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 사료와의 싸움, 역사소설 쓰기의 고통과 행복 -『논개』의 저자 김별아와 독자의 만남
역사소설 붐이다. 최근에만도 『남한산성』『리진』에 이어 『논개』가 나왔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칼의 노래』『불멸의 이순신』『미실』이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만큼 역사 관련 문화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중에서 역사소설이 이렇게 읽히는 이유는 무얼까? 지난 20일(금) 최근 나온 『논개』의 저자 김별아와 독자의 만남에 다녀왔다.
20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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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붐이다. 최근에만도 『남한산성』『리진』에 이어 『논개』가 나왔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칼의 노래』『불멸의 이순신』『미실』이 있다. 소설만이 아니다. <대조영> <한성별곡> <경성스캔들>을 비롯한 드라마는 물론, 영화로도 개봉된 『황진이』, 『럭키 경성』『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같은 역사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만큼 역사 관련 문화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중에서 역사소설이 이렇게 읽히는 이유는 무얼까? 지난 20일(금) 최근 나온 『논개』의 저자 김별아와 독자의 만남에 다녀왔다.
『논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남한산성』과 비교된다. 『남한산성』은 남성 작가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전쟁을 묘사했다면, 『논개』는 여성 작가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전쟁을 그렸다. 역사소설과 글쓰기 그리고 저자의 내밀한 생각에 대해 들어보는 그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보자.
“외국에서 책이 나오면 서점 투어를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작가와의 만남이 별로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런 문화가 시작되는 거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직접적인 만남이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독자분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타나면 여러분이 그나마 갖고 있던 호감도 비호감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되고요.(웃음)”
그는 강연회를 솔직한 대화의 자리로 만들기를 원했고, YES24 저자 강연회 이벤트 페이지에 꼬리말에 남겨준 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책을 처음 받으면 어떠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책이 나온 직후가 가장 우울해요. 저는 혼자 칩거하는 편인데, 요즘은 책을 홍보해야 하니까 열심히 나오기는 해요. 책을 하나 끝내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난 거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는 게 없어요. 독자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취감, 뿌듯함보다는 내가 하지 못했던 것, 앞으로 채워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죠.”
하나의 거대한 작업을 끝냈지만 또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을 얘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 중독’이라고 스스로 진단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책은 나왔지만, 앞으로 가야 할 먼 길을 또 생각하게 된단다.
그는 69년 강릉에서 부모님 모두가 초등학교 선생님인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나고, 장가 안 간 남동생이 있다는 말로 가족 구성원을 밝히면서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고, 그간의 인생역정은 어땠는지를 얘기했다.
“어머니가 그때만 해도 출산휴가가 한 달뿐이라 어렸을 때 동냥젖도 먹고 그랬다고 해요. 그런 환경적인 영향 때문인지 우울증도 있고, 어렸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밖으로는 명랑하고 모범적이고 활기차 보이게 살았지만요.”
자신은 메이저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특이한 분인 거 같다’는 그는 그런 독자들을 조금은 다른 것들을 봐주는 고마운 분들이라고 했다. 친구가 없고 우울한 아이의 유일한 출구가 책을 보는 거였는데, ‘만화책부터 닥치는 대로 읽고, 과자를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환심을 사는 아이’로 자신을 표현했다.
“많이 읽었던 것이 쓰게 한 것 같아요.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국어선생님이 어느 날 이청준의 『미인』을 읽어봤느냐고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같은 외국소설만 보던 때였거든요. 현대물을 읽지 않았는데, 책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때 이문열의 소설집 『들소』로 한국소설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분의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없이 소중하게 생각했고요.”
문학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언급한 작가는 ‘폼을 잡고 싶어 경포 바닷가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선생님 말씀은 물론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사춘기를 보냈다. 87년도에 서울에서 문학 하던 선배들이 대거 내려와 ‘세뇌’된 그는 부정선거 논란이 인 구로구청 선거를 놓고 아버지와 다툰 걸 계기로 가출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가 며칠 전 담배를 피우는 걸 알게 되면서 불거진 결과였다. 대학 시험을 일주일 남겨둔 상태였다.
어머니가 교문 앞에서 일주일을 지키면서 시험을 치르기를 호소해 시험을 치르고,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때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을 거란다. 그 시절 연세대는 늘 시위가 있었고, 4년 동안 매일 시위를 하면서 보냈다.
“총학생회에서 일했는데, 91년 강경대 사건이 났어요. 그때 아직도 기억하는 게 끊임없는 분신, 굴다리에서 불덩이가 되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하면서 문학과 운동 중에서 무얼 선택해야 하느냐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이후 고향에 내려가서 『신촌블루스』라는 단편집을 냈는데, 91년 5월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 후 28살에 결혼하고, 그 이듬해 출산을 했다.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애만 키웠는데, 그건 자신이 어렸을 때 느낀 어머니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다.
단편집 『꿈의 귀족』을 시점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디까지일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는 그는 문단에 배경을 갖고 있지도, 또 갖고 싶지도 않아서 ‘야전’에서 내 멋대로 활동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얻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렸다.
10년을 버티니 작가로 남았다
“내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갔어요. 재능 때문에 좌절하고, 현실 때문에도 좌절하고, 모두 포기하고 거의 다 사라졌어요. 나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이 자리에 남아있었던 것뿐이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10년 정도는 끌어라’라는 말을 한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저절로 현실이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가르쳐 주기에.
“소비적인 시대가 되고, 순수, 본격문학이 저절로 쇠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자도 줄고, 작가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번역문학은 이질적인, 이국적인 관심이 있는데, 한국문학은 재미없고 무겁고 지루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작가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봐요.”
작가들이 스스로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현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내지 못하면 문학의 침체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최남선, 이광수의 시대가 아니다. 그때는 문학이 문화의 최전선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현실인식이다.
“『논개』를 쓰면서 캐나다에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e북, 블로그를 봤는데 놀랐어요. 정보의 민주주의, 그걸 넘어서 정보의 범람이니까요. 작가가 어떤 역사 전공자보다 많은 자료를 가질 수 있겠구나, 무기 같은 걸 쓸 때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데, 쓰면서 많이 생각했던 게 내 머릿속 상상이나 체험으로는 세계를 해석해 낼 수 없겠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많은 정보가 떠도는데, 작가가 존재해야 한다면 이걸 어떤 실로 꿰느냐가 문제라는 말이다.
“제일 많이 궁금해 하시는 게 역사물 쓸 때 ‘어떻게 자료를 모으고 소재를 구하느냐’인 거 같은데, 저는 취미가 공부예요.(웃음) 이전에 『축구전쟁』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1969년에 온두라스에서 있었던 사건이죠. 이걸 쓰면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그는 자신이 자료의 과잉에 빠져 있다는 걸 고백했다. 많이 끊었는데도 그렇단다. 소설에서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모를 닮는다기보다 시대를 닮는다’라고 하는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공부하는 목적은 그런 장치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관련된 자료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데, 고대사 같은 건 책이 많지 않은데도, ‘바보 같은 짓, 맨땅에 헤딩하는 짓’을 계속한다. 백제의 ‘방’이라는 말 하나를 쓰려고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달랑 그거 하나 건진 게 전부인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즐겁단다.
“『미실』을 쓸 때는 참고로 삼았던 게 정사예요. 『삼국사기』『삼국유사』『화랑세기』인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시기에 이 세 책에서 어떻게 다르게 쓰여 있는지 꼼꼼히 검토해요. 말하자면 내 나름의 역사책을 만들어요.”
완벽하게 상황이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을 못 한다는 그는 더 이상 하지 못할 때까지 준비한다. 『미실』의 가계도도 직접 만들었다.
“자료가 너무 많으면 이야기가 죽기 때문에, 이번에 이걸 지적을 많이 받고, 자신도 잘 아는데 잘 안 돼요. 틀을 잡아서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거는 쉬운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찾아서 그걸 어떻게 이야기와 접합해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지금은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을 가르치지 않고 배우기만 하다 죽는 것이 ‘소원’
죽을 때까지 남을 가르치지 않고 배우기만 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는 유교에서 벼슬하지 못한 사람을 제사지낼 때 지방(紙榜)에 쓰는 ‘학생(學生)’이란 말이 아주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에도 그렇지만, 세상에 배울 게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쳤어도 나는 배웠구나, 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이렇게 되기까지 세월이 그만큼 많이 걸린 거죠. 만날 싸움질하고, ‘네가 내 말을 안 들어, 나는 끝까지 너를 어떻게든 설득할 거야’ 이랬던 것이 젊은 날이 지나가고 나니까 계속 배우고 있고, 또 그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강연회 중간 중간 ‘무서워요’라는 말을 했다. 수다를 떨듯이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진지하게 경청하는 독자들에게 혼자서 얘기하는 자리가 그의 말처럼 익숙하지도 않고, 또 일방적인 얘기가 민망해진 때문이리라.
그는 마이너리티의 성향이 있는데, 『미실』이 팔린 이후에 갑자기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지고 주목받는 데서 부담과 함께 불편까지 느끼는 듯했다. 그의 말처럼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무존재’로 있고 싶기 때문이다.
“『미실』을 쓸 때는 미실이 돼서 살려고 했어요. 소설 속처럼 앵두나무를 만지면서. 상상하지 마세요.(웃음) 『논개』를 쓸 때는 앞부분에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물을 무서워해서 가까이 안 가거든요. 그런데 물에 대한 감각을 알아야 할 거 같아서, 그리고 물에 빠진 시체가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법의학을 공부했어요.(일동 웃음) 미련한 짓인데, 〈CSI〉를 날마다 보고 그랬어요.”
물에 빠진 시체가 어떻게 분해되느냐, 어떻게 흩어지거나 어떤 빛깔이 되느냐, 독자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그 느낌과 상황을 모르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목이 졸리면 어떤 색깔의 멍이 남았다가 물속에서 어떻게 흩어지는지 그게 있더라고요. 물에 빠져서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 수영장에 가서 잠수하고.(웃음) 그걸 하고 나야 그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이 돼서 살 수 있을 거 같은 잠깐의 착각, 그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요.”
소설 속에 빠지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정말 행복하단다. 그 느낌을 자신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독자와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채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손에 탁 잡히는 느낌이 되도록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문체가 휘황찬란해진다.
“저도 그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역사물 같은 건 시기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걸 느끼기가 쉽지 않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그때도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역사인 거 같아요. 모든 소설이 역사소설인 거죠.”
“고정된 관념, 캐릭터들, 역사책 속에 갇힌 인물들을 끌어내서 숨결을 불어넣고 피와 살을 붙이고 싶었어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죠. 꾸준히 안 독자들, 선배작가분들 중에 너무 역사소설에 갇혀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특별히 역사소설을 쓰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쓰기에 스스로 물음이 끝날 때까지는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문체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우리말을 어떻게 구사하는지에 대해서요. 저는 야전에서 10년 동안 쓰고 있는데, 문장이 안 좋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문장 좋다는 얘길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는 ‘야전에서’란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아마 그가 요즘 준비하고 있는 전쟁사와 관련한 소설 때문에 입에 그 단어가 맴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저는 영어 공부하면서 우리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영어도 소설은 어려워요. 실용서 같은 책은 어렵지 않게 읽는데, 영어소설을 읽으면 나도 화를 내요. 같은 뜻의 말이라도 한 페이지에 같은 단어를 쓰지 않거든요. 한 페이지에 30, 40개의 단어를 찾아요. 그러면서 막 성질을 내요.(웃음) 이렇게 쓰는 게, 자기 언어에 대해 충실하게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평소 독자들이 ‘왜 모르는 단어를 많이 쓰느냐’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언어를 지키지 못했던 민족은 결국은 다 망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문학을 세계화하는 길이 더 쉬운 말을 써서 빨리빨리 번역되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 문화를, 정체성을 갖고자 우리말과 글을 더 찾아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이 죽으면 그 말이 같이 죽고, 우리도 같이 죽는 거예요. 말 하나하나가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이죠. 말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수천수만 년에 걸쳐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써왔던 고유한 정서이기에 그걸 지키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글은 아무리 어려운 단어라도 알아듣지 않습니까? 한두 개만 찾아보면. 영어는 한 단어를 모르면 못 읽어요. 한국어 독해력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영어는 문법 공부하고, 어휘 공부하고 하면서. 불편하니까 쓰지 말자는 건 동의할 수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번역문학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언어는 미묘한 것이기도 하고, 한국문학은 우리의 말이 쓰인 ‘한국어문학’으로서 살려야 하고, 그런 뜻에서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저도 안티가 많은데, 저도 사람인지라 독자서평을 자주 읽어보거든요. 나이 먹고 많은 일을 해왔는데도 어려운 게,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권위를 갖고 살아가는 게 불가능해 보여요. 머리 허연 남자가 쓰면 철학이고, 내가 하면 현학이죠.(웃음) 내가 한자를 쓰면 있어 보이려고 쓴다, 다른 분들이 쓰면 한학에도 조예가 깊으시다 이러죠.”
그는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 아니지만 노력하고 있고, 또 여자라는 것 때문에 저항을 받을 때는 도리 없이 계속 글을 쓰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다.
평론가보다 독자의 지적이 더 기쁘다
“문학이란 것 자체가 예전처럼 권위를 지니는 건 지났어요. 독자서평을 읽으면 좋은 게 ‘쓰레기’ 뭐 이런 욕 하는 건 참을 수 있어요. 특히 『미실』에선 저항감이 장난 아니었죠. 근데 그때는 그냥 딱 논개처럼 말하는 거죠.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상관없다고요.
독자분들 중에 정확하게 나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아픈 데를 콕 찌르는 사람이요. 들켰구나 싶어요. 평론가보다 독자가 더 잘 보는 것 같아요. 평론가는 작가를 가르치려 들거든요. 전 그 사람들에게 배울 생각이 없지만.(웃음) 정확한 지적을 하는 독자가 좋은 독자고, 간혹 그것보다 더 나아가는 독자들,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걸 콕 찍는 사람들, 그런 독자들은 더 좋은 독자예요.”
‘좋은 독자가 되는 건 좋은 작가가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그는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결국 쓰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작품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다음은 참석자와 주고받은 질의응답 내용이다.
Q)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잘난 척하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영어소설을 읽어요. 요즘은 중국소설도 많이 읽고요. 『붉은 수수밭』도 굉장히 좋았어요. 중국소설 읽고 나면 굉장히 우울해져요. 그 스케일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 같아요. 도저히 그 뻥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일동 웃음)
노신의 『아Q정전』, 바보 같고 어리석으면서 슬프고 이용당하고 그게 중국의 힘인 거 같아요. 중국의 상상력은 현실에 딱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그 뻥을 조금이라도 따라간 게 김시습이거든요. 팔을 뻗어 사해에 닿고, 손을 뻗어 별을 따고.(웃음) 이런 걸 못하는 거예요. 이거 제가 하면 ‘이제 별걸 다 하는구나’ 이럴 거거든요.
이탈리아 소설도 보고 있어요. 이탈리아 반도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해요. 악다구니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게. 요즘 전쟁사를 읽고 있거든요. 살살 준비하고 있어요. 한꺼번에 하면 죽을 거 같아서.(웃음)”
Q) 사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셨는데, 역사와 문학의 경계점은 어디인지, 비중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는지 궁금하고, 퓨전사극, 역사다큐 등 퓨전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자료를 읽으면서 그 자료가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를 못해요. 인물은 시대를 닮는다는데, 논개는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인물이기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기생으로 신분을 위장했는데, 애국, 절개보다도 그 시대를 극복한 인물이라 저는 존경해요. 그 시대에 모두가 이쪽으로 가는데, 다른 방향으로 가는 마이너리티를 좋아해요.
배경에 대한 건 최대한 정사를 따랐어요. 나머지 부분,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에는 상상력을 가미했는데 한계가 있어요. 유명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입지가 좁아요. 동화(同化)돼서 써야 하는데, 훌륭한 사람들에게 동화되기는 정말 어려워요. 나쁜 사람에 대해서 쓰면 훨씬 자유롭게 쓰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예전에는 역사물을 쓴다는 게 하위 장르였잖아요. 장르소설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소위 본격문학 하시는 작가분들이 쓰면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아요. 흥미를 위해서 왜곡하지 않는 것이 요즘 역사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게 정사를 훼손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논개』는 드라마판권을 팔았는데, 드라마는 완전히 다를 거예요. 정사를 훼손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삼각관계, 이런 흥미 위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분야는 터치를 안 하려고 해요.”
Q) 소설이나 수필집에서 문장이 무척 섬세하고 유려한데,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단어 하나하나 다 찾아서 쓰거든요. 그리고 몇 번씩 읽고요. 전 제 재능을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비관적인데, 열등감이 너무 심하면 반대급부로 그게 우월감이라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저는 제 재능을 믿지 않고 노력을 믿어요. 『논개』는 애초에 2,400매였다가 100매 정도 줄었는데, 진짜 토하면서 글을 써요. 언어를 많이 쓰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마조히스트 같은데, 작가는 그걸 해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일반인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죠. 왜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요.(웃음)
자기가 쓴 걸 자꾸 반복해서 읽어보고, 가장 중요한 건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는 거예요. 그걸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싶다면 문장에 대해서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하면서 스스로 검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방법이 없다는 거죠.(웃음)”
『논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남한산성』과 비교된다. 『남한산성』은 남성 작가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전쟁을 묘사했다면, 『논개』는 여성 작가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전쟁을 그렸다. 역사소설과 글쓰기 그리고 저자의 내밀한 생각에 대해 들어보는 그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보자.
“외국에서 책이 나오면 서점 투어를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작가와의 만남이 별로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런 문화가 시작되는 거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직접적인 만남이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독자분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타나면 여러분이 그나마 갖고 있던 호감도 비호감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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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연회를 솔직한 대화의 자리로 만들기를 원했고, YES24 저자 강연회 이벤트 페이지에 꼬리말에 남겨준 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책을 처음 받으면 어떠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책이 나온 직후가 가장 우울해요. 저는 혼자 칩거하는 편인데, 요즘은 책을 홍보해야 하니까 열심히 나오기는 해요. 책을 하나 끝내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난 거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는 게 없어요. 독자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취감, 뿌듯함보다는 내가 하지 못했던 것, 앞으로 채워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죠.”
하나의 거대한 작업을 끝냈지만 또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을 얘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 중독’이라고 스스로 진단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책은 나왔지만, 앞으로 가야 할 먼 길을 또 생각하게 된단다.
그는 69년 강릉에서 부모님 모두가 초등학교 선생님인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나고, 장가 안 간 남동생이 있다는 말로 가족 구성원을 밝히면서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고, 그간의 인생역정은 어땠는지를 얘기했다.
“어머니가 그때만 해도 출산휴가가 한 달뿐이라 어렸을 때 동냥젖도 먹고 그랬다고 해요. 그런 환경적인 영향 때문인지 우울증도 있고, 어렸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밖으로는 명랑하고 모범적이고 활기차 보이게 살았지만요.”
자신은 메이저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특이한 분인 거 같다’는 그는 그런 독자들을 조금은 다른 것들을 봐주는 고마운 분들이라고 했다. 친구가 없고 우울한 아이의 유일한 출구가 책을 보는 거였는데, ‘만화책부터 닥치는 대로 읽고, 과자를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환심을 사는 아이’로 자신을 표현했다.
“많이 읽었던 것이 쓰게 한 것 같아요. 문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국어선생님이 어느 날 이청준의 『미인』을 읽어봤느냐고 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같은 외국소설만 보던 때였거든요. 현대물을 읽지 않았는데, 책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때 이문열의 소설집 『들소』로 한국소설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분의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없이 소중하게 생각했고요.”
문학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언급한 작가는 ‘폼을 잡고 싶어 경포 바닷가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선생님 말씀은 물론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사춘기를 보냈다. 87년도에 서울에서 문학 하던 선배들이 대거 내려와 ‘세뇌’된 그는 부정선거 논란이 인 구로구청 선거를 놓고 아버지와 다툰 걸 계기로 가출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버지가 며칠 전 담배를 피우는 걸 알게 되면서 불거진 결과였다. 대학 시험을 일주일 남겨둔 상태였다.
어머니가 교문 앞에서 일주일을 지키면서 시험을 치르기를 호소해 시험을 치르고,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때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을 거란다. 그 시절 연세대는 늘 시위가 있었고, 4년 동안 매일 시위를 하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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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에서 일했는데, 91년 강경대 사건이 났어요. 그때 아직도 기억하는 게 끊임없는 분신, 굴다리에서 불덩이가 되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하면서 문학과 운동 중에서 무얼 선택해야 하느냐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이후 고향에 내려가서 『신촌블루스』라는 단편집을 냈는데, 91년 5월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 후 28살에 결혼하고, 그 이듬해 출산을 했다.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애만 키웠는데, 그건 자신이 어렸을 때 느낀 어머니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다.
단편집 『꿈의 귀족』을 시점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디까지일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는 그는 문단에 배경을 갖고 있지도, 또 갖고 싶지도 않아서 ‘야전’에서 내 멋대로 활동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얻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렸다.
10년을 버티니 작가로 남았다
“내 친구들은 다 떨어져 나갔어요. 재능 때문에 좌절하고, 현실 때문에도 좌절하고, 모두 포기하고 거의 다 사라졌어요. 나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이 자리에 남아있었던 것뿐이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10년 정도는 끌어라’라는 말을 한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저절로 현실이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가르쳐 주기에.
“소비적인 시대가 되고, 순수, 본격문학이 저절로 쇠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자도 줄고, 작가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번역문학은 이질적인, 이국적인 관심이 있는데, 한국문학은 재미없고 무겁고 지루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작가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다고 봐요.”
작가들이 스스로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현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내지 못하면 문학의 침체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최남선, 이광수의 시대가 아니다. 그때는 문학이 문화의 최전선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현실인식이다.
“『논개』를 쓰면서 캐나다에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e북, 블로그를 봤는데 놀랐어요. 정보의 민주주의, 그걸 넘어서 정보의 범람이니까요. 작가가 어떤 역사 전공자보다 많은 자료를 가질 수 있겠구나, 무기 같은 걸 쓸 때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데, 쓰면서 많이 생각했던 게 내 머릿속 상상이나 체험으로는 세계를 해석해 낼 수 없겠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많은 정보가 떠도는데, 작가가 존재해야 한다면 이걸 어떤 실로 꿰느냐가 문제라는 말이다.
“제일 많이 궁금해 하시는 게 역사물 쓸 때 ‘어떻게 자료를 모으고 소재를 구하느냐’인 거 같은데, 저는 취미가 공부예요.(웃음) 이전에 『축구전쟁』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1969년에 온두라스에서 있었던 사건이죠. 이걸 쓰면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그는 자신이 자료의 과잉에 빠져 있다는 걸 고백했다. 많이 끊었는데도 그렇단다. 소설에서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모를 닮는다기보다 시대를 닮는다’라고 하는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공부하는 목적은 그런 장치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관련된 자료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데, 고대사 같은 건 책이 많지 않은데도, ‘바보 같은 짓, 맨땅에 헤딩하는 짓’을 계속한다. 백제의 ‘방’이라는 말 하나를 쓰려고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달랑 그거 하나 건진 게 전부인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즐겁단다.
“『미실』을 쓸 때는 참고로 삼았던 게 정사예요. 『삼국사기』『삼국유사』『화랑세기』인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시기에 이 세 책에서 어떻게 다르게 쓰여 있는지 꼼꼼히 검토해요. 말하자면 내 나름의 역사책을 만들어요.”
완벽하게 상황이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을 못 한다는 그는 더 이상 하지 못할 때까지 준비한다. 『미실』의 가계도도 직접 만들었다.
“자료가 너무 많으면 이야기가 죽기 때문에, 이번에 이걸 지적을 많이 받고, 자신도 잘 아는데 잘 안 돼요. 틀을 잡아서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거는 쉬운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찾아서 그걸 어떻게 이야기와 접합해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지금은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을 가르치지 않고 배우기만 하다 죽는 것이 ‘소원’
죽을 때까지 남을 가르치지 않고 배우기만 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는 유교에서 벼슬하지 못한 사람을 제사지낼 때 지방(紙榜)에 쓰는 ‘학생(學生)’이란 말이 아주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에도 그렇지만, 세상에 배울 게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쳤어도 나는 배웠구나, 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이렇게 되기까지 세월이 그만큼 많이 걸린 거죠. 만날 싸움질하고, ‘네가 내 말을 안 들어, 나는 끝까지 너를 어떻게든 설득할 거야’ 이랬던 것이 젊은 날이 지나가고 나니까 계속 배우고 있고, 또 그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강연회 중간 중간 ‘무서워요’라는 말을 했다. 수다를 떨듯이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진지하게 경청하는 독자들에게 혼자서 얘기하는 자리가 그의 말처럼 익숙하지도 않고, 또 일방적인 얘기가 민망해진 때문이리라.
그는 마이너리티의 성향이 있는데, 『미실』이 팔린 이후에 갑자기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지고 주목받는 데서 부담과 함께 불편까지 느끼는 듯했다. 그의 말처럼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무존재’로 있고 싶기 때문이다.
“『미실』을 쓸 때는 미실이 돼서 살려고 했어요. 소설 속처럼 앵두나무를 만지면서. 상상하지 마세요.(웃음) 『논개』를 쓸 때는 앞부분에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물을 무서워해서 가까이 안 가거든요. 그런데 물에 대한 감각을 알아야 할 거 같아서, 그리고 물에 빠진 시체가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법의학을 공부했어요.(일동 웃음) 미련한 짓인데, 〈CSI〉를 날마다 보고 그랬어요.”
물에 빠진 시체가 어떻게 분해되느냐, 어떻게 흩어지거나 어떤 빛깔이 되느냐, 독자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그 느낌과 상황을 모르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목이 졸리면 어떤 색깔의 멍이 남았다가 물속에서 어떻게 흩어지는지 그게 있더라고요. 물에 빠져서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 수영장에 가서 잠수하고.(웃음) 그걸 하고 나야 그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이 돼서 살 수 있을 거 같은 잠깐의 착각, 그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요.”
소설 속에 빠지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정말 행복하단다. 그 느낌을 자신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독자와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채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손에 탁 잡히는 느낌이 되도록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문체가 휘황찬란해진다.
“저도 그걸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역사물 같은 건 시기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걸 느끼기가 쉽지 않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그때도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역사인 거 같아요. 모든 소설이 역사소설인 거죠.”
“고정된 관념, 캐릭터들, 역사책 속에 갇힌 인물들을 끌어내서 숨결을 불어넣고 피와 살을 붙이고 싶었어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죠. 꾸준히 안 독자들, 선배작가분들 중에 너무 역사소설에 갇혀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특별히 역사소설을 쓰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쓰기에 스스로 물음이 끝날 때까지는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문체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우리말을 어떻게 구사하는지에 대해서요. 저는 야전에서 10년 동안 쓰고 있는데, 문장이 안 좋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문장 좋다는 얘길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는 ‘야전에서’란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아마 그가 요즘 준비하고 있는 전쟁사와 관련한 소설 때문에 입에 그 단어가 맴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저는 영어 공부하면서 우리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영어도 소설은 어려워요. 실용서 같은 책은 어렵지 않게 읽는데, 영어소설을 읽으면 나도 화를 내요. 같은 뜻의 말이라도 한 페이지에 같은 단어를 쓰지 않거든요. 한 페이지에 30, 40개의 단어를 찾아요. 그러면서 막 성질을 내요.(웃음) 이렇게 쓰는 게, 자기 언어에 대해 충실하게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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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 독자들이 ‘왜 모르는 단어를 많이 쓰느냐’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언어를 지키지 못했던 민족은 결국은 다 망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문학을 세계화하는 길이 더 쉬운 말을 써서 빨리빨리 번역되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 문화를, 정체성을 갖고자 우리말과 글을 더 찾아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이 죽으면 그 말이 같이 죽고, 우리도 같이 죽는 거예요. 말 하나하나가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유산이죠. 말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수천수만 년에 걸쳐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써왔던 고유한 정서이기에 그걸 지키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글은 아무리 어려운 단어라도 알아듣지 않습니까? 한두 개만 찾아보면. 영어는 한 단어를 모르면 못 읽어요. 한국어 독해력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영어는 문법 공부하고, 어휘 공부하고 하면서. 불편하니까 쓰지 말자는 건 동의할 수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번역문학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언어는 미묘한 것이기도 하고, 한국문학은 우리의 말이 쓰인 ‘한국어문학’으로서 살려야 하고, 그런 뜻에서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저도 안티가 많은데, 저도 사람인지라 독자서평을 자주 읽어보거든요. 나이 먹고 많은 일을 해왔는데도 어려운 게,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권위를 갖고 살아가는 게 불가능해 보여요. 머리 허연 남자가 쓰면 철학이고, 내가 하면 현학이죠.(웃음) 내가 한자를 쓰면 있어 보이려고 쓴다, 다른 분들이 쓰면 한학에도 조예가 깊으시다 이러죠.”
그는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 아니지만 노력하고 있고, 또 여자라는 것 때문에 저항을 받을 때는 도리 없이 계속 글을 쓰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다.
평론가보다 독자의 지적이 더 기쁘다
“문학이란 것 자체가 예전처럼 권위를 지니는 건 지났어요. 독자서평을 읽으면 좋은 게 ‘쓰레기’ 뭐 이런 욕 하는 건 참을 수 있어요. 특히 『미실』에선 저항감이 장난 아니었죠. 근데 그때는 그냥 딱 논개처럼 말하는 거죠.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상관없다고요.
독자분들 중에 정확하게 나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아픈 데를 콕 찌르는 사람이요. 들켰구나 싶어요. 평론가보다 독자가 더 잘 보는 것 같아요. 평론가는 작가를 가르치려 들거든요. 전 그 사람들에게 배울 생각이 없지만.(웃음) 정확한 지적을 하는 독자가 좋은 독자고, 간혹 그것보다 더 나아가는 독자들,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걸 콕 찍는 사람들, 그런 독자들은 더 좋은 독자예요.”
‘좋은 독자가 되는 건 좋은 작가가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그는 ‘앞으로 잘 쓰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결국 쓰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작품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다음은 참석자와 주고받은 질의응답 내용이다.
Q)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잘난 척하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영어소설을 읽어요. 요즘은 중국소설도 많이 읽고요. 『붉은 수수밭』도 굉장히 좋았어요. 중국소설 읽고 나면 굉장히 우울해져요. 그 스케일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 같아요. 도저히 그 뻥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일동 웃음)
노신의 『아Q정전』, 바보 같고 어리석으면서 슬프고 이용당하고 그게 중국의 힘인 거 같아요. 중국의 상상력은 현실에 딱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그 뻥을 조금이라도 따라간 게 김시습이거든요. 팔을 뻗어 사해에 닿고, 손을 뻗어 별을 따고.(웃음) 이런 걸 못하는 거예요. 이거 제가 하면 ‘이제 별걸 다 하는구나’ 이럴 거거든요.
이탈리아 소설도 보고 있어요. 이탈리아 반도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해요. 악다구니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게. 요즘 전쟁사를 읽고 있거든요. 살살 준비하고 있어요. 한꺼번에 하면 죽을 거 같아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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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셨는데, 역사와 문학의 경계점은 어디인지, 비중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는지 궁금하고, 퓨전사극, 역사다큐 등 퓨전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자료를 읽으면서 그 자료가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를 못해요. 인물은 시대를 닮는다는데, 논개는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인물이기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기생으로 신분을 위장했는데, 애국, 절개보다도 그 시대를 극복한 인물이라 저는 존경해요. 그 시대에 모두가 이쪽으로 가는데, 다른 방향으로 가는 마이너리티를 좋아해요.
배경에 대한 건 최대한 정사를 따랐어요. 나머지 부분,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에는 상상력을 가미했는데 한계가 있어요. 유명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입지가 좁아요. 동화(同化)돼서 써야 하는데, 훌륭한 사람들에게 동화되기는 정말 어려워요. 나쁜 사람에 대해서 쓰면 훨씬 자유롭게 쓰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예전에는 역사물을 쓴다는 게 하위 장르였잖아요. 장르소설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소위 본격문학 하시는 작가분들이 쓰면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아요. 흥미를 위해서 왜곡하지 않는 것이 요즘 역사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게 정사를 훼손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논개』는 드라마판권을 팔았는데, 드라마는 완전히 다를 거예요. 정사를 훼손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삼각관계, 이런 흥미 위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분야는 터치를 안 하려고 해요.”
Q) 소설이나 수필집에서 문장이 무척 섬세하고 유려한데,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단어 하나하나 다 찾아서 쓰거든요. 그리고 몇 번씩 읽고요. 전 제 재능을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비관적인데, 열등감이 너무 심하면 반대급부로 그게 우월감이라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저는 제 재능을 믿지 않고 노력을 믿어요. 『논개』는 애초에 2,400매였다가 100매 정도 줄었는데, 진짜 토하면서 글을 써요. 언어를 많이 쓰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마조히스트 같은데, 작가는 그걸 해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일반인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죠. 왜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요.(웃음)
자기가 쓴 걸 자꾸 반복해서 읽어보고, 가장 중요한 건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는 거예요. 그걸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싶다면 문장에 대해서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하면서 스스로 검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방법이 없다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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