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신우암, 폐암 3종 세트를 겪으며 독한 항암 치료도 씩씩하게 이겨 낸 엄마가 이번에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엄마와 가까웠던 딸에게 자연스럽게 돌봄 역할이 부여되었고,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갑자기 섬망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는 엄마를 요양병원에서 대학병원, 요양원으로 옮겨 가며 모셔야 했던 유미 작가의 경험담을 다룬다. 엄마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순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작가의 필력은 독자를 쥐락펴락하며 눈물 훔치다가도 웃음 짓게 한다.
“엄마는 지금 죽어도 좋아. 이 순간이 행복해. 다만 죽을 때까지는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네 번째 암 판정을 받았지만 씩씩한 엄마와 아직 돌봄이 익숙하지 않은 걱정 많은 딸, 두 모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머니께서 유방암, 신우암, 폐암 3종 세트를 겪고 뇌종양 판정까지 받은 후 우여곡절 끝에 요양원 창문으로 뛰어내려 ‘탈출’하셨는데요,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 엄마가 이상 행동을 보이고, 암이 뇌로 전이된 것을 확인하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늙고 병든 사람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요양병원, 종합병원 응급실, 대학병원 응급실, 요양원을 두루 거치는 동안 아프고 늙은 사람들이 겪는 현실을 목격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또래 친구들보다 먼저 경험한 거잖아요. 10~20년 후에 같은 일을 겪을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어요. “다들 한 10년 후에는 이런 일을 겪을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제가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 가능하다면 친구들의 부모님이 본격적으로 아프시기 전에 제도를 개선하거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기를 쓰듯 개인 채널에 글을 썼는데 그걸 본 EBS에서 연락이 와서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에 소개되고, 이렇게 책으로도 내게 되었어요.
오미실 여사님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반전과 위트를 활용해 풀어나가 읽으면서 울게도 웃게도 만드셨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살면서 힘든 일을 겪어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짧은 웃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편입니다. ‘웃프다’고 하잖아요? 심각하고 슬픈 상황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웃긴 순간들을 포착하면 그나마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엄마가 섬망 상태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누가 보면 정신을 다 놓았다고 할 만큼 왔다갔다 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비상한 머리로 이런 저런 꼼수(?)를 생각해내시더라고요. 요양원에서 감춰놓은 핸드폰을 기어이 찾아낸다거나, 요양원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갈 방법을 계획한다거나, 빠져나와서 택시 기사에게 양말 속에 감춰둔 10만원을 주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으로 데려다주게 한다거나, 사람들이 잡으러 올까봐 집이 아닌 외할머니 댁으로 간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엄마가 머리 좋은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어요.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요. 아무리 힘든 삶에도 유머와 위트가 깃들 수 있고, 이걸 포착한다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MZ들 사이에 임종체험, 유서 쓰기 등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오미실 여사님의 책을 통해서도 더 긍적적으로 인식될 것 같은데요, 어떠한 웰다잉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실까요?
늙고 아프고 죽는 순간까지 모두 삶의 일부라고 인식하면 좋겠어요. 아무리 찬란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어도, 막상 삶의 마지막이 고통스럽고 초라하다면 자신의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거예요. 삶의 막바지에 선 노인들을 귀찮아 하거나, 죽기 전까지 몸뚱이만 관리해주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그들을 하나하나의 인격으로 보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인식 전환에만 그치면 안 되고, 사회적인 제도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SNS를 보면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거나 운동을 해서 탄탄한 근육을 가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세요. 그 분들을 롤모델로 하는 MZ 세대들도 분명 있을 거고요. 하지만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 이면에 수없이 많은 아픈 노인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돌봄이 필요한 게 당연하고, 돌봄을 받는다고 해서 불쌍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돌봄을 제공함에 있어 돌봄받는 자의 인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눈 감는 순간 ‘그래도 괜찮은 삶이었다’하고 생각하고 떠나실 수 있게요.
"사실은 도망가고 싶었다. 엄마의 똥 기저귀 가는 일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내 나이 마흔도 안 됐는데 엄마의 기저귀를 갈게 될 줄이야. 한 달 전만 해도 누구보다 활기차던 사람이, 기본적인 생리현상마저 남의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한순간에 곤두박질치리라고 누가 알았을까?"저자 소개 내용 중 어머니의 뇌종양 판정을 받은 뒤 딸의 생각을 담은 글이라는 점이 무척 인상깊었어요. 책 출간 이후 가치관이나 두 분의 관계성 등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요?
당시 엄마가 원하시는 것과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차이가 있었어요. 엄마의 요구를 다 들어드리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엄마는 뜻대로 되지 않아 저를 원망하셨죠.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그때 저는 죄책감에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도 완벽히 만족하진 못해도 타협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죄책감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그 죄책감 때문에 엄마한테 짜증을 내게 되더라고요. 엄마가 제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낸 거죠. 현재 엄마와 저의 관계는 예전과 비슷해요. 다 지나갔고, 그 결과가 좋다 보니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 월요일은 합창 모임, 화요일은 걷기 모임 등 갈망하셨던 어머님의 일상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나오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오미실 여사님이라면 분명 계획이 있으실 것 같아요.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목표를 버리신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그건 조금 먼 훗날로 미뤄놓으신 것 같고, 지금은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을 걷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셨어요. 아마 올해 가시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책을 쓰던 시점에 엄마는 걷기 모임 참여, 훌라춤, 스마트폰, 영어회화 강좌를 들으셨는데, 지난 달부터는 난타 강좌까지 더해졌어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암이 재발하지만 않으면 한 몇 년은 이렇게 사실 수 있을텐데… 엄마가 활발히 생활하시는 걸 보면 기쁘지만, 늘 마음 한켠엔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살아나리라” “나는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1도 없었어” 라는 본문 구절에서 병을 이겨내려는 어머님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아직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 또는 아픈 가족을 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저희 엄마도 다 이겨낸 건 아닙니다. 여전히 3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요. 물론 예전처럼 생활하는 데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요. 사실 아픈 사람과 그 가족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해요. 병세가 조금 호전된 것 같으면 뛸 듯이 기쁘다가도, 어딘가 조금 안 좋아지면 끝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매일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제가 속해 있는 환우회 단톡방에는 매일 희망과 절망이 오가는 얘기가 올라옵니다. 갑자기 상태가 위중해진 환우의 가족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뛰어다녀요. 그러다 환우분이 끝내 돌아가시면, 가족들은 슬퍼하긴 해도 평온을 찾고 마음을 추스르더라고요.
저는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아계신 동안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어찌 되든 그건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선택에 대해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독자분들께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프신 분들, 그리고 가족이 아프신 분들이 아마 제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어떤 응원의 말도 크게 힘이 되지 않을 것을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꼭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그 부분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출판사 | 샘터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우리코코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