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없어도 거룩한, 외상센터 의사의 기록
한 달에 여덟 번씩 24시간 당직 근무를 합니다. 이 중 두 번은 주말 근무고요. 물론 비번인 요일에도 주간 근무가 있습니다. 당직은 아침 8시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 8시에 끝납니다. 24시간 내내 휴대폰 두 개를 들고 뛰어 다녀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1.03
작게
크게


병원 내에서도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 죽음과 삶 사이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바닥을 가장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외상센터이다. 외상센터 의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망 선고를 내리기도 하고, 몇 번씩 목숨을 살려 내기도 한다. 병원에 가장 필요한 곳이지만 의대생이 가장 기피하는 외상센터. 하지만 그곳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목숨을 살려 냈고, 앞으로도 살려 내겠다는 의사들이 싸우고 있다.


단국대학교 권역외상센터 의사 허윤정은 메스를 들 때는 한없이 냉정하면서도 과감한 의사다. 메스 대신 펜을 들 때는 부드럽고 감성적 시선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비번이 거의 없는 팍팍한 근무를 제외한 시간, 그는 외상센터에서 만난 이들, 자신이 보내야만 했던 이들, 자신이 구한 이들에 대한 감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 외상외과 의사를 꿈꾸셨다 했는데요. 드라마뿐만 아니라 외상외과 전공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 듯합니다. 조금 더 상세히 계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잘 안 가려는 길은 꼭 가 보고 싶은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어요. 어떤 대단한 희생 정신보다 가 보지 않은 길을 탐험하며 재미와 매력을 찾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외과의 수많은 분과 중에 외상외과가 그런 존재입니다. 본디 외과는 각종 암 수술을 하는 과예요. 레지던트 시절, 수많은 환자가 암과 기나긴 싸움을 하는 모습을 힘겹게 지켜봤습니다. 반면 중증 외상은 수 시간, 수 분 내로 환자의 생사가 결정되죠.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여러 병원 다큐멘터리가 나왔지만, 카메라가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없겠지요. 외상센터의 하루는 어떤가요? 가장 힘들었던 하루, 가장 급박했던 하루 소개도 좋고, 24시간 루틴에 대해서도 좋습니다.

한 달에 여덟 번씩 24시간 당직 근무를 합니다. 이 중 두 번은 주말 근무고요. 물론 비번인 요일에도 주간 근무가 있습니다. 당직은 아침 8시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 8시에 끝납니다. 24시간 내내 휴대폰 두 개를 들고 뛰어 다녀요. 중증 외상 환자를 이송하는 119나 주변 병원에서 외상환자를 옮길 때 전화하는 핫라인 폰, 그리고 외상 중환자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간호사가 전화하는 콜 폰. 새벽 4시쯤 ‘초대박’ 응급수술 하나를 겨우 마치고 나왔는데 또 벨 소리가 울리면, 솔직히 변기통에 폰을 던지고 지구를 떠나고 싶어져요. 

 

그렇군요. 의사 중에서도 가장 바쁜 이가 외상외과 의사 같습니다. 집과 개인적 삶, 휴식이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도 글이나 책을 쓰신 계기가 있을까요?

외상센터 환자 중 부유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 그래도 힘겹게 하루하루 이어 가던 생이 하루아침에 발생한 사고 때문에 더 치명적으로 박살 나는 것이지요. 건설 현장이나 농경지에서의 산업재해가 대표적입니다. 음주 운전이나 ‘묻지 마 살해’ 같은 너무나 억울한 피해자들도 많아요. 이런 것들은 사회가 예방하고 막아야만 하는 것들이거든요. ‘이런 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직을 설 때마다 엄마 없이 잠을 청해야 하는 딸아이에게 나중에 보여 주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날이 오려나요.

 

선생님의 할아버지 이야기나, 대학 시절 하숙 이야기 등이 인상 깊었는데요. 학창 시절 이야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실 내용이 있을까요? 의대생의 대학 시절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데, 더 어린 시절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내성적이고 할 말도 못 하는 성격이었어요. 따돌림 비슷한 것을 당하고 전학을 간 적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공부만 했던 것 같고요. 내 아이는 좀 더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강남 사는 꼬맹이들은 다섯 살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고 학원을 다니더군요. 요사이 자살을 시도하고 이송되는 어린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이 땅의 엄마, 아빠들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우선일지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제 책을 보면 보석 같은 우리 아이들이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해야 할 일이란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책에 담지 못한, 기억에 남는 환자나 외상 센터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만 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외할머니께서 고관절이 부러져 입원하신 적이 있어요. 연세와 지병 때문에 중증도가 높아 수술 후 의식 저하가 왔는데 제가 열심히 치료해서 다행히 회복하셨습니다. 바빠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 못난 손녀였기에 입원해 계신 동안 틈만 나면 할머니 옆에 같이 누워 있고 휠체어에 풍선을 달아 병원 구석구석 작은 나들이도 다녔어요. 사실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으셔서 저를 못 알아보시는 때가 더 많아요. 제가 아침 회진을 가면 “예쁜 선생님, 우리 막내 손녀딸이랑 마이 닮았네. 우리 손녀도 무척 고와. 나 살려줘서 고마워”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치매 환자에게는 본인이 믿는 대로 믿게 만들어 주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주거든요. “그 손녀딸이 할머니 이렇게 나아진 거 보면 무척 기뻐하겠어요. 저한테 할머니 사랑한다고 꼭 좀 전해 달래요”라고 그냥 말씀드렸네요.

 

책의 글 사이사이 많이 지치셨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의사로서의 삶을 계속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 지난 1년간 의료 사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수 차례 사표를 썼고요. 필수 의료 의사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길거리에서 스러져 갈 환자를 놓지 못해 돌고 돌아 제자리에 있어요. 외상외과 의사 한 명만 사라져도 각 센터에 타격이 너무 큽니다. 상상하기 싫지만, 믿었던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고소를 당하는 날이면 그때 떠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희망적인 계획을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네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의료 개혁이란,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전념토록 하는 것,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진료로 인해 무고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해 주는 것, 그럼으로써 저와 같은 의사들이 점점 많아져 이 땅의 어린 새싹이 또 그런 의사가 되기를 꿈꾸고 희망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의사들의 여러 목소리가 있겠지만 이 또한 의사들의 외침입니다. 늙고 병들어 더 이상 수술을 하기 어려워지는 그날까지 제가 이 일을 계속 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