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에 관해서라면 좋은 느낌밖에 없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면 빡빡했던 뉴런들 사이의 체결마저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고, 말랑해진 머리에서는 몸을 씻다가 일어난 좋은 일들의 기억이 역사적 순서와 상관없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여행지의 한 오래된 목욕탕에서 나만큼이나 허벅지가 굵은 여자애와 몸을 속속들이 비교해보다가 깊은 친구가 되었던 일, 야무지고 매운 손을 지닌 아는 이모에게 살에 붉은 꽃이 필 때까지 때를 밀리곤 너무 아파서 폭소를 멈추지 못했던 일, 수영을 마치고 목욕하면 똑같은 물이 또 다르게 느껴지는 일, 히노끼 냄새가 나는 물, 유황 냄새가 나는 물, 물속에서만 털어놓을 수 있었던 중요하고 아픈 고백들, 냉탕에 도전하기, 불가마에 도전하기, 수영은 금지인 줄 알면서도 한두 번 헤엄치기, 매번 그러기, 목욕탕을 나서면 바깥이 여름일 때의 느낌, 바깥이 겨울일 때의 느낌, 머리카락으로 느끼는 두 계절의 큰 차이, 제일 먼 기억으로는 붉은 고무다라이 안에서 동생과 둘이 목욕할 정도로 몸이 작았던 때의 일들. 그때만 할 줄 알았던, 즉석에서 지어냈으므로 역사도 계보도 없는 물놀이와 상황극의 기억들.
코로나가 시대의 질병이 되기 전에 나는 논술학원에서 일을 했다. 그때는 24시 카페와 24시 목욕탕을 거리에 있는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자정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십 장의 논술 답안을 첨삭하다가, 동이 터오면 찜질방을 찾아 아작난 손목을 지진 다음 학원으로 출근하는 식이었다. 나는 코로나 시국에 아주 더디게 적응했다. 문 닫은 카페와 목욕탕 앞에 멍하니 서서 골똘히 짱구를 굴리다가 아, 코로나, 하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고서야 가까스로 집에서 일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 아직도 공중목욕탕에서 씻고 싶어 하는 사람은 둔한 사람을 넘어 두려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마스크 쓰기,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기처럼 공중 보건을 위해 보급된 지침들이 신속하게 새 시대의 도덕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어제까지는 무섭지 않았던 타인을 무섭게 느끼도록 노력하는 일, 전에 없던 기준을 도입해 타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코로나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남들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했으므로, 그렇게 나도 어렵사리 목욕탕에 발길을 끊었다. 공중목욕탕에서밖에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해야 불결하지도 두렵지도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이따금 궁금해하면서.
지금은 2024년이고 이제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통탄스러운 안전불감증의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목욕탕에 다시 가도 된다는 것이 좋다. 지금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고, 그 목욕탕의 이름은 장수탕이라고 누가 알려준 뒤로 그곳에 갈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렸다. 집에서도 따뜻한 물이야 나오지만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과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른 물이 간절할 때가 있다. 수많은 타인의 때와 피로가 이미 녹아든 물, 그런 진국에서만 비로소 뽑아낼 수 있는 근심이란 게 있는 것이다. 일종의 역삼투압 현상이랄까. 이런 논리대로라면 서울시 은평구 증산동에서 자그마치 52년 동안 영업을 했다는 장수탕의 물은 거의 신화적인 효능을 지닌 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장수탕이 곧 문을 닫는대서, 그저께는 급하게 장수탕에 목욕을 하러 갔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아니면 폐업이 가까워서 그런지 장수탕에는 나를 포함해 네 사람뿐이었다. 처음 와 보는 티를 지나치게 낸 걸까? 탕 속에 늘어져 있던 두 여자가 나의 목욕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래도 삼십 년이 넘게 씻어왔으니까 나도 내 몸이야 씻을 줄 알지만…장수탕의 단골들에게는 용품부터 동선까지 어느 하나 맞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짜준 케라시스 어드밴스드 볼륨 앰플 샴푸로 머리를 감고, 다른 사람이 손에 쥐여준 때타올과 초록색 비누로 구석구석 묵은 각질을 벗겼다. 머리에서도 몸에서도 달콤한 향기가 났다. 두 향기가 서로 달라서 살짝 어지러웠다. 몽롱한 기분으로 온탕을 즐기다가 나왔더니 내게 비누를 빌려준 여자가 말을 걸었다.
왜 벌써 나간대?
곧바로 또 일이 있어서….
그럴 거면 머더러 왔대?
나는 목욕탕에 가면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목욕과 휴식에 개입하는 사람들이 좋다. 단적으로 좋다기보단 숱한 경험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런 해프닝을 기대하고야 마는 몸이 되었다. 목욕탕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침범당한다. 피부나 몸에 대한 품평을 건네는 사람, 엉덩이를 때리고 가는 사람, 속옷이나 로션을 추천하는 사람, 간식이나 음료를 주고 가는 사람. 한번은 목욕탕 평상에서 쪽잠을 자는데 누군가 내 목을 손으로 받쳐 번쩍 들더니 목침을 쑥 넣어주고 간 적도 있다. 그 느닷없는 무례와 오지랖과 보살핌까지 겪어야 비로소 목욕탕에 왔구나 싶다. 여러 사례를 통해 나는 내가 알몸일 때 유독 불쌍하고 어설프고 취약해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탕 속의 여자들이 나누던 대화를 생각했다.
오늘은 안 하려고 했는데 또 하니까 좋네.
그렇지? 정말 그렇다니까.
이렇게 좋은 일도 어떤 날은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그런 마음이 1년, 2년, 아니 10년 동안 안 사라지기도 할까.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마음도 문득 되돌아올까. 매일매일 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내는 10년도 누리게 될까. 52년의 세월 속에서는 싫은 마음의 10년도, 좋은 마음의 10년도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게 될까. 내가 확실히 아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장수탕이 문을 닫기까지 약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다는 것. 영업시간은 05:00-19:00. 매주 수요일은 휴무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안담(작가)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