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에 대한 탐닉 - 넬, 니키 미나즈, SAZA최우준
국내에서 ‘우울한 음악을 하는 밴드’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앞서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넬이지요. 4월은 그들의 신보 소식이 음악 팬들을 설레게 한 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돌아왔는지, 이들의 다섯 번째 정규작품 < Slip Away >를 소개합니다.
201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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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우울한 음악을 하는 밴드’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앞서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넬이지요. 4월은 그들의 신보 소식이 음악 팬들을 설레게 한 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돌아왔는지, 이들의 다섯 번째 정규작품 < Slip Away >를 소개합니다. 팝계에 떠오르고 있는 여걸 니키 미나즈의 신보와 정통파 블루스 뮤지션 SAZA최우준의 앨범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넬(Nell) < Slip Away >
넬의 신보 발매 날. 오프라인 세상은 사소하지만 이례적인 조짐들이 나타났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넬’이라는 한 글자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아이돌 음악으로 도배를 했던 음원차트도 (단 며칠간이지만) 밴드의 노래가 칠해져 있었다. 4년만의 ‘컴백’은 비록 빅뱅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흥분과 고무가 교차하는 사건이었다.
단시간에 결판나는 이 바닥의 야박한 기준에 비춰보면, 넬의 음반은 (일단 현재까지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타이틀 「그리고, 남겨진 것들」도 한 몫 거드는 듯하다. 「기억을 걷는 시간」, 「멀어지다」와 같이 확장되며 폭발력을 가지기 보다는 무심히 중얼거리다 슬며시 끝나버린다. 이는 오랜 기대감에 공허함과 답답함마저 덧씌운다. 아마도 「Cliff Parade」의 ‘엇갈리고 뒤엉켰지’라는 가사가 ‘넬의 연관검색어’로 따라다니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5집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의 설득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넬의 저력은 맴맴 거리는 ‘후렴’이나 얄팍한 감성 자극이 아니라 ‘멜로디’에 존재한다. 그 주요 기반이 약해지자 형식미도 함께 흔들린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가사 또한 빛을 바래 보인다. ‘초록 비가 내리고 파란 달이 빛나던(백색왜성),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꿈을 꾸는(치유)’ 넬 세계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다. ‘짓궂은 기대로 애꿎은 원망만 늘어가(The Ending)’라는 현실성 짙은 가사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이 다량의 영어 가사는 음악의 상징성과 신비로움을 퇴색시킨다.
여기서 잠시 서서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를 꺼내든다. 전작들을 살짝 내려놓고 보면 < Slip Away >는 완성도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다. 어찌 보면 뮤지션 입장에서는 날선 의견에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비판은 그들의 특수한 위치에서 기인된다. 알다시피, 넬은 대중과 타협 없이 주류 무대에 설 수 있는 손에 꼽히는 ‘록’밴드다. 화살은 언제나 높은 과녁을 향하는 법이다.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음표는 고급스럽고 찬란하게 발광(發光)한다. 특히 진보적인 걸음을 보여주는 곡은 「Beautiful Stranger」다. 록의 기본에 충실한 보컬은 김종완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흐느끼며 애원하는 대신 낮게 깔다가 치고 올라가며 소리감각을 요동치게 만든다. 「Hopeless Valentine」의 청아한 기타와 치솟는 리프도 전작들의 ‘장점’만을 모아 극대화시켰다. 「Standing in the rain」에서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리듬박수와 가스펠을 연상케 하는 합창으로 장르의 틀을 벌린다.
최근 굵직한 궤적을 남겼던 밴드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새로운 결심과 스타일로 완전히 변신한 그룹도 있고, 전작의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팀도 있다. (다음 문장으로 넘기기 전에 밝혀두자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러다를 논하는 것은 의미도, 재미도 없는 짓이다.) 넬은 그 후자다. 절대적인 ‘시간’의 독재 속에서도 ‘존재감’과 ‘정체성’을 꼿꼿이 쥐고 있는 이들을 확인하니, 안도감이 앞선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넬은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이름 위에 올려져있는 중압감은 이들이 달게 받아야 할 ‘황홀한 차별’이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 < Pink Friday: Roman Reloaded >
2012년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팝계에서는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가수 경력 29년의 관록을 자랑하는 마돈나(Madonna)가 12번째 정규앨범 < MDNA >를 발표하며 녹록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고, 니키 미나즈 역시 < Pink Friday: Roman Reloaded >를 내놓으며 팝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팝 마니아들에게 있어서 두 여걸들의 귀환은 모두 환영받을 이벤트였지만 넓게 보면 여성 뮤지션의 세대교체를 운운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돈나의 새 앨범은 전작 < Hard Candy >에 이어 젊은 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사운드를 일관되게 주조하려 힘썼다. 판매량 집계 순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58년생 개띠’ 뮤지션이 자식뻘 되는 젊은 층의 몸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타이밍의 문제였을까. 마돈나와 니키 미나즈의 새 앨범을 정면으로 비교했을 때 1982년 뉴욕 퀸스 태생의 비치(Bitch)가 묘한 매력으로 승기를 잡는 분위기다.
니키 미나즈는 2년 만에 돌아온 새 앨범에서 훨씬 영악해진 면모를 과시한다. 사실상 앨범의 구조는 프로듀서 레드원(RedOne)이 손을 댄 「Starship」을 전후로 해 상하권으로 나눠진다. 전자가 믹스 테이프 시절부터 갈고닦은 날것의 여장부 이미지를 투하한다면, 후자는 핀업 걸처럼 대중 친화적인 의도를 내포한 채 세련되고 정제한 댄스팝 사운드로 치장하며 리스너를 유인한다.
어중간한 완충지대는 없다. 양면적인 구성 속에 그녀의 능동적인 여성상이 강조됐을 뿐이다. 오히려 속편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전작이 데뷔 앨범의 성공을 위해 광범위한 소비자층을 포섭하기 위해 애썼다면 두 번째 앨범은 배짱 좋게 취향에 따라 골라 들으라는 자신감의 반영이다. 힙합 본연의 래퍼로서는 나스(Nas), 릭 로스(Rick Ross), 릴 웨인(Lil' Wayne) 등의 거물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해당 수요층을 만족시켜주면서, 유로 댄스 비트와 감각적인 멜로디 운용이 빛을 발하는 후반부에는 트렌드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댄스홀을 지휘한다. 뿐만 아니라 「Young forever」, 「Marilyn Monroe」 같은 사례에서도 증명하듯 스스로 알앤비 싱어로서의 자질을 모색했다.
스웨덴에서 역량을 키운 나머지 유로 댄스의 그림자가 다분한 레드원과 니키 미나즈의 궁합은 고풍스러운 감흥을 줄 수는 없을지언정 대중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돌직구를 던지는 데 성공한다. 뭔가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해 급격하게 차트 성적이 추락하고 있는 마돈나의 추세와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니키 미나즈는 미디어 앞에서 힙합 여전사로 호명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풀린 가슴을 강조한 미니 드레스를 즐겨 입으며 분홍색을 비롯한 파스텔 색채로 자신을 부각시킨다. 바비인형의 19세 버전이다. 두 앨범만으로 그는 이미지 각인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더 나아가 팝계의 중심부로 진입하기 일보직전이다. 얼빠진 남성들이 가슴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녀는 빌보드를 마음껏 주무르는 큰 손이 되어있었다.
SAZA최우준 < SAZA's Blues >
사전정보 없이 음악을 접했을 때, 그의 본가가 국내 굴지의 재즈밴드 윈터플레이라는 사실을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다. 앨범에는 그저 블루스 맨 최우준만이 존재할 뿐, 모(母)그룹에서 보여주던 재즈 기타리스트의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단순한 ‘재즈 기타리스트’로 정의될 수는 없는 뮤지션이었던 셈이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 SAZA's Blues >는 분명 그룹 활동 동안 그가 쌓아왔던 음악적 욕구를 발현시킨 결과물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솔로앨범에서의 그는 시쳇말로 ‘미친 존재감(!)’이다. 연주로 빛나야 할 때는 찐득하면서도 그루브감 넘치는 기타 플레이로 빛을 발하고, 목소리를 앞세워야할 때는 남정네향취 물씬 풍기는 마초 보이스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악기는 물론 목소리 또한 자기만의 톤을 갖고 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이미 고수의 반열에 그를 추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앨범은 세 가지 면에서 분명한 특성을 드러낸다. 첫 번째는 통상적인 주제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보인다는 점으로, 개성적인 그만의 접근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자동차 조수석을 통해 떠난 연인을 회상해내는 「Autumn blues」와 A형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남자A」가 그런 면모를 잘 나타내는 곡들.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남다른 시선을 부여해 상투성을 피했다.
다음으로는 흥미롭고 실험적인 언어적 접근을 꾀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와 술어를 반대로 이야기하며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Foolish morning」도 신선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바삐 오가며 한 편의 언어유희를 들려주는 「Blue gonna blue」는 그야말로 참신함의 끝을 보여준다. 재즈평론가이며 저술가로도 유명한 남무성 작가의 뮤직비디오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길 거리.
마지막은 기타를 들고 있는 커버사진이 설명하듯, 연주자 중심의 면모다. 이 부분은 라이브감 넘치는 「SAZA's boogie」와 앞서 언급했던 「Blue gonna blue」, 그리고 고전적인 블루스 코드워크를 흥겹게 풀어낸 「Nalli blues」가 대표하는 블루지한 록 사운드와, 「어쩌란 말입니까」, 「후회」에서 들려주는 원형에 가까운 옛 블루스 사운드를 모두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약하지 않다는 점은 그의 음악을, 더 나아가 그 자체를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재즈와 블루스가 같은 대륙에서 같은 피부색으로 잉태되었다고는 해도 특질은 완전히 다르게 굳어진 ‘멀고도 가까운’ 형제지간의 음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들이 현대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악들이라는 것은 그간의 역사가 방증하는 부분이다. 두 음악에 모두 능할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서구로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의 핵심을 모두 알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우준은 흔치 않은, 아니.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것은 그저 ‘블루스에 대한 시도’와 같은 흉내내기의 블루스가 아니라는 것. 말 그대로, 어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진짜배기 ‘블루스’라는 것이다. 흑인음악 본연의 ‘낙천적 우울’이 그의 기타가 전하는 섬세한 떨림들 사이에서 꿈틀댄다. 자칫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은 앨범이다.
넬(Nell) < Slip Away >
넬의 신보 발매 날. 오프라인 세상은 사소하지만 이례적인 조짐들이 나타났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넬’이라는 한 글자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아이돌 음악으로 도배를 했던 음원차트도 (단 며칠간이지만) 밴드의 노래가 칠해져 있었다. 4년만의 ‘컴백’은 비록 빅뱅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흥분과 고무가 교차하는 사건이었다.
5집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의 설득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넬의 저력은 맴맴 거리는 ‘후렴’이나 얄팍한 감성 자극이 아니라 ‘멜로디’에 존재한다. 그 주요 기반이 약해지자 형식미도 함께 흔들린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가사 또한 빛을 바래 보인다. ‘초록 비가 내리고 파란 달이 빛나던(백색왜성),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꿈을 꾸는(치유)’ 넬 세계가 붕괴되어 가는 것이다. ‘짓궂은 기대로 애꿎은 원망만 늘어가(The Ending)’라는 현실성 짙은 가사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이 다량의 영어 가사는 음악의 상징성과 신비로움을 퇴색시킨다.
여기서 잠시 서서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를 꺼내든다. 전작들을 살짝 내려놓고 보면 < Slip Away >는 완성도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다. 어찌 보면 뮤지션 입장에서는 날선 의견에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비판은 그들의 특수한 위치에서 기인된다. 알다시피, 넬은 대중과 타협 없이 주류 무대에 설 수 있는 손에 꼽히는 ‘록’밴드다. 화살은 언제나 높은 과녁을 향하는 법이다.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음표는 고급스럽고 찬란하게 발광(發光)한다. 특히 진보적인 걸음을 보여주는 곡은 「Beautiful Stranger」다. 록의 기본에 충실한 보컬은 김종완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흐느끼며 애원하는 대신 낮게 깔다가 치고 올라가며 소리감각을 요동치게 만든다. 「Hopeless Valentine」의 청아한 기타와 치솟는 리프도 전작들의 ‘장점’만을 모아 극대화시켰다. 「Standing in the rain」에서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리듬박수와 가스펠을 연상케 하는 합창으로 장르의 틀을 벌린다.
최근 굵직한 궤적을 남겼던 밴드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새로운 결심과 스타일로 완전히 변신한 그룹도 있고, 전작의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팀도 있다. (다음 문장으로 넘기기 전에 밝혀두자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러다를 논하는 것은 의미도, 재미도 없는 짓이다.) 넬은 그 후자다. 절대적인 ‘시간’의 독재 속에서도 ‘존재감’과 ‘정체성’을 꼿꼿이 쥐고 있는 이들을 확인하니, 안도감이 앞선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넬은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이름 위에 올려져있는 중압감은 이들이 달게 받아야 할 ‘황홀한 차별’이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니키 미나즈(Nicki Minaj) < Pink Friday: Roman Reloaded >
2012년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팝계에서는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가수 경력 29년의 관록을 자랑하는 마돈나(Madonna)가 12번째 정규앨범 < MDNA >를 발표하며 녹록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고, 니키 미나즈 역시 < Pink Friday: Roman Reloaded >를 내놓으며 팝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팝 마니아들에게 있어서 두 여걸들의 귀환은 모두 환영받을 이벤트였지만 넓게 보면 여성 뮤지션의 세대교체를 운운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돈나의 새 앨범은 전작 < Hard Candy >에 이어 젊은 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사운드를 일관되게 주조하려 힘썼다. 판매량 집계 순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58년생 개띠’ 뮤지션이 자식뻘 되는 젊은 층의 몸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타이밍의 문제였을까. 마돈나와 니키 미나즈의 새 앨범을 정면으로 비교했을 때 1982년 뉴욕 퀸스 태생의 비치(Bitch)가 묘한 매력으로 승기를 잡는 분위기다.
어중간한 완충지대는 없다. 양면적인 구성 속에 그녀의 능동적인 여성상이 강조됐을 뿐이다. 오히려 속편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전작이 데뷔 앨범의 성공을 위해 광범위한 소비자층을 포섭하기 위해 애썼다면 두 번째 앨범은 배짱 좋게 취향에 따라 골라 들으라는 자신감의 반영이다. 힙합 본연의 래퍼로서는 나스(Nas), 릭 로스(Rick Ross), 릴 웨인(Lil' Wayne) 등의 거물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해당 수요층을 만족시켜주면서, 유로 댄스 비트와 감각적인 멜로디 운용이 빛을 발하는 후반부에는 트렌드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댄스홀을 지휘한다. 뿐만 아니라 「Young forever」, 「Marilyn Monroe」 같은 사례에서도 증명하듯 스스로 알앤비 싱어로서의 자질을 모색했다.
스웨덴에서 역량을 키운 나머지 유로 댄스의 그림자가 다분한 레드원과 니키 미나즈의 궁합은 고풍스러운 감흥을 줄 수는 없을지언정 대중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돌직구를 던지는 데 성공한다. 뭔가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해 급격하게 차트 성적이 추락하고 있는 마돈나의 추세와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니키 미나즈는 미디어 앞에서 힙합 여전사로 호명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풀린 가슴을 강조한 미니 드레스를 즐겨 입으며 분홍색을 비롯한 파스텔 색채로 자신을 부각시킨다. 바비인형의 19세 버전이다. 두 앨범만으로 그는 이미지 각인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더 나아가 팝계의 중심부로 진입하기 일보직전이다. 얼빠진 남성들이 가슴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녀는 빌보드를 마음껏 주무르는 큰 손이 되어있었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SAZA최우준 < SAZA's Blues >
사전정보 없이 음악을 접했을 때, 그의 본가가 국내 굴지의 재즈밴드 윈터플레이라는 사실을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다. 앨범에는 그저 블루스 맨 최우준만이 존재할 뿐, 모(母)그룹에서 보여주던 재즈 기타리스트의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단순한 ‘재즈 기타리스트’로 정의될 수는 없는 뮤지션이었던 셈이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 SAZA's Blues >는 분명 그룹 활동 동안 그가 쌓아왔던 음악적 욕구를 발현시킨 결과물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솔로앨범에서의 그는 시쳇말로 ‘미친 존재감(!)’이다. 연주로 빛나야 할 때는 찐득하면서도 그루브감 넘치는 기타 플레이로 빛을 발하고, 목소리를 앞세워야할 때는 남정네향취 물씬 풍기는 마초 보이스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악기는 물론 목소리 또한 자기만의 톤을 갖고 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이미 고수의 반열에 그를 추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음으로는 흥미롭고 실험적인 언어적 접근을 꾀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와 술어를 반대로 이야기하며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Foolish morning」도 신선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바삐 오가며 한 편의 언어유희를 들려주는 「Blue gonna blue」는 그야말로 참신함의 끝을 보여준다. 재즈평론가이며 저술가로도 유명한 남무성 작가의 뮤직비디오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길 거리.
마지막은 기타를 들고 있는 커버사진이 설명하듯, 연주자 중심의 면모다. 이 부분은 라이브감 넘치는 「SAZA's boogie」와 앞서 언급했던 「Blue gonna blue」, 그리고 고전적인 블루스 코드워크를 흥겹게 풀어낸 「Nalli blues」가 대표하는 블루지한 록 사운드와, 「어쩌란 말입니까」, 「후회」에서 들려주는 원형에 가까운 옛 블루스 사운드를 모두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약하지 않다는 점은 그의 음악을, 더 나아가 그 자체를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재즈와 블루스가 같은 대륙에서 같은 피부색으로 잉태되었다고는 해도 특질은 완전히 다르게 굳어진 ‘멀고도 가까운’ 형제지간의 음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들이 현대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악들이라는 것은 그간의 역사가 방증하는 부분이다. 두 음악에 모두 능할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서구로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의 핵심을 모두 알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우준은 흔치 않은, 아니.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것은 그저 ‘블루스에 대한 시도’와 같은 흉내내기의 블루스가 아니라는 것. 말 그대로, 어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진짜배기 ‘블루스’라는 것이다. 흑인음악 본연의 ‘낙천적 우울’이 그의 기타가 전하는 섬세한 떨림들 사이에서 꿈틀댄다. 자칫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은 앨범이다.
글 / 여인협 (lunariani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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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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