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채용 시장의 예상 규모는 2조 7,000억 원에 육박한다. 시장이 이토록 활황이니 플랫폼별 기묘한 서비스도 넘쳐 난다. AI에 의한 맞춤 공고 매칭(사람인), 프리랜서 채용 전문 서비스(원티드), 연봉 1억 이상의 고액연봉자 대상 채용관 운영(리멤버), 지원자 데이터에 기반한 기업 분석 및 맞춤 공고 제공(잡플래닛), 동네 알바 서비스(당근) 등···. 기술이 적용되는 채용 시장이 신기하고 솔깃한데, 출판노동자 입장에선 그냥 다 별세계 이야기 같다.
출판계의 구인 구직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웹사이트, 일명 ‘북에디터’에서 이루어진다. 예비 출판인부터 전현직 출판노동자라면 한 번씩은 거치는 이곳은 국내의 독보적인 출판 전문 채용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출판노동자 채용 시장의 최전선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실상은 그냥 속 빈 강정이다. 비유가 아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닷오그(org) 도메인을 쓰고, PC로 접속하나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나 보이는 화면이 동일한 ‘무반응형’ 웹이다. 그야말로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친구’인 셈이다.
누군가 한국 출판사(史)를 기록하고 싶다면 단연 북에디터부터 참조하는 편이 좋다. 한국 출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거기에 있으니까. 사이트 안내문에 따르면 북에디터는 바야흐로 24년 전이었던, 2000년 11월 11일 ‘편집자들의 배움터, 쉼터, 나눔터’를 표방하며 개설했다. 초기에는 운영위원과 편집기획위원을 두고 출판 관련 자료와 정보를 공유하였으나 지금은 다 옛말이 되어버렸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관리의 흔적조차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사이트가 방치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전혀 아니란 말이다.
오늘날 북에디터에서 유일하게 활성화된 공간은 ‘구인/구직’ 게시판이다. 한국의 출판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신규 공고로 기존 공고가 뒤로 밀리면 직접 ‘끌올’해야 하는 아날로그 감성과 어떤 부당함을 폭로하는 투쟁이 공존하는 게시판은, 금요일만 되면 ‘퇴사 뽐뿌’가 차오른 출판노동자가 몰려 “접속 허용량 초과”로 열람조차 불가능해진다. 북에디터는 출판계가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 8시간 근무’가 ‘복리후생’이 되는 요절복통의 세계이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채용 공고에서 ‘퇴직금 별도 지급’과 ‘15일의 유급 휴가 보장’을 확인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익명성은 북에디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우리는 북에디터에서 구직자와 구인 기업이 하나의 게시판에서 직접 대화하는, 다른 채용 사이트에서는 보기 드문, ‘불편한 (하지만 덕분에 유익한) 만남’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꽤 오래전 일이다. 모 출판사가 채용 공고에서 (아주 당당히도)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연차 휴일이 10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어느 익명의 글쓴이가 법정 연차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출판사의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다. ‘동의합니다. 더 좋은 근무 조건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는 ‘좋은 말씀’으로 빼곡한 출간 이력이 책을 만드는 환경을 장담하지는 못한다는 아주 좋은 사례이다. 이런 회사의 존재를 알려준다는 것이야말로 북에디터의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랄까.
하지만 이런 요행만으로 북에디터를 긍정하기란 어렵다. 과거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미감 때문은 아니다. 첫째는 편리성이고, 둘째는 적합성이다.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웹사이트의 편리성을 스마트폰이 필수인 지금 논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하물며 ‘접속 허용량 초과’로 사이트 출입이 금지되어 제때 채용 공고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채용 결과를 공지하는 출판사가 손에 꼽히는 만큼) 채용의 진행/종료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곳은 채용 플랫폼으로서 참으로 부적합하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왜 북에디터일까? 지엄한 출판 법령이 있어 채용 공고는 무조건 북에디터에 올리라고 강제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자사 홈페이지에 올릴 수도 있고, 일반적인 채용 사이트를 이용해도 무방하다. 대한출판협회 홈페이지에도 ‘출판구인구직’ 게시판이 존재한다. 출판계 프리랜서 노동자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퍼블리랜서’ 홈페이지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출판사는 자사 홈페이지에는 안 올려도 북에디터에는 올린다. (물론 채용 공고를 북에디터에만 안 올리는 출판사도 존재한다. 그 이유를 상상해 봐도 좋다.)
앞의 질문에 예비 출판인과 전현직 출판인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공간이라서, 라는 답은 반만 맞는 답이다. 적어도, 지금의 북에디터는 출판계에 만연한 어떤 패배감의 상징처럼 보인다. 엎치나 메치나 구직과 구인이라는 목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부족한 북에디터가 지금의 모습으로 굴러가는 것 자체가 출판계의 현실을 대변한다. “편집자들의 배움터, 쉼터, 나눔터”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관성으로 쌓아 올린 폐허 위의 모래성. 북에디터, 아니 출판 채용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가능할까. 그 어려운 과제의 해결이 곧 출판계 정상화의 첫 단추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영훈(출판 편집자)
편집자. 서너 곳의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했다.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한결같이 타이완과 홍콩을 사랑한다. X(트위터였던 것) @bookedito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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