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감각적 세계를 구축해 온 이동욱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핸들』이 출간되었다. 1년 차 대리기사인 화자가 운전대를 잡고 관찰한 도시의 풍경과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그 사이 새어 나오는 켜켜이 쌓인 기억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하루를 버텨낸 뒤 술기운과 피로만 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그는 고요히 운전에 몰두한다. 늦은 밤 귀갓길, 고된 하루를 보낸 당신의 고단함을 『핸들』이 나누어 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첫 번째 장편소설 『핸들』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리기사의 일상이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담겨있습니다. 어떻게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요.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은(프란시스 맥도맨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하나 남은 밴을 끌고 도로에서 생활을 이어 나갑니다. 그리고 간간이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비정규적으로 일하며 부족한 경제력을 충당합니다. 도로 위에서의 생활은 정착된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대신 주인공은 삶에 대한 주체성을 실감합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녀에게 ‘삶의 주체성’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노동시장의 다변화 과정에서 플랫폼노동 형식이 부각된 시점이 있었습니다. 서류지원, 면접, OT, 환영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뒤에 서열과 규범, 기업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후의 과정까지. 소위 정규직이라 일컬어지는 자격증(?)을 얻기 위해 부차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소모적인 것들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플랫폼노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인터뷰는 직접 체험이라는 생각 이후에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성과 부조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운전만 하고 쉽게 돈을 버는 직업 아니냐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상과 현장이 다르듯, 직접 거리에 나서면 미리 생각하던 계획은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작품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경찰과 변호사와 빈체로」 「도로는 검은 뱀의 등에서 반짝인다」 등 인상적인 열일곱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소제목을 어떻게 구성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집필 과정을 통해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했지만, 그 사연들이 일회성 에피소드로 소비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챕터에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고 싶었고, 마지막에는 그 이름으로 스토리에 등장했던 이들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각각의 소제목으로 내가 겪은 사건과 내용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시가 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듯이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동시에 독자적인 개별성을 띌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의 형식을 차용해 서울의 한강다리를 하나씩 소개하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배치했습니다. 「도로는 검은 뱀의 등에서 반짝인다」에서는 비가 내리는 밤 도로의 이미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관찰해본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젖은 도로를 운행하는 순간의 두려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책 속에는 화자가 마주하는 수많은 인물과 그 사연이 등장합니다. 그가 모는 차는 외제차와 앰뷸런스, 구형 아반떼까지 다양하고, 뒷자리에 탑승한 이의 비굴함과 슬픔, 분노와 마주하는데요. 작가님께서 집필하시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콜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차를 운행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고가의 외제 차부터 도로에서 흔하게 접하는 차까지, 대한민국에서 운행하는 대부분의 차를 몰아봤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일하는 차’입니다.
자정이 지난 시간, 금천구 골목길에서 한 남자와 만났습니다. 차는 승합차.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거리는 40만 킬로미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악셀을 밟을 때마다 둔탁한 엔진음이 차를 흔들었습니다. 핸들은 끈적거렸고, 실내에는 오래된 기름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철컹철컹.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뒤쪽에서 쇠붙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납니다. 코너를 돌 때마다 뒤편에 엉성하게 쌓아놓은 상자 더미가 이리저리 밀려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란 속에서도 남자는 고개를 떨군 채 코를 곱니다. 들숨은 무겁고 날숨은 힘겹습니다. 나는 차가 고장 나지 않을까, 이러다 길에서 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다 문득 봅니다.
대시보드 위에는 “OO 인테리어”라는 명함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장갑과 볼펜, 마스크, 일회용 물티슈가 보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소녀 얼굴 위에 ‘오늘도 무사히’ 문구가 적힌 그림이 전면 유리창 구석에 붙어 있습니다.
남자는 이 차로 생계를 꾸려가고, 가족을 유지했습니다. 이 차는 남자의 일터이자 남자의 분신과 같습니다. 오늘은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일감은 줄어들지만 단가는 몇 년째 그대로. 다들 앓는 소리를 하는 통에 혼자 계산을 했습니다. 내일이면 후회하겠지요.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남자는 늙어가고, 차도 낡아갑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차도 손볼 곳이 늘어납니다. 다들 바꾸라고 하지만 남자에게 이 차는 그냥 차가 아닙니다. 낡은 곳은 고치고, 고장 난 곳은 수리하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 나는 들리지 않는 남자의 잠꼬대에 공감하며 천천히 골목길 안으로 접어듭니다.
화자인 ‘나’는 대리운전을 하며 도시와 사람들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운전석을 통해 운전자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는 부분이나, 서울의 밤을 그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작가님의 끊임없는 관찰에서 기인한 장면들 같은데, 작가님의 관찰 습관이 있으신지, 또 관찰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공간에 대한 체험이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완성합니다. 잠수교는 반포대교 아래 있지만 실제로 잠수교를 건너보지 않는 사람에게 잠수교는 그저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남이 아니라 판교에 산다, 용인이 아니라 수지에 산다, 인천이 아니라 송도에 산다’라는 말에는 그 공간이 가진 상징성이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공간에 자신이 편입되는 순간 그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거리의 풍경, 도로의 모양, 건물과 가로수의 배치까지 사소한 모든 것들이 차별점을 갖습니다.
한 콜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눈앞에 보이는 공간의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합니다. 이곳에 대기해도 될지, 이동해야 할지, 이동한다면 어디로 이동할지,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는 곧바로 다음 콜로 이어지고, 그것은 그날의 수입을 결정합니다.
장편소설인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은 마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의도적으로 시처럼 묘사한 부분인지, 시와 소설을 모두 쓰시며 자연스럽게 나온 작법이신지 궁금합니다.
시에서 중요시하는 부분은 표현하는 것보다, 표현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 주변을 밝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들과 장면들을 통해 그 외에 것들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독자 스스로 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 가리키지 않고 가리키는 법을 나는 훌륭한 시들에서 배웠고, 배운 만큼 충실히 재현해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물이 가득 찬 컵이 기울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손가락을 튕겨 마침내 컵을 쓰러트리는 것과 같습니다.
집필 과정에서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나 고민이 있으셨나요?
인덕원에서 과천 방향 콜을 잡았습니다. 출발지까지 거리도 가깝고, 주행시간도 10분 남짓이라 부담 없이 고객과 만났습니다. 식당 앞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남녀가 서 있었습니다. 콜을 부른 사람은 캐주얼한 차림에 사십 대 남자였고, 차 열쇠는 정장을 입은 여자가 건네주었습니다. 둘은 따로 앉았습니다. 남자는 뒷자리에 앉아 조수석에 탄 여자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양재까지 어떻게 가세요?” 여자가 묻자 “일단 너희 집까지 가자. 너 들어가는 거 보고 택시 탈게.”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이후부터 실랑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아직 시내버스가 다니니 정류장에서 버스 타셔라. 아니다.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가겠다. 그럴 필요 없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아니다.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 근처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중이었습니다. 직진하면 버스 정류장, 우회전하면 목적지인 여자의 아파트였습니다. 남자는 계속 우회전하라고 나를 다그쳤습니다. 자신이 콜을 불렀고, 요금을 지불하니 괜찮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자동차니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신호가 곧 바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우회전 할까요?” 그때 여자가 입모양으로 말했습니다. ‘직진이요.’ 그 순간 나는 결심했습니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속력을 높였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여자가 재빨리 문을 열고 내렸습니다. “아, 이거 아닌데. 집에 들어가는 거 보고 간다니까.” 뒤쪽에서 나직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문이 열리고 닫혔습니다. 두 사람은 정류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잠시 후 조수석 문이 열리고 여자가 탔습니다.
거리는 한적했고, 늘어선 아파트 그림자가 어두운 하늘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한 블록 정도 돌아가게 되었지만 내 선택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 묘한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늦은 밤 여자의 집까지 간다니, 상식 밖의 일이지요. 그렇게 변경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다 어느 순간 나는 조수석에서 조그맣게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회전하며 슬쩍 돌아보니 여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닫히지 않는 캐리어를 억지로 누를 때처럼 울음소리가 손바닥을 비집고 새어 나왔습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콜은 남자가 불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이미 여자의 집 주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둘은 무슨 사이였을까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니 어느새 등이 축축했습니다. 나는 막차 시간을 확인하며 남자를 내려줬던 정류장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정류장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핸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소설인가요? 또, 독자들에게 어떤 소설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폴 오스터가 쓴 『우연의 음악』은 어느 날 거액을 상속받은 주인공이 자동차로 미국 전역을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도로는 인생의 비유이자 상징입니다. 소설 종반부에 주인공은 전문 도박사의 꼬임에 빠지게 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재산인 자신의 자동차를 걸고 다시 한번 도박판에 참여합니다. 그 순간 그는 단순히 판돈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베팅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운행을 시작하면 인이어를 통해 내비게이션의 경로 안내음을 듣습니다. 도로의 차선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곳, 속도 감시 카메라와 어린이 보호구역 등 운전을 하며 신경 써야 할 요소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하지만 때로 출구를 놓치기도 하고, 잘못된 진입로를 타기도 합니다. 경로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비게이션은 경고음과 함께 새로운 길을 안내합니다. 라이트 불빛에 드러난 도로는 처음 가는 길입니다. 제대로 가고 있을까. 이 길이 맞을까.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데 인생에 확신을 가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핸들』은 삶의 경로는 수시로 바뀔 수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순간의 긴장과 두려움은 곧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길을 잃어버리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라는 문구가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요.
『우연의 음악』 결말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마지막 판에서 이겨 원금을 회수했을까요. 아니면 이변 없이 자동차까지 잃게 되었을까요.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어떠하든 그리 중요치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뭔가 아쉬우니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핸들
출판사 | 민음사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