 따르면 오늘의 일정은 만리장성, 이화원, 원명원 방문입니다. 그러나 답사팀은 이미 어제 버스 안에서 일정표를 과감히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흔한 베이징 패키지 여행으로 가 볼 수 있는 곳 말고, 이번 역사기행이란 주제에 어울리는 곳 위주로만 가기로 말이죠.
구 베이징대학 본관, 일명 홍루.
이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구 베이징 대학이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라 일명 홍루라고 불립니다. 참, 청나라 때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홍루는 중국에서 전혀 이상한 의미가 아닙니다. 1898년에 개교한 베이징 대학은 100년도 넘게 중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재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 이곳 본관인 홍루는 1919년 5.4운동의 발생지이자 중국 신문화운동의 중심지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최초 유포지중의 하나로 현재는 5.4운동 기념관입니다. 이런 설명을 버스 안에서 김명호 교수님께 듣자마자 저는 마구 흥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래된 건물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왜 이리 좋은지요.
베이징 대학을 둘러싼 5.4운동 기념 돌담.
루쉰과 그의 작품 <광인일기>, <공을기>가 보인다.
답사팀은 일단 베이징 대학을 둘러싼 5.4운동 기념 돌담을 둘러 봅니다. 천두슈, 후스, 마오쩌둥 등 쟁쟁한 인물들의 얼굴과 집필 서적을 표현한 조각 조각들을 봅니다. 그리고 홍루 안으로 들어가 베이징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흉상과 집무실, 루쉰(魯迅)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강의실을 둘러 봅니다.
루쉰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교실 (김선생님 사진)
루쉰이 중국문학사를 강의한 강의실에 온 저는 루쉰의 애제자인양 폼잡고 앉아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촌스럽게 여기지 않고 중국어를 전공한 주연씨가 동조해줍니다. 우리는 강의실 뒤의 의자에 앉아 루쉰의 제자였다가 동반자가 된 쉬광핑(許廣平)처럼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칠판을 바라 봅니다. 이순간, 주연씨와 저는 중국근현대 걸출한 문인들의 문기를 다 흡수해 버린 듯 합니다! 하하.
5.4운동 기념관에서 김명호 교수님의 설명하시는 말씀을 듣는 답사팀.
5.4 운동 기념관에서도 김명호 교수님의 말씀을 놓칠세라, 우리는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착한 학생이 되어 다닙니다. 다들 중국 관련 전공자이시거나 필자시거나 아니면 대단한 독서가들이신지라 이분들의 대화만 듣고 다녀도 얼마나 재미나던지요.
혁명의 성지이자 사랑의 성지, 도연정공원
다음 행선지는 도연정공원(陶然亭公園)입니다. 이곳은 중국의 역대 전통 정자들을 모아 재현해 낸 현대식 공원이지만, 중심이 되는 정자는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건립된 도연정입니다. 도연정 근처에는 원나라 때 건설된 유서깊은 사찰인 자비암도 있습니다.
중국 역대 유명 정자들을 모아 재현한 도연정 공원 풍경
하지만 현대 중국인들에게 이런 공원으로서의 가치, 고건축물로서의 가치보다 도연정공원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더 큽니다. 이곳 외진 곳에 위치한 자비암에서 근대의 수많은 애국자와 혁명가들이 모여 비밀리에 혁명활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5.4운동 당시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이 이곳에 모여 3년간 숨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오, 모택동, 주은래 등이 단체 기념 사진을 찍은 커다란 괴목도 있네요? 그런데 김명호 교수님께서 알려 주시는 역사적 현장에서 꼭 재현 사진을 찍으시는 이 분들! 아아, 정말 마음에 듭니다. 세상에 저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곳 도연정 공원은 혁명의 성지이자 사랑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중국 혁명 당시 동지이자 연인으로 지순한 사랑을 나누다가 3년 간격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나란히 묻힌 고군우(高君宇)와 석평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김명호 교수님께 두 혁명가의 짧고 굵은 삶에 대해, 기념관에 전시된 석평매의 불꽃같은 연애편지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입을 딱 벌리고 감탄합니다. 어떻게 이런 명문장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혼란스런 시기에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다 던지는 사랑이 가능할까요? 저는 더 자세한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김명호 교수님께 『중국인 이야기』 2편에 꼭 이들 혁명가 연인의 이야기를 써 주십사하고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어 현재에도 사랑을 시작하는 베이징의 젊은 연인들은 이곳 도연정 공원을 찾아 고군우와 석평매의 무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곤 한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한식 비슷한 명절인 중국의 청명절에는 지금도 그들의 석상 앞에 꽃이 수북히 쌓인다고 합니다. 아, 영원한 사랑만 보장된다면야 서울에서 베이징 정도 쯤이야 남자 뒷덜미 잡아끌고 못 오겠습니까? 저는 잊을까봐 다이어리에 내년 청명절을 미리 표시해두기로 합니다.
도연정 공원 내 위치한 석평매, 고군우 기념 석상
북학파들이 걷던 바로 그곳, 류리창거리
다음 행선지는 그 유명한 류리창(琉璃廠)거리입니다. 역사책에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쟁쟁한 북학파 지식인들이 사신단으로 와서 책을 구하기 위해 꼭 들렸던 바로 그 유리창! 여러 연행록(북경 기행문 장르)에 꼭 등장하는 한중 지식인 교류의 공간인 바로 그 유리창! 유리창!
류리창이란 이름은 원, 명시기를 거쳐 이 지역에서 건축용 유리기와를 만들어 공급해주던 데에서 유래했는데 이때 유리란 지금의 창문 유리… 가 아니라 칠보 유리를 말합니다. 이후 시기 퇴직 관리들이 자신들 소유요의 고서화, 문방구등을 가지고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도서, 서화, 문방구 시장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게다가 건륭제 시기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에 영향을 받아 전국각지의 고서적, 서화, 탁본들이 모이고, 더불어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 근대 문물들도 이 곳에 모이게 됩니다. 그래서 영, 정조 시기 우리나라 학자들이 유리창에서 서책뿐만 아니라 자명종이나 안경 등까지 구경하고 구입하게 되는 거지요.
대로변의 류리창 거리 풍경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또 제가 혼자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저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벌써 흥분해버립니다. 류리창! 류리창! 참으로 흥분해 침 튀기기 딱 좋은 발음입니다. 그러나,,, 실제 제가 걸은 2012년의 류리창 거리는 그냥 인사동 같은 화랑, 기념품점 거리였습니다. 쉬베이홍(徐悲鴻)의 말그림 모작과 짝퉁 문혁시기 포스터에 마오쩌뚱 뱃지가 널린 거리,,, 재건축으로 급조된 청나라 거리에서 저는 북학파 선비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도 학문의 열정으로 달뜬 체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진지앙(晉江)회관을 알려 주시는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교수님
아쉬운 마음에 저는 알아서 구경하라시며 일행을 해산시키시는 김명호 교수님 말씀을 거역하고 스토커처럼 교수님 뒤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럼 그렇지! 류리창 대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향하시던 교수님은 이내 1930년대 저명 작가였던 린하이린(林海音)이 베이징에서 머물렀던 곳인 진지앙(晉江)회관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 중국의 회관이란 이런 거였군요! 저는 루쉰이 베이징에 와서 사오싱(紹興) 회관에 머룰렀다는 것을 책에서 읽고 도대체 회관이 뭔지 궁금했더랬죠.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라는데… 그렇다면 일본 에도시절 한테이(藩邸)와 비슷한 개념인데… 햐, 왜 저는 회관이라니 대규모 고깃집인 성산회관만 떠오르는 걸까요?
하지만 이번 베이징 답사 덕분에 진실로 백문이 불여일견! 저는 류리창 상가보다 이 진지앙 회관이 더 흥미롭습니다. 저런 다세대 주택같은 좁은 사합원에서 중국 근대문학을 이끌어간 수많은 문인들이 얼어서 곱은 손을 차 한잔으로 녹이며 밤새 명문장을 쏟아 내었겠죠. 제 상상력은 백 년을 거슬러 달려갑니다.
류리창 뒷골목 허름한 가판대의 수놓은 비단신
곧이어 루쉰 등이 편찬한 문예간행물을 끼워 신문화운동을 퍼트린 것으로 유명한 신문인 경보(京報)가 발행되었던 경보관도 가 봅니다. 모두 류리창 뒷골목에 있습니다. 이렇게 교수님만 잘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아니 중국근현대의 현장이 나오는군요. 뿐만 아닙니다. 좁은 골목길에 테이블을 놓고 태연히 마작하는 노인들이며 가판대에 놓인 오래된 비단신이며… 심지어 그 악명 높은 칸막이 없는 중국 공공 화장실까지 구경하고나니 이제야 베이징의 거리를 제대로 걸은 느낌이 드는군요. 하하, 오늘도 역시 보람찬 하루.
저녁을 먹은 베이징 가정식 식당 ‘열선’에서. (경엽씨 사진)
저녁은 김명호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는 베이징 가정요리 식당인 ‘열선’에서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중국 요리에 대해 “모든 중국 요리의 맛은 다 한 가지 맛이다, 바로 기름맛!” 이란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광객 상대 식당의 음식맛만 보고 그나라 요리의 맛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이 식당의 요리들을 먹어보고 저는 알게 됩니다. 일행들에게 맛난 음식을 많이 맛보이고 싶어 하시는 정많은 교수님은 계속 유창한 중국어로 끝없이 요리를 주문하시고, 우리는 테이블이 비좁게 밀려드는 요리 접시들을 이중으로 겹쳐 놓고 부지런히 먹습니다. 이렇게 베이징의 둘째날 일정이 끝납니다. 베이징의 밤이 아쉬운 몇몇분은 호텔옆 꼬치집에서 옌징 맥주잔을 들고 뭉치셨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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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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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0wow
2012.09.30
엔냥
2012.09.24
노라미미
2012.09.21
마지막 사진을 보니 크흐~~ 군침이 질질질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