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 관객이 박수 안쳐서 걱정 많았다”
양방언의 음악을 활용하지 않은 미디어는 찾기 힘들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CF 등을 막론하고 그의 음악은 스토리의 외연을 넓혀주며 그 누구도 앞서 밟지 못한 전방위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구축했다.
글ㆍ사진 이즘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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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의 음악을 활용하지 않은 미디어는 찾기 힘들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CF 등을 막론하고 그의 음악은 스토리의 외연을 넓혀주며 그 누구도 앞서 밟지 못한 전방위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구축했다.

이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브라운관을 뛰어 넘어서, 콘서트 현장에까지 영상과 음악의 융합을 시도했다. 지난 1월 21, 22일 양일간 펼쳐진 < 2011 양방언 영상 콘서트 >에서 바라던 바는, 소리와 빛이 교환하는 끊임없는 대화였다. 그의 또 다른 수식어, 즉 ‘크로스오버 뮤지션’에 걸맞은 작업이다. 장르 간 교배가 아닌 청각과 시각의 교접, 즉 감각 간의 ‘크로스오버’로 자신의 신조를 가시화한 셈이다.

콘서트를 위해 강행군을 펼친 탓에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서울 날씨가 홋카이도보다 춥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는 소년 같은 장난기가 묻어났다. 답변 중간마다 터져 나오는 호탕한 웃음소리에서는 방대한 작업량을 감당할 수 있었던 에너지를 짐작케 했다. 출국 전날 밤에 만난 양방언은 공연 작업, 한국 대중음악, 재일교포로서의 딜레마 등의 화두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상념을 전달했다.


한국 내한 공연이 이번에 몇 번째인가.

“한 열 번 정도? 왔었던 것 같아요.”

요즘 들어 부쩍 한국 내한공연이 잦았다. 개인의 의욕인가. 아니면 요청의 비중이 큰가.

“아.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가 원하는 바와, 업계의 요청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바가, 신기하게 타이밍이 잘 맞아서 의뢰가 오기도하고요. 예를 들자면 작년에 낸 책 『프런티어, 상상력을 연주하다』의 경우는 제가 50세가 된 시점에서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원래는 제가 뭔가를 뒤돌아보고 생각하는 성격이 아닌데, 때마침 출판사에서 이야기가 왔고 그런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죠. 엄격한 느낌을 주는 운명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이 저에게 뭔가 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요즘에 받곤 해요.”

성황리에 마친 < 2011 양방언 영상콘서트 NEORAMA >에서 음악과 영상의 컨버전스를 시도했다. 음악인 양방언에게 영상은 어떤 의미인가.

“아주 가깝게 음악과 공존할 수 있고, 때로는 영감을 얻는 소재이기도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즐겨봤던 옛날 디즈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동물이 죽는 장면을 볼 때 매우 슬프지 않습니까? 그런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저의 영감을 증폭시켜서 10배, 100배로 다가오는 경험을 어린 시절에 아주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음악을 시작하고 난 뒤에도 < E.T. >나 < 스타워즈 > 음악을 들었을 때 영화와 음악이 이렇게 맞는 사이라는 것도 느꼈죠. 음악이 영상의 감수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늘 느끼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저와는 멀리 있다고 봤어요. 나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성룡의 < 선더볼트 >의 O.S.T를 담당하게 되면서 처음 깨달았죠. 음악이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 음악이라는 존재가 영상과 함께 있음으로써 다른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거죠.”

이번 이틀, 3회 공연에서 영상과 음악의 접목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가장 고생했던 점이에요. (웃음)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O.S.T곡이 쓰였던 영상을 연주 중에 보여주는 것에서 끝났겠죠. 저는 그게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웃음) 관객들도 그런 장면을 원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요. 콘서트를 제안 해주신 분들이랑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나눴어요. 그래서 얻은 결론은 저의 음악을 중심으로 콘서트 동안에 하나의 스토리를 영화와 같이 새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어요. 그동안 제가 O.S.T 담당자로 참여했던 영상물들의 좋은 장면만을 모아서 영상작가에게 보냈어요. 제가 음악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영상작가에게 소재로 던지는 것이었죠. 그러면 영상작가 분께서, 받은 소재 영상과 이에 맞물린 O.S.T 음악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영상을 제작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새로 만든 영상이 결국에는 콘서트 동안에 하나의 영화, 스토리로 완성이 되었고요.”

하지만 기존 음악의 녹음 버전을 콘서트에서 온전히 구현하는데 한계도 있지 않나.

“영상과 음악의 상호작용은 계속 되었죠. 새로 제작된 영상을 본 뒤, 라이브를 위해서 음악을 다시 재구성했어요. 전체적인 스토리를 유연하게 이어가기 위해 편곡을 하고, 리메이킹을 했죠. 영상작업과 음악작업이 서로 너무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웃음) 영상작가들의 재능이나 감수성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재미있었겠지만, 현장에서는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웃음)

“네. 다들 너무 힘들었죠. 죽을 뻔했어요.(웃음)”

관객의 이해도는 어떻던가.

“저는 아주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보통 라이브를 연주하는 공연이라면 곡이 끝나면 바로 반응이 오지 않습니까. 그게 보통 라이브 쇼죠. 하지만 이번 콘서트는 개별의 영상작품이 있으면 하나의 스토리 안에 다섯 곡 정도가 이어져서 연결되는 구조였어요. 20~25분가량의 스토리가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한 곡이 끝나도 관객들이 계속 영상을 보는 거예요. “일반 공연 같으면 박수를 칠 텐데… 반응이 없는 건가?”라고 공연 중간에도 저는 너무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공연이 다 끝나고 보내주신 박수에 반응이 다 담겨져 있었어요. 전혀 다른 공감이랄까. ‘새로운 의사소통의 형식이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공연 시간 동안 정말 모두가 하나의 스토리 안에 있었던 느낌이었다고 들었어요. 정말 좋았어요.”


지난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때에는 어떤 점이 좋았나.

“저는 록을 좋아해요. 그래서 일본에서 여름에 열리는 야외 페스티벌을 거의 다 다녔어요. 후지 록페스티벌이나 서머소닉도 다 갔었죠.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과도 아주 친해요. 즐기다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은 “내 음악은 실제 그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이런 자리에서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였어요. 우선 환경이 좋지 않습니까. 여름에다, 오픈 에어고, 기분도 좋고. 그런 생각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때 실현되었어요. 저는 물론 아무 부탁도 안 드렸는데, 다행히 제의가 와서 역시 사람 일은 ‘원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구나.’라고 그? 또 느꼈죠.”

국적을 취득하고, 10년 동안 한국을 방문해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이 어떤 면에서 상승했다는 것을 확인하는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관심 없어요.(웃음) 내가 지금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이 내 눈앞에 있는지,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도 음악가의 활동 역시 대중과 관객의 호응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그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 않나.

“당연히 그렇겠죠? 그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보다, 결국에는 있으니까 음악도 하려는 것이겠죠.”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양방언 음악의 철학은 컨버전스, 중간자로서의 프리미엄, 경계인으로 인식되는데, 자신은 실현했다고 보는가.

“실현중인 것 같아요. 아직 진행 중.”

최근 진행한 다큐멘터리 작업은 무엇인가.

“KBS의 < 세 번의 만남 >이라고 < 감성다큐 미지수 >의 후속 프로그램입니다. 토요일 밤 11시에 하는 프로에요. 제가 작년 12월에 콘서트를 준비했던 작업들을 다 찍었어요. 당연히 작업 현장에 카메라가 들어오게 되면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하고 부담이 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와 제작진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콘셉트에 대해서 동감을 했어요. 역시 동감하는 것이 어렵죠.”


양방언이 생각하기에 10년 동안 한국 음악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 같나.

“제가 일본에 살지 않습니까. 놀라웠던 것은 한국의 음악이 여기까지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너무 놀라운 거예요! 상업적이긴 하지만 일본 표현으로 하자면 대성(大成)한 거죠. 엄청난 비즈니스가 됐어요. 저는 좋은 일이라고 봐요. 지금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점점 열리고 있다고 할까요. 문화도 그렇고, 역사인식의 측면에서도 그렇고요. 사실 이전까지는 한마디로… ‘무관심’이었어요. 당연히 한류를 지켜보면서 아주 기분이 좋죠.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지금이 바로 한국의 음악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이지 않을까.”라는 것이죠. 상업적인 음악도 역시 시작이죠. 큰 문을 여는 거죠. 입구부터. 비단 상업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한다는. 거기에서 제 역할이 혹시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저의 역할은 없어요. 조금만 더 열리기를 바라죠.”

지금은 음악만 잘한다고 무조건 음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살아가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남게 되죠.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게 아주 중요하죠.”

두 음악가의 상반된 이야기가 있다. 양방언은 음악을 하면서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히사이시 조는 “음악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작품을 쓰면서 과연 행복한가.

“이런 이야기죠. 그분과 저는 여러 가지 존재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제가 보고 있는 관점은 역시 곡이 만들어졌을 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라이브를 관객 앞에서 연주할 때의 행복감에 맞춰져 있어요. 물론 도달하는 과정은 고통이죠. 그 분은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저는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구요. 얼마나 힘들지(웃음). 정말 죽을 뻔하기도 하죠? 마약성이에요, 마약.”

그래서 양방언의 간과 내장 검사를 하고 싶다.

“와, 이거 대박이다.(웃음) 오늘 대박이야. 이거.”

대박이라는 말도 안다?

“저도 10년 지났으니까요. (웃음)”

정말 건강을 걱정해야한다.

“이번처럼 힘든 적은 처음이었어요. 체력은 엄청난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 28곡을 연주했는데 다 첫 연주다 보니 작업량이 어마어마한 것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한 시간정도 잔 뒤에 다섯 개의 인터뷰를 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결국 쓰러질 뻔했습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더라고요.”



다채로운 작업에 참여를 했는데,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콘셉트가 또 있는가.

“이미 시작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다음 시도는 영상보다는 뮤지컬이 될 것 같아요. 조금 규모가 큰 창작 뮤지컬이요. 여러 작업을 하면서 아직 뮤지컬은 못해봤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제의를 주신 분이 있어서, 연구라기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현장에서의 트레이닝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작곡, 편곡, 녹음 작업은 제가 총괄한다는 전제로 진행하게 되었어요.”

국내에서 공연할 때도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팬들도 한국 공연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알고 있죠. 저는 숨기지 않아요.”

일본과 한국의 팬들 중 어느 지역이 더 많다고 보나.

“한국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일본에서 솔로활동을 아주 활발하게 하지는 않아요. 작품에 참여를 하는 것이 많죠. 공연도 덜 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한국이죠.”

한국에서 양방언을 가깝게 보게 된 기회가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였던 <자이니지(在日), 고민하는 영혼>이었다. 재일교포로서 새롭게 양방언을 보게 된 계기였는데, 본인의 감상은 어땠나.

“그런 점이 계기가 될 것이었다는 인식은 있어요. 물론 저도 좋았죠.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 ‘음악가 양방언’이라기보다 ‘재일교포 양방언’ 이런 부분이 비쳐져서 저는 아쉬워요. 이번에도 < 세 번의 만남 > 제작진과 이야기한 것도 그 부분이에요. 제작진분들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이니치’가 아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하셨고요. ‘자이니치’는 뿌리, 기원일 뿐이라는 개념으로 그렸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드렸고요. 그 논의는 중요한 문제에요. 물론 ‘자이니치’라는 것이 저의 배경이죠. 신기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저 본인에게는 결국 그것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양방언에게는 ‘자이니치’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죠. 그런 배경을 가지고는 있지만 경계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특별함도 있고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 부분으로만 빛이 가는 거죠.”

솔직히 국내에서 양방언에게 빛이 간 ?유는 스스로도 인정하듯 ‘재일(在日) 한인’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북한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드라마틱한 요소까지. 다수의 미디어는 그의 디스코그래피보다 바이오그래피에 집중했다. 물론 그의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경로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양방언=재일 한인’라는 등식의 고착화는 당사자로서는 여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부담스러운 짐이다.


어머니의 고향인 신의주에서 공연은 요즘 정세를 보면 아주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무서워요.(웃음) 환경이나 조건이 잘 정리됐으면 하는 거죠. 무조건 가면 잡히죠! (웃음)”

뉴에이지 아티스트로 구분하는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너무 싫어요. 뉴 에이지하면 잠이 오잖아요.(웃음) 그런데 사실 이틀째 공연 때 이루마 씨께서 게스트로 와주셨어요. 저랑은 너무 다른 스타일이잖아요. 신선해요. 저는 못하지만.”

최근 음악 듣고 있는 음악은.

“욘시(Jonsi)를 너무 좋아해요.”

10년 동안 록이 부진하기는 했지만 2000년 이후 록 밴드 가운데 주시하는 밴드가 있다면.

“많아요. 가장 좋아하는 팀은 라디오헤드(Radiohead). 재작년에 공연을 봤는데 정말 대단해요. 예술성이라고 할까. 머리 안에 있는 이미지가 이렇게 까지 음악으로 나올 수 있구나. 연출부터해서 영상에 이르기까지 콘서트에서 반영하는 모습을 보고 여기까지 대단한 존재구나라고 감탄했어요. 그리고 해산했지만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요. 마지막 공연을 2009년에 서머소닉에서 봤는데 기가 막혔어요. 너무 완벽했어요. 음악은 라우드(loud)한데 아름다운 거예요. 정말 음악이 예뻐요. 인텔리전스한 느낌도 잇고. 귀에 들려오는 드럼 사운드가 라이브라고 못 느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비판할 게 없었어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느낌을 받았어요. “죄송합니다, 더 공부하겠습니다!!”(웃음) 한국은 ‘국카스텐’ 좋아해요. 지난번에 만나서 식사도 했는데. 재미있던데요, 그 친구들. 존재감이라고나 할까. 한국 밴드의 대도약을 본 느낌이었어요.”

인터뷰 : 임진모, 홍혁의
사진 : 엔돌프뮤직
정리 : 홍혁의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양방언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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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0.30

양방언님 라디오헤드를 좋아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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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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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

1960년 1월 1일 일본 동경 출생의 재일 한국인 2세로 1999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작곡가 겸 연주가, 프로듀서이다. 일본의과대학교 졸업 후 마취과 의사로서 대학병원 근무 중 의사 가운을 벗고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The Gate of Dreams」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 후 일본,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는 물론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작곡가, 연주가, 편곡가, 프로듀서로 활동. 클래식, 락, 월드뮤직, 재즈 등 음악적 장르를 넘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가로서 영상음악(영화, CF, 다큐멘터리, 뮤지컬, 애니메이션, 온라인게임) 제작 및 OST 앨범 다수를 발표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메인테마곡으로 지정된 4집 앨범 「Pan-O-Rama」의 ‘Frontier’와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도를 그리는 'Prince of Jeju' 등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음악으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게임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사운드트랙은 그 해 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을 수상하였고, KBS TV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사운드트랙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영화TV음악 부분을 수상,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AION'은 한국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블록버스터 게임음악을 담당하여 화제가 되어, 한국 게임역사의 최고의 흥행기록을 매달 갱신하는 게임의 대성공과 함께 전 세계에 디지털 음원 서비스되는 등 하는 등 그의 음악은 모두'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