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승윤, 이재정, 양승훈, 신진욱 저자
『광장 이후』는 2024~25년 탄핵 광장의 의미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모색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신진욱, 노동 분야 사회복지학자 이승윤, 지역 산업 구조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 사회복지학 연구자이자 여러 사회운동 조직 대표인 이재정의 글을 엮은 책이다. 한국 극우세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신진욱), 광장의 청년들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내용은 무엇인지(이재정), ‘2030 남성 극우화’라는 담론이 타당한지(양승훈), 청년세대의 불안정성이 정치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이승윤)를 질문해 12.3 광장을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광장 이후』의 네 저자를 서면 인터뷰로 만나보자.
제목의 ‘광장’은 2024년에 열린 광장을 뜻할 텐데요, 이번 광장이 이전의 광장과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달랐다고 보시는지요?
신진욱 | 공통점은 정치와 유희, 운동문화와 대중문화가 혼합된 집회문화, 시민 개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 돌봄과 연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탄핵 광장에서는 소수자들을 가시화하고 다양성, 포용을 중시한 공동의 규범이 가장 뜻깊었고요.
이승윤 | 2024년 광장은 단순히 민주주의 수호를 넘어 경제적 불평등, 노동시장 격차, 세대와 젠더 간 다양한 차별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이러한 구조적 이슈를 지속적으로 의제화하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승훈 | 2024년의 광장에서도 응원봉으로 드러나는 활기와 남태령으로 나타난 연대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서부지법 사태와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진 청년들 그리고 거리로 나선 젊은 극우파로 인해 찜찜한 전망과 풀어야 할 숙제도 함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정 : 가장 감동적이고 변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평등 수칙’이었어요. 대규모 광장에서 누군가 상처받거나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주최 측은 평등 수칙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제시했고, 시민들 역시 이를 지키자고 목소리 낸 점이 뜻깊었습니다.
신진욱 교수님은 계엄령 선포부터 윤석열 파면까지 5개월 동안 일어난 일들을 ‘파시즘의 발전단계’로 보시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또, ‘계엄’과 ‘보수정당과 극우세력의 결합’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평소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신진욱 | 우리 사회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쳐 수십 년 동안 군사독재라는 위로부터의 국가폭력을 겪었습니다. 국가가 사회를 철저히 통제했죠.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은 억압당했고 독재 정권에 협력하는 세력은 관변단체로 기생했습니다. 한편, 87년 민주화 이후 이념과 가치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극우 단체들이 꾸준히 성장했는데, 역설적이게도 독재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갖는 이 극우 사회세력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비로소 자발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12·3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아주 새로운 성격의 공격에 직면했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위로부터의 국가폭력에 더해 아래로부터 자발적 극우 폭력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러한 조합이 전형적인 파시즘 현상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국가폭력만 직면한 게 아니라, 부모, 형제, 친구, 직장동료가 민주주의의 적이 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다행히도 파시즘 체제로 나아가지 않고 일단은 민주주의를 회복했습니다만, 정치와 국가기관 내에 민주적인 파워엘리트를 확대하는 것, 사회 안에서 민주적 합의를 재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재정 선생님께서는 이번 광장에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지요. 2장의 기초 자료가 된 설문조사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조사 결과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눈에 띄었고 어떤 답변을 광장과 정치를 잇는 주요 연결고리로 삼으셨는지요?
이재정 | 저는 비상행동 공동대표이자 행사기획팀 실무자, 행진사회자 등 여러 역할을 맡았고 그 외에도 윤퇴청, 범청년행동의 행사도 기획하고 운영하다보니 12월부터 6개월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4월에야 비로소 2024년이 끝난 기분이었어요. 그 바쁜 와중에 설문조사를 기획한 건 광장에 나온 청년세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의들이 기성세대의 시각과 문법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느낀 묘한 불편함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중국공작설, 북한사주설, 부정선거 등 가짜뉴스들이 확산하기도 했고요. 이럴 거면 우리가 스스로 기록해보자라는 취지였죠. 설문조사 후에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후속 FGI도 진행했어요.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세대감각이라는 것이 모호하게나마 있구나, 우리만의 서사가 있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사회대개혁’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요.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은 윤석열 탄핵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마주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 속 문제를 개선하는 데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어요. 이건 광장이 만들어낸 학습 효과이자 광장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양승훈 교수님께서는 3장에서 남자들에게 ‘정치적 권한’ ‘정치참여의 동력이 될 명확한 의제’가 없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2030 남성의 참여를 이끌어낼 대표적인 정치 의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양승훈 | 이전의 가족경제를 구성했던 모델이 잘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생계부양자 경제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데도, 새로운 가족 구성에 대한 그림이 없어서 청년 남성들은 압박을 느끼거나 포기하거나 냉소합니다. 가부장제에서 ‘누릴 것’이 없었던 청년 여성이 느끼는 지위 감각과는 사뭇 다릅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한 뒤의 경력단절과 유리천장은 분명하지만, ‘능력주의 경쟁’의 첫 번째 단계인 학업 성취에서 이제는 여성들이 훨씬 우세합니다. 이 청년 남성들의 불만을 ‘진보적’으로 품어낼 의제가 없어서 이들이 보수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겠죠.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형태로 세대 복지를 재편하는 일, 기후위기와 돌봄 확대를 고려한 사회복무 모델을 확대하면서 양성이 모두 병역에 적합한 형태로 참여하는 일,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짐을 덜어주는 국민연금 문제 개선 등이 필요합니다.
이승윤 교수님의 글에서 정치의식과 노동시장의 변화를 연결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러한 계층과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해 분석을 시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리고 계층 상승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 청년들의 민주적 정치참여와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요?
이승윤 | 연구의 직접적 계기는 광장을 둘러싼 청년담론, 특히 남성청년의 극우화 논의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청년들의 실존적 삶과 제도에 대한 신뢰 관계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이들의 정치성향과 정책 선호, 정치 행동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고, 또 같은 경제적 조건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향하는 방향은 다를 수 있어서, 객관적 계층 위치와 주관적 계층 인식, 그리고 계층 이동 기대 간의 괴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보았습니다.
연구 결과, 불안정성이 확대될수록 남성과 여성 청년 모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비관적 인식이 높아졌는데, 특히 남성 청년의 경우 여성 청년에 비해 불안정성이 비관적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비관적 인식은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정치적 무관심이나 탈정치화를 낳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슈 중심의 선택적 정치참여를 증가시키기도 합니다. 계층과 민주적 정치참여와의 구체적 연결고리는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파면 이후 세워진 현 정부가 2024 광장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광장 이후』의 내용과 관련해 이번 정부에게 제안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진욱 | 탄핵 광장은 두 가지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윤석열 탄핵과 내란 종식, 다른 하나는 사회대개혁인데 그 핵심은 광장과 무대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들이 나눈 평등과 인권, 다양성의 가치였습니다. 새 정부가 이를 인사와 정책에 적극적으로 구현하기를 바랍니다.
이승윤 |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전 국민 사회보험 체계를 구축해야 하고,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주거비 부담 완화와 연계된 양질의 일자리 정책, 교육비 부담 경감 등을 포괄하는 청년 주거-고용-교육 통합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특히 적극적으로 지역 격차를 해소하여 청년세대 불평등 문제에 대한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양승훈 | 연금 개혁 관점에서 재정을 투입해서 연금을 보존한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미래 세대의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동반자 가족에 대한 정책들도 확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정 | 새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고 있고, 대시민소통을 강조하고 있어서 제도적으로 시민들의 의견이나 정책제안을 정부가 어떻게 받고 응답하고 실질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거버넌스와 플랫폼 구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숙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 단체와의 상시적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광장 이후』를 권하고 싶은, 구체적인 얼굴이 떠오른다면 말씀해주세요. 이번 광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꼭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승윤 | ‘누가 더 불쌍한지’ 경쟁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회로 전환하길 바랍니다. 2024년 광장의 연대를 일상으로, 제도로,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청년들, 특히 본인의 어려움이 개인적 실패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양승훈 | 광장에 열심히 나오셨던 분들이 널리 읽고 책을 퍼뜨려 주셨으면 합니다. 선거에서 이겼지만, 풀어야 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질문들이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어려운 질문들을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나오는 배심원들처럼 하나씩 끈기 있게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정 | 1장, 2장의 글을 통해 현실적인 여건상 집회를 참여하지 못했던 분들이 생동감 넘치는 광장의 이야기를 알아가면 좋겠고, 3장, 4장의 글은 청년세대가 놓인 현실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논의들을 접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읽어주면 좋겠어요. 광장 이후의 민주주의는 다양하기에, 단단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진욱 | 사회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저와 자주 대화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길 소망했던 친구입니다. 그 학생이 이 세상에 있다면 이 책을 꼭 선물했을 것 같습니다. 광장에 모였던 자유로운 사람들의 꿈이 오래 간직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광장 이후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