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금요일, 임진아 작가가 <채널예스>에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소개합니다. ‘임진아의 카페 생활’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카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
좁은 골목을 지나며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쳐다보게 되는 카페가 하나 있다. 오늘의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열려 있는지 궁금하고 열려 있다면 오늘도 여전히 같은 분위기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습관처럼 고개를 휙휙 돌린다. 열려있다면 왜인지 안심이 된다. 오전에 커피 한 잔 내려 마셨어도 오후의 커피가 마시고 싶어질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곳. 한결같은 진한 커피가 일품인 언더독 커피다.
여기 커피면 일단은 다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으로 마신 커피는 결국 언제나의 커피일 뿐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는데, 여길 그리던 기분을 고작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언더독 커피에서의 시간은 좋기만 하다. 집에 앉아서 떠올리던 상상을 이기는 시간이라니. 공간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게 아닐까.
한 번은 정기 휴무가 아닌데도 닫혀 있던 적이 있었다. 그제야 휴무에는 메뉴가 적힌 나무 간판이 나와있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페 운영 방식에는 말이 없는 언어들이 자리해있다. 나는 좋아하는 공간과 말이 없는 대화 나누기를 좋아한다. 오늘 고른 커피를 주문하면, 얼마입니다 대답을 듣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면 끝이 나는 대화뿐인 카페에서 이런 언어를 발견할 때면 기쁘다. 다시 열려 있는 모습을 마주하자 노란색의 투박하고 큰 메뉴판 겸 간판이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온 에어 불빛이 들어온 것처럼 카페에 생기가 돌았다.
언더독 커피로 향하는 길. 작은 가방에 책 한 권 덜렁 넣고서 골목을 걷다 보면 몇 사람 안 만난다. 잠깐 집 밖에 나와 있거나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뿐이다. 매일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서 걸어가는 얼굴들. 하지만 카페 안에 앉아 있다 보면 이 골목을 지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어 놀란다. 지나가는 사람일 때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언제나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조금이라도 궂은 날씨가 감돌면 이때다 싶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개운하고 싶을 때면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하지만 언더독 커피의 인기 메뉴는 라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메리카노만 마셔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에스프레소가 라테에 쓰였을 때의 완성도가 그려질 정도로 맛이 좋다. 카페 내부나 간판처럼 수더분하고 진한 매력이 있는 에스프레소 맛은 이제는 사라진 이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성산동의 작은 골목도 홍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언더독 커피의 공간에는 마음을 울리는 로큰롤이 묵직하게 흐른다. 디저트 메뉴 하나 없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을 정도로 커피 맛과 음악이 잘 어울린다. 오히려 커피 향에까지 집중할 수가 있고, 아는 곡도 커피의 힘이 더해져 좋게 들린다.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도 이 분위기에 찬찬하게 합류한다. 작은 CD 수납장, 그 안에 자연스럽게 놓인 CD들, 기타를 치는 그림, 지난 공연 포스터, 꿀렁이며 돌아가는 LP 판, 적당히 좋은 소리를 내는 스피커, 마치 디제잉을 하듯이 선 채로 커피를 내리는 사람. 그리고 작은 선반에는 이제는 사라진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의 컵이 놓여 있다.
언더독 커피를 찾을 때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읽던 책을 내버려 둔 채 지나가는 사람들에 한눈을 팔다가 어느새 지난 사람들과 지난 공간들을 떠올린다. 이제는 사라진 한 잔의 룰루랄라에서 맥주를 마시며 울듯이 웃던 추억, 기타를 매고 돌아다니며 카페에 들어가 연주 연습을 하던 추억, 칼국수집 두리반 철거 반대 농성을 하며 친구들과 연극 공연을 했던 추억. 젠프리피케이션 사이클은 어김없이 좋아하는 것들은 먼저 사라지게 했다. 좋아하는 마을은 좋아하기 무서운 마을이 되었고, 모였던 이들은 무력하게 흩어졌다. 이제는 무얼 무서워했는지도 흐릿해질 만큼 먼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마을 어딘가에서 오늘의 영업을 시작하며 사라진 카페의 커피잔 하나를 선보이는 카페가 있다는 건, 그간 애써 느끼려 하지 않았던 공허함을 느지막이 느끼는 일이었다. 공간의 힘은 이렇게나 크고, 공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한 사람의 지난 시간들을 반드시 쓰인다. 진하게 내려진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며 이제는 잘 듣지 않는 장르, 하지만 한때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장르의 노래를 귀에 넣는 시간. 이상하게도 자꾸만 추억 여행을 하는듯해 커피에서도 그리운 맛이 난다. 오랫동안 한 사람의 손과 입에 머물며 지속된 맛. 어쩌면 같은 마을에서 나와 같은 것을 향유한 사람이 오늘날에도 이곳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는 없는 곳을 기억하며 사라진 것들을 이야기하는 글을 좋아한다. 2021년에 영업을 종료한 커피발전소에서 9년 동안 커피를 내리며 그 안에서의 시간을 오래도록 바라본 사람, 정은 작가가 쓴 책 『기내식 먹는 기분』에는 커피발전소의 마지막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 낭독을 듣기 위해 가기도 하고, 진한 커피의 힘으로 무엇이든 구상해 보기 위해 가곤 했던 커피발전소 또한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한 공간이 사라지면 한 시절이 닫힌다. 한 공간이 사라진 이후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할 것이다. 사람도 공간이고 공간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카페라는 공간이 나에게 어떠한 힘을 주곤 했는지는 나중에야 안다. 사라진 후에야 절실해진다. 그래서일까. 언더독 커피에서 풍겨지는 옛날 이 마을의 매력을 자꾸만 내 멋대로 누리고만 싶다. 기타를 맨 채로 카페에 들어가 음료와 음악을 번갈아 즐기는 이들이 드글거리던 마을. 기타를 들고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던 카페들. 그 안에서 조용히 나의 기타를 내려놓던 나. 그 시절의 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언더독 커피에서 고개를 내민다.
아무리 시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무언가를 가진 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이 고유하게 데리고 산 취향들은 한 공간에 생활감으로 녹아들기 마련이다. 언더독 커피에는 그런 생활감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얼마 안 남은 커피에 아쉬워하고 있는데 여자 어른 둘, 여자 아이 둘, 총 네 명이 한 팀인 손님이 들어왔다. 어른 둘은 두 명의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고, 한 아이는 캠핑 의자가 놓인 낮은 테이블에 따로 앉고, 또 한 명의 아이는 앉을 생각은 아예 없다는 듯이 카페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러더니 가득 채워진 멜로디를 들으며 멋들어지는 로큰롤 박자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췄다. 맞아. 신나지. 카페 한가운데를 무대 삼아 춤을 추는 아이를 보면서 속으로만 덩달아 춤을 추던 나였다. 나도 음악을 한껏 느끼며 땅에서 두 발을 동시에 그것도 몇 번이나 들어 올린 적이 있었지. 내 마음에서 그 빛을 빼낸 건 무엇이었을까. 언더독 커피는 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임과 동시에 자꾸만 멀어져 가는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되는 카페이기도 하다. 언더독 커피에서는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다음에는 커피 손님이 아닌 공연 관람객이 되어 앉아 있고 싶다.
언더독 커피는 작업을 하기에도 좋은 카페이지만 단 한 번도 노트북을 가져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카페를 나와 다시 좁은 골목을 걸을 때면 반드시 어떤 글이라도 쓰고 싶어진다. 지난 시절 나에겐 어떤 빛이 있었는지 기억 해내고 싶어진다. 언제까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데리고 살면서도 언제든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틀어준 노래를 듣고 나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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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등이 있다.
얄궂쟁이
2023.06.18