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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관 작가님과의 첫 대면이 기억나시는지요. 그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천명관 형과 저는... 2003년도에 나란히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하여, 그해 시상식 때 수상자들을 위해 마련해준 대기실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걸로 기억합니다. 신인으로서의 설레임이나 긴장감... 각오가 가득한 분위기였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마는, 그러기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여서 둘 다 시큰둥 앉아있었습니다. 자꾸 나가서 인사를 하라고(이런저런 선생님들께) 누군가 조언도 해주고 했는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하는 기분으로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였습니다.
긴장도 안되고 나가서 인사할 일도 없고 하니...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양자물리학과 다원우주론에 대해 얘기를 할... 까 하다 뭐, 아내 자랑을 실컷 늘어놓았습니다. 천명관 형은 막스 베버에 대해, 또 M.호르크하이머가 등장한 후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활동에 대해 말 할... 것 같은 얼굴로 별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우리는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낄낄댄 기억도 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첫대면이었습니다.
첫 인상에 관해서라면... 저는 17살 이후로 사람에 대해 첫인상이란 걸 가지지 않습니다. 첫인상을 믿지도 않고... 뭐랄까, 인간이란 건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거니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에 대해서도 첫인상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아, 남자사람이구나. 이름이 천명관이구나... 했습니다. 그러나, 천명관 형이 그날 저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훗날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몇 년후 제가 이효석 문학상을 탔을 때였습니다. 문학상 수상집에 절친 작가가 말하는 박민규 - 이런 코너가 있었는데 절친이 없었던 저는 그래도 뭐랄까, 그때 얘기도 좀 나누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천명관 형에게 그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고, 또 원고를 보내주었습니다. 요약컨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봤는데 막 자기 아내 자랑을 늘어놓더라, 그래서 뭐 이런 놈이 다있지?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후로는... 절대 아내 자랑을 하지 않을 줄 알았지? 하는 얼굴로 지금도 계속 해대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는 별 말 하지 않습니다만, 또 요즘엔 정말이지 막스 베버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활동... 과 비슷한 얘기들을 마구 해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래서 첫인상이란 걸 가져선 안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기분이 들긴 했습니다. 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절대... 결코... 어떤 일이 있어도 ‘하하하’ 라고는 웃지 않겠구나, 그렇게 웃지도 못하고... 웃은 적도 없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계를 차갑게, 슬프게 바라보는 인간이구나... 했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우리는 둘 다 영업사원 출신이었고, 또 여러모로... 실은 실패한 인생들이었습니다. 도대체가 문학상이라니! 따지자면 둘 다, 인생에서 겪을까 말까한 일을 그날 겪고 있는 셈이었는데, 하여 그날만큼은 하하하 웃어도 좋았을텐데... 그렇게 웃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쓰고나니 왠지 서로에게... 또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요.
박민규 작가님께 천명관 작가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더 비트' 제임스 플로렌스 알겐하임 쥬니어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러면 또 제임스 플로렌스 알겐하임 쥬니어에 대해 검색도 하고 하시겠지만... 하지마세요, 제가 막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쓴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평소 이 사람이 어떤 존재구나, 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만납니다. 그리고 뭐... 이런저런... 예컨대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얘기 같은 걸로 시간을 보내고 하는 겁니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많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얘길 나누려 들면 나눌만한 인간이 드물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죠? 다만 질문의 뜻을 그는 어떤 사람인가... 로 해석한다면 두 갈래로 나누어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은 인간 천명관에 대해... 그리고 그와는 전혀 별개인 작가 천명관에 대해서입니다. 일단 그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또 예민한 성격입니다. 상처를 잘 받구요... 또... 어릴 때 불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그리고 매우 보편적인 사람입니다. 보편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하고 본인 말로는 차분히 뭘 다루지 못해 기계 같은 건 손만 대면 고장이라고 하더군요. 또... 행정이나 서류작성, 이런 거에도 취약합니다. 술을 전혀 못마시구요, 그러면서도 술값 계산을 얼마나 재빨리, 또 탁월하게 해치우는지 이거야 원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매우 정갈합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하기엔 아아, 또 이거야 원 소리가 나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뭐든 눈이 높구요, 입도 까탈스럽습니다. 한번은 제가 맛없는 커피를 사준 적이 있는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러는 겁니다. “이 커피엔 영혼이 없다” 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그렇지... 라며 저는 스푼으로 커피를 휘젓고 또 휘저었습니다. 혹시나 숨어있는... 다만 물벼룩만한 커피의 영혼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해서 말이죠. 그후로 가끔 그가 손수 드립해서 주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제겐 그런 습관이 생겼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샅샅이 커피를 휘저어보는... 네, 아무튼 그렇습니다.
작가로서의 천명관을 말하자면... 그는 매우 커다란 엔진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의 문장이 내는 배기음도, 또 리듬도 여느 작가들과는 그래서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작가입니다. 이야기의 적재량도, 그 이야기를 구동하는 힘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리>를 쓰기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느날 그가 그랬습니다. 이번엔 개인사를 다룬, 아주 소소한 얘기를 하나 쓸까 해. 그리고 소소하게... 3000매 분량의 소설을 쓰더군요. 이거야 원, 아무튼 여러모로 그는 절대 보편적인 작가가 아닌 것입니다. 자동차로 치자면 커다란, 컨테이너 두어개쯤은 끌고있는 트럭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그래서 시내주행이 힘듭니다. 뭔 놈의 신호가 이리 많고, 이를테면 학교앞 횡단보도라든지... 전봇대는 왜 이리 많고, 적재량 검사는 또 자꾸만 해대는지... 하여간에 아아 피곤해, 외곽으로 뻗은 산업도로 같은 델 달려야 맘이 편안한 그런 작가인 셈입니다. 해서 다시 박민규 작가님께 천명관 작가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밤은 길고, 이 도로는 끝이 없고... 먼지는 날리고, 내가 모는 트럭은 덜컥이고... 보이는 건 달 뿐인데... 어디선가, 또 누군가가 달리는 소리... 보이진 않아도 엔진소리가 들린다면... 좋겠죠? 혹은 기름이 떨어져 사막 한 복판에 있는 허름한 주유소,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휘발유를 넣고 있는데... 아, 그 차구나 싶은 트럭이 들어오고... 그래서 나란히 주유를 하며 앞바퀴 바람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둥, 행선지가 어디냐는 둥, 또 밥은 먹었냐는 둥... 뻘츰하니 담배라도 피워 물었다 이봐 댁들, 정신이 있는 게야 없는 게야? 배나온 주유소 사장이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거 참 되게 그러네? 라며 개똥같은 주유소 이거 다 타봐야 얼마라고 그래? 깐죽거리는 것도 다... 기나긴 운행(運行)의 한 풍경이 아니겠느냐, 밤이 깊어 보이지 않을 뿐 실은 함께, 구름도 저 하늘을 흐르고 있겠지(雲行)... 생각도 해보며, 또 까짓 거 얼마야? 카드를 던져줬는데 어랏 이 배불뚝이 새끼가 피식 쪼개며 이 카드... 이거 지급 정지네? 소릴 듣고 그럴 리가 없는데, 급히 돈이라도 빌리거나... 혹은 짝짜쿵 장단이 맞아 사장을 폭행, 기절시키고 현금지급기를 털어 도망치는... 그러다 부르릉, 시동을 걸며 이봐 이름이라도 알자구? 물어보면 나? 내 고향에선 다들 '더 비트' 제임스 플로렌스 알겐하임 쥬니어라 부르지 조낸 긴 이름을 둘러대고, 다시 말해 그렇다면... 하고, 말입니다. 어랏, 그런데 뭘 물어 보신 거죠?
박민규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천명관 작가의 문학은 어떤 문학입니까?
뭐, 문학에 대해선 제가 모르구요. 다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작가에겐 고래와 같은 재능이 있고, 그것은 언젠가 수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잠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BBC의 해양다큐에서 보듯... 말이죠(특히 혹등고래의 점프는 압권이죠). 그리고 고래는 물속으로 침잠합니다. 이따금 수면을 가르는 등지느러미... 또 솟구쳤다 물속으로 사라지는 꼬리를 보여주며 말이죠(그렇습니다, 고래의 삶도 운행이 아닐 수 없는 겁니다). 지금 떠오른 것이 다만 지느러미라고 해서 고래가 축소된 것이 아니며, 또 솟구친 것이 꼬리라는 이유로 변모한 것이 아니란 얘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클래스란 것은 영원하며,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며... 해서 그 길이 천명관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를 증명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지켜봐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많은 박수가 그에게 쏟아지기를, 역시나 바라는 마음입니다.
천명관 작가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왜 그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아마 대부분이 <고래>를 좋아하실텐데... 저는 못지않게 <프랭크와 나>란 단편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제가 읽은 천명관 형의 첫번째 글이기 때문이고, 뭐랄까... 아주 작은 씨앗 같은... 천명관 설(說)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령화 가족>도 좋아합니다. 그 소설은 한동안 운행을 중단했던 그를, 다시금 원고지 앞에 앉게 한 고마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늘, 실은 제가 가장 좋아할 그의 작품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명관 작가님은 현재 솔로이십니다. 천명관 작가님이 솔로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스24 때문입니다. 예스24 때문이라구요(그 이유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거야 원... 뭐 어쨌거나 저로선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즉 언젠가... 사인회를 마친 천명관 형으로부터 이런 편지가 불쑥 제게 배달되어 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메일의 제목은 <자랑질>. 보낸 시각은 새벽 2시. 그리고 편지 속엔 한 여성독자와 찍은 사진이 들어있고... 그 아래엔
그녀가 사인을 받으러 왔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냥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소설을 좀 더 잘쓸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서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이제껏 만난 여자 중에 최고의 미인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사진의 제목은 '그녀를 만났다'가 어떨까 싶다.
이런 내용이 붙어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뭐, 그랬으면 좋겠다는 얘깁니다.
천명관 작가님이 언젠가 꼭 쓰셨으면 하고, 바라시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입니까?
간결히 말해 오직, 천명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천명관 작가님과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까?(백두산 등반 같은..) 그것은 무엇이고, 왜 하고 싶으신지요.
백두산 등반만 빼면 뭐든 해도 좋지 않겠나, 생각이 드는군요. 실은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행기 타는 것도 싫어하고... 뭐, 가끔 그런 얘기를 나누긴 합니다. 이를테면 비비킹이나 에릭 크렙톤이 죽기 전에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을 보고 와야 하는 게 아닌가(둘 다 블루스를 좋아합니다), 또 머리가 희끗해지면 그간 책을 읽어주신 독자들...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을 초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더불어 참 조촐하고 소박한... 블루스 공연이라도 함께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천명관형의 기타는 깁슨 커스텀샵 ES335 체리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풍경은 다음과 같은 것이겠죠. 즉 둘 다... 이제 더는 쓸 얘기가 없어, 그러고나니 할 일이 없네? 무료한 노인이 되어 뭐 하루 따뜻한 봄볕이라도 드는 날에... 뚜벅뚜벅 지팡이를 짚고나와 커피라도 한 잔 마시는... 말하자면 요샌 영혼이 담긴 커피를 도통 맛볼 수가 없다니깐... 말도 안되는 잔소릴 늘어놓으며... 창밖을 오가는 시내버스나 택시, 라도 쳐다보면서... 그래도 어쨌거나 더는 쓸 얘기가 없어 편안한 얼굴로... 앉아 잡담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야기를 모두, 남김 없이 쓸 수있는 작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또 혹시나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저희를 알아보고 기억해주는 독자가 계신다면... 초라하고 무료한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커피를 주문해 드리겠습니다. 써놓고보니 그저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군요. 그 커피에 영혼이 담겼을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잘 늙어가겠습니다. 예스24의 독자분들 역시, 파이팅입니다!
박민규
소설가이다.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9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제8회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카스테라』,『더블』,『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지구 영웅 전설』 등이 있다.
팡팡
2012.11.13
yerim49
2012.10.01
천재
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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