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약한 여성 청년 ‘강하고’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강하고 힘센 근육질 할머니들과 바다 마을 ‘구절초리’에서 동고동락하게 되면서 생의 의지와 나아갈 용기를 찾아간다. 김슬기 작가는 “완전히 망가진 외로운 사람이 어딘가에서 회복하는 이야기”를 떠올린 끝에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홀로 세상을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기 때문에 다 자란 어른에게도 보살핌은 필요한 법!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강하고 힘센 구절초리 할머니들의 돌봄 아래 서서히 활기와 사랑, 끈끈한 연대의 힘을 되찾아가는 주인공 ‘하고’의 모습을 통해 푹 쉬어갈 수 있는 소설 속 세계를 만나보자.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장편소설은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숨은 벌써 턱끝까지 차오르고, 결승선은 아득하게만 느껴지죠.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나 끊임없이 되묻게 되고요. 브런치스토리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게 된 건, 글을 읽은 분들이 눌러주는 ‘라이킷’의 힘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마라톤도 그렇잖아요. 중간중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 주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요. 여전히 미완인 상태로 시작한 연재이긴 했지만, 몇몇 사람들이 ‘재미있었다’ 하고 눌러주는 ‘라이킷’은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에너지원이었답니다. 그렇게 성실히 한 걸음 내디디며 완주한 마라톤인데, 덜컥 1등을 해버린 기분이랄까요. 과분한 기회라 생각한 만큼, 출간을 위해 더 열심히 쓰려 노력했어요.
브런치북 연재에서부터 단행본 출간까지, 여러 방향으로 독자들을 만나오신 걸로 알아요. 혹시 기억에 남는 독자 리뷰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단행본 출간에 앞서 예스24 크레마클럽에서 사전 연재가 시작됐어요. 사실상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에, 매일 접속해서 반응을 살폈죠. 그래서 그곳에 남겨진 리뷰/한줄평은 하나하나가 제겐 소중하고 특별했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음 화를 읽고 싶은데 아직 안 나왔어요”라는 짧은 댓글이었어요. 작가에게 ‘더 읽고 싶다’는 말만큼 큰 칭찬이 또 있을까요.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구나, 정말 다행이다. 그제야 마음을 놓았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찔끔 났답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할머니 3인방(왕영춘, 오길자, 신원주)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이 세 분의 캐릭터를 설정하게 되셨나요?
도시에서 버티듯 살았던 주인공인 강하고는 말 그대로 ‘완전히’ 망가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철거를 앞둔 집에 머물고, 텅 빈 냉장고 문을 의미 없이 여닫고,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어요. 이런 주인공을 데리러 오는(구원 혹은 납치) 할머니 3인방은 그래서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 ‘의식주’를 할머니들이 하나씩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맞춤형 옷을 제작하는 신원주(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징어 요리를 만드는 오길자(식), 구절초리라는 커다란 집으로 주인공을 데리고 오는 왕영춘(주) 할머니가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인 서른셋의 ‘강하고’는 누구나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살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대단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크고 작게 상처받는 일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어떤 사람이든 인생에 한 번쯤은 ‘강하고’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 같고요. 작가님께는 ‘강하고’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요.
주인공 ‘강하고’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진 않았지만, 저 역시 한때는 내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시기를 겪은 적이 있어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세상엔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외로운 시절이었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누구에게나 무너진 시절은 한 번쯤 찾아오는 것 같아요. 소설 도입부에서의 강하고의 삶은,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강하고를 회복시키는 건, 그래서 더더욱 제게 중요한 의미였어요. 의지를 활활 불태웠어요. 어떻게 하면 더 살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할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하면 구절초리 마을 사람들이 강하고에게 더 ‘귀찮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지요. 소설의 끝에, 강하고에게도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요. 그 부분을 쓰면서, 강하고의 삶을 회복시킨 줄 알았는데 결국 회복된 건 작가인 저 자신이었더라고요. 소설을 쓰면서 제 내면의 망가진 어떤 부분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를 얘기할 때 “강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젊은 여성들의 소망을 잘 담아내고 있고요. 왜 여성들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왜 우리 여성들은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걸까요.
지금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많은 여성에게 ‘강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해요. 지금의 나는 가난하고, 나약하고 자꾸 흔들리는 것 같지만 이 삶이 결국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버틸 만한 기분이 들거든요. 체육관에서 근력 운동을 할 때도 그렇잖아요. 막상 할 때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당장이라도 바닥에 쭉 뻗어버리고 싶은데, 견디고 견디다 보면 몇 달 뒤엔 조금 더 강해진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요.
‘구절초리’라는 가상의 바다 마을에 관한 묘사가 정말 아름다워요. 특히, 이 마을에서 ‘강하고’가 먹은 음식들에 대한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데요. 오징어물회, 배추전, 오징엇국, 그리도 각종 음료들까지요! 이런 감각적인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은 밤낮으로 전쟁을 하는데, 대체 언제 밥을 먹는 거야?”
책, 영화, 드라마 가릴 것 없이 ‘밥 먹는 장면이 거의 없는’ 작품들을 감상할 땐 늘 불만이었어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날 텐데, 밥을 안 먹어서 싸움에서 진 것 아냐, 하면서요. 그래서일까요. 단편, 장편 가릴 것 없이 제 소설들에선 먹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혼자서도, 둘이서도 혹은 여럿이서도 모여 앉아 무언가를 먹어요. 그것도 맛있게. 제 소설에선 밥상을 엎는 사람도, 먹을 것에 몹쓸 짓을 하는 사람도 없죠. 먹는 순간만큼은 소설 속 등장인물도 허리띠를 풀고 쉬길 바라는 마음이 든달까요. 기왕 먹는 것 최고로 맛있는 걸 드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음식 묘사에 더 신경을 썼어요. 특히 이번 소설의 ‘오징어’는 어린 시절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이기도 해서, 이번 작품에서 더 신나게 쓸 수 있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으신지요.
우리가 꿈꾸는 게 대단한 게 아니잖아요. 그저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 그뿐인지도 모르는데사는 게 참 녹록지가 않습니다. 평범하기 위해서 들여야 할 노력이, 아니 ‘노오오오력’이 우리를 탈진 상태에 이르게도 하지요.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래서 모든 것이 소진되어 털썩 쓰러진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잠깐이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바다 마을 ‘구절초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마을에 가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오시라고요. 힘껏 살아내라고 등짝을 얻어맞기도 하고, 아무런 노력 없이도 거저 주어지는 사람들의 정도 흠뻑 느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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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출판사 | 클레이하우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