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작품은 언제부터 미술사에 등장할까?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미술사』 김영숙
지난 16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YES24와 함께 하는 예술릴레이 특강’ 1탄으로 마련된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미술사』출간기념 저자 강연회. 물론 엄청 방대한 서양미술사, 강연 2시간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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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흡사한 모작이 발견됐다. 외신 등의 보도에 의하면, 다빈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모나리자 복제품이었다. <모나리자>와 비슷한 가운데, 인물에 눈썹이 있는 등 훨씬 젊고 생기 있게 보인다는 평도 나왔다.

<모나리자>가 여전히 우리의 관심권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사였다. 이 복제품은 다음 달 루브르박물관의 다빈치 작품 전시회에 대여될 예정이다.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미술사』의 저자에 말에 기대면, 이것은 문화사업이다. 스토리를 계속 발굴해 돈을 버는 행위다.


지난 16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YES24와 함께 하는 예술릴레이 특강’ 1탄으로 마련된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미술사』 출간기념 저자 강연회. 물론 엄청 방대한 서양미술사, 강연 2시간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날의 강연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 미술 등을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진행됐다.


서양미술사의 시대별 구분

우선, 시대 구분을 하자면 이렇다. 그리스 미술(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30년경까지 절정)은 이른바 ‘클래식’이다. 이어진 로마 미술은 그리스미술을 베끼다시피 했다. 통칭, ‘그리스로마 미술’은 고전주의 미술이 확립됐다. 이후 중세 미술이 5세기에 발흥,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 멸망(15세기)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를 기독교 미술이라고도 일컫는다.

르네상스가 부각되면서 고전주의가 부활한다. 그리스로마의 사상 등이 다시 피어났다. 르네상스가 최고조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즈음엔 매너리즘(후기 르네상스) 미술의 시기이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바로크미술이 17세기에 도래하고, 18세기 초중반 로코코미술,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신고전주의 미술과 낭만주의 미술이 동행한다. 현대 미술하면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모더니즘 미술을 뜻한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으로 시작했고, 후기인상주의, 입체파, 다다, 초현실주의 등등이 1970년대까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날 강연의 시작이 된 고대 그리스 미술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가치를 뒀다. 저자에 의하면, 진짜처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을 좋아한 시기였고, 아름다움의 전범을 만들려는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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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그리스 미술의 특징이다. 회화는 남은 것이 없다. 도자기는 남아 있다. 희한하게 이집트 미술엔 회화가 남아 있다. 무덤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폴리클레이토스가 조각한 <창을 든 소년>(BC 450~440)이 이 시기 작품 중 하나로, 고전기에는 인간의 신체를 주요주제로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BC 350년경)의 프락시텔레스는 옷을 벗은 비너스와 입은 비너스 두 점을 제작했다. 당시로서 여자의 누드는 큰 충격이었다. 프락시텔레스는 금기를 깼다. 그럼으로써, 남자의 누드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인식에 금을 가게 했다.


“크니도스의 비너스는 우선 그것이 이전에는 보기 드물던 여자의 누드라는 점 때문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신의 누드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크니도스로 몰려왔다. 실제로 작품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여신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칭찬해 마지않았고, 이는 입소문을 타고 돌아 그리스 전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다.”(p.30)



<벨베데레의 아폴론>(BC 350년경)은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아폴론 상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역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이 시기, 파르테논 신전도 빼놓을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인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미네르바)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바닥과 기둥, 지붕에 이르기까지 대리석으로만 만들어졌다.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보여준다. 신고전주의의 부활 때, 그리스 신전을 모방하는 건물도 많이 지어졌다. 파리의 팡테옹이 그런 경우이다.


중세 미술의 특징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넘어온 중세미술은 기독교의 우산 아래 있었다.


“정확하게 중세를 언제부터라고 정할 수는 없지만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인정된 4세기경부터 비잔틴 제국이 힘을 잃었던 14세기 정도까지라고 본다. 중세 하면 ‘기독교’를 떠올리는데, 그만큼 이 시대는 종교의 힘이 매우 강했고 미술 또한 기독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p.57)



중세 교회에서는 성상을 만드는 것을 반대했다. 하느님의 얼굴을 그린다는 게 불경스럽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성상을 만들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성경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더 유효하고 감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객관적인 사실묘사나 재현적 경향을 거부했다.

“성인, 성녀를 멋있거나 아름답게 그리면 신앙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보기 때문에 일부러 그림을 못 그렸다. 도판으로 보면 중세 때 그림은 주변부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빛인데, 하느님의 신성한 빛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신성한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황금색으로 배경을 처리했다. 상징적 내용이나 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크기와 위치를 결정했다.”


“중세 미술가들은 예수님이나 마리아를 멋지고 아름답게 또는 사진처럼 실감나게 그리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미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비롭고 엄숙하게 전하고자 했지요. 하나님의 존재를 고귀한 빛으로 표현하고자 한 중세 미술가들은 그림에서 황금색을 특히 많이 사용했습니다.”(p.5)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

르네상스 미술은 신 중심의 중세에서 탈피했다. 따라서 중세 미술과 완전 달라졌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적 문화가 15세기에 다시 부활했다. 르네상스는 넓게는 중세 이후에 달라진 인간중심적 사고의 전환을, 좁게는 그리스로마의 고전문화 부활을 의미했다. 그들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던 이탈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미술은 발전했다. 이때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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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세기 메디치 가문이 큰돈을 벌어 문화적으로 후원을 많이 했다. 플라톤 아카데미도 만들어서 고대그리스 철학을 연구했고, 이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확산됐다. 또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이 이탈리아에 가장 많고,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14세기경 피렌체는 이탈리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도시였다. 상업으로 큰돈을 번 몇몇 가문이 막강한 힘을 행사했는데, 그들은 자신이 돈만 잘 버는 것이 아니라 학식과 교양을 갖춘 가문이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문화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p.67)



조토 디 본도네는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었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피렌체의 유명 화가인 치마부에의 제자였다. 그리고 스승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이며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 자연스러움. 조토는 스승의 것과는 다른 세계를 열었다.


“조토는 중세의 벽을 깨고 자연주의 그림을 다시 부활시켰다.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화가’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71)



르네상스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창의 그림’이라는 표현에 있다. 즉, 창밖으로 내다보는 느낌으로 그렸다. 그만큼 현장감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중세만 해도, 주문에 맞춘 수공업자 개념이 강했다. 그러나 르네상스엔 화가, 건축가, 예술가 등이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중세와는 다른 개념의 작품이 등장했다.

원근법도 르네상스가 낳았다.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단축법도 원근법의 일종이었다. 조각적 느낌이나 깊이를 드러낼 때, 단축법을 사용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498)도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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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가들은 이 도상을 그릴 때 일렬로 그려서 유다만 따로 떼어놓곤 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을 보면 베드로가 요한과 이야기를 하려고 유다를 앞으로 살짝 떠민다. 이런 기법을 통해 유다를 고립되어 보이게 한다. 다른 이들은 과장된 몸짓, 질문의 자세를 하고 있지만, 유다만큼은 질문도 몸짓도 없다.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데갈코마니(좌우대칭)가 엄격하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에게 가장 놀라운 사건은 바로 원근법의 발명이었다. 멀리 있는 것이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이 크게 보인다는 걸 모를 리 없겠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p.92)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각형의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도를 갖추고 있다. 또 머리 뒤 소실점으로 집중되는 선원근법적 구성이다.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아서 사람 냄새가 난다. 정면에서 살짝 돌려서 좀 더 자연스러운 맛을 선사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은, 성지순례 하듯이 루브르박물관에 가서 이 그림을 보려고 한다. 사실 이 그림보다 잘 그린 그림, 많다. 미술에서 최고는 있을 수 없다. 이 그림이 최고일 이유는 없다. 상술이라고 보면 된다. 루브르는 이 그림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돈을 번다. 문화 사업을 하는 거다. 그래서 스토리를 계속 발굴해낸다.”

마사치오의 < Explosion from The Garden of Eden >에 나타난 누드의 부활도 르네상스를 드러내는 특징이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5)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누드의 아름다움을 다시 꺼냈고, 그리스 신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자신의 음부와 가슴을 가리는 자세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여성 누드의 전형이 됐다. 중세 시대에 이런 것을 그리면 죽었다. 르네상스여서 가능한 그림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있는 <천지창조>.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에서 여자는 뱀으로 표현했다. 중세적으로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비사가 있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 벽화를 그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림보다 조각을 좋아했고, 스스로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황이 그리라니 어쩔 수 없이 그렸는데, 이왕 그리는 것 잘 그리겠다고 작심을 하고 그렸다. 저자는 모든 장면을 미켈란젤로 혼자 그렸다고 전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보면, 르네상스의 미술이 추구한 고상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캔디형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점잖은 미술품이 나온다. <노예상>을 봐라. 고상하게 죽는다. <다비드>는 원근법 때문에 머리를 크게 만들었고, <피에타>는 마리아의 아름다움을 이상화시켰다. 잘 봐라. 아들이 죽어가는 데 마리아는 태평스럽다. 이것이 르네상스적인 마인드다. 라파엘로는 그림을 예쁘게 그린다. 스승들의 그림을 많이 모방한다. 다빈치의 삼각구도를 구현하고, 페루지노의 그림도 모방했다.”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후기르네상스(매너리즘 시대) 미술


“라파엘로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시작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미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평온한 표정, 완벽하고 이상적인 인물들의 우아한 자태, 안정된 구도와 우아한 색감을 자랑하던 르네상스 미술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p.112)



라파엘로가 세상을 떠난 직후,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끝났다. 색깔이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해졌다.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라파엘로 이후 더 이상 새롭게 시도할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화가들도 새로운 것을 그리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다. 앞선 시대를 베끼거나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래서 매너리즘 시대라고 했다. 르네상스를 본 따는 것처럼 하면서 색깔을 튀게 하거나 몸매를 기형적으로 묘사했다. 로소 피오렌티노의 <피에타>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미술가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었다. 그 넘을 수 없는 산은 다름 아닌 라파엘로,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미술가들이었다. 이들 거장의 활약으로 다른 화가나 조각가들은 늘 그들과 비교당하기 일쑤였고, 어떤 그림을 그려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그 거장들을 그저 따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미술가도 많았다. 그래서 이 시대 미술을 후대 사람들은 ‘매너리즘’이라고 불렀다.”(p.127)



많은 작품들이 그랬다. 브론지노의 는 왜곡된 신체 비율과 불길한 느낌의 색채가 두드러진다.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사선 구도로 돼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한 감정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비교하면 기괴하고 정신사납다.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의 경우, 불안하게 길게 늘어진 인체가 눈에 띤다. 당시 사회의 극단적인 세속성, 정신적인 방황상태를 드러낸 것이다.

결국 르네상스는 3대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가 활동할 때가 절정기였다. 1527년 에스파냐 군대가 교황청을 공격하는 로마 약탈과 함께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끝이 났다. 약탈의 현장에서 르네상스적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유지될 수 없었다. 종교개혁으로 사회도 혼란스러웠다. 매너리즘 미술은 그런 시대적 토대 위에서 나왔다.

다만 피렌체나 로마를 중심으로 한 미술과 베네치아 미술은 좀 달랐다. 베네치아 미술의 대표 선수로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가 유명하다. 피렌체가 선을 중시한데 반해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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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는 선보다 색을 더 중시한다. < Woman with morror >를 보면, 질감 표현이 압도적이다. 촉각적이다. 또 다른 그림인, 도, 성녀의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에로틱한 상상을 가미했다. 르네상스가 세속화되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형태보다 작품 속 대상의 색채와 질감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은 입고 있는 옷이나 피부, 머리카락 등에 떨어지는 빛의 변화를 잘 관찰하여 야들거리거나 매끈하거나 거칠거나 하는 표면의 느낌, 즉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해 냈다.”(p.122)



바로크 미술과 로코코 미술, 그 이후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흔히 동적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이 고요한 아름다움, 즉 정적인 미를 특징으로 한 거세 비해 바로크는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이다.”(p.156)



종교개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황권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교회는 더 화려하고 위압감 있게 꾸미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죽이는 행동을 취했다. 이때 가장 큰 희생자가 여자였다. 유식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많이 죽어갔다. 마녀사냥 때문이었다.

“종교의 힘을 무시무시하게 과시하려고 했다. 교황청에서는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해 자극을 강하게 주는 그림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림의 경향이 많이 커지고 동작도 커진다. 이 시기의 이탈리아는 교황청 주도하에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 찬 미술이 성행한다. 바로크 미술이 그랬다”

베르니니의 <다비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정적이고 점잔을 빼고 있는데 반해 다음 동작이 이어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환희>도, 부유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을 준다. 조각의 표정도 드라마틱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크 시대의 베르니니는 그러한 감정을 고스란히 조각에 드러냈다.”(p.157)



“카라바조의 <도마의 의심>을 보면 성경 속 인물이 매우 평범해 보인다. 빛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이지 않고 정직한 빛이고 자연스럽다.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라고 하는데, 자연스럽긴 한데 카라바조와 또 다르다.”

로코코 미술은 프랑스에서 활발했던 사조였다. 웅장하고 거대했던 바로크와 달리 작고 귀여운 느낌을 줬다. 로코코는 장식용으로 쓰는 작은 돌이나 조개를 뜻하는 ‘로카이유’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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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1717)을 보면, 그림 내용이 화사하고 귀족 부인의 취향에 맞춰 발달했다. 여자들의 연애편지, 사랑이야기, 에로틱하고 퇴폐적인 그림이 유행한다. 색깔도 화사하다.”

이후 신고전주의 미술은 점잖아졌다. 고전 건축의 배경이나 영웅적 제스처가 도드라졌다. 말랑말랑한 것을 벗어나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시민들의 교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였다. 이에 사회적 이상을 표현하는 그림이 많았다. 다음 사조였던 낭만주의에 가서는 다시 시끄러워진다. 신고전주의가 이성적이었다면, 낭만주의는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묘사했다. 비극적인 순간을 격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죽음과 관능성이 교차하는 환상적 파토스가 엿보인 것이 낭만주의의 특징이었다.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 미술사 김영숙 저 | 휴머니스트

생생한 종교화를 그린 조토, 르네상스의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은 쿠르베, 입체를 쪼개어 캔버스에 펼쳐 놓은 피카소까지, 미술관에 오래도록 빛날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을 창조해 낸 시대의 예술가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림 속에 담긴 화가들의 흥미로운 삶과 미술 이야기, 실감나는 역사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김영숙 #서양미술사 #김영숙 선생님이 들려주는 서양미술사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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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x8

2012.03.08

주말인데…기분한번 확풀고

------------ bg37.go.hn --------------

대박한번 터지고 ..눈욕이를확실이할분… 함들려보세요~

주말인데…기분한번 확풀고

------------ bg37.go.hn --------------

대박한번 터지고 ..눈욕이를확실이할분… 함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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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롭게

2012.03.08

그림을 보면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림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에 관련된 설명이 되어 있는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하는만큼 알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은 개인마다 느끼는 저마다의 감상의 창이 다르므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 책 카트에 담으면서 서양미술사를 알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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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연

2012.03.08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낑낑 대면서 힘겹게 읽어나간 기억이 있는데ㅠㅠ
더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 같군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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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