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특종
기자에게 특종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세상에 알렸다는 특종! 그것을 위해 카메라기자들은 12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뛰는지도 모른다. 기자들에겐, 특종은 3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상이 업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설(說) 아닌 설이 있다. 그만큼 실력 못지않게 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내게도 그런 특종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특종은 슬프디 슬픈 것이었다
20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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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연재 이벤트 |
기자에게 특종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세상에 알렸다는 특종! 그것을 위해 카메라기자들은 12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뛰는지도 모른다. 기자들에겐, 특종은 3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상이 업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설(說) 아닌 설이 있다. 그만큼 실력 못지않게 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내게도 그런 특종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특종은 슬프디 슬픈 것이었다.
2008년 설 명절의 끝자락에 주간 근무와 야근이 같이 걸렸다. 다행히 연휴 중간에는 근무가 없었기 때문에 고향에 다녀와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다. 연휴 마지막 날에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나겠느냐며 뉴스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급히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숭례문 일대 어딘가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불이 낫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역 방면에서 숭례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 어, 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려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며, 그래도 그나마 연기만 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현장 화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댔다. 연기가 잠잠해질 즈음 숭례문 안쪽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진화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이미 얼어서 미끄러워진 계단을 올라가 숭례문 내부 모습을 촬영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흘러가더니 이제 곧 불길이 잡힐 듯 보였다. 연기도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기가 정말 다행이라며, 이후 어떤 그림을 추가로 취재해야 좋을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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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기가 다시 점점 심해지더니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숭례문 현판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붕 내부에 있던 불길을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숭례문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을 보존하기 위해 결국 떼어내기로 결정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작업하는 소방관들과 현판을 주시했다. 작업을 한 지 오래지 않아 크레인이 좌우로 움직이며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숭례문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의경들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떨어진 현판을 쳐다봤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레코딩 불빛이 들어온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보면서도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숭례문>이라고 쓰여진 국보 1호의 현판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내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그때는 그 장면이 특종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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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부터 시뻘건 불길이 2층 누각 틈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날름거리는 뱀의 혀 같았다. 흰 연기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취재를 하느라 정확한 진화 상황을 그때그때 알 수는 없었지만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지붕의 구조를 자벼히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많은 물을 뿌려대는데도 안쪽의 불길이 잡히지 않는 모습에 처음에는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 많은 소방관들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마음 졸이며 그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센 불길은 숭례문 2층 누각을 집어삼켰다.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게 정말 현실의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는 걸까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한참을 타던 숭례문은 결국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을 떼어낸 숭례문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뿐 아니라 그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악몽 같은 밤을 보내고 전소된 모습으로 비참한 아침을 맞는 숭례문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난밤 내내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내 마음은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고자 하는 카메라기자의 의무감으로 꽉 차 있었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래서 당연히 여겼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아쉬움과 허무함은 무척이나 컸다. 게다가 현장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길이 숭례문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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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가니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찍은 나의 촬영 화면이 특종이란다. 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목숨 거는 바로 그 특종 말이다. 다들 우왕좌왕하다보니 다른 언론사들은 아무도 찍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을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이 슬픔은 무엇일까. 특종이 왜 이렇게 나를 슬프게 하는 걸까.
우리가 하는 일, 즉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다. 대형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현장에서도 카메라기자는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취재원과 카메라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재난 지역에선 구조보다 촬영이 먼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손수건을 건네주기보다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 게 바로 우리의 일이다. 그래서 마음이 굳세야 하고, 때론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에 나는 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숭례문은 아쉽게 떠나보냈지만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곁에서 기록할 수 있어서 국보 1호를 잃은 슬픔이 조금은 위로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땅바닥에 떨어지던 그 슬픈 특종의 순간을 나는, 내 카메라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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