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럽고 지루했던 첫 만남 『앵무새 죽이기』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9.20
작게
크게


어렸을 때 주로 읽던 책은 만화책과 위인전, 문고판 형식의 세계문학전집이 전부였죠.
아버님이 쓰시는 책장에 꽤 많은 책이 꽂혀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만들어놓은 팝송모음집을 감상하거나 낙서하는 게 너무 재밌었기에 그 곳에 있는 책은 신경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오늘부터는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는 책을 슬슬 읽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란 생각에 서재에 들어가서는 무얼 읽어볼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는 책 제목을 훑기 시작하는데 시선을 확 끄는 제목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이었습니다.
뭔가 상당히 시니컬한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위인전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한 두께가 맘에 들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이었기에 야한 내용의 소설이길 바랐던 기억도 살짝 납니다만, 분명 잘못된 기억일 거예요. 정말이에요)

책상의 스탠드를 켜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꼭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제 또래의 친구들은 읽고 있지 않거나 제목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책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겨난 긍지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실 『앵무새 죽이기』란 책의 내용을 전혀 몰랐기에 앞부분에 나오는 래들리 집 앞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소동에 꽤나 흥분해서는 '우와 이거 왠지 내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란 생각에 흐뭇해했었습니다만 50페이지를 지나고 1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는 하품이 잦아졌고, 2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전 페이지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만약 한 번 읽은 페이지는 조금씩 잉크가 증발해버리면서 책의 인쇄 상태가 옅어진다면 백지가 되어버릴 만큼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죠. 하지만 한 번 넘기기 시작한 책은 꼭 끝까지 봐야한다는 사명감에 300페이지를 넘기고 400페이지를 넘기며 결국은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마지막 페이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마라토너가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처럼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다 읽었다는 만족감은 상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책 자체는 정말 따분하고 지루했었죠.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만큼 제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심심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가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란 맛있는 과자와 초콜릿을 많이 팔고 평균 키가 굉장히 큰 나라랄까요? 인종차별, 사람에 대한 편견, 읽어버린 인권, 진실에 대한 추구 등등 이런 단어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였으니까요.

뭐 여하튼 최근에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번역본을 읽으면서도 '하퍼 리'의 등장에 매우 반가워할 만큼 이제는 좋아하는 소설이 되어버린 『앵무새 죽이기』지만 처음 읽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지루함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나저나 하퍼 리 씨의 신작은 과연 읽어 볼 수 있기는 한 걸까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저/김욱동 역 | 문예출판사

미국 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 '차이'와 '관용'을 다룬 작품으로서 나이 어린 주인공이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대표적인 성장 소설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토니오 크뢰거』등을 들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 역시 이러한 부류에 속하면서도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닌 '소녀'를 화자이며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 중에 하나다.
인종문제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완역본.
13의 댓글
User Avatar

책방꽃방

2009.07.17

전 이거 영화루 보구 무척 감동받아 책으루 일게 되었는데 영화가 더 재밌긴해요^^ 책을 읽으니 자꾸 책속의 아빠가 그레고리팩과 연관이 지어져 캐릭터가 딱 어울린단 생각이 들더만요^^ 그리고 아이들의 질문과 질문! 애매하지만 참 지혜롭게 답해주는 아빠와 아이들을 키우다 시피하신 흑인 아줌마!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행동들이 너무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책도 그렇던걸요! 인권이니 어쩌니 하는것보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답글
0
0
User Avatar

hsa2000kr

2006.11.04

앵무새 죽이기는 정말 감동적이죠. 읽고 나서는 전세계 인 모두에게 이 책을 배부해서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습니다. 물론 불가능하고, 가능하다 해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선물해주고 싶었던..; 제 친구는 제목만 보고 이상한 책-이라고 해버렸지만...ㄱ-
답글
0
0
User Avatar

jooyeup

2006.10.27

이 글 넘 공감해요...심지어 전 이 책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나서 얼마전에 다시 읽었어요...고등학교땐가 산건데 그땐 정말 지루해서 읽다가 포기했었던 것 같아요...근데 다시 읽으니까 꽤 괜찮았어요...한편으로는 영화'몬스터하우스'랑 비슷한 부분도 있고 미국아이들의 정서도 참 재밌어요...해적 좋아하고 몬스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어릴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은 참 색다른 것 같아요...그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책의 느낌...참 좋아요...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기탄 한석봉 한자 B단계 3집

편집부

출판사 | 기탄교육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저/<김욱동> 역

Writer Avatar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