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나날이 떨어지는 현상이 개인의 잘못 때문만일까요?
문해력 격차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모두의 과제입니다.
글 : 채널예스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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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EBS 민정홍 PD, 김지원 PD 대한민국에 문해력 열풍을 불러온 EBS ‘문해력 시리즈’ 〈당신의 문해력〉, 〈책맹인류〉 등을 연출해  온 두 PD가 우리 사회의 문해력 격차를 말한다. 7년여 간의 취재, 국내외 주요 연구와 실험, 교육 정책 등을 토대로 문해력 격차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심화되는지 설명하고, 우리의 문해력 상식에 균열을 일으킬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낸다.


 

EBS <당신의 문해력> 이후 우리 사회에 문해력이란 화두가 던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분은 오랜 시간 동안 ‘문해력’ 문제에 집중해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문해력 저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계시는데요. ‘문해력 격차’에 집중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해력 격차에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교과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해 수업 진행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죠.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사이에서도 최대 5년에 달하는 문해력 격차가 이미 벌어져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런 격차는 '매튜 효과(빈익빈 부익부)'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져, 나중에는 따라잡기 매우 힘들어집니다. 캐나다에서 나온 연구 결과처럼 유치원생 때 어휘력이 하위 25%에 속하는 아이가 6학년이 되면 또래보다 어휘와 독해에서 모두 3년 정도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문해력 격차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는 물론, 자존감, 심지어 미래의 연봉이나 수명에도 영향을 준다고 해요. 게다가 '사흘'이나 '심심한 사과' 같은 일상 속 소통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문해력 격차는 사회 전반의 소통 부재와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능력과도 직결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문해력 격차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모두의 과제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여기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문해력 책이 개인적 차원에서 ‘문해력을 기르는 방법’에 집중하는 데 비해 『문해력 격차』는 문해력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요인’에 집중하신 점이 새로웠습니다. 다른 문해력 책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지점인 것 같고요. 문해력을 사회적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경험(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중학교 3학년 학생 2,405명을 대상으로 어휘력 검사를 했어요. 우리나라의 문해력 실태를 알고 싶었는데,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제작진이 직접 해야 했죠. 검사 결과 참여한 학생의 91%가 교과서를 혼자 읽고 공부할 수 없는 상태로 나왔어요. 이렇게 많은 학생이 혼자서 읽고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하면 ‘이걸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해력은 일부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저희만 해도 나날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기사를 두 단락만 읽어도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단어가 생각이 안 나 ‘그거 있잖아’ 라고 외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문서를 읽다가, 카톡이 오면 답을 하고, 갑자기 옆에서 뭔가 요청이 오면 정산을 하는 등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합니다. 정보가 폭탄처럼 떨어지고 모든 게 즉각적으로 저희에게 요구를 하죠. 집중력이 짧아지고, 글을 차분하게 읽고 생각하는 것이 점점 쉽지 않아집니다. 자극적인 영상은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문해력이 나날이 떨어지는 현상이 과연 제가 잘못해서만 벌어지는 일일까요? 세계적인 언어심리학자인 마크 세이덴버그 교수도 “읽지 않는 현상은 세계적인 문제이며,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탓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요. 



챗GPT의 등장은 ‘요약의 시대’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원래도 긴 문장을 잘 읽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읽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죠. 요즘은 길게 쓴 메일이 오면 알아서 ‘요약해 드릴까요?’ 라는 팝업도 뜨더라고요. ‘읽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라는 책 속 문장이 유독 무겁게 다가옵니다. 읽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요즘, 그럼에도 ‘나의 읽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읽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존과 삶의 질에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읽기는 시각적 인지, 어휘력, 배경지식, 추론 등 뇌의 다양한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선천적이지 않은 후천적 능력이라, 노력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도 있답니다. 또한, 책 읽기는 뇌의 전두엽을 더욱 활성화시켜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억하며, 추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데 유리한 '바람직한 어려움'을 제공해요. 문해력은 계약서나 가짜 뉴스 같은 일상 속 글을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며, 타인과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역량이에요. AI 시대가 요약을 제공해도, 그 정보의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며, 이는 읽기를 통해 가장 잘 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한답니다.

 

3장, 문해력에도 벌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최대 5년의 문해력 격차가 난다는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요, 공교육 현장을 취재하면서 발견한, 문해력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에 어떤 것이 있었는지 언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문해력 격차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어요. 가장 인상적인 사례로는 미국 미시시피주의 사례와 뉴질랜드의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미시시피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로 높은 범죄율과 실업률로 고민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 주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문해력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미시시피주는 읽기 능력에서 전국 최하위권이었지만, 문해력 기반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몇 년 만에 낮은 수준의 문해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대학 진학률까지 높이는 성과를 냈어요. 그래서 ‘미시시피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립니다.


뉴질랜드의 '리딩 리커버리'는 1976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에게 전문 교사가 1대1로 집중적인 단기 수업을 제공하여 또래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교육부에서 100% 예산을 지원하며, 아이들이 '부진아'라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하고 교사의 전문성 함양에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주교대 문해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2015년부터 '읽기 따라잡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충북, 전남 교육청 등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도 문해력 관련 예산을 투입하여 전문 연수를 받은 전담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이러한 사례들은 문해력 격차 해결에 공교육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적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해력 저하로 많은 문제가 생기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휘 격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생, 성인을 불문하고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에피소드도 많았고요.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감과 소통의 부족 문제와도 연결이 되더라고요.

‘사흘’ 연휴가 3일인지 4일인지 헷갈려서 포털 사이트에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해프닝처럼 웃어넘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검색’을 하고 알아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른다고 하더라도 찾아보고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 알게 되면 어휘력이 느는 거니까요.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심심한 사과’였습니다. ‘심심한’이라는 표현을 모를 수는 있어도 맥락상 ‘지루하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게시자를 공격했죠. “왜 어려운 말을 하느냐” 그 의도가 불순하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언어는 나를 둘러싼 세계입니다. ‘심성 어휘집’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이는 단어에 대한 사람의 내면화된 지식으로 머릿속 사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내가 아는 단어 속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휘 격차는 단순히 한 단어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과 얼마나 소통을 할 수 있느냐, 적극적으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처음 들어 보는 단어인데? 무슨 뜻이지?’ 하고 궁금해하고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마 『문해력 격차』를 구매한 독자님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이 2부에 실린 ‘문해력 격차를 이기는 법’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 한 가지를 학교 현장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랑 실험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겠냐는 질문에 ‘엄마 카드’를 주면 책을 읽겠다”고 해서 큰 상을 걸고 3주간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을 뽑기로 했죠. 대회를 시작하자 아이들이 평소보다 일찍 등교하고 쉬는 시간이면 모두 책을 읽는 거예요. 점심시간이 되면 도서관에 달려가요. 친구들이랑 말도 하지 않고 책을 전투적으로 읽는 거죠. 처음에는 효과가 정말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웬걸… 자세히 살펴보니 책장을 너무 빨리 넘기는 거예요. 읽는 게 맞나 싶은 수준으로요, 글밥이 적은 그림책을 선택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당연한 결과예요. 많이 읽으라고 했지, 어떻게 읽으라고는 조건을 안 걸었으니까요. 


2주 차가 되니 엄청나게 많이 읽은 아이들과 평범한 아이들로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이미 승부가 갈린 거죠. 순위권에 들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은 그때부터 평소 읽던 책을 읽기 시작하더라고요. 3주 차가 되니 1~3등 아이들은 괴로워하면서 읽어요. 나머지 아이들은 평화롭게 재밌는 책을 읽고요. 대회를 마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재미있는 책을, 원하는 때에, 즐겁게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독서를 과제처럼 생각하고, 의무처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책 읽으면 용돈 줄게, 책 읽으면 놀이공원 갈 수 있어’와 같은 방식이 흔하죠. 그런데 독서는 재밌는 것이고, 즐거운 것이어야 해요. 보상이나 징벌, 과제여서는 안 되는 거죠. 영국은 10년 전부터 ‘즐거움을 위한 읽기(Reading for Pleasure)’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켰어요.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개념입니다만 읽기를 즐겁게 느껴야만 좀 더 읽을 수 있고, 그것들이 쌓여 문해력도 성장할 수 있어요. ‘즐겁게 만들기’가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학교가, 부모가 가장 없애야 할 문해력에 대한 가장 커다란 오해 하나를 골라주신다면 무엇일까요?

"한글은 쉬우니 누구나 잘 읽고, 한 번 익히면 평생 유지된다"는 생각이에요. 읽기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학습이 필요한 후천적 능력이며, 노력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문해력을 단순히 '공부'나 '학습 목적'으로만 여기는 것도 큰 오해인데, 이는 오히려 독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어요. 읽기는 지식 습득을 넘어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해력을 '즐거움'과 '소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문해력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가 '골든 타임'으로 강조되지만, 사실은 평생에 걸쳐 키워 나가야 할 능력이므로,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노력하면 언제든 향상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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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격차

<김지원>,<민정홍>

출판사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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