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순간에 꺼내어 쓴 용기
기후 위기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요.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역시나 글쓰기였고, 그래서 기후 위기와 연결된 어린이소설을 써 보자 마음먹게 되었죠.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1.07
작게
크게

진형민 작가 (아이들 그림)


어린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진형민 작가가 신작 동화 『왜왜왜 동아리』로 돌아왔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잦은 산불과 석탄 발전소 건립을 계기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에 나선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지금, 여기’ 어린이의 강력한 목소리에 많은 독자들이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왜왜왜 동아리』는 어린이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후 행동에 나서는 이야기인데요. 어떻게 이 책을 구상하셨나요?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20년 3월에 뉴스를 봤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는데, 청소년들이 마스크를 쓰고 헌법재판소 앞에 나란히 서 있었어요. 손에는 ‘기후 위기 방관은 위헌’이라는 커다란 글자 팻말을 들고 있었고요. 정부의 무책임한 기후 정책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청소년들 스스로 헌법소원을 청구하러 온 거였죠. 기후 위기에 관련된 우리나라 첫 헌법소원 사건이었어요.

그 뒤로 기후 위기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요.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역시나 글쓰기였고, 그래서 기후 위기와 연결된 어린이소설을 써 보자 마음먹게 되었죠. 작업이 쉽지 않아서 책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 나가는 진경과, 기후 소송을 진행하는 동아리원들이 걷는 길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그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나요?

청소년들의 헌법소원은 2024년 봄에야 정식으로 재판정에 오르게 돼요. 어린이와 시민들이 비슷한 헌법소원을 여러 건 청구한 끝에 마침내 재판관들이 기후 위기 사건을 심리하기 시작한 건데요. 저도 헌법재판소 심판정으로 달려가 두 차례의 공개 변론과 판결을 모두 지켜봤어요. 

두 번째 공개 변론 날, 청구인들의 마지막 진술이 있었는데 초등학생인 청구인 어린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이 순간에도 자라고 있고 경험하고 있어요. 열 살 때 멸종 위기 동물을 이미 알고 있었고, 기후 변화로 봄과 가을이 줄어드는 걸 알았어요. 알면 알수록 제 미래가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중략)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어요. 이 소송에 참여하는 게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어요.”

저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어른에 비해 미숙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세상에 변화가 필요할 때 용기 내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동료 시민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용기를 꼭 필요한 순간에 꺼내어 썼을 뿐이죠. 어른들이 그런 것처럼요.

 

작품 속 생생한 입말과 유머가 빛을 발합니다. 주인공 ‘조진모’ 별명이 ‘조진모리 장단’인 것 등 깨알 같은 설정들이 재미있어요. 이토록 실감 나는 이야기를 쓰시는 동력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글을 쓰면서 이것이 지금의 이야기인가 늘 고민해요. 지금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어린이들 가까이에서 살아가려고 부단히 애쓰고요. 운이 좋게도 저는 학교에 갈 기회가 자주 있어요. ‘작가와의 만남’ 자리를 마련해 저를 초대하시면 최대한 가려고 하죠. 갈 때마다 잠깐이라도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이야기 나누려 하고요.  

‘조진모리’도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예요. 강연을 마치면 아이들 이름을 써서 사인해 주곤 하는데, 한 아이가 이름 대신 별명을 써 달라고 했어요. 이름은 조진모인데, 음악 시간에 자진모리 장단을 배운 뒤로 반 아이들이 자기를 ‘조진모리’라고 부른다면서 즐거워하더라고요. 같이 한참 웃고 나서, 나중에 이 별명을 내 작품에 써도 괜찮겠느냐고 허락을 구해 두었죠. 벌써 몇 년 전 일이라 지금쯤 ‘조진모리’는 중학생이 되었겠네요. 

 

소제목 중 ‘싸움은 축제처럼’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법원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간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행진하는데, 어떤 이유와 마음으로 이 장면을 쓰셨나요?

요즘 주변 사람들과 민주주의 얘기를 자주 나누게 돼요. 거리 집회에 등장한 케이팝과 응원봉, 해학적인 깃발들이 놀라웠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생수나 핫팩, 먹을거리들을 아무 대가 없이 서로 나눈 일에 대해 감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풍경들이 지금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에요. 지난 몇 년 동안 ‘기후 행진’에 참여하면서 저항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지금 세대에게 싸움은 참고 견디어야 하는 힘든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온전한 삶인 것 같아요. 그 삶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계속 재구성해내고 있고, 그들의 방식 안에는 현재를 즐기면서 타인을 돌보려는 마음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싸움은 축제처럼’ 속에 그려진 활기찬 저항 방식은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모습들인 거죠. 저는 그저 사람과 사회를 살피는 관찰자이고, 보고 느낀 것을 성실히 기록했을 뿐이고요.

 

아이들이 팻말을 만들어 학교 친구들에게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친구들의 서명을 받아 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기후 파업에 참여한 청소년들, 기후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 온 지역 시민들. 그분들을 찾아가 얘기를 청해 듣던 때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실 혼자서 기후 위기 자료들을 들여다볼 때는 ‘아, 우리는 이제 희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결되면서 제 안에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죠. 저의 희망은 작은 마음 같은 건데요. 기후 위기를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기후 재난을 아주 피해 갈 수도 없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지키며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낼 수는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왜왜왜 동아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고자 했던 일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요.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요. 서로에게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주인공들이 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인물들이 처한 다양한 입장과 감정선을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동화 속 어린이 인물을 그릴 때 어떤 점을 신경 쓰시나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한기주’라는 어린이를 그리는 일이 저에게 큰 숙제였어요. 기주는 산불로 집과 이웃과 키우던 개를 잃고 다른 동네로 이제 막 이사 온 아이예요. 가족과 함께 기후 난민이 된 아이지요. 이 인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면서 스스로 다짐했어요. 기주를 마냥 가엽고 불쌍하게 그리지 말자. 마냥 선하고 정의롭게 그리지도 말자. 하루아침에 소중한 것들을 잃은 아이의 마음을 쉽게 단정 짓고 싶지 않아서요. 

어린이 인물이든, 어른 인물이든 똑같은 것 같아요. 나의 목적을 앞세우지 않고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하죠. 그러지 않으면 인물들이 금세 기능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리니까요.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하나뿐이에요. 어린이 독자들이 제 책을 재미나게 읽어 주기를 바라죠. 물론 제가 문장과 행간에 정성껏 숨겨 둔 생각들이 있지만, 그것을 어린이들이 꼭 발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은 뒤에 남은 어떤 느낌과 감각, 그런 것들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크게 서운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만났고 그 시간이 흔쾌했다면,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또 다른 책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청소년들의 헌법소원 결과가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2024년 8월 말에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는데요. 기후 관련 법률 조항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어요. 지금의 기후 정책만으로는 탄소 중립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그로 인해 미래 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거죠. 이제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 말까지 개선된 기후 법안을 내놓아야 해요. 어른들은 더 도망갈 곳이 없어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뼛속 깊이 책임감을 느끼고, 늦었지만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답을 해야만 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왜왜왜 동아리

<진형민> 글/<이윤희> 그림

출판사 | 창비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