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과학지식을 풀어 설명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평가 받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가 번역된 것은 1990년대 전반부의 일이다. 1992년과 1993년『이기적 유전자』가 두 곳의 출판사를 통해 번역된 것을 필두로,『눈먼 시계공』(민음사, 1994년)과『에덴 밖의 강』(동아출판사, 1995년), 이렇게 세 권의 단독저서가 한글판을 얻었다.
『에덴 밖의 강』의 서문에서 도킨스는 이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가 "생명을 영위하는 방식"은, 곧 "DNA에 수록된 내용을 미래로 전달하는 방식"과 동의어임을 독자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내가 '강(江)'이라고 말한 것은 지질시대를 관통해 흘러들어오면서 가지를 쳐 온 DNA의 강이다. (그러면) 강물이 넘쳐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하는 가파른 강둑은 무엇일까. 그것은 유전자가 섞이는 것을 제한하는 종(種)이라는 장벽에 대한 비유이다." 에덴이 가리키는 바에 대해서는 서문에서 이렇다 할 언급이 없으나, 그것이 '창조론'을 지칭하는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가 그때까지 일구어진 동물생물학, 사회생물학의 성과를 입문서 형식으로 소개하면서 도킨스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가미해 은연중에 진화론을 옹호한 책이라면, 『눈먼 시계공』은 진화론을 노골적으로 옹호한 책이다. 진화론을 옹호한다는 말은 창조론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말이다."
『눈먼 시계공』번역자의 설명이다.『눈먼 시계공』 에서 도킨스는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로 삼는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도 정면으로 대응하지만, 도킨스는 제목에서부터 창조론을 반박한다.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시계공'이라는 말은 19세기의 신학자 윌리엄 페얼리의 유명한 논문에서 빌려 온 것이다. 1802년에 출판된 그의 논문 「자연신학 또는 자연현상에서 수립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는 그 동안 가장 잘 알려진 창조론 해설서이며, 신의 존재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주장으로 평가되어 왔다."
도킨스는 페얼리의 글을 읽고 자신이 감탄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또, 페얼리의 시대에는 창조론이 진화론을 압도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확신에 차서 설득력 있게 창조론을 해명하려 했어도, 생명의 수수께끼에 대해 전통적인 종교적 해답을 구했다는 점에서 페얼리의 특별한 설명은, 그것 자체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페얼리의 주장은 당대 최고 수준의 생물학 지식에 의거하였지만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틀린 주장이었다. 망원경과 눈을 비교하는 것, 그리고 시계와 생명체를 비교하는 것은 오류이다. 비록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그 과정을 전개하였지만 모든 자연 현상을 창조한 유일한 '시계공'은 맹목적인 물리학적 힘이다."
그리고 도킨스는 실제의 시계공은 앞을 내다볼 수 있어도 생물의 진화를 추동하는 어떤 힘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일 거라고 덧붙인다.
"다윈이 발견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은 확실히 어떤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생명체의 형태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며, 거기에는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그것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먼 시계공』의 머리말에서 도킨스는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책이 일회적인 충격으로 끝나기보다는 꾸준히 읽혀지길 원한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글판 『눈먼 시계공』과『에덴 밖의 강』은 일회적 충격조차 거의 주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재출간의 가치가 충분한 두 권이 다시 나오길 바라 마지않는다.『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년)가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게다가 이 책은 절판된 두 권의 공백을 어느 정도 채워 주기도 한다. 도킨스의 첫번째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는 후속 저서들의 발원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생물학을 탐구하는『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전제한다. 그런 다음, 성공한 유전자에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특질이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주제를 논한다. 유전자의 이기성이 이기적인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커다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킨스는 생물 개체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해묵은 오해를 바로 잡는다. 생물은 그것이 속한 종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위하도록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언뜻 이타적 행동으로 비치는 것도 결국은 유전자와 개체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다. 유전자 수준에서 이기주의가 이타주의에 비해 우세하다 해도, 이기적 유전자가 수지타산에만 골몰하진 않는다. "DNA의 진정한 '목적'은 생존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또, 그의 이기적 유전자론은 인간의 매몰찬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다 도킨스의 본심과는 거리가 있다. 도킨스도 공원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고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도킨스가 제시한 '밈(meme) 이론'은 유전자 결정론의 항체 구실을 한다. 도킨스는 밈의 예로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의 양식, 단지 만드는 법, 또는 아치 건조법 등을 든다. 이러한 밈이 전파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하는 데에 정자나 난자를 운반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밈이 밈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는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처럼 그 생각을 잘 이해하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밈은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고안한 '아비투스'와 비슷한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된 책이다.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국내외의 평자들은 하나 같이 책의 '평이함'에 대해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도킨스 또한 "과학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이 책의 내용이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아무리 생물학에 문외한일지언정 바보는 아닌 독자를 상정하고 그를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해도『이기적 유전자』의 독자는 유전자와 진화론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다 확률과 게임이론에도 밝아야 한다. 아울러 문학적 감수성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반복되는 유전자 용어가 다소 지루해질 것을 감안해 도킨스는 비유적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간결하고 생생한 표현"을 위해서라는 비유적 표현의 사용 목적이 달성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해의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분절 형태를 취한 본문 구성도 내용의 원활한 전달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이기적 유전자』는 푸코의『지식의 고고학』(이 책의 내용 역시 만만치 않다)과 함께 어느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들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컴퓨터 특수문자로 만든 아이콘이 잔뜩 들어 있는『그 놈은 멋있었다』류의 소설에 열광하는 청소년이『이기적 유전자』와『지식의 고고학』을 읽고 내용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이기적 유전자』를 다른 책과 겹쳐 읽는 것도 재미있겠다. 매트 리들리의『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년)는 제목만 봐서는『이기적 유전자』와 대립항을 이루는 듯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덕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 정도로 옮겨지는 원제목(Origins of Virtue)이 이를 잘 말해주거니와 이 책은 되려『이기적 유전자』를 보완하는 성격이 짙다. "'이기적 유전자' 혁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무시하고 배척하라는 냉혹한 홉스주의적 명령이 결코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타주의의 입지를 확보해 준다."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비투스 B. 드뢰셔의『휴머니즘의 동물학』(이마고, 2003년)은 야생 동물의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마당이 결코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동물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협력이 동물들의 일반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최성일
시나브로
2019.08.16
purely8221
2019.08.10
친정 엄마와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
딸 아이들에게 외할머니와 엄마가 만든 필통을 꼭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
alex655
2019.08.07
2학기를 시작하는 아들에게 직접 만든 필통을 선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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