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드라마 <모래시계> 보니 한국이 너무 그립더라

모래시계, 진공 속의 순정한 청춘
그 순수했던 청춘의 시간을 진공처럼, 모래시계 속에 가둘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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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태수와 우석, 혜린과 재희.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가슴을 후벼 팠다. 이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역사의 거친 굴곡과 맞물리며 내가 숨쉬고 있던 90년대의 현재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지나온 한국 사회의 70년대와 80년대가, 1980년의 광주가 그리고 그 안에서도 힘겹고 애틋하게 보냈던 청춘의 모습이 오롯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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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20세기의 마지막 연대인 대한한국의 1990년대는 잃어버린 시간이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나는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게 재방송도 안 되고 편집도 안 되니, 그 시간은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시간이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몸은 다른 나라에 있어도 정신만은 대한민국의 문화를 거의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몸뿐 아니라 정신도 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화로부터 격리, 차단되어 약간 과장하면 마치 감옥이나 무인도에 사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90년대를 건너뛰고 돌아와 2000년대를 시작해야했던 나는 ‘간첩’이나 특사로 풀려난 무기수 같은 심정으로 한동안 살 수밖에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몰랐고 김광석을 몰랐으며 한국의 대중문화에 무지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90년대는 채울 수 없는 나만의 ‘간극’이자 ‘결핍’이고 ‘그리움’이다.

그래도 그런 사막 같은 90년대의 시간 속에서 내게 오아시스처럼 강렬하게 각인된 그 무엇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90년대의 한국 드라마였다. 위성방송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한국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준 건 비디오테이프였다. 한국서점도 없었던 파리에 주재원들의 가족들이 돌려보던 그 비디오테이프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한국슈퍼 같은 곳에서 빌려주지 않았나 싶다. 어느 상사의 간부 부인이던 내 대학동창이 빌려보던 것을 마감 전에 살짝 빌려주어 이틀 날밤을 새며 보았다.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드라마는 딱 두 편이었는데 <사랑이 뭐길래>와 <모래시계>였다. 지금 생각해도 절묘하게 90년대를 대표하는 드라마였다고 생각된다. 1991년에 우리 부부는 어린 딸을 친정에 몇 달 맡기고 유학을 떠나왔다. 그해 겨울에 딸을 데려다주러 부모님이 오셨을 때, 부모님은 <사랑이 뭐길래>를 보지 못하는 것에 무척 섭섭해 하셨다. 드라마하고는 거리가 먼 아버지도 시차를 계산하며 지금쯤 서울에서는 <사랑이 뭐길래>를 할 시간인데, 라며 입맛을 다시는 거였다. ‘도대체 그 놈의 <사랑이 뭐길래>가 뭐길래......?’ 나 또한 입맛을 다시며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그 드라마를 볼 방법이 당시엔 없었다. 그 유명한 드라마를 보게 된 건 그 후 몇 년이 지나서였다.

1994년에 둘째 아이를 해산하고 산구완을 하러 오신 어머니가 너무 무료할까봐 걱정했는데 마침 친구가 <사랑이 뭐길래>라는 아주 귀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고 했다. 단, 딱 이틀만 보고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산모인 나는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수십 개의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다. 산모인 내 건강을 생각해서 어머니가 말리셨지만 나는 미역국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대발이네 가족의 재미난 일상에 빠져들었다. 드라마라는 게 아예 없는 프랑스 TV를 보다가 그걸 보니 마약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사랑이 뭐길래>가 구멍 난 내 90년대의 한국적 삶을 짜깁기 해준 천이었다면 그 후에 보게 된 <모래시계>는 거의 장기 이식수술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1995년도에 그 드라마가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비디오테이프로 본 것은 1997년이나 1998년쯤이 아니었을까? 총 24부작인 이 드라마도 이틀에 다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남편과 나는 낮이나 밤이나 두문불출 여섯 끼를 바게트만 뜯어 먹으며 쉼 없이 드라마를 보았다. 딱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며 청춘을 보냈던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주인공 태수와 우석, 혜린과 재희.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가슴을 후벼 팠다. 이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역사의 거친 굴곡과 맞물리며 내가 숨쉬고 있던 90년대의 현재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지나온 한국 사회의 70년대와 80년대가, 1980년의 광주가 그리고 그 안에서도 힘겹고 애틋하게 보냈던 청춘의 모습이 오롯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쩌면 그 시공간을 훌쩍 떠나와 1990년대의 파리에 몸을 담고 있는 혜린이 또래의 젊은 여자인 나. 이곳의 30대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 물음을 계속 물으며 나는 내가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음을, 어쩌면 그 시간을 영원히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숨죽여 참았다. 그 시절의 젊은 우리는 아무리 가난하고 억압되었지만 순수한 자존감과 낭만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뢰만큼은 은장도처럼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석의 우정이 혜린의 정의감이 태수의 분노가 재희의 순수한 사랑이 모두 가슴 절절했다. 가끔 가슴이 울컥해서 남편 몰래 눈을 끔뻑이다 보면 남편도 머쓱하게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지나간 내 청춘을 떠올렸다. 유언비어만 난무하던 80년 서울의 봄. 서로 남몰래 풋사랑을 키워오던 친구가 제적당하고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었다. 그 이후 한참을 에둘러가게 된 그의 인생길. 여고 때 절친이었던 친구의 위장취업으로 이어진 행방불명.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던 직후, 진실을 전혀 알지 못하던 상황에서 엠티갔다가 친구들과 군부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일. 아카시아 향기 짙던 그 하룻밤의 기억도 어김없이 떠올랐다. 무서운 시절이었고 흉흉한 소문만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소문대로 대검으로 신체 어느 부위가 도려지거나 고문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으로 공황상태로 맞이했던 그 밤이 떠올랐다.

30대를 보냈던 파리에서 지나간 드라마였던 <모래시계>를 보면서 나는 너무나 한국이 그리워 목이 메었다. 역설적이게도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의 거친 질곡을 헤쳐나가는 내 조국이, 그리고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나와 피를 나눈 사람들이 더욱 더 장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한국에 있었으면 인기있는 드라마의 하나로만 자리매김했을 그 드라마가 1990년대 한국문화의 불모지인 파리에서 내게는 내 인생의 이정표로 우뚝 서있는 느낌이다.

1990년대에 파리에 있던 내게 198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향해 가리키고 있는 그 이정표는 한국사회와 내 인생을 아주 객관적인 거리감을 갖고 바라보게 했다. 나는 어디에 살든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내 인생의 아주 사소한 것들도 모두 그 땅에서 기인한다는 의식이고 당연한 납득이었다. 드라마를 통해서 내가 거쳐 온 한국 현대사회에서의 내 젊음의 의미를,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방황하던 내 청춘의 시간을 썪지 않게 박제로 고스란히 가슴에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 후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냉정하게 흘렀고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청춘들이었던 우리들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사회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주축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웬만한 게 다 용서가 되고 적당한 타협으로 상처도 그리 받지 않는 유들유들한 인생들을 살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디가드 재희의 죽음과 폼생폼사 태수의 죽음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파리에서 드라마를 본 지인들에게 이정재와 최민수의 그 죽음이 많이 회자되었고 나는 이정재라는 배우에게 새로운 눈을 떴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드라마 OST곡인 ‘백학(白鶴)’. 도입부인 허밍부분부터 벌써 가슴이 저려오는 곡이다. 체첸공화국의 음유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나는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잠시 고향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한듯 하여.......” 나는 오랫동안 그 음악을 들으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꼈다.

죽음만이 청춘의 영원한 방부제고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변하기 마련일지 모른다.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한다라는 전제와 진리를 피해갈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 순수했던 청춘의 시간을 진공처럼, 모래시계 속에 가둘 수만 있다면!





이 글을 쓴 권지예 소설가는…


1960년 경주 출생. 향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학령기에 서울에 정착.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문단에 데뷔, 귀국 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뱀장어 스튜」로 2002년 26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퍼즐』,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반 고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1, 2』, 『붉은 비단보』,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홀릭』등이 있다. 최근에 장편소설 『유혹』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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