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 수 있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모든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한다’라는 결론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4.10
작게
크게


2012년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으로 데뷔한 이래 장편소설은 물론 SF와 호러, YA소설을 넘나들며 13년 차 소설가로서의 저력을 성실히 입증해온 이종산의 소설 『고양이와 나』가 출간되었다. ‘어느 날 전 세계 사람들 앞에 거대 고양이가 나타나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 선택권을 준다면?’이라는 기발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하룻밤 사이 사랑하는 이들이 고양이로 변한 세상을 무대로 예기치 못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해’하고 싶고 ‘궁금’한 마음이 사랑의 전부인 세상에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고양이와 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는 환대의 세상을 펼쳐 보인다.


 

그간 장편소설부터 SF, 판타지로맨스, 호러와 YA소설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을 발표해오셨습니다. 『고양이와 나』는 하룻밤 사이 사람들이 고양이로 변한 세상의 이야기인데요, 이번 소설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실 맨 처음에는 아예 다른 이야기였어요. 4년 전쯤에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져서 SF 로맨스 소설을 짧게 한 편 썼는데, 쓸 때는 재밌었지만 다 쓰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지 궁금해서 아는 편집자님께 보내보았고, 그분도 설정이 안 맞는 부분을 말씀하시더라고요. 피드백을 받고 나서 ‘역시 그렇구나’ 하고 여러모로 수정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어서 결국 그 원고는 버리기로 했어요. 하지만 그 소설을 처음 쓸 때 강하게 느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줄곧 남아 있었습니다. 데뷔 이래로 제 소설의 주제에는 거의 언제나 ‘사랑’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랑 그 자체에 대해서만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았어요. 항상 다른 주제와 섞여 있었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 실제로 연말이 되어서 다음 해로 바뀌는 날이었는데 문득 상상 하나가 떠올랐어요. 함께 사는 연인이 있는데 갑자기 거대 고양이가 뿅 나타나서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 수 있는 선택지를 준다면? 저는 역시 장르에 친숙한 작가인지 그렇게 뚜렷한 상상이 떠오르니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결국 버린 원고가 된 소설을 봐주셨던 편집자님은 『고양이와 나』의 담당 편집자가 되셨고요. 당시 그 원고는 실패했지만, 주제와 기획을 믿고 기다려주신 편집자님 덕분에 연작 한 권을 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에는 사람들 앞에 거대 고양이가 나타나 앞으로 낢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적힌 종이를 건넵니다. 작가님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하실 건가요?

책이 나온 뒤에 동거인하고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희 대답은 둘 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니오’였어요. 한쪽이 고양이가 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사람으로서 인생을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로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한순간에 연인과 친구, 가족이 고양이로 변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합니다. 여기에 고양이가 된 이들과의 법적 관계와 소통 방식, 앞으로의 수명은 사람 기준일지 고양이 기준일지 등을 고민하는 장면은 무척 기발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고양이와 나』를 쓰면서 특별히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모로 고민하며 쓴 소설이기는 하지만, 역시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대, 이 세상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 사랑하고 있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고양이와 나』는 그런 고민으로 이루어진 책인 것 같아요. 현재는 쉬어가고 있지만, 퀴어 작가 모임 ‘큐연’에서 멤버들과 나누었던 많은 대화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아주 협소한 사랑에 대한 생각이 깨어지고 확장되는 경험을 했거든요. 제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 대해서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써나가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한 편씩 모았습니다.

 

이 책은 여섯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연작 소설이기도 합니다. 「고양이 공원」에서는 책 한 권 낸 적 없는 1인 출판사 대표와 소설가가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각각 「이름 없는 출판사」와 「고양이와 나」의 화자였던 터라 반갑게 느껴지더라고요. 작가님께선 실제로 현재 제주도에서 읽기와 쓰기(@hojibook)라는 작업실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작가의 말」에선 소설의 모티브가 된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밖에도 소설의 모티브가 된 장소나 인물이 있다면 살짝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읽기와 쓰기’는 현재 카페 운영을 하지 않고 작업실로만 쓰고 있어서 약간 민망하긴 한데요, 소설을 쓰는 동안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던 장소는 맞습니다. 「작가의 말」은 사실 전체가 픽션이라 모티브가 된 친구 이야기도 100퍼센트 지어낸 것입니다. 타인을 모티브로는 소설을 잘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모티브가 된 인물도 저 자신이었어요. 이건 「작가의 말」과 겹치는 부분이긴 한데(이렇게 말하면 앞의 이야기와 모순이 있지만, 픽션은 거짓과 진실이 너무 끈끈하게 붙어 있어서 항상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주에 오기 전에 서울의 작고 오래된 공간을 작업실로 썼어요. 작업실이 생기기 전에는 카페를 전전하며 썼고요. 체크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출퇴근’하며 그날의 일(작업)을 하는 것이 작가의 생활인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손님이 없는 책방에 갔다가 「이름 없는 출판사」가 시작됐어요. 큐연 모임하면서 독립출판을 했던 경험이 합쳐지기도 했지요. 그 소설을 쓰면서 제가 평소 혼자 짝사랑하는 책방들과 책을 만드는 사람들, 작은 출판사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매일 제 머릿속에서 들이닥쳤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어요. 그게 『고양이와 나』의 큰 부분을 만들었고, 그러니 제가 아는 모든 책방과 출판사들,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 전부가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읽기와 쓰기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과 (한때는 사람이었던) 고양이들이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생김새가 달라져도 성격은 그대로인 고양이들이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여러 장면들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연작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책방 풍경에 애정을 느낍니다. 한때 사람으로 애쓰며 살았지만 이제는 홀가분하게 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 현 책방 주인이자 번역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 아직 책 한 권도 못 내본 이름 없는 출판사의 대표(라지만 사실은 백수에 가까운)가 책방의 커다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는 풍경이요.

 

「고양이 공원」에선 사랑을 이해하고 싶고, 궁금해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고양이와 나』를 읽다 보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게 되는데요,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짧게 말하자면 ‘다양성’인 것 같아요. 큐연 모임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모든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한다’라는 결론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한 가지로, 혹은 단순하게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렇다’고 말하면, 곧장 ‘나는 그렇지 않고 이런 사랑을 하는데? 나는 이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라는 반박이 날아올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그렇군요. 그게 당신의 사랑이군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저 역시도 사랑을 들여다볼수록 다양한 모양이 있는 것 같아서 ‘사랑은 다양하다’라는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좀 길게 한 것 같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고양이와 나』가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갔으면 하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썼지만, 독자분들은 재밌고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고민은 고민이고, 실은 즐겁게 쓴 날이 많아서요. 동네 산책을 하는 것처럼, 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훌쩍 여행을 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정말 어딘가에 다녀온 기분이에요. 그게 소설의 즐거움 아닐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고양이와 나

<이종산>

출판사 | 래빗홀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