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내가 열렬히 아끼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내일의 죠>
뒤돌아 손 뻗으면 바로 닿을 것 같지만 어느덧 한참을 지나버린 90년대. 20년 전에 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이미 소화가 되어 몸속의 세포로 바뀐 그 시절의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내니 감동을 받았던 만화의 두 장면이 떠오릅니다…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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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90년대란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표현되는 시기입니다. 1990년을 고등학교 1학년으로 맞이하고 90년대 내내 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학생’이라는 면죄부를 붙이고 다녔는데요. 이 면죄부는 무척 강력해서 만취상태로 전봇대를 부여잡고 토사물로 빈대떡을 여러 개 부쳐도 용서가 되고, 새벽 4시까지 PC방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괴물들을 몽둥이로 피떡이 되도록 때려잡아도 그다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환상적인 면죄부를 좀 제대로 사용해보고 싶어도 큰 제한조건이 있었죠. 토사물로 빈대떡을 부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고 PC방에서 인류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어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제길. 호주머니가 얇아 면죄부를 활용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데에 제약을 받던 저에게 다행히도 돈 안 들이고 행복한 시간을 제공해 준 공간이 있었는데요. 바로 서울 금천구 시흥동 은행나무사거리 근처의 까치만화방입니다. 4,000원만 내면 하루 종일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까치만화방에서 필자는 소심하게도 4,000원으로 최대의 행복을 뽑겠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본전을 뽑았지요. 이 공간을 거친 소년은 청년이 되고 중년은 노년이 되었건만 종일제 4,000원은 여전합니다. 이미 백발이 성성해진 주인 내외는 도대체 뭘 먹고 사시는지. 인생이 항상 그렇듯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까치만화방 4,000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뒤돌아 손 뻗으면 바로 닿을 것 같지만 어느덧 한참을 지나버린 90년대. 20년 전에 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이미 소화가 되어 몸속의 세포로 바뀐 그 시절의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내니 감동을 받았던 만화의 두 장면이 떠오릅니다.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총 39화의 장편이라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특히 19화 <네모의 친구> 편에서 봤던 감동적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오랜만에 집 한구석에 먼지가 쌓여있는 나디아 정품 DVD를 꺼내 대사를 옮겨봅니다.
네모선장 : 쟝! 이곳이 남극점이다. 쟝 : 네? 이곳이요? 네모선장 : 그래. 쟝 : 해냈어! 굉장해! 내가 드디어 남극점에 왔어! 감격했어! 나디아 : 그렇지만 네모선장님이 데려다 주신 거잖아. 쟝 : 그렇지… 내 힘으로 온 건 아니야. 네모선장 : 그래. 노틸러스호와 고대 아틀란티스의 초과학 덕분에 지금 우리들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인류는 아직 우리들밖에 없다. 허나 20세기가 되면 혹독한 대자연의 시련을 극복하고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것이다. 난 그런 인간의 힘을 믿고 싶다. 쟝 : 이건? 네모선장 : 오로라다. 쟝 : 이게요? 나디아 : 아름답다. 네모선장 :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태양에서 온 전자와 양자가 지구 대기에 충돌할 때 생기는 발광현상이라고 하지. 그러나 그런 이론 따위로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설명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디아 : (눈물… 설마…?) | ||
전체 이야기의 흐름에서 하나의 장면을 떼서 옮기는 것만으로는 지금 제가 느끼는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1화부터 18화까지 꾸준히 달려야만 19화의 감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 이 장면에서 왜 그렇게 제 눈에 나트륨 성분이 섞인 물이 맺히던지… 오랜만에 짬을 내 39화 정주행을 해봐야 겠습니다그려.
# 내일의 죠
“껍데기만 타다가 꺼져버리는 것처럼 어설픈 젊음을 보내고 싶진 않아. 비록 한 순간일지언정 눈부실 정도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거야. 그러다 결국엔 하얀 잿가루만 남게 되겠지.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땐 남는 건 새하얀 잿가루 뿐이야. 그래. 최후의 순간까지 다 불태워 버리겠어! 아무런 후회도 없이 말이야!…”
여타 만화와는 다르게 당시 최고의 로커였던 김종서가 부른 오프닝 노래도 그야말로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것 아닙니까?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가사 외우는 노래가 없어 애국가까지 불렀던 굴욕 사나이 임승수는 ‘이름도 묻지마라 고향도 묻지마라 싸움과 눈물로 얼룩진 내 인생…’ 으로 시작하는 가사를 달달 외워서 술자리에서 멋들어지게 부르고 박수까지 받았습니다.
<내일의 죠>는 일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대학생 운동서클인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赤軍派)의 간부 다미야 다카마로(田宮高磨)를 포함한 9명의 적군(赤軍)병사들은 전 일본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요도호 하이재킹(공중납치) 사건을 일으킵니다. 하네다발 후쿠오카행 보잉기 ‘요도호’는 적군(赤軍)병사들을 태우고 이다스키 공항, 김포공항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게 됩니다(승객 전원을 석방함). 북한은 이들의 비행기 납치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요도호 납치의 총책임자였던 다미야 다카마로는 1970년 3월 당시, 거사(?)를 위해 일본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일의 죠>의 배경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빈민가와 소년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 야부키 죠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에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문제아 중의 문제아죠. 동네 길바닥에서 싸움질하기 일쑤이며 태연하게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빈민가에서 만난 왕년의 권투선수 출신 단뻬이와 소년원의 리키이시를 통해 권투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빈민가의 모습들은 분명 그 당시의 만화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죠. 이러한 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을 꿈꾸는 당시 일본 운동권 학생들의 이념적 성향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계급적 지향의 동일성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쓰러져도 쓰러져도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야부키 죠의 모습이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무차별적 가격에 피투성이가 되어 다운을 당해도 카운트 나인이 되면 무엇에 홀린 듯 다시 일어나 상대에게 전진하는 야부키 죠. 그리고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노가드(No Guard) 상태로 맞받아치는 크로스 카운터(Cross Counter)는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습니다.
요즘 청년학생들이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힘들다는 말이 많습니다. 저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상황이 무척 힘겹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식이 부족해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 문제를 풀 시도를 못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 젊은 세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내일의 죠>같은 만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쓴 임승수님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반도체 소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공부가 필요 없게 되었다. 세상이 올바르게 바뀌지 않으면 공학도로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진로를 확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경제에 문외한인 보통사람들과 함께 『자본론』을 공부하고 강연했던 저자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알기 쉽게 풀어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대표작이며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우고 차베스 대통령 연구서인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등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나는 지금 싸이질로 세상을 바꾼다』『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등의 책을 통해 세상에는 더 많은 다양함과 더 새로운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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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id
2013.02.10
나미비아 사막에 사는 동물들의 친구 여자아이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제목은 몰라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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