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장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그 설득 안에 담긴 열정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순진하면서도 단순한 물음에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경우들을 하나씩 언급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드디어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정복’해낸다. 이 과정에서 묘하게도 느껴지는 것은 버셀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어떤가? 대기업이 성장하면 시민들의 삶도 함께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순창고추장, 현대중공업 등의 사례를 통해 깨끗하게 깨뜨린다. 또 그간 경제학이 발전해올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였던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근거 없는 넌센스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경제적 환경과 프레임을 분석해내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경쟁하면 이기고 협력하면 진다는 이상한 경제를 넘는 것, 즉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제이다.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이러한 마음은 뜨겁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위대한 이상주의자들의 마음은 뜨거웠다는 것이 선대가 남긴,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교훈 중의 하나인 것을.
각성
우리들은 지금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고 있구나, 라고 각성했던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서울이 고향입니다. 지금도 어릴 적 살던 그 동네에 삽니다. 우리 아이와는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어느 날 문득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봤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면서요. 물론 기억 속 동네의 대부분 사라졌더군요. 자주 가던 레코드점도 없었습니다. 가게 자리에는 빌딩이 들어섰고요. 두부공장도 문방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릴 적 자주 들러 책을 사던 동네 책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밀고 서점에 들어섰지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예전의 책방 주인 아저씨, 그 책 좋아하던 사람이,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더군요.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오랜만이네.” 주인 아저씨가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이지요.
참 이상한 경험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경제구나. 같은 자리에서 20년 책방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왜 이상한 것이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이 나라가 이상한 게 아닐까? 어릴 적 우리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그 경제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이상한 경제현상을 들이대자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업은 점점 커지는데 개인은 점점 가난해지는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의 경제에 살고 있습니다. 수출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 왔습니다. 두부 한 모를 사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달려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제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생업 삼아 평생 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것, 그게 가장 이상한 일 아닐까요?
불안
책을 다 읽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불안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뭔가 잘못 되었으며,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야기되는 그런 불안함 말입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안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칫하면 내가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입니다. 지금 더 벌고 더 빼앗아서 쌓아두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본능에 입각한 탐욕을 불러오는 불안입니다. 절망적 불안이지요.
다른 하나는 세상이 이대로 가면 모두 루저가 된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사실 영혼을 일깨우는 불안입니다. 잘못된 세상을 지금 다 같이 바꾸자는 에너지를 불러오는 불안입니다. 희망찬 불안이지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 그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그런 불안은 즐기세요.
무엇이?
작가 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경제 상식의 많은 부분이 사실 이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를 말씀해주셔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심을 줄이고 이타적이 되려고 노력해라. 친구들과는 사이 좋게 지내고 맛있는 것은 나누어 먹어라. 잘못을 했다면 먼저 사과해라.’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경쟁이 좋은 것이고 협력이 나쁜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장사를 하다 보면 속이고 편법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은 이야기하지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시장원리에 따라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요.
왜 경제에서는 협력하면 안 되나요? 모두가 의논해서 빚 내서 아파트 사대는 일을 중지하면 안 되나요? 그러면 집값이 자연스레 떨어질 텐데요. 모두가 윤리적으로 영업을 하면, 모든 기업의 영업비용이 줄어들게 될 텐데요. 모두가 행복한 게임이지요.
왜?
왜 기존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심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로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을까요?
대단한 철학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개인주의적 합리성은 경제학의 가정일 뿐입니다. 결론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가정했느냐고요?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수치화하고 이론화하기 쉬우니까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이타적인 것도 아닌, 애매한 인간의 선택을 이론화하기는 어렵지요.
처음에는 이렇게 편의상 가정했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가정을 따라서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친 게 경제학의 실수입니다.
인간의 본성
소장님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게십니까?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린애 같은 질문이네요. 저 사람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이런 종류의 질문이지요. 당연히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합니다. 또 많은 경우 그 사이에 있는 ‘상호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환경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지요. 인간이 이타적인 선택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책과 제도의 역할입니다. 지금은 이기심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사회 제도가 짜여져 있지요.
착한 기업과 좋은 경영
착한 기업은 무엇이고 좋은 경영은 무엇입니까?
‘빵굼터’라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사용하던 우리 동네 빵집이 어느 날 간판을 바꿨습니다. 빵집 주인 아저씨 본인이 작명한 브랜드로요. 프랜차이즈에서 탈퇴한 것이지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빵을 직접 굽고 싶은데, 보내주는 빵을 팔라고 해서요.”
허름한 그 빵집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던킨도너츠가 들어선 상태였습니다. 자기만의 빵을 직접 구워서 동네 주민들의 선택을 받겠다는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돈 때문이라면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들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모르지요.
우리 동네 커피전문점 한 군데는 사회복지법인에서 투자해 운영합니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커피점을 직접 운영하게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청소년들이 고객과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손바닥만한 커피점은 스타벅스와 카페베네 같은 영리 커피전문점 사이에 우뚝 서 있습니다. 돈 때문이라면,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겠지요.
돈 때문에 대형 프랜차이즈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좋은 경영이라는 생각입니다. 돈 때문에 경영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영하는 것. 돈 때문에 경영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경영하는 것. 고객과 지역사회를 위해 경영하는 것. 돈은 그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그게 좋은 경영이고, 좋은 경영을 하는 기업이 착한 기업입니다.
경쟁력
착한 기업, 그리고 좋은 경영은 실제로 경쟁력이 있습니까? 좋은 경영을 하는 착한 기업의 비중이 50%가 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착하게 살아서 성공하겠느냐는 질문을 늘 받게 되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할래요. 어차피 성공은 어렵습니다. 악하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착하게 해도 성공할 수 있겠지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고요. 불확실성의 영역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겁니다. 성공했을 때, 그것이 어떤 성공이었느냐. 착한 성공이 더 끌리지 않으세요? 착한 기업의 비중이 50%가 되면, 착한 성공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나는 멋진 나라가 되겠지요.
경쟁력이라… 굳이 구차하게 예를 들자면 사례는 많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유럽에서는 대부분 금융사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 협동조합 은행만 튼튼합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성공이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요.
실행
이 책을 읽고 느낀 두 번째 감정은 ‘그래서 어떻게 하지?’ 입니다. 착한 경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네 독립 브랜드 빵집에서 빵을 사세요. 친환경 유기농 제품이나 사회적기업 제품을 사세요. 생활협동조합에서 쇼핑을 하시고요. 종이를 덜 쓰시고요. 신용카드를 자제하십시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요. 지역 사회단체가 있다면 적극 참여해 활동하십시오. 부정부패나 노동자 안전 문제나 환경파괴 같은 문제에 연루되었던 기업 제품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구매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꼭 투표하세요. 착한 경제를 지지하는 후보에게요.
조언
올해는 대선이 있습니다. 착한 경제에 대한 촉과 실행 의지가 있는 대통령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착한 경제의 중심 축은 시민사회가 될 것입니다. 사회적기업도 협동조합도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해서 만들어내야 합니다. 시민사회단체, NGO들의 이야기를 잘 청취하고 대화할 수 있는 후보인지를 가려보는 것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기준입니다. 국가 개입을 반대하고, 시민단체를 싫어하며, 시장과 대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경제학자들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통령 후보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꿈꾸는 세상
책을 읽다 보면 소장 님이 꿈꾸는 세상이 있으실 거 같습니다. 소장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 세상을 위해 특별히 하고 있는 활동이 있습니까.
꿈꾸는 세상이라…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라고 할까요? 활동이요? 열심히 책을 쓰고 있습니다. 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있고요. 방송 출연을 하고 있고요. 뭔가 더 할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트위터 @wonjae_lee로요.
-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저 | 어크로스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삶은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질까?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탐욕의 질서’ 그리고 ‘성장과 번영의 패러다임’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어떻게 ‘예고된 대몰락’으로 몰아가고 있을까? 왜 세계의 0.01%라고 하는 하버드 대학생들이 기존 주류 경제학 수업의 상징인 맨큐의 경제학 수업을 거부했을까? 등등의 물음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가. 대중들이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본심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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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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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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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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