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인생은 그냥 인생이에요”
나도 인생에 대해서 정의해 보고자 했으나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냥 인생은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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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단 세 줄의 시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풀꽃 시인의 강의가 『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지속되는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고단함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동명의 강의 에서 비롯되었다. 



단순히 강연을 엮은 강연록이 아니라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가족, 행복에 대해 노래했던 스웨덴의 화가 칼 라르손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어우러져 한 권의 특별한 책으로 재탄생했다.이 책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풀꽃 인생 수업」이라는 제목의 인생의 12가지 주제를 다룬 강연을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EBS 방송국에서 20분짜리 강연 12회를 녹화하자고 섭외 요청이 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안을 듣고 평소 제가 중고등학교나 지자체, 도서관 같은 데를 다니면서 강연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주제를 나누고, 그 주제마다 내가 쓴 시 한두 편씩을 읽으며 그에 대한 설명을 했지요. 실은 하루에 모두 하려고 했으나 8강째 하고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아 나머지 4강은 다음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성공이란 ‘어린 시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 또 지금은 이루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저는 초등학교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림 도구를 구해 줄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고 또 집안 어른들이 이해를 해주지도 못해서, 그 꿈을 접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학교(지금은 없어진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나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요.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인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15세. 그로부터 나는 하루 한순간도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이나 결심을 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생각했고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도 시를 꿈꾸며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인되던 것은 26세 때, 군대에서 제대한 다음의 일이었지요. 그 뒤로도 나는 시인으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아니지만 청소년 시절의 꿈은 충분히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에는 내가 시를 잘 쓰는 시인이 되기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시인이 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또,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나태주 손그림


책에서 ‘인생은 무정의 용어’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는데, 그 말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네, 단어의 뜻 그대로 정의 없이 인생을 인생이라고 부르자는 얘기이고 실상 인생이란 이렇다 저렇다 정의하기 어려운 오묘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상 나도 인생에 대해서 정의해 보고자 했으나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냥 인생은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시 구절 중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하나는 「시」라는 시입니다. 시란 무엇인가 오래 생각하다가 그 시를 썼는데 그 시가 시에 대한 해답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해답까지도 주지 않나 싶어서 그 시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합니다. 다음으로는 「멀리서 빈다」란 시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 같아서 이 시를 또한 좋아합니다.

 

책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3권의 책(『도덕경』, 『월든』, 『인도 방랑』)을 꼽아주셨는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누군가의 말이나 사건도 있으셨을까요?

네. 20대 중반에 선배 시인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젊어서 죽을병에 한 번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서울로 강연을 갔을 때 길을 잘못 들어 ‘사직동 그 가게’란 이름의 가게에서 읽은 문장이 또 기억납니다. 그 집은 티베트 난민들을 위해 세워지고 운영되는 가게인데 이런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아홉 번 실패했다면 아홉 번 노력했다는 것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서둘러 걸으면 라사에 도착할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런 말들은 나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나 스스로 새로운 말을 하면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고자 노력합니다. 그런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쓴 돈만이 내 돈이고, 내가 본 풍경만이 내 풍경이고, 내가 산 인생만이 나의 인생이고, 내가 사랑한 사람만이 내 사람이다.’

 

시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더 발견해 나가고 싶으신가요? 

간단하지요. 인생의 숨은 곡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우선은 생활의 발견, 사물의 발견, 그것을 통해 시의 발견까지 이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유명하신데, 선생님이 독자를 만나며 감동을 받으셨던 일화들도 들려주세요. 

네. 어린 독자들이 나의 시를 알아주고 심지어 외우고 그러는 경우입니다. 한번은 강연장에서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나의 시 ‘사랑에 답함’을 외우는 걸 보았습니다. 실상 그 시는 어른을 위한 시였거든요. 그래서 나는 시에 사용되는 언어는 영혼이 깃든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에게 그리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적막한 것입니다.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넓고 부담스러운 인생을 앞에 두고 그걸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깊게 생각하지 말고 한순간 한순간, 하루하루 꾸준히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좋아지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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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r

2025.04.14

나태주 선생님의 귀한 말씀, 채널예스의 인터뷰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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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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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1945년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초현리 111번지 그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2007년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등단 이후 끊임없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흙의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에는 첫 시집 『대숲 아래서』 펴냈고, 이후 1981년 산문집 『대숲에 어리는 별빛』, 1988년 선시집 『빈손의 노래』, 1999년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2001년 이성선, 송수권과의 3인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 2004년 동화집 『외톨이』, 2006년 『나태주 시선집』, 『울지 마라 아내여』, 『지상에서의 며칠』를 비롯하여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산촌엽서』, 『눈부신 속살』,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마음이 살짝 기운다』, 『어리신 어머니』, 『풀꽃과 놀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문학작품을 출간하였다. 1972년 「새여울시동인회」 동인, 1995년엔 「금강시마을」 회원,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충남문인협회 회장,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공주문인협회 회장,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공주녹색연합 대표 등을 역임하였으며, 공주문화원 원장,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격월간 시잡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주간, 지역문학인회 공동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부회장)을 지냈다.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초청해 주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꿈은 첫째가 시인이 되는 것, 둘째가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 셋째가 공주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그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공주에서 살면서 공주풀꽃문학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으며 풀꽃문학상과 해외풀꽃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고, 현재 공주문화원장과 충남문화원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풀꽃문학관에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가깝고 조그마한, 손 뻗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