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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리뷰]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에게, 천명관 작가를 권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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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야기를 이토록 맛깔나게 할 수 있을까?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멈추기가 아쉽고, 성능 좋은 오토바이처럼 질주하는 문장을 따라가느라 눈동자의 움직임은 빨라진다.

[리뷰]
나의 삼촌 브루스리
[인터뷰]
소설가 천명관
[스페셜]
박민규에게 천명관은?

 

 

매혹이 넘치던 시대, 짝퉁 인생에 관한 이야기


어쩜 이야기를 이토록 맛깔나게 할 수 있을까?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멈추기가 아쉽고, 성능 좋은 오토바이처럼 질주하는 문장을 따라가느라 눈동자의 움직임은 빨라진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고래』 『고령화 가족』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야기꾼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킨 작가 천명관이 신작 『나의 삼촌 브루스리』로 돌아왔다.

“70년대는 다들 뭔가에 매혹된 시대였다. 온 국민은 독재자와 슬레이트 지붕에 매혹되었고 독재자는 수출과 젊은 여자에 매혹되었으며 우리는 팝송과 이소룡에 매혹되었다.”(p.246) 그 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나이들의 꿈과 우정과 사랑과 인생 이야기. “말하자면, 이것은 표절과 모방, 추종과 이미테이션, 나중에 태어난 자 에피고넨에 대한 이야기이며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p.11)


삼촌의 조카 상구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삼촌 도운의 인생 이야기는 파란만장하다. 말더듬이 도운은 서자 출신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그저 이소룡을 흠모하고 닮고 싶었을 뿐인데 깡패들의 싸움에 말려들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저 이소룡과 같은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인데, 중국집에서 만난 가짜 사부에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된다. 그뿐이랴. 그래도 이소룡과 비슷한 일이라도 하고 싶어, 충무로 으악새(‘으악’하고 죽어나가는 단역배우)가 되어 꿈을 이루는가 싶더니 추락사를 당해 그마저도 막혀버린다.

첫눈에 반해 연정을 키워가던 삼류 여배우 원정만큼은 남자답게 지켜내고 싶은데, 그 길도 칼질이 난무하고, 피가 튈 만큼 험난하다. 과연 삼촌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꿈은 일찌감치 현실에서 멀어졌지만, 오직 한 길만 아는 삼촌에게 어느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맞고 찢어지고, 당하고, 휩쓸려가도 단순 무식 충직한 삼촌 마음속의 이소룡은 한시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기에, 그의 삶은 한없이 상처 나고 찢겼는데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그쪽으로 (참으로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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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순간 알아챌 수 있다. 도운이 영화 속 이소룡보다 더 이소룡 같은 모습으로, 삶 속에서 벌어지는 시비와 싸움에 맞서고 있다는 걸 말이다. 어떤 연출도, CG도 없어 폼나진 않지만, 그는 런닝 타임 속에서만 무도인이 아니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고 피하지 않았던 도운의 삶은 과연 그가 꿈꾸었던 것과 멀어져 있는가 되새겨보게 한다.

어떤 상대 배우도 해주지 못한 사랑을 여배우 원정에게 보여주지 않던가. 그래서 삼촌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뤄지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자꾸만 그를 다른 곳으로 휩쓸어가고 굴복시키려는 현실과 유혹들 속에서도 그저 진심으로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삼촌은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삼촌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800여 장에 걸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삼촌이 변해가듯, 주변 사람들도 변해가고, 사회도 변한다. 이소룡이 날고 기던 70년대 유신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도무지 선의나 정의만으로는 온전한 삶이 불가능해 보이던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고, 성룡, 주윤발 등 홍콩 스타가 새롭게 떠오르던 90년대 민주사회에 이르기까지.

이런 삶의 풍경들은 삼촌의 삶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삼청교육대라는 게 생겨 삼촌이 고초를 당하거나, 시대가 바뀌어 더는 이소룡의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 식으로 그의 삶에 깊게 개입하기도 한다. 단 한 번도 꿈꾸기를 멈춘 적이 없는 그였기에, 그의 삶은 단 한 순간도 출렁이지 않은 적이 없다. 게다가 문단 계에 내로라하는 이야기꾼 천명관의 소설 아닌가. 당신의 머릿속에 텀블링을 넣은 듯이 문장과 상상력의 출렁임은 거침이 없다.


한국의 마르케스, 천명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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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혼자선 절대 삼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는 동생들을 몇 명 끌어들였다. 그래도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각목과 쇠파이프 등 무기를 준비했다. 그래도 또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동생들과 아는 동생들을 몇 명 더 끌어들였다. 또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오토바이 체인과 손도끼 등 무기를 더 준비했다.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을 몇 명 더 끌어들여 읍내의 건달 20여 명이 동원되었다.

겨우 삼촌 한 명 손봐주는 데 너무 유난스럽다 싶었지만 토끼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 또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이 아는 동생들까지 몽땅 끌어들여 읍내에서 노는 건달들과 그 밑에서 노는 양아치, 양아치 밑에서 노는 고삐리와 고삐리 밑에서 노는 중삐리들까지 총동원되어 급기야 삼촌을 손봐줄 주먹들은 모두 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p.98 『나의 삼촌 브루스리』)



문단 계에 들이닥친 『고래』는 대단했다. 마치 고래에게 날름 삼켜져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고래 뱃속의 내장을 타고, 뼈를 통과하고, 뱃속을 탐험하듯이 날것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 속에서 팔딱거렸다. 수많은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킨 『고래』는 천명관 작가에게 ‘한국의 마르케스’라는 별명과 함께 한 명의 거대한 이야기꾼의 탄생을 알렸다.

이 이야기꾼은 몇 개의 단어를 조몰락거리면서, 우리 눈앞에 거대한 장관들을 펼쳐낸다. 그의 이야기는 위에서 아는 동생들이 늘어나듯 불어난다. 시간, 장소쯤은 거뜬히 뛰어넘는다. 옛날 문명 이전 시대부터 한국 현대사, 프랑스 혁명사를 걸쳐 미국 마피아의 세계까지 닿는 범상치 않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평균나이 49세인 고령화 가족, 120킬로의 거구 등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또 강렬하게 각인되는 캐릭터도 천명관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다.


그에게 소설이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청준, 이문구, 황석영 등의 한국 작가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커트 보네거트 등의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는 천명관 작가는 소설이란 뚜렷한 서사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분명하다. 게다가 3D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영화적 상상력과 특유의 입담이 더해져, 그의 소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이야기는 활자 위에서 활개를 친다.

호떡 100개를 먹은 ‘토끼’가 물대포를 쏘듯 토사물을 게워내는, 흡사 폼페이 화산폭발 같은 재앙이랄지, 백 명의 아는 동생들이 불 꺼진 다방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 콜라병으로 ‘다구빨’을 세우다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는 장면 등에서 그의 소설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과장된 묘사와 설정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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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엄한 규모의 장면들은 천명관 작가가 실제로 <총잡이> <북경반점>의 각본을 쓰고 오랫동안 충무로에 몸담았던 이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소설 속 많은 장면이 영화적인 상상력에서 만들어졌고, 여러 편의 이야기에서 그가 가진 영화에 대한 연정을 확인할 수 있다.

“첫 소설 『고래』에선 주인공이 극장을 짓고 그 안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고령화 가족』의 주인공은 영화감독이었죠. 이번에 쓰는 소설은 이소룡이 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던 작가의 말은, 이소룡에 대한 불 같은 열정을 마음 속에 활활 태우며 산전수전을 겪고 난 삼촌이 훗날 극장에서 자신이 (잠깐) 등장하는 영화를 바라볼 때의 비장한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개개의 소설은 결국 천명관 작가에게는 애정의 서사가 아니었을까. 밥벌이와는 무관한 영화나 이소룡에 관한 애정은, 연인에 대한 애정보다 끈끈하고 질기고 우리의 삶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것은 다른 이름으로 로망, 실패할 수밖에 없는 꿈의 이야기. 결국은 실패담.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언제나 나의 소설이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가 되길 원합니다.”

그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소설가다. 그는 작가로서 일신의 업적(!)을 세우기보다는 한 명의 독자들을 더 즐겁게 해주고 싶어하는 작가니까. 유머러스하고도 애잔한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에 설레는 작가니까. ‘너무 남자 소설(!)’만 쓴다는 오해 앞에, 그렇다면 괜찮은 연애 소설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겠노라고 오늘도 책상 앉을 그런 작가니까 말이다.

평균보다 한참 낮은 지점에 있는, 천명관 소설 속 인물들의 소박한 행복을 보면, 나는 참 행복하구나,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저 한없이 비루하고 거친 인생 속에서 이제까지 감지하지 못한 행복과 의미 같은 걸 발견하기도 한다. 때론 그저 웃다 짠해진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에게,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권해주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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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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