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룸
을지로 인쇄소 골목에 자리한 ‘라이팅룸’은, 디지털이 장악해버린 세상 속에서 손으로 쓰는 풍경과 느린 기록의 낭만을 다시 데려올 수 있다고 믿는 공간입니다. 주인장 예원님은 이곳을 찾은 수많은 이들이 종이 위에 남기고 간 이야기를 엮어 한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먼저 운영 중이신 ‘라이팅룸’을 소개해주세요. 책 앞 부분에 ‘라이팅룸 기획노트’라는 페이지가 있더라고요. 공간을 오픈하기까지의 숱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라이팅룸은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릴 적부터 종이 위에 뭔가를 끄적이거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장을 꿈꿔왔어요. 오로지 쓰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지금의 라이팅룸을 꾸렸습니다. 아날로그 글쓰기만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여, 핸드폰용 서랍도 만들고 노트북 사용도 제한한 것도 특징이에요.
라이팅룸은 아무 준비물 없이 ‘쓰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오면 되는 곳이에요. 방문객들에겐 랜덤 글감이 담긴 봉투를 드려요. 글감을 보고도 여전히 뭘 써야 할지 모를 때는, 비치되어 있는 공유 노트를 펴보실 수 있어요. 그동안 오간 분들이 쓴 노트가 여러 권 놓여 있답니다. 글쓰기와 사색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라이팅룸의 출구에는 우편함이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나누고 싶다면 이곳에 넣고 가는 거죠.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는 그 우편함에 모인 글을 엮은 책입니다.
우편함
라이팅룸에 쌓인 수많은 기록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나요? 그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2년 동안 1000장이 훌쩍 넘는 글이 쌓였어요.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루틴처럼 밤마다 쌓여 있는 글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었어요. 제각각 다른 글씨로 써 내려간 글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느껴져 선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글쓴이의 솔직함이 잘 드러나는지, 책을 읽는 분들에게 울림이 가닿을지를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약 100개의 글을 고르고 그 위에 어떤 답장을 얹을지 고민했던 시간들은 돌아보면 참 영광스러운 날들이라 여겨집니다. 타인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이야기를 선물받고, 그것들을 세상에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운 일 같아요.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저는 사춘기를 인도에서 보냈어요. 여러 명의 또래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참 많았어요. 너무나 엄격한 분위기의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힘겨웠던 기억이 납니다. 감정을 표출하면 불려 가 혼나기 일쑤였죠. 질풍노도의 시기에 낯선 곳에 외로이 놓여 있었기에, 솟구치는 감정을 풀어낼 곳이 일기장밖에 없었어요. 그 안에서는 내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된다는 안도감에, 새벽까지 잠도 안 자며 쓰고 또 썼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일기장을 들킬까, 서랍 맨 아래 칸에 꽁꽁 숨겨두었던 모습도 떠올라요. 그렇게 보낸 밤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또, 쓰는 행위만큼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믿게 되었어요. 이렇게 종이 위에서 제 감정에 솔직했던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힘든 날 기쁜 날 모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제 모습이 책의 제목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책의 편집 방식이 흥미롭더라고요. 손글씨를 조각조각 편집해 코멘트처럼 활용하신 부분도 재밌었고, 중간중간 주인장 예원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 다채롭게 느껴졌어요.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의 손글씨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어요. 라이팅룸에서 원본 종이 기록을 읽는 때 느껴지는 감정이 책을 읽는 독자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랐거든요. 막상 한 권의 책에 제각각의 손글씨를 담으려니 가독성을 챙기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예쁜 글씨체의 짧은 글만 담고 싶진 않았거든요. 여백에는 일부 문구들을 오려 배치해 원본을 읽고 싶은 호기심이 들게끔 했어요. 글에 대한 집중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배경은 검은색으로 처리했고요. 인쇄 시 잉크는 4배, 종이가 마르는 시간은 2배가 들어 마감일이 밀리는 에피소드도 있었답니다. 아마 책을 직접 보시면, 디테일에 신경 썼다는 걸 분명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272페이지 글
가장 애정하는 기록을 2가지 골라 소개해주세요.
272페이지에 실린 글을 무척 좋아해요. 자신에 대한 소개를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를 매겨가며 단순 명료하게 쓴 글인데요, 스스로를 과대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마음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는 마음이 겹쳐져 울림이 컸습니다.
62페이지의 ‘창피해도 솔직하게’라는 제목의 제 에세이도 좋아합니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기 어려운 이유는, 결국 창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오글거린다고 할까 봐 걱정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제 약점과 찌질함의 기록을 드러낼 때 더 단단해짐을 느껴왔어요. 이 글을 통해 ‘지금의 내가 근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어주시길 바라나요?
쉼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숨차게 달리다 보면 문득 뭘 위해 사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요. 모두 각자만의 삶의 속도와 타이밍이 있는 건데, 정답이 있다고 말하는 듯한 세상에서 저도 자주 갈피를 잃거든요. 그럴 때마다 뭔가를 읽고 쓰다 보면, 삶을 좀 더 나답게 꾸려가도 괜찮겠단 믿음이 생겨요. 독자님들도 지금보다 빨리 가야 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지금 걷는 길이 틀렸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작가님과 라이팅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예원 작가님의 꿈은 뭔가요?
큰 꿈은 없어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전 큰 꿈이나 목표를 바라보며 걷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고, 인생 전체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딱 한 가지 희망 사항은, 제가 쓰는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꿈꿔요.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
출판사 | 북스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