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2025와 국내 유망 작가들의 진출
프리즈 서울 2024에 참가한 갤러리 페로탕.
사진 제공: 프리즈 및 Lets Studio.
프리즈 서울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미술 시장 전반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나흘간 7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거래 규모는 예년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마크 브래드포드, 게오르그 바젤리츠, 조지 콘도, 루이즈 부르주아 같은 스타 작가의 수십억 원대 거래가 이어졌고 현장은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올해 프리즈 서울을 특징짓는 변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해외 갤러리의 일부 불참과 초고가 마스터피스의 축소,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메운 국내 갤러리들의 약진이었다.
프리즈 서울의 첫 회였던 2022년은 달랐다. 마티스, 몬드리안, 피카소, 워홀 등 이름만으로도 압도적인 마스터피스들이 운송되었고, 글로벌 갤러리들이 점령하듯 참여했다. 당시 프리즈는 해외 컬렉터와 갤러리를 위한 쇼케이스 같았고, 국내 갤러리는 주변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와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유럽과 미국 갤러리의 참여 규모가 줄었고, 그 공백을 국내 갤러리들이 메우게 된 것이다. 프리즈 본전에만 약 30여 개 한국 갤러리가 참여했는데, 이는 역대 최다 규모다. 시장은 위축됐으나 역설적으로 국내 작가들에게는 프리즈의 본 무대에 서는 기회가 더 열렸던 셈이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제도권 진입의 한계를 실감한 2010년대의 청년 작가들은 주택이나 작업실을 개조한 ‘신생공간’을 직접 만들고, 작은 미술품을 내놓는 ‘굿즈’ 시장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유니온 아트페어 같은 신생 미술장터가 주목받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화랑의 개입 없이 운영사가 중개하는 방식으로 작가들의 작품이 틈새시장에 소개되었다. 이후 정부도 미술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작가 미술장터 개설을 직접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프리즈 서울 2025 갤러리조선 부스.
사진 촬영 : 오정은
2020년대에 들어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내 유망 작가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신민, 람한, 오묘초, 이목하, 전현선 같은 이들은 아트바젤에서 지명되며 이름을 알렸다. 프리즈는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를 통해 우한나, 최고은, 임영주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명예를 부여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이름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이미래(스푸루스 마거스), 정희민(타데우스 로팍), 양유연(블라인드스팟), 김민희(카이카이키키), 장파(국제갤러리), 돈선필·옥승철·요한한(아라리오갤러리), 배헤윰·이재석(갤러리바톤), 우민정·최수련(갤러리조선), 김지영·안태원·유예림(P21), 이목하·한지형(제이슨함), 권세진·김수연·이해강·전현선(갤러리2), 문이삭·우한나·최윤희(지갤러리), 양승원(갤러리 플래닛), 권현빈·박민하·현남(휘슬), 김서울·김진희·박신영·최지원(디스위켄드룸), 임선구(드로잉룸), 정유진(상히읗) 등이 그 예다.
그중 돈선필은 미술시장의 격차를 몸소 경험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2015년 신진작가들의 연합으로 마련된 ‘굿-즈’ 기획에 참여했다. ‘굿-즈’는 작업의 파생물과 소량 제작된 에디션을 판매하는 실험적 장터이자, 신생공간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새로운 활동 반경을 모색한 자리였다. 그는 동료들과 ‘취미가’라는 이름의 굿즈 편집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라리오갤러리 라인업으로 프리즈에 진출하고 있다.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 안에 ‘대안적 장터’와 ‘메가 페어’를 모두 거친 경력은 우리 미술계의 격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리즈 서울 2025 국제갤러리 부스.
사진 촬영 :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프리즈 서울의 무대는 단순한 쇼케이스를 넘어, 다음 세대 작가들의 실질적 진출 경로로 자리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국제 무대와 연결된 작가들의 등장은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상으로 만들어간다. 한편,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플랫폼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더 프리뷰, 아트 OnO, 어반브레이크, 연희아트페어, 브리즈 아트페어 같은 중소형 아트페어는 시장의 다양성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중저가 작품을 중심으로, MZ세대 관람객의 취향에 호응하며 컬렉터 유입의 문턱을 낮춘다. 아트경기, 아트광주, 부천아트페어, 아트프리즘처럼 지역문화재단이나 기관이 주최하는 장터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음아트플랫폼, BGA백그라운드 아트웍스 같은 유통 플랫폼이 등장하며 시장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올해도 재차 확인된 프리즈와 키아프의 차이가 말해주듯, 작가 발굴과 구성의 신선함 부족은 국내 기성 아트페어에 꾸준히 제기되는 지적이다. 키아프가 신진 작가 위주의 키아프 플러스를 별도로 두는가 하면, 차세대 작가들을 프로모션하는 ‘키아프 하이라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올해는 박그림(THEO), 박노완(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동훈(갤러리SP), 김아라(김리아갤러리), 조은시(갤러리밈), 홍세진(갤러리플래닛) 등이 포함됐는데, 국제적 관심 확보로 이어지기에는 갈 길이 멀다.
키아프와 5년 협업을 약속한 프리즈 서울은 이제 계약 연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일각에서 긍정적 신호가 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우리 시장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국제 무대와의 접점은 언제까지나 외부 주최 행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 미술 생태계가 자체적으로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음으로 풀어야 할 과제이자 문화적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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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미술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동시대 미술 현장과 작가 작업을 연구하며 글을 쓴다. <경향신문>에 미술 칼럼을 연재했고, <네이버 디자인>, 『월간미술』, 『서울아트가이드』 등 여러 매체에 기고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